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임나일본부'에, 중국의 고구려사 강탈에!

푸른하늘김 2003. 12. 12. 22:59
'임나일본부'에, 중국의 고구려사 강탈에!

남북으로 도적 같은 강국들이 한반도를 노리는구나!

글:장팔현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중국은 이미 80년대부터 중부가 나서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무리하게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단순한 왜곡 날조 단계를 넘어 검은 속내를 들어 내놓기 시작한 것은 북한이 유네스코에 고구려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 추진하던 중에 분명히 드러났다.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라 우기며 북한의 세계유산 등록 외교조차 방해했던 것이다. 이젠 적반하장 격으로 중국이 유네스코에 고구려 유적지를 등록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고구려인들의 후손으로서 심히 불쾌함은 물론 이는 보통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북 역사학자들의 면밀한 대응은 물론 남북정권도 이런 민족적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단결하여 그 야욕을 멈춰 서게 해야 한다.


일찍이 BC108년에 한나라 무제는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곳에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을 두었다. 식민사학에서 말하는 일명‘한사군’이었던 것이다. 물론 상기 군(郡)들은 현재의 요령성, 길림성 등 중국 동북지역에 설치되었던 것이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제는 식민사학의 영향이 상당히 불식되었지만 아직도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중국 동북에 있던 한(漢) 군현(郡縣)이 한반도로 다시 진출한 때는 후한 시대(AD44년)로 보인다. 한반도의 평양지역에 또다시 제2기(필자는 요령성에 제1기 낙랑군이 있었다고 봄)낙랑군이 설치되고 후에 낙랑군을 둘로 나누어 남부지역에 대방군을 두었던 것이다. 바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망했던 낙랑조선 출신이 한반도 평양으로 동진하여 다시 낙랑국을 세우니 바로 후한 시대에 이 곳마저도 빼앗기게 된 최리(崔理)의 낙랑국이다. 때문에 중국 사가들은 처음부터 한반도의 평양에 한 군현을 둔 것처럼 역사를 왜곡 했으며, 특히 당 나라시대 <<사기>> 주해를 달던 학자들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왜곡되어 마치 진실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이를 김부식이 간파하지 못했고, 일제가 또 왜곡을 덧씌웠으며, 친일사학자들이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임으로서 식민사학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중국인들의 우리역사 왜곡은 현재만 추진 중인 것이 아니고, 후한시대부터 일찍이 행해지던 고질병이다. 중국의 역사는 높이고 주변국 역사는 낮춰 적던‘춘추필법’에 기인한다. 때문에 중국의 정서인 <<사기>>를 다시 우리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풀어보면 한 무제가 점령한 낙랑군이 한반도의 평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산해경>> 이나<<사기>> 및 <<한서>>의 지리조를 보아도 “패수(당시의 패수는 한반도의 대동강이 아님)의 흐름이, 조수,습수,선수가 합쳐져 동쪽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 낙랑군의 증지현에서 패수가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바다까지의 거리가 800리라고 나와 있다. 한반도에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거리이다. 이를 당 나라 시대의 학자들이 후한 시대에 한반도 평양에 다시 설치된 제2기 낙랑군을 처음부터 즉, 한 무제 때부터 낙랑군을 두었던 것처럼 왜곡해서 주석을 달아 놓음으로서 우리가 속고 있던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및 중국사로의 편입은 부끄러운 짓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중국 내부 모순점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획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두 가지 측면이 있는바, 그에 대하여 알아보자!




중국의 목적




1.통일한국 이후의 간도문제

간도는 두만강 북쪽의 광활한 지역으로 조선 중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옮겨 산 지역이고, 조선의 관리가 파견 돼 관리한 지역이다. 특히 청나라 조정에서 만주족의 발상지인 만주지역에 화인(중국인)들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던 ‘봉금령(封禁令)’,을 해제하고 나서는 더욱 더 많은 조선인들이 옮겨갔다. 그러다가 1909년9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중국영토로 귀속됐다. 일제는 푸순탄광 개발권과 남만주 철도 부설권 등 4대 이권을 얻는 대가로 한국 영토인 간도를 중국에 넘겨 준 것이다. 그러나 한.일합방 자체가 무효인 이상 이 ’간도협약‘도 무효인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우리 영토로 다시 귀속시켜야 할 땅이다.




하여튼 일제를 거치면서 수많은 동포들이 일제의 등쌀을 피해 남부여대하고 다시 살길을 찾아 만주로 옮겨 갔던 것이다. 지금도 200만 명 가까운 조선족이 살고 있고, 한류열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정부에서 소수민족 독립 운동 기운으로 신경이 날카로울 때 남북통일을 예상하면 머리가 쭈뼛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종종 동북지역 관리차원에서 조선족 동포가 한국 방송을 보는 것조차 시기하여 위성안테나를 떼버리는 야만적 행위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동포와 모국의 한민족이 연결고리를 갖지 못하도록 사이를 끊고 쐐기를 박기 위한 강수로서 고구려사를 왜곡 날조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는 동북삼성 지역이 통일한국 이후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친한 지역으로 분류되기에 티벳, 위구르 등의 소수민족이 분리 독립할 시 이 곳도 상당히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미리 막기 위한 무리수로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이는 한민족을 철저히 깔보는 중화민족의 패권주의로서 우리 측의 정당하고 떳떳한 맞대응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2.북한 붕괴 시 연고권 주장

.다른 한 가지 목적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 고조선 시대와 나당연합군으로 한 때 평양지역에 안동도호부를 두었던 것을 근거로 북한 정권 멸망 시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한 술책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중국 측이 대동강 이남만을 한국사라고 주장하는 데에서도 중국의 흑심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쉽지 않은 술책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정권을 쥔 북한 측이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성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목숨부지만을 위해서 오판을 할 때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중국 측이 지리 교과서에 나당연합군으로 참전하여 웅진도독부와 안동도독부를 두었던 공주지역과 평양지역을 중국 영토로 표기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물론 도독부를 두었던 기간만큼 중국 땅이라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백제가 중국 땅에 두었던 두 군인 “백제군”과 “진평군”도 우리 땅이요, 고구려 유민 이정기 장군이나 발해가 한때 산뚱 지역을 차지했던바, 그 곳도 한국 땅이라는 논리와 다름없다.




하여튼 중국의 논리는 너무 일방적이요, 우리로서는 너무 어이없이 덤비는 도적을 만난 꼴이다. 하여튼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민족 내부의 힘이 모자라, 한.일합방 전에 미국과 일본이 맺었던 카쓰라-태프트 밀약처럼 미, 중간 밀실에서 빅딜이 성사된다면, 이는 엄청 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중국은 무리하게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자 광분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또 다시 주변 강국들의 짐승 같은 야욕에 의해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누천년의 생활터전이 역사로부터 보증 받지 못할 때 우리는 또 다시 나라 없는 설움을 당할 수도 있다.




남쪽에서는 일본이 ‘임나일본부설’로 우리의 역사적 근거를 갉아먹고 중국까지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켜 버리면 과연? 우리가 설 땅은 어디란 말인가? 한국인이 한반도에서 존립하는 근거자체가 아주 위험하게 된다. 때문에 남북한 위정자들은 매우 현명하게 주변 인접 강국의 역사왜곡 문제에 냉철하게 대비해야할 때이다. 중국처럼 전문학자들을 끌어 모아 중국과 일본 역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서 준비와 대응전략을 수립해야한다. ‘제2의 현대판 집현전’을 하루빨리 설치해야하고 이왕이면 남북학자들이 공동연구를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남북통일 문제와 함께 지금 이 문제도 대응해 나가야한다. 통일 후에는 늦다. 중국은 남북통일을 방해하고 오히려 북한이 붕괴 됐을 시를 더 염두에 두고 그 마수를 뻗칠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가 연구나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가는 남북통일과 간도 되찾기는 고사하고 북한도 잃을 수 있다. 지금 시대는 우리 한민족 전체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시기이자, 현명한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