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참을 수 없는 일본인들의 '무례함'

푸른하늘김 2004. 1. 8. 22:06

참을 수 없는 일본인들의 '무례함'
일본에서 '아시아계 외국인'으로 살기 힘든 이유

글:박철현



어느새 일본에 온 지 3년째가 다 되어 간다. 세 번째로 새해를 이곳에서 맞이하는 감회는 새롭다.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일본어나 배워 보자며 6개월짜리 단기 유학을 감행한 내가 이곳에 정착해 살게 될 줄이야.

세계 최고 수준의 물가를 자랑하는 나라, 그것도 동경에서 3년째 버티고 있는 것이 경제적으로 버겁기는 하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한국에서보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의 여유로움이 그 버거움을 잊게 해 준다.

비록 그것이 내가 관계하는 사람들인 일본인 특유의 타테마에(建前·겉마음)로부터 나온 처세술이라 할지라도 적당히 상대를 배려하고 적당한 선까지 대화를 나누는 그 '적당주의'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물론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죄 회피, 군국주의로의 회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 등 일본 정부의 몰지각한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그러한 편안함이 계속 보장되는 한 일본에서 계속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주욱 해왔다.

그런데 요즘 새삼스레 일본에서 살기가 참 힘들어진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일련의 중국인들에 의한 살인 강도, 크레딧 카드 위조 사기사건들이 3~4개월전부터 매스컴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부쩍 강화된 '아시아계' 외국인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불안한 시선 때문이다.

그 시선은 마치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아니 지금도 심심하면 다루어지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마녀재판과 동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납치 문제에 대한 흥미 위주의 보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재일동포들이 일상적인 차별을 겪었는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 차별을 지금 중국인들이, 그리고 중국인들과 외견상 구별되지 않는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이 받고 있다. 1월 5일 파출소에서의 내가 겪었던 사례 역시 그런 연장선상에 놓혀 있는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중이었다. 저녁 8시 정도였을까? 역앞에서 자전거에 올라탄 채 만나기로 약속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50대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경찰관이 다가와서 자전거 번호 대조에 협조해 달라며 말을 건다.

자동차의 차번호와 마찬가지로 일련 번호가 전부 기재되어 해당 경찰서에 등록되는 일본의 자전거 관리 시스템이야 익히 알고 있어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번호 대조에 협조했다. 그 경찰관은 이것저것 확인해 보더니 자전거가 누구 꺼냐고 물었다.

"제가 타고 다니지만, 등록은 아내 이름인 '타카하시 미와꼬'로 했는데요."

내 말 억양이 이상했던 것일까? 경찰관이 외국인이냐고 물어봐서 "한국인"이라 답하니 이것저것 추가 질문을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공손한 말투로 시작한 그 경찰관이 그 추가 질문들은 모두 반말로 하는 것이 아닌가. 최대한 성의껏 답하다가 "결혼은 언제 했냐"라는 질문을 듣자 순간적으로 폭발해 버렸다.

"내가 당신에게 왜 결혼을 언제 했는지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요? 그리고 당신 왜 아까부터 계속 반말입니까?"

보잘것 없는 '아시아계' 외국인의 반발에 경찰관도 열을 받았던 모양이다. 나 보고 파출소 안으로 잠깐 들어가자며 어깨를 떠민다. 떠미는 그의 손길에 버티면서 "당신, 왜 내 어깨를 밀치는 거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랬더니 파출소를 지키던 젊은 경찰관이 나오고, 역앞에 모여 있던 주위의 사람들 역시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꽤 큰 소동이 되어 버릴 즈음 아내가 나타났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내 역시 화가 났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외국인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반말하면 되냐"며, "혹시 내 남편이 미국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당당하게 어깨를 밀치고 그랬겠냐,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냐"며 항의를 했다.

그제서야 2명의 경찰관은 겸연쩍어 하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얼마전에 이 근처에서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외국인에 의한 약국 살인강도 사건이 있어서 혹시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다는 말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혔지 않느냐, 외국인등록증에도 국적이 대한민국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왜 내 말을 믿지 않는가"라고 하자 그제서야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사과를 듣고 씁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신문을 훑다 보니 산케이 신문에 게재된 기사가 눈에 띈다.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등 동경 시내 번화가의 불법 체류자를 체포하기 위한 특수 부대를 만든다는 기사였다.

무려 200명으로 이루어진 이 부대는 각종 무술 유단자로 구성되어 불법체류자만을 단속할 것이라고 한다. 폭력단(야쿠자)과 크레딧 사기단, 각종 이권 개입 등에 불법체류자들이 포함되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 입국관리국의 설명이었다.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의 불법체류자를 단속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굳이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살인강도사건을 저지른 중국인들을 편들 생각도 없다. 다만 나는 그 단속의 공정성을 이야기하고 싶고 그 과정상에서 일어나는 무례함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나는 일본 당국이 록본기에 넘쳐나는 하얀 피부의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 불법체류자들도 적발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시아계라는 선입견만으로, 단지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빛 피부를 가졌다는 그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취조하듯이 반말과 사적인 질문을 거리낌없이 내뱉는 그 무례함을 고치길 바란다.

한동안 나를 안온하게 지켜주던 '겉마음'의 일본인들과 익명성이 보장되던 일본 사회가 요즘 들어 조금씩 불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