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한 일본’ 보다는 ‘존경받는 일본’이 되기를

푸른하늘김 2003. 11. 4. 21:34
‘강한 일본’ 보다는 ‘존경받는 일본’이 되기를

일본에서 지낸 지난 6개월은 매우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친절하고 진실한 일본의 친구들을 만났고, 아름다운 일본의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시즈오카현립대학에 있는 연구실에서 바라보는 후지산의 자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로웠다. 이시하라 유지로의 노래는 이국생활을 하는 나의 향수를 달래주는 치료약이 되기도 했다. 이제야 진정 일본의 친구가 된 느낌이다.

그런데 이제 막 친구가 된 나에게 일본과 관련한 몇가지 우울한 소식들이 들려 착잡하고 안타까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나는 일본의 일부 지도자들이 주변국과 관련해 납득하기 어려운 왜곡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는 “한일합방은 한국인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발언했고, 마쯔자와 시게후미 가나가와현 지사는 “중국 유학생은 모두 좀도둑”이라고 발언했다. 이시하라 지사의 발언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격분했으며, 일부 시민들은 서울의 일본 대사관에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시하라씨의 말대로 한일합방이 한국인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라면 왜 수많은 한국인들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어갔으며, 한국 정부가 독립기념관은 왜 만들었겠는가? 중국 유학생이 모두 좀도둑이라면 중국은 거대한 좀도둑 양성소라는 말인가?

이시하라와 마쯔자와씨의 발언은 명백히 반역사적이고 인종적 편견에 기반한 차별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수많은 민간단체들이 노력해 이뤄놓은 일본과 주변국간의 우호관계를 한마디 말로 깨뜨리려는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강한 일본’이라는 정치적 슬로건에 담긴 위험성이다. 중의원 총선거를 치르고 있는 일본의 정치권은 득표전략의 일환으로 ‘강한 일본’이라는 화두를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는 보수화된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는 캠페인 전략이지만 주변국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어 향후 일본의 대외정책에 큰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 중의원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마이니치 신문 여론조사를 보면 자민당 소속 후보들의 30%가 핵무장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당 소속 후보들의 이같은 인식은 향후 일본의 국정운영에 그대로 반영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간과하기 힘들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는지 여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전제로 일본의 정치인들이 핵무장을 검토한다면 주변국들 역시 대항 수단을 찾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동아시아에서의 치열한 군비경쟁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이제 가까스로 회복 기미를 보이는 아시아 경제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이 미치게 되고, 이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일본경제의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왜 ‘강한 일본’이어야 하는가?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고,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친분에서 확인되듯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의 안보동맹 관계는 확고하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강한 일본’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일본의 친구로서 말하고 싶다. 일본은 강한 국가가 되기 보다는 존경받는 국가가 돼야 한다고.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충분히 강한 일본이 주변국가를 배려하는 아량과 포용력을 보일 때 일본은 진정 아시아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글:권기식(한국 한양대 교수, 시즈오카현립대학 초청연구원)
-경북대, 한양대학원 졸업. 한겨레신문 기자, 청와대(대통령 비서실) 정치국장, 노무현 후보 비서실 부실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