인질 교훈 망각하는 일본
[한겨레] 이라크 저항세력에 납치됐던 일본인 5명이 모두 무사히 풀려났다.
한차례 홍역을 치른 일본에선 재발 방지를 위한 ‘교훈 찾기’가 한창이다.
한국으로서도 철저한 ‘케이스 스터디’가 필요한 사안이다.
자위대 철수 요구를 거부한 일본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점수를 얻었다.
여기에는 인질 무사 석방이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위대 파견에 반대해온 야당이나 일부 언론도 일찌감치 테러에 굴복해선 안된다고 밝힌 점 등으로 미뤄 일본에선 이런 대응이 ‘정답’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민간인 테러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테러가 확산된다는 게 그 논리적 근거다. 그러나 더 필요한 것은 테러를 낳는 온상을 없애는 근본적 치유책이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외국인 납치와 살상은 미군과의 충돌 격화가 빚어낸 ‘부산물’이다. 미군이 팔루자 지역에서 정규군이 아닌 저항세력이나 일반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한 것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전자가 테러라면, 후자는 학살이다.
테러와 학살, 전쟁은 ‘일란성 쌍둥이’들이다.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나 집단은 쉽게 전쟁을 택하고, 저항세력은 게릴라전으로 맞서거나 그럴 능력조차 없으면 테러에 의존한다. 국제분쟁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반대에 아랑곳않고 이라크 침공과 점령을 강행해 훨씬 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현실에 입을 다물면서 테러를 비난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때문에 미군의 점령을 뒷받침하는 자위대를 파견해 ‘큰 폭력’을 ‘방조’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저항세력의 ‘작은 폭력’에 단호한 대응을 선언하는 것은 공허하게 들린다.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을 철부지로 폄하하면서 ‘자업자득’이라고 비난하거나 ‘구출비용 본인 부담’ ‘이라크 입국금지 법제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위험지역으로 갈 때에는 응당 신중해야 하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처절한 분쟁이나 기아, 재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도적 지원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해 번 돈으로 전쟁 고아를 돌보아온 자원봉사자 다카도 나호코에게 바그다드 어린이들은 지금도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이라고 강변하며 이라크인들이 원치 않는 군복입은 자위대를 보내놓고, 거기에 걸림돌이 되니 그의 발을 묶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앞뒤가 맞는 말일까.
이라크 침공의 ‘원죄’를 지은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카도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라며 성원을 보냈고, 프랑스 <르몽드>도 “경솔하다는 비판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외국까지 가서 사람들을 돕는 행동하는 세대가 일본에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며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이 자랑스러워 해야 할 다카도 등은 18일 자신들을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에 눌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귀국해야 했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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