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문을 기대하며

푸른하늘김 2003. 8. 4. 21:42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문을 기대하며


글:박철현



고 정몽헌 회장은 보통의 재벌 후계자들이 정략적으로 들어가는 경영, 경제학 관련 학과와 거리가 먼 연세대 국문과 출신이다. 경영인으로서 정주영 명예회장이 가장 사랑스러워 했던 아들이 자기가 못다한 정치에의 꿈을 이루어주길 원했던 정몽준이라면, 자신의 통일에 대한 불도저식 뚝심을 이어주기를 원했던 아들은 정몽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죽기직전 김정일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죽더라도 남북경협은 이어져야 한다면서 자기 옆에 배석한 고 정몽헌 회장을 가리키며, "얘와 앞으로 모든 것을 상의해 주길 바란다" 라는 말을 남겼고, 이에 김정일 위원장은 "네. 알겠습니다"로 화답했다.

그후 특권시비에 휘말리면서도 남북경협의 주도권을 현대가 계속 가졌던 것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 역시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남북경협"의 중요성을 잘 느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김정일 위원장이 자본주의 체재 도입을 위해 배운 기업은 "현대" 가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정설이다.

사실 본격적으로 따지고 들어간다면, 현대라는 기업이 우리 역사에 남긴 허물은 꽤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현중 골리앗 투쟁과 식칼테러라는 무지막지함으로 인식되어 있고, 재벌식 문어발 확장의 선두주자에, 현대의 아이덴티티였던 정주영 명예회장은 재벌 총수로서 처음(?)으로 국민당이라는 자본정당을 창당하여 직접 대권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서 무작정 내뱉는 정몽헌 회장에 대한 애도의 물결, 그리고 그것에 소급하여 정 명예회장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한다 등등의 애도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 이 애도의 물결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남북 교류에 물꼬를 트고, 이 시대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햇볕 정책"의 든든한 파트너가 바로 "현대"였기 때문이다. 단언컨데 현대의 뚝심이 없었다면, 아니 정주영 명예회장과 그의 후계자인 고 정몽헌 회장이 없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햇볕정책은 여러모로 암초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씨 일가의 판문점을 통한 소떼 500마리 방북이나, 육로를 통하는 비용보다 무려 몇 배나 더 들어가 사업성에서 낙제점을 받은 해로를 이용한 "금강산 사업" 등등은 경영인, 사업가의 눈에서 본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홍보수단으로 유효적절하게 사용된다면 기업의 마케팅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마케팅으로써의 효용수단이 끝난 후에도 적자에 적자를 거듭해가면서 3년 넘게 그것을 해 왔다는 것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드는 일에 고 정몽헌 회장이 한치의 사심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한 셈이다.

이랬던 그가 최근 일련의 대북송금에서 불거진 이익치-박지원 수석간의 150억 배달사건으로 몇 차례 검찰 수사를 받고, 극심한 스트레스 증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심정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왜냐면 그가 한 행위들은 <사심이 없는>, <통일을 생각하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 어떤 관점으로 본다면 지극히 효성스러운 통일청년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불효라고 말하며, 죽어서 어떻게 왕회장의 얼굴을 볼것이냐며 안쓰러움을 담아 꾸중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회의감과 스트레스는 경제학도나 경영학도 출신이 아닌 <문학청년>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한 문학청년은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필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현대의 그릇된 몇몇 관점들에 의해 과거에 저질렀던 현대가의 실수들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도내에서, 현대가가 이룩한 통일을 위한 실천적인 행위들에 대해서, 가슴을 여미며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덧붙여 필자는 이번 기회에 말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화통함을 맛보고 싶기도 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역사적인 남북 공동 회담 이후,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업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 오길 꺼려 했다. 역사적인 이벤트가 되리라 생각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약속은 어느새 흐지부지한 사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답방이 아니더라도 좋다. 남자대 남자로서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그 통일에 대한 신실함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기본적인 자본주의의 원리에 대해 북한의 관료들, 기업가들의 요청으로 가르쳐준 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그가 조문을 하러 내려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리고 돌아갈 때, 고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그들이 유분을 가지고 올라가 금강산 일만이천봉 골고루 뿌려 주었으면 한다.

죽은 두 사람의 정 회장에게 살아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보답은 이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고 정몽헌 회장 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