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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박정희 유신 독재에 반대하여 73년 8월 15일 분연히 일어선 해외민주화운동의 선도적 단체인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하 한통련)의 결성 30주년 기념대회가 동경 오챠노미즈 총평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국내외 인사 약 500명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한통련은 주지하다시피 73년 8월 당시 일본에 와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반박정희 정권, 반독재, 반파쇼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이하 한민통)가 그 전신이다. 이후 89년 곽동의 선생을 의장으로 추대하면서 지금의 한통련으로 발전적인 개편을 단행한, 해외 민주 조직의 전설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설립 초창기부터 어려움은 많았다. 한민통 결성 직전의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인해 주위에서는 조직 설립의 어려움도 예견했었으나, 그 모든 것을 불식하고 김재화, 배동호 선생 등을 중심으로 그해 8월 15일 결성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지금에까지 단 한번의 단절 없이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해외 민주화 운동의 최선봉에 서서 지금까지 투쟁해 왔고, 또 세계적인 범위 내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활동들을 펼쳐 왔다. 그러한 투쟁의 역사가 당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의 미움을 받아 한통련 인사들은 지금까지 대표적인 '반국가단체'로 지목되어 빨갱이, 친북파들의 소굴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근거 없는 음해에 시달려 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 30주년 기념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 해외 민주 인사 명예 회복과 귀국 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의 임종인 집행위원장은 대회가 시작되기 전 추진위 결성 의미를 묻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민주 세력이 집권을 한 이래, 민주화 보상 법안이 마련되어 민주화에 기여하고 희생당한 분들에게 보상도 해주고, 명예 회복도 시켜주고 그런다. 아직 미약하기는 하지만 법적인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해외에서 더 열심히 투쟁하신 분들은 반국가단체로 되어 있고, 고국에 들어 오려면 오히려 반성문이나 준법서약서를 써야 한다. 이게 말이 되나? 누가 한 투쟁은 민주화 운동이고, 누가 한 운동은 반국가 행위이고. 추진위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는 민중의례, 지나온 한통련 30년 역사에 대한 소개, 한국에서 방문한 내빈 소개 및 홍근수 한통련 대책위(이하 대책위) 공동대표와 최병모 추진위 상임대표의 인사말, 공로자에 대한 기념품 증정, 한통련 곽동의 의장의 기조 연설, 한청과 학생협, 민주여성회의 연대 표명 및 앞으로의 투쟁 및 사업 방향 등을 발표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이번 30주년 행사를 위해 특별히 방문한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 보자면, 지난 9월 해외민주인사 고국 방문을 실현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추진위의 최병모 상임대표를 비롯, 홍근수 대책위 공동대표, 임종인 추진위 집행위원장, 이기욱 대책위 집행위원장, 불교인원위원회의 진관 스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김이경 전국연합 조국통일위원장, 김건수 추진위 사무국장 등이다.
특히, 초창기 한민통(한통련의 전신)의 조직적 체계와 기틀을 세우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고(故) 배동호 선생의 따님인 배강옥 여사가 직접 참석하여 공로자 유가족 대표로서 인사말을 발표할 때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기조차 어려웠던 그 과거 시절의 투쟁,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그 현장에서 협박과 회유의 양날을 줄기차게 거부해 온 칼날같은 삶을 살았던 한민통 선배동지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일까? 곽동의 의장의 눈도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 든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책을 펴내고 그간 한통련 및 해외민주인사들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민족21>의 안영민 사장은 초청자이면서도 취재를 겸해 왔다면서, 줄곧 취재 수첩에 대회의 분위기를 적는 모습이었다. "뿌듯하죠. 한통련과 곽동의 의장님을 저희들이 계속 다루어 왔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또 이러한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조직이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선도적으로 나서줬으면 합니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을 30년의 역사. 그러나 마냥 지금까지 잘 싸워 왔다는 과거를 회상하는 축하 모임은 아니다. 곽동의 의장은 기조 연설에서 그간 한통련의 걸어온 발자취를 요약 정리하는 한편, 앞으로의 사업 및 투쟁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것. 그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입니다. 그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입니다. 외세는 어디까지나 외세일 뿐, 우리 민족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족은 이념과 사상, 제도가 다르더라도 같이 살아가야 하는 영원한 동반자이자 운명공동체입니다." "한통련은 민족 공조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재일동포들 속에서 통일 운동을 더더욱 가열차게 벌여 6·15 남북공동선언과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의 실현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자면 그에 역행하는 행위를 반대하고 그 행위를 일삼는 세력들과 싸워야 합니다. 지금 한나라당을 비롯한 우익수구세력들은 외세 의존을 추구하면서 6·15 선언의 정신을 부정하고 냉전 시대의 구태의연한 반민족적 행위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통련은 민족의 여망과 이익에 배치되는 이러한 행태에 반대하는 사회적 여론을 크게 조성하며 그에 반대 배격하는 운동을 적극 벌여 나갈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6·15 공동선언 이행'과 '조국의 자주민주적 통일' 그리고, 그것에 역행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우익수구세력들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지침을 설정한 것이다.
물론 곽동의 의장은 지금까지 일상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해 왔던 민족 교육과 재일한국인의 권익 옹호를 위한 활동들도 변함없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우리말 강습소, 문화 교실등을 상시적으로 열어 재일 3, 4세들의 민족성을 고취시키고, 부당하게 차별받는 재일동포들을 위해 싸워 나가겠다는 것이다. 본대회가 끝난 후 2부 앙상블 공연을 남겨두고 잠시의 휴게 시간을 가졌다. 최병모, 홍근수, 임종인, 진관 스님 등을 만나 축하 메시지를 부탁했다. (박스기사 참조)
특히 이기욱 대책위 집행위원장과는 한통련 분들과 같이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어 안면을 트고 있는 사이라 그 인연(?)을 이용해 간단한 미니 인터뷰를 즉석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 30주년 축하 행사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한통련이 30년간 많은 탄압과 고난을 받으면서도 한국의 민주화와 재일동포의 권익 옹호, 민족성의 회복 등에 있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이번에 그것들이 인정을 받고 명예스럽게 조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고, 이번에 곽 의장님이 편찮으셔서 못 왔는데, 다음에 2차 방문 때는 몸조리를 잘 하셔서 반드시 오실 수 있으면 한다." - 2차 방문을 추진한다고 했는데, 시기는 언제쯤인가? "지금 곽 의장님 건강이 회복되는 금년 안으로 하려고 했는데, 송두율 교수 문제로 정세가 좀 안 좋은 측면도 있고, 노 대통령 재신임 문제도 있고. 그래서 내년 총선 전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총선 전후라면 시기에 따라 미묘해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총선 결과에 따라 방문이 무산된다거나 하는 정치 논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총선 결과에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 일단 길을 닦아 놓았으니까. 고국 방문에 호의적인 민주당이나 신당이 성과를 못 거두고 한나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더라도, 무산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전혀 지장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 한번 길을 닦아 놓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그렇지만 역시 총선 전에 방문이 이루어지면 한나라당이나 우익 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게 되고, 투표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역시 총선 후가 되지 않을까 한다" 2부 행사에서는 오사카 지부의 한통련 회원들이 준비한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앙상블 공연이 펼쳐졌다. 지난 30년간 한통련이 지나온 영상들이 스크린에 비쳐졌고, 연세가 지긋한 노전사(老戰士)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는 스크린을 응시하면서 과거의 회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한통련 행사에 처음으로 참가했다고 밝히는 일본어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젊은 유학생은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73년이면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그리고 80년 90년 지나면서도 저는 그냥 공부만 했는데, 먼 외국에서 이렇게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싸우고 계신 분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대회 전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 일행은 닛포리의 랑그웃드 호텔로 이동하여 축하 파티를 가졌다. 약간은 비공개의 형식으로 열린 본대회와는 다르게 오픈 행사의 모습을 띤 축하 파티에는 그간 한통련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연대해 온 많은 일본 시민 단체 및 정치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회장을 빛내었다.
요시마츠 시게루(오우지 교회 주임목사), 이토 나리히코(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시미즈 스미코(전 참의원 의원) 등이 연대의 의지와 축하 인사말을 직접 발표했고, 토이 타카코(사회민주당 당수)를 비롯하여 덴 히데오(참의원, 사회민주당), 사사키 히데노리(중의원, 민주당) 등은 일본 총선거라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축전을 보내와, 한통련과 가진 지난 30년의 역사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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