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이즈미는 왜 우리를 만나주지 않나?"

푸른하늘김 2003. 8. 9. 21:48

"고이즈미는 왜 우리를 만나주지 않나?"


정신대 할머니들의 분노, 그리고 가을의 투쟁을 위하여


글:박철현








"수상관저로 갔지. 원래는 관방장관을 만나러 갔는데, 그 양반이 내일 중국인가 어디론가 간다고 지금 바쁘다고 못 만나준다고 했어. 그래서 비서관인가, 차관인가 하는 사람이 나와서, 한참 그 양반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 뒤로 멀리 고이즈미가 보이는 거야. 우리는 당장 이리 와서 우리하고 얘기하자고 소리 쳤어. 그런데 못 본척 그냥 지나치더군. 왜 우리를 안 만나는 거야? 일본 정부는 정말 반성할 마음이 있는거야? 그냥 이대로 가만히 어물쩡 넘어가려고?"


2003년 8월 6일, 제 570회를 맞는 수요집회가 끝나고 정신대 할머니들은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수요집회도 근 10년을 지나고 있지만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안보이는 일본정부의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개적 사죄 및 배상'을 직접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본 시민단체의 연합인 바우넷 재팬(VAWW-NETジャパン)이 주최하고, 그 안에서도 "시모노세끼 판결을 살리는 모임이 주체적으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결합해서 진행된 이번 "8.8 긴급방일집회 - 반성없는 일본정부에 혼신으로 항의한다"는 여러모로 그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그간 시민단체나 변호사 모임 같은 측면 지원 단체들이 계속적으로 종군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배상책임을 물어 왔다면, 이번 집회는 그간 수요집회 등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던 '직접적'인 피해자인 정신대 할머니들이 본격적으로 들고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국경을 넘어 타이완, 필리핀, 중국의 할머니들과 더불어 범아시아 국제연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의 삶을 강요받았던 분들은 동북아시아로부터 동남아시아에 걸쳐, 국가를 뛰어 넘어 성적 모욕과 정신적 고통을 강요받았다. 그러한 사실들이 이미 20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개별, 민간 대응이라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배상금은 물론이요, 국가적 차원의 사죄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전쟁을 일으키고 그안에서 자신들이 범했던 수많은 범죄들,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전범으로서 자신들의 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일본 내의 깨어있는 지식인들이나 시민단체가 전범으로서 그 죄를 인정한다고 반성하는 것과, 그것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반성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무관심 전략에 대해, 그리고 이런 일본 정부에 대해 전혀 아무런 항의표시나 발언을 하지 않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해 할머니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젠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저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간다고 했을 때, 우리 얘기가 나올줄 알았는데, 한마디도 안나왔어. 일본 정부는 몇년째 '아시아 여성 기금'인가 뭔가 하는 민간단체에 자기네들이 돈을 지원할테니 그곳으로 부터 배상금을 받으라고 하는데,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게 아냐. 우리는 일본정부의 사과, 그리고 일본정부가 책임을 지고 일본 정부의 이름으로 사죄를 하고, 배상금을 줄 것을 요구하는 거야. 이대로 가만히 놓아두면 우리는 이제 나이 먹고 죽을테고, 그러면 아무일 없게 되어 버릴텐데. 너무 억울하잖아"






유엔 인권 위원회와 ILO(국제노동기구) 전문가 위원회의 보고서 등에 의하면 이미 일본이 지난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종군위안부 문제는 "강제 성(性)노동으로써 기본적인 인권을 망각한 명백한 노동침해 행위이다" 라며 8년간 6차례에 걸쳐 권고안을 제시한 바 있다. 즉 할머니들의 저러한 분노는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판례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할머니들의 정상적인 분노을 수긍한 몇몇 깨어있는 참의원 국회의원들이 "종군위안부 사죄 및 배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최근 상정하였다. 90년대 초반 최초로 정신대 배상금을 국회 예산위원회에 제출해서 화제가 되었던 모토오카 쇼지 의원을 필두로 한 진보적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이 법안은 이번에 참의원 국회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을 임시국회에 상정되어 법률안으로서 다루어져, 국영방송인 NHK의 전파를 탈 가능성도 높아 진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일본 사회의 핫이슈가 된다면,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조차 모르는 대다수의 양심적인 일본 국민들에게 충격과 반성, 그리고 사죄및 배상 당위의 여론을 일으킬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정대협 사무차장인 윤미향씨가 정신대 할머니들의 8월 7일, 8일 투쟁 경과 보고의 끝부분에서 언급한 "부탁의 말씀"을 참고하고자 한다.


"저는 마지막으로 지금 이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께 2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일본 참의원 의원들의 입법활동에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보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번 입법안을 제출한 참의원들의 결의와 의지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 확신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이번 9월에 있을 의원 선거가 중요합니다. 이 법안의 내용이 일본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이 의원들을 기억해 두셨다가 계속 의원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즉 "당선"시킬 수 있게끔 노력해 주셔야 합니다.






두번째는 ILO 국제노동기구의 총회안건으로 이 사안을 올려주시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올해 6월에 열린 정기 총회에서 이 강제 노동으로써 저는 이 사안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왜냐면, 지난해 일본을 포함한 ILO 노/사 그룹이 이 안건을 다음해 총회에 올리자고 결정내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해, 일본 정부의 압력으로 일본 사용자 그룹이 갑자기 안건 상정 반대 의견을 표명해버려, 올해 올라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노조는 물론, 사용자 그룹에게 이메일, 편지등을 써보내고 각 단위의 집회가 있을 때는 끊임없이 이 문제를 거론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반드시 이 논쟁은 불붙게 되고 내년 6월달에는 반드시 총회 안건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경과보고 형식으로 진행된 윤미향 사무차장의 발언이 끝나고, 이옥선 할머니의 과거 증언이 이어 졌다. 이옥선 할머니가 진술하는 당시 일본군의 잔학한 만행 및 성적 수치감, 그러나 그것을 너무나도 담담히 이어가는 그녀의 이야기에 장내의 수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거나, 혹은 분노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어. 어렸을 때 울산으로 식모살러 갔지. 근데, 어느날 밤 일본군이 갑자기 동네에 들이닥치더니만, 트럭에 타라는 거야. 그래서 며칠 밤을 기차를 타고 갔지. 나말고 다른 여자애 들도 많았어. 어리게는 13살부터 많게는 17살 정도. 우리가 막 풀어달라고 반항하니까, 입막고, 손묶고, 나중에는 발도 묶었어. 그래서 도착한 데가 중국이었어. (중략)


연길에서 처음에는 노동을 했는데, 노동이 서투르다며 막 화를 내고 그러더니만 어느날 날 데리고 전기철망이 쳐져 있는 수용소로 데리고 갔어. 비행장 같은 곳이었는데... 그것에서 일하면서 찐빵 같은 거만 먹으면서 생활했어. 군인들은 제대로 일 안한다며 막 때리고, 아무곳에나 끌고 가서 강간하고. 나는 제발 집에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하고.





그때 관리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위안부라는 곳에 넣었어. 나말고도 몇명 더 있었는데. 그때 위안부로 데려간 관리인이라는 사람이 군인들 접대할려면 이뻐야 한다면서 기모노나 게다 같은거 사주고.. 그런데 그게 다 빚이라며 그거 갚으려면 열심히 군인들 받아야 한다고 했어. 군인들 받아야 빚을 갚고 집에도 돌아갈 수 있다고. 그런데, 15-16살짜리들이 뭘 알겠어? 일본군들은 우리들이 성숙하지 못했다고 그곳을 찌르고 칼로 가르고 해서 몇몇 애들은 죽기도 했어.(잠시 침묵)


밥도 못먹고, 난 쌀밥이란 걸 구경한 적이 없어. 맨날 밭에 가서 아무 풀이나 뜯어서 죽끓여 먹고 그렇게 살았지. 하루에 군인들 40-50명씩 받고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살어? 관리인은 허구헌날 때리고. 약먹고 죽을려고도 했는데, 약 살 돈이 없어서 못 죽고. 무섭기도 하고. 피임도구 쓰라고 해서 그거 안쓴다고 하니까, 막 팔 다리를 칼로 찌르고... 지금도 흉터가 있어. 그렇게 50년이나 지났는데, 아무도 우리 얘길 들어주질 않아. 일본도 한국도.


난 전쟁 끝난 줄도 몰랐어. 갑자기 군인들이 와가지고, 가자길래 어딜 가나 했더니만 그들이 나하고 몇몇 위안부들을 산속에다가 버렸어. 겨우겨우 산밑으로 내려왔는데 중국 길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근처 어떤 촌에 가서 전쟁 끝났다는 이야기 듣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그 동네 살았던 어떤 아저씨가 자기 마누라가 죽었다고, 나보고 얘들 좀 돌봐달라고 해서. 그렇게 중국 땅에서 산거야. 그러다가 그 할아버지가 죽어서, 나도 외롭고 쓸쓸해서. 한국으로 온거고."




이옥선 할머니의 발언이 끝난 후, 할머니들은 단상 앞으로 나와서 준비한 마분지 플래카드를 들고 일본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가슴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누구보다 기운찬 모습으로 당당하게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구호를 통역할 때 안맞는 부분이 있어 부끄러움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 여유를 보인 정신대 할머니들.


정신대 할머니들의 저 깊은 "아픔"이 진정 여유롭고 승리의, 회한 한점 없는 웃음으로 변할지, 아니면 아픔을 더욱더 심화시키는 더 깊은 "분노"로 변할지는 올해 가을을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참의원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개정 건은 물론 할머니들이 직접 외무성 방문 후 얻어낸 차관의 확답 때문에 그렇다. 9월로 예정되어 있는 한일 외무부 차관급 회담에서 일본 외무성의 차관은 "정신대의 문제를 언급하겠다"고 확약했다.


그 확약이 어떤 수준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본내에서도 어느 정도 정치권의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한국 쪽에서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결과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정대협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정대협 윤미향 사무차장은 향후 일정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8월 13일 제 571차 수요집회가 열립니다. 이번 집회는 조금은 특별한 수요집회입니다. 해방 58주년 8.15 맞이 특별집회 입니다. 그리고 그 집회가 끝난 후, 오후에는 이번 방일 회담에서 얻은 성과를 가지고, 외무부 차관을 면담할 생각입니다. 일본의 외무성 차관이 반드시 가을에 있을 차관급 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확답을 했으니, 우리는 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에게 이 문제에 관해 '활발히' 협의해 줄 것을 요청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