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신타로 내 그럴 줄 알았다!
한국정부의 졸속 외교도 한몫했다
글:장팔현
이시하라 신타로- 토-쿄-도지사가 또 망언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하는 가운데 아주 조잡하고 난폭하며 한국인을 얕잡아 보는 발언을 연발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정치가 혼란스러울 때와 일본에서 총선이 다가올 때는 바야흐로 망언의 계절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11월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러한 계산된 망언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각종 뉴스에 따라면 이시하라는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총의로 일본을 선택 했으며, 일본은 결코 무력으로 침범하지 않았다’ 주장하고, 더 나아가 ‘한일합방을 100% 정당화할 생각은 없으나, 시비를 가린다면 조선인 선조의 책임이며, 식민지주의라고 해도 좀더 선진화된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적 이었다’라고 망발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합방의 책임을 조선인이 져야한다고 뒤집어씌우는 것도 부족해 일본정부의 선진적 식민주의의 정책적 은혜를 입은 것처럼 왜곡을 해도 보통 왜곡을 하는 게 아니다.
일찍이 미국에 대하여도 <>을 발표하여 인기 덤에 오른 일본 우익의 거두답게 11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인기관리 차원에서 단골로 곶감 빼먹듯이 ‘한일합방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이기에 일본은 잘못이 없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하니 일본정치가의 인식이 어떠한가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망언전문가의 반열에 오른 이시하라는 한국 .중국인등 아시아인을 싸잡아 ‘제3국인’이라 비하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키고도 반성은커녕 목을 빳빳이 세우는 가히 독보적인 우익인물이다.
과연 한. 일합방은 조선인이 원해서 했고 우리의 잘못이 더 크다는 말인가? 서양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찾게 되고 이는 제국주의로 이어져, 아프리카에 이어 아시아도 그들의 사냥터가 되었을 때, 네델란드와의 오랜 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서양을 파악하고 있었던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극적으로 근대화에 성공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본 역시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는 군사적 목적과 함께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시장 개척과 경제 불황 타개를 목적으로 조선을 무력으로 침략한 것이다.
한. 일합방 전야에 이를 억울하게 생각한 조선인이 대다수였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조선인으로서 을사오적을 제외한 어느 누가 감히 한. 일합방을 찬성했다고 조선의 책임을 들먹이는가? 민영환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자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으며, 열혈 애국자는 합방을 반대하며 독립운동가로 거듭 변신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였다.
때문에 이시하라의 발언은 무례한 망언이자, 도를 넘은 역사왜곡이자,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의 날조자에 불과하다. 이런 우익인사를 떠받들고 2003년4월 13일 도지사 선거에서도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 무려 300만 표를 몰아주었는지, 일본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 45년 패전 후 참회하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다시 우향우를 향해 힘차게 전진할 뿐이니, 참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참담한 현실이다.
우리도 마냥 분개 할 때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냉정히 우리가 행한 처신도 되돌아보고 다시는 이러한 망언이 나오지 않게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이러한 빌미를 준 하나의 대표적 졸속외교가 65년에 맺어진 ‘한. 일 의정서’라 할 수 있다. 이 때 ‘한. 일 합방의 무효’를 문구에 넣었지만,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애매모호함의 극치인 ‘타마무시이로 외교’에 넘어가고 말았다. 즉, 한. 일합방의 무효가 언제부터인가? 하는 쐐기를 박지 못함으로서 일본은 1945년8월15일부터라고 해석하는 반면, 우리는 무력에 의한 강제합방이므로 1910년 8월22일(일명, 경술국치일)부터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결국 일본은 합방의 책임이 일본에 없다는 입장이고, 한국은 일본에 책임이 있다고 상반되게 풀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구작성도 이제는 명명백백하게 작성해야만 이시하라 같은 일본인들이 망언을 못하는 것이며, 망언을 하더라도 근거 없는 망언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문제는 북. 일 수교 시와 통일한국이 다시 일본과 의정서를 맺을 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를 대비하여 우리정부는 이러한 잘못된 해석이 나오지 않게끔 미리부터 세밀하고 치밀한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 때에 작성할 새로운 의정서에는 한. 일합방의 무효를 1910년 8월22일부터라고 분명히 못 박아야 한다.
한국정부의 졸속 외교도 한몫했다
글:장팔현
이시하라 신타로- 토-쿄-도지사가 또 망언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하는 가운데 아주 조잡하고 난폭하며 한국인을 얕잡아 보는 발언을 연발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정치가 혼란스러울 때와 일본에서 총선이 다가올 때는 바야흐로 망언의 계절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11월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러한 계산된 망언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각종 뉴스에 따라면 이시하라는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총의로 일본을 선택 했으며, 일본은 결코 무력으로 침범하지 않았다’ 주장하고, 더 나아가 ‘한일합방을 100% 정당화할 생각은 없으나, 시비를 가린다면 조선인 선조의 책임이며, 식민지주의라고 해도 좀더 선진화된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적 이었다’라고 망발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합방의 책임을 조선인이 져야한다고 뒤집어씌우는 것도 부족해 일본정부의 선진적 식민주의의 정책적 은혜를 입은 것처럼 왜곡을 해도 보통 왜곡을 하는 게 아니다.
일찍이 미국에 대하여도 <
망언전문가의 반열에 오른 이시하라는 한국 .중국인등 아시아인을 싸잡아 ‘제3국인’이라 비하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키고도 반성은커녕 목을 빳빳이 세우는 가히 독보적인 우익인물이다.
과연 한. 일합방은 조선인이 원해서 했고 우리의 잘못이 더 크다는 말인가? 서양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찾게 되고 이는 제국주의로 이어져, 아프리카에 이어 아시아도 그들의 사냥터가 되었을 때, 네델란드와의 오랜 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서양을 파악하고 있었던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극적으로 근대화에 성공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본 역시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는 군사적 목적과 함께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시장 개척과 경제 불황 타개를 목적으로 조선을 무력으로 침략한 것이다.
한. 일합방 전야에 이를 억울하게 생각한 조선인이 대다수였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조선인으로서 을사오적을 제외한 어느 누가 감히 한. 일합방을 찬성했다고 조선의 책임을 들먹이는가? 민영환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자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으며, 열혈 애국자는 합방을 반대하며 독립운동가로 거듭 변신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였다.
때문에 이시하라의 발언은 무례한 망언이자, 도를 넘은 역사왜곡이자,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의 날조자에 불과하다. 이런 우익인사를 떠받들고 2003년4월 13일 도지사 선거에서도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 무려 300만 표를 몰아주었는지, 일본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 45년 패전 후 참회하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다시 우향우를 향해 힘차게 전진할 뿐이니, 참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참담한 현실이다.
우리도 마냥 분개 할 때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냉정히 우리가 행한 처신도 되돌아보고 다시는 이러한 망언이 나오지 않게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이러한 빌미를 준 하나의 대표적 졸속외교가 65년에 맺어진 ‘한. 일 의정서’라 할 수 있다. 이 때 ‘한. 일 합방의 무효’를 문구에 넣었지만,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애매모호함의 극치인 ‘타마무시이로 외교’에 넘어가고 말았다. 즉, 한. 일합방의 무효가 언제부터인가? 하는 쐐기를 박지 못함으로서 일본은 1945년8월15일부터라고 해석하는 반면, 우리는 무력에 의한 강제합방이므로 1910년 8월22일(일명, 경술국치일)부터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결국 일본은 합방의 책임이 일본에 없다는 입장이고, 한국은 일본에 책임이 있다고 상반되게 풀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구작성도 이제는 명명백백하게 작성해야만 이시하라 같은 일본인들이 망언을 못하는 것이며, 망언을 하더라도 근거 없는 망언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문제는 북. 일 수교 시와 통일한국이 다시 일본과 의정서를 맺을 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를 대비하여 우리정부는 이러한 잘못된 해석이 나오지 않게끔 미리부터 세밀하고 치밀한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 때에 작성할 새로운 의정서에는 한. 일합방의 무효를 1910년 8월22일부터라고 분명히 못 박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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