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이즈미 트로이카의 음모와 복수

푸른하늘김 2004. 1. 10. 23:34

고이즈미 트로이카의 음모와 복수
30여년 만에 이루어진 나카소네와의 전쟁


일본 보수귀족 정치인의 원류는 기시 노부스케 라는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출신의 총리에서 부터 시작된다.그의 사상을 잇는 사람이 후쿠다 타케오 전 총리이다. 다음이 기시 노부스케의 사위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다.마지막이 고미즈미 준이치로 현 총리이다.

이들은 3대에 걸쳐 이리저리로 연결되어 있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사위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고 그 중간에 후쿠다 타케오 전 총리가 있다. 후쿠다 타케오 전 총리의 비서가 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이고,고이즈미 총리의 현재의 비서실장이 그의 아들 후쿠다 야스오 이다. 또한 자민당 간사장인 아베 신조의 아버지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고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다. 아울러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비서실 부실장 출신이다.

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자신이 모시던 후쿠다 타케오 전 총리의 아들을 비서실장으로 , 자신의 사상적 지도자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아들을 비서실 부실장으로 쓰다가 지금은 자민당 간사장(사무총장)으로 기용했다.

바로 이들이 현재의 일본 보수 정치 3인방이다.다시 설명하자면 3인방 중 최고의 핵심은 고이즈미 총리. 고이즈미 총리는 협객 출신으로 우정상을 지낸 마타지로우를 조부로 , 아버지의 후광으로 방위청장을 지낸 준야를 아버지로 두고 있다. 두번째는 그림자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후쿠다 타케오 전 총리의 아들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비서실장), 다음이 귀족보수의 본류를 자인하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이며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아들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이다.

보수 3인방이 만나 고이즈미 총리 취임 후 첫 총선에서 그들의 30년 정적을 제거했다.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은 작년 9월 22일 간사장 취임과 동시에 새로운 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인 73세 정년원칙의 깃발을 들고 나왔다. 그 방안으로 구체적인 예를 들어 80살이 넘은 나카소네와 미야자와 등의 은퇴를 종용하는 발언을 하게된다.

곧 이어 10월 23일 고미즈미 총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85) 전 총리와 미야자와 기이치(84) 전 총리를 방문해 11월 9일 중의원 선거 전에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통합민주당에 맞서 자민당의 개혁적이고 젊은 새로운 이미지전략 차원에서 정치인 73살 정년원칙에 따라 용퇴해 줄 것 전했다.

그러나 나카소네 의원은 갑작스런 은퇴권고는 정치테러라고 반발하며 지역구 출마의사를 밝혔다. 반면 미야자와 의원은 세대교체를 위해 입후보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아무튼, 고이즈미 총리는 나카소네 의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를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우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고, 마침내 굴복한 나카소네 의원은 출마를 포기했다.

고이즈미의 은퇴요구로 작년 11월 중의원 선거에서 많은 정계원로들이 정계은퇴를 하였다. 대부분 이미 후계자가 정해져 있었기에 순순히 물러난 것이다. 일본 정치의 후계 구도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현재 자민당의 정치세습비율은 33.9%, 122명에 달해 세습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미야자와 역시 순순히 물러난 것은 지역구를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카소네가 반발한 것은 후계자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이 지난 1996년 종신비례대표 1번을 약속한 나카소네와의 갈등과 반목을 빚으면서까지 정치세습을 반대하고 정치인 73세 정년을 주장을 하였을까?

고이즈미 총리자신도 80년을 넘게 정치를 하고 있는 집안의 정치인3세 이고, 자신의 좌우측근인 아베 신조 간사장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도 50년 넘게 정치를 하고 있는 집안의 정치인들이다. 또한 자신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국회의원 자리를 그만둘리 만무하면서 왜 이율배반적으로 자신들에게도 칼날이 돌아올 수 있는 정치인 정년문제와 세습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작년 총선시 정치인 정년문제는 오직 한가지의 이유에서 제기되었다. 고미즈미의 비서실장인 후쿠다 관방장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후쿠다 집안과 나카소네의 30년의 암투와 복수가 그 원인이다.

1972년 자민당의 총리선거전에 출마한 다나카와 후쿠다 타케오의 선거전에서 당시 자민당내의 핵심 간부였던 나카소네는 자신의 대학선배이며 고향선배인 후쿠다를 밀지 않고, 니이가타 출신의 소학교만 나온 다나카를 밀어서 총리에 당선시킨다.

자신과 파벌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향과 대학선배인 후쿠다 다케오를 밀지 않고 다나카를 밀어 당선시킨 일은 후쿠다 집안뿐 아니라 그의 고향인 군마현민들에서도 배신행위로 비쳐졌다. 또한 후쿠다 다케오의 비서출신인 고이즈미 현 총리에게도 미움을 사게 됐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카소네는 특히 지역구 민들의 반대로 지역구 출마를 거의 포기하게 되었고 비례대표로만 등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작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그가 지역구 독자 출마를 강력히 주장하기하기는 하였지만, 후쿠다 집안의 힘과 지역구민들의 불신 등으로 당선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고이즈미가 강력하게 은퇴를 주장하였기에 그는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30여년 후 새롭게 정권을 잡은 고이즈미와 아베 ,후쿠다는 나카소네 제거 작전을 시행에 옮겼고, 기본 구상은 후쿠다가 하고 고이즈미와 아베가 공동으로 칼을 잡고서의 그의 목을 친것이다. 겉으로는 정계에 젊은 피를 흐르게 하고 정치인 73세 정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복수를 위해 미야자와 까지 동반 희생양으로 만들어 목을 친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의심 받지 않기 위해 작년 12월 29일에는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고이즈미 정치학교'를 만든다는 말도 하고 지역구 세습을 막는 법을 만들겠다고 정치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완전범죄를 조작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