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통련 30주년

푸른하늘김 2003. 11. 4. 22:43

























해외민주화운동단체의 맏형, 한통련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결성 30주년 기념대회
글:박철현/안창규















▲ 한통련 결성 30주년 현수막이 걸린 총평회관. 아래쪽에 곽동의 의장의 모습이 보인다.
ⓒ2003 박철현

11월 2일, 박정희 유신 독재에 반대하여 73년 8월 15일 분연히 일어선 해외민주화운동의 선도적 단체인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하 한통련)의 결성 30주년 기념대회가 동경 오챠노미즈 총평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국내외 인사 약 500명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한통련은 주지하다시피 73년 8월 당시 일본에 와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반박정희 정권, 반독재, 반파쇼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이하 한민통)가 그 전신이다. 이후 89년 곽동의 선생을 의장으로 추대하면서 지금의 한통련으로 발전적인 개편을 단행한, 해외 민주 조직의 전설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설립 초창기부터 어려움은 많았다. 한민통 결성 직전의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인해 주위에서는 조직 설립의 어려움도 예견했었으나, 그 모든 것을 불식하고 김재화, 배동호 선생 등을 중심으로 그해 8월 15일 결성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지금에까지 단 한번의 단절 없이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해외 민주화 운동의 최선봉에 서서 지금까지 투쟁해 왔고, 또 세계적인 범위 내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활동들을 펼쳐 왔다.

그러한 투쟁의 역사가 당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의 미움을 받아 한통련 인사들은 지금까지 대표적인 '반국가단체'로 지목되어 빨갱이, 친북파들의 소굴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근거 없는 음해에 시달려 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 30주년 기념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 해외 민주 인사 명예 회복과 귀국 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의 임종인 집행위원장은 대회가 시작되기 전 추진위 결성 의미를 묻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민주 세력이 집권을 한 이래, 민주화 보상 법안이 마련되어 민주화에 기여하고 희생당한 분들에게 보상도 해주고, 명예 회복도 시켜주고 그런다. 아직 미약하기는 하지만 법적인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해외에서 더 열심히 투쟁하신 분들은 반국가단체로 되어 있고, 고국에 들어 오려면 오히려 반성문이나 준법서약서를 써야 한다. 이게 말이 되나? 누가 한 투쟁은 민주화 운동이고, 누가 한 운동은 반국가 행위이고. 추진위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자유왕래 계속되면 명예회복 이뤄질것"
한총련 30주년 행사 참석한 민변 최병모 회장 인터뷰













▲ 최병모 회장
ⓒ안창규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30주년을 맞이하여 한통련을 평가한다면 어떻게 평가 내릴 수 있는가?
"한통련이 30년동안 참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해외에서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한 체 자주·민주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해왔다. 한통련 30주년 행사에 초대되어 와서 보니 정말 감격스럽다."

-한통련 방한을 위해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는 어떤 노력들을 했는가?
"그동안 한국이 민주화에 길로 들어선 지 10년 정도라고 말을 하는데 국내에 있는 민주화 인사들은 민주화 운동에 관한 재평가 및 보상도 받았다. 해외에 있는 민주인사들, 특히 한통련 민주인사 분들은 반국가 단체로 낙인이 찍혀있어서 그러한 평가도 받지 못하고 보상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입국마저 불허되었는데 불행한 일이다.

민주화 길로 들어섰긴 했지만 불완전한 민주화가 아닌가 생각을 했고 민변에서 한통련에 관한 논의를 한 끝에 범국민적 추진회를 만들어 해외에 계신 민주화 운동인사들에 고향 방문을 성사시키게 되었다."

-언제부터 방한을 준비하였는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전부터 한통련 관련 민주 인사 분들을 취임식에 초대했으면 좋겠다고 민변 차원에서 건의를 했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성사가 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인 3월부터 추진을 하기 시작해서 4월, 5월이 지나 8월 7일에 범국민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9월 중순에 고국방문이 성사가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한통련을 비롯한 해외민주인사들에 고국 방문을 승인했지만 국가 보안법 안에서는 아직 불법 단체로 되어있는데 명예회복이 이루이 지고 있는가?
"국가 보안법 역시 폐지되어야 할 법률인데 우리 민변에 공식적인 입장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밖에 사회단체들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반통일 세력, 수구 세력들이 국가 보안법에 매달리고 있어서 결국 정치적인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진 것이 해제되지는 않았지만 자유로운 입국과 방문이 허용이 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접견을 했기 때문에 한통련 분들에 대한 명예회복에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본다."

-아직 법적으로는 명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 아닌가?
"그 문제는 법적으로는 특별히 규정되어 진 것이 아니고 반국가 단체라고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판결에서 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한통련 인사 분들이 고향을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최근에 일본의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한 번 방문했다고 해서 앞으로 다시 방문하지 못한다', '여권을 발급하지 않겠다', '여권을 1년짜리를 내어 주겠다'라고 하는 이야기들을 여기 와서 다시 듣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그 문제에 관해서 다시 한번 논의를 하고 그 점에 대해서 협조문이나 관계기관에 항의하고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생각이다."

-앞으로 법적인 명예회복까지 생각하고 있는가?
"자유왕래가 계속해서 이루어지면 결국 다시는 처벌하지 않게 되고 그게 명예회복의 단계가 될 것이라 생각을 한다. 법을 제정하거나 재심을 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유왕래가 계속 되면 이곳에 있는 한통련 분들의 명예회복까지 이루어 질 것이다."

-그동안 일본의 한통련 분들이 한국 민주화 운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통련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번에 한통련 문제를 민변에서 논의를 해왔고 고국방문 범국민 추진위원회 활동도 해 왔지만 직접 한통련 분들을 여기까지 와서 직접 만나 뵙고 오늘 공연도 보고 그 결과 한통련 분들이 정말 많은 일들을 했구나 생각을 했다. 곽동의 의장님이 지금까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해 왔지만 앞으로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더욱 한통련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큰일을 할 것이라 믿는다. 한통련이 이제 까지 해온 일들, 업적들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라 생각을 한다."
/ 안창규
















▲ 대회가 열리기 전 한통련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2003 박철현
















▲ 한통련 30주년 행사가 열린 총평회관 대회의실
ⓒ2003 박철현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는 민중의례, 지나온 한통련 30년 역사에 대한 소개, 한국에서 방문한 내빈 소개 및 홍근수 한통련 대책위(이하 대책위) 공동대표와 최병모 추진위 상임대표의 인사말, 공로자에 대한 기념품 증정, 한통련 곽동의 의장의 기조 연설, 한청과 학생협, 민주여성회의 연대 표명 및 앞으로의 투쟁 및 사업 방향 등을 발표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이번 30주년 행사를 위해 특별히 방문한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 보자면, 지난 9월 해외민주인사 고국 방문을 실현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추진위의 최병모 상임대표를 비롯, 홍근수 대책위 공동대표, 임종인 추진위 집행위원장, 이기욱 대책위 집행위원장, 불교인원위원회의 진관 스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김이경 전국연합 조국통일위원장, 김건수 추진위 사무국장 등이다.
















▲ 한국에서 온 축하 인사들. 진관스님, 김이경 전국연합 조통위원장등이 보인다. 그리고 뒷줄에 모자를 쓰신 여자분이 배동호 선생의 따님이신 배강옥 여사.
ⓒ2003 박철현
















▲ 좌로부터 홍근수 대책위 공동대표, 최병모 추진위 상임대표, 뒷줄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2003 박철현

특히, 초창기 한민통(한통련의 전신)의 조직적 체계와 기틀을 세우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고(故) 배동호 선생의 따님인 배강옥 여사가 직접 참석하여 공로자 유가족 대표로서 인사말을 발표할 때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기조차 어려웠던 그 과거 시절의 투쟁,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그 현장에서 협박과 회유의 양날을 줄기차게 거부해 온 칼날같은 삶을 살았던 한민통 선배동지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일까? 곽동의 의장의 눈도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 든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책을 펴내고 그간 한통련 및 해외민주인사들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민족21>의 안영민 사장은 초청자이면서도 취재를 겸해 왔다면서, 줄곧 취재 수첩에 대회의 분위기를 적는 모습이었다.

"뿌듯하죠. 한통련과 곽동의 의장님을 저희들이 계속 다루어 왔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또 이러한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조직이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선도적으로 나서줬으면 합니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을 30년의 역사. 그러나 마냥 지금까지 잘 싸워 왔다는 과거를 회상하는 축하 모임은 아니다. 곽동의 의장은 기조 연설에서 그간 한통련의 걸어온 발자취를 요약 정리하는 한편, 앞으로의 사업 및 투쟁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했다.
















▲ 기조연설을 통해 한통련 30년 역사와 이후 나아갈 길을 역설하는 곽동의 의장
ⓒ2003 박철현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것. 그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입니다. 그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입니다. 외세는 어디까지나 외세일 뿐, 우리 민족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족은 이념과 사상, 제도가 다르더라도 같이 살아가야 하는 영원한 동반자이자 운명공동체입니다."

"한통련은 민족 공조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재일동포들 속에서 통일 운동을 더더욱 가열차게 벌여 6·15 남북공동선언과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의 실현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자면 그에 역행하는 행위를 반대하고 그 행위를 일삼는 세력들과 싸워야 합니다. 지금 한나라당을 비롯한 우익수구세력들은 외세 의존을 추구하면서 6·15 선언의 정신을 부정하고 냉전 시대의 구태의연한 반민족적 행위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통련은 민족의 여망과 이익에 배치되는 이러한 행태에 반대하는 사회적 여론을 크게 조성하며 그에 반대 배격하는 운동을 적극 벌여 나갈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6·15 공동선언 이행'과 '조국의 자주민주적 통일' 그리고, 그것에 역행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우익수구세력들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지침을 설정한 것이다.





























완전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계속 노력하겠다
한통련 곽수호 부위원장 인터뷰














▲ 지난 여중생 사건 집회장에서 곽수호 부위원장(가운데)
- 한통련 30주년을 맞이하였는데 지금 심정은 어떠한가?
"간단하게 말하면 감개무량이다. 히로시마 한청 위원장으로 한민통 결성에 참여했다. 한민통을 결성한 후 김대중 전 대통령 구출 운동대회에서 연설을 했었다. 30년 전이다. 계속해서 민주화 운동을 해왔는데 역시 성과가 있다고 느낀다."

- 이번에 한국 방문을 한 것으로 아는데 기분이 어떠했는가?
"민단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한국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한민통 결성이 73년이었지만 71년부터 한국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통련 활동으로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대가 계속되어 32년간 한국에 못갔다. 이번에 추진위원회 분들의 노력으로 갈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32년만의 고향 방문이었다. 광주나 부산에 가서 환대를 받았었고 개인적으로 친척들이 잘 맞아 주셨고 조카들이 날 상기하면서 학생민주화 운동을 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 앞으로 한통련의 방향은 무엇인가?
"한국은 많이 민주화가 진행되었지만 아직 완전한 민주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완전한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해야겠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 앞으로 한통련이 중심이 되어서 그런 과제를 풀기 위해서 한층 더 노력하겠다.


물론 곽동의 의장은 지금까지 일상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해 왔던 민족 교육과 재일한국인의 권익 옹호를 위한 활동들도 변함없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우리말 강습소, 문화 교실등을 상시적으로 열어 재일 3, 4세들의 민족성을 고취시키고, 부당하게 차별받는 재일동포들을 위해 싸워 나가겠다는 것이다.

본대회가 끝난 후 2부 앙상블 공연을 남겨두고 잠시의 휴게 시간을 가졌다. 최병모, 홍근수, 임종인, 진관 스님 등을 만나 축하 메시지를 부탁했다. (박스기사 참조)
















▲ 좌로부터 이기욱 대책위 집행위원장, 최병모 상임대표, 김지영 민주여성회 대표, 임종인 추진위 집행위원장
ⓒ2003 박철현

특히 이기욱 대책위 집행위원장과는 한통련 분들과 같이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어 안면을 트고 있는 사이라 그 인연(?)을 이용해 간단한 미니 인터뷰를 즉석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 30주년 축하 행사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한통련이 30년간 많은 탄압과 고난을 받으면서도 한국의 민주화와 재일동포의 권익 옹호, 민족성의 회복 등에 있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이번에 그것들이 인정을 받고 명예스럽게 조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고, 이번에 곽 의장님이 편찮으셔서 못 왔는데, 다음에 2차 방문 때는 몸조리를 잘 하셔서 반드시 오실 수 있으면 한다."

- 2차 방문을 추진한다고 했는데, 시기는 언제쯤인가?
"지금 곽 의장님 건강이 회복되는 금년 안으로 하려고 했는데, 송두율 교수 문제로 정세가 좀 안 좋은 측면도 있고, 노 대통령 재신임 문제도 있고. 그래서 내년 총선 전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총선 전후라면 시기에 따라 미묘해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총선 결과에 따라 방문이 무산된다거나 하는 정치 논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총선 결과에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 일단 길을 닦아 놓았으니까. 고국 방문에 호의적인 민주당이나 신당이 성과를 못 거두고 한나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더라도, 무산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전혀 지장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 한번 길을 닦아 놓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그렇지만 역시 총선 전에 방문이 이루어지면 한나라당이나 우익 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게 되고, 투표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역시 총선 후가 되지 않을까 한다"



2부 행사에서는 오사카 지부의 한통련 회원들이 준비한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앙상블 공연이 펼쳐졌다. 지난 30년간 한통련이 지나온 영상들이 스크린에 비쳐졌고, 연세가 지긋한 노전사(老戰士)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는 스크린을 응시하면서 과거의 회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한통련 행사에 처음으로 참가했다고 밝히는 일본어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젊은 유학생은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73년이면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그리고 80년 90년 지나면서도 저는 그냥 공부만 했는데, 먼 외국에서 이렇게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싸우고 계신 분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대회 전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 일행은 닛포리의 랑그웃드 호텔로 이동하여 축하 파티를 가졌다. 약간은 비공개의 형식으로 열린 본대회와는 다르게 오픈 행사의 모습을 띤 축하 파티에는 그간 한통련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연대해 온 많은 일본 시민 단체 및 정치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회장을 빛내었다.
















▲ 환영회를 가득메운 인파들. 한통련의 지나온 역사를 다룬 영상을 보고 있다.
ⓒ2003 박철현

요시마츠 시게루(오우지 교회 주임목사), 이토 나리히코(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시미즈 스미코(전 참의원 의원) 등이 연대의 의지와 축하 인사말을 직접 발표했고, 토이 타카코(사회민주당 당수)를 비롯하여 덴 히데오(참의원, 사회민주당), 사사키 히데노리(중의원, 민주당) 등은 일본 총선거라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축전을 보내와, 한통련과 가진 지난 30년의 역사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시하였다.





























"한통련 30주년 축하드립니다"
참석 인사의 축하메시지

최병모 (추진위 상임대표·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30년 동안 정말 일본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처럼 자주민주통일을 그 길로 매진해 오신 한통련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올립니다.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같이 열심히 나아갔으면 합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홍근수 (한통련 대책위 공동대표)

30주년 정말 축하드립니다. 인사말에 넣지를 못했는데 30주년을 했다는 것은 그것이 평탄한 30년이 아니라 인고에 찬 30년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오신 분들의 그러한 노력이 지금에서야 겨우 조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 저 역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고국 방문이 일시적으로 문을 연 것이냐, 앞으로는 또 닫히는 거 아니냐라는 그런 우려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송두율 교수 건에서 보듯이 아직도 그렇게 우리 사회가 희망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 그래도 이번 한통련 행사와 고국 방문의 현장에 있으면서 바르게 살아 온 것은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사필귀정을 느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진관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

30주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토록 지탱해 올 수 있었다는 것은 각고의 인내와 노력이 있지 않았다면 있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도 한통련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분들이 나오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30년된 단체가 없다. 일본에 이런 단체가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국내에는 길어도 10년, 15년 넘어가 버리면 단체가 해체되고 또 만들고, 사람들은 다 똑같은데(웃음). 아무튼 한통련이 앞으로도 조국의 본보기가 되는 조직으로서 통일을 위해 힘을 써주는 단체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임종인 (추진위 집행위원장·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에서 한통련분들이 활동해 온 것은 역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통련 분들의 활동은 국내와 달리 사람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는 실질적인 투쟁이자 운동입니다. 저희들은 늘 한통련 분들의 활동을 접하고 들으면서 자극을 받고, 또 분발하고 감동을 느끼고 그랬었습니다.

한통련 분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조국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분들의 활동이 정당했다는 것에 대한 평가이지만, 무엇보다 그 활동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시기를 기원하며, 저 역시 한국에서 우리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 박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