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기술의 이태리를 따라 잡는 보석상
최저가 판매와 철저한 A/S 영업 원칙 고수
동경의 오카치마치 지역의 보석 가공 단지는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와 내실로 인정을 받고 있는 최고의 보석 가공,판매장이다.그 한가운데 한국에서 건너온 뉴커머로 일본인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주고 일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그가 '서라벌 쥬얼리'의 김연식 사장이다.
6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 오기 시작한 한국인 보석 가공 기술자들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대거 일본으로 건너 왔다.전문 감정사를 비롯하여 보석 가공의 달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능력이 있는 전문 기술자들이 몰려 온 것이다.
한때는 한국인 기술자만 1,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사람도 많았고 기술이나 재능에서 인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경기 퇴조와 더불어 야마나시현의 고후시로의 보석 가공 단지의 이동과 시장 규모의 축소로 지금은 6-700명 내외로 줄어든 상태이다. 하지만 자체 보석 가공인 협회도 가지고 있고 축구회는 물론 상조회 조직도 운영되고 있어 나름대로의 힘과 결집력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기 일본에 온 대부분의 기술자들은 일본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기술도 배우고 또 역으로 기술 이전도 해주는 입장 이었다.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차츰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일본인들과 경쟁하기 시작을 하여 지금은 일본인들과 동일하게 공방을 운영하거나 쥬얼리 숍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오카치마치 지역에만 대략 20여개의 점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서라벌 쥬얼리의 김연식 사장도 85년에 일본에 건너와 다른 한국인 기술자들 처럼 오카치마치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다른 동료들 처럼 처음에는 일본인 회사에서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자신도 그 쪽에 기술을 전수해 가면서 일을 시작하였다. 이후 90년대 초반부터 독립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 창립 5년을 넘어가고 있는 서라벌 쥬얼리는 보석 가공을 하는 공방을 비롯 오카치마치 역 근처에 조그만 매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 중에 판매장과 공방을 전부 가지고 있는 분들은 아직은 많지 않다고 한다.
김연식 사장을 만나기 위해 오카치마치에 있는 공방으로 간 오후 시간,매장에 나갔다 돌아온 김사장과 만날 수 있었다.
-오래간 만입니다. 요즘 불경기인데 사업은 어떠신지요?
-생각보다 이곳 보석 가공업은 불경기라고 하지만 안정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군요.물론 경기를 안탄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아무래도 여유가 있는 손님들이 보석을 고르게 되고 또 구매하는 관계로 조금은 안정적인 측면이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불경기 인지라 매출도 줄고 공방의 일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 부터도 어려우면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보석 같은것은 구매를 줄이게 되지요.하지만 저희 매장은 거의 최저가 판매와 철저한 A/S를 영업 원칙으로 하고 있는 관계로 그나마 안정적인 측면이 있지요.
하지만 요즘 추세가 동경보다는 인건비가 싼 고후나 관서 지방으로 일감이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동경의 경우에는 급한 일이 많은 관계로 오히려 늘 빨리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이 많아서 피곤한 점도 있지요.그래도 많은 분들의 성원과 응원으로 조금은 여유가 있습니다.
-그 동안 30여 년을 보석 가공 일을 하셨는데 보람이라든가 일본 생활에서 느끼는 감상이 크실 것 같은데 한 말씀 부탁을 드립니다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대구에서 보석 가공에 대한 일을 배워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기술자들이 그렇게 일을 배우고 또 전수 받으면서 10여년 기술을 연마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터를 일구곤 하였지요.
저도 그렇게 기술을 배우고 익혀 가면서 대구에서 일하면서 서울로 진출을 하게 되고 서울에서 4-5년 정도 일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선진 일본에서 기술도 배우고 또 돈도 많이 벌수 있다는 생각에 일본으로 오게 되었지요.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70년 후반부터 입니다만 막상 일본에 처음 온것은 80년대 초반이고 이후 일본을 오가다가 85년에 와서 일본에 정식으로 비자를 받고서 일본 회사의 직원으로 일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일본에서 살다가 귀국하신 분들이라 일본에 아직도 친척분들이 몇 분 계시고 그 분들을 통하여 일본에 쉽게 오게된 측면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연고가 있으면 조금은 쉽게 오게 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누구나 처럼 일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배우고 또 느끼면서 많은 경험도 쌓고서 95년 독립하여 조그만하게 사업을 시작하였고, 98년 '서라벌 쥬얼리'라는 회사를 만들어 오카치마치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집사람이 식당을 준비하여 지금은 공방 근처에 서라벌 식당이라는 한정식 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3년전 부터는 군대를 제대한 아들 형탁이도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제 일을 돕고 있습니다.
-아드님이 일을 돕고 계신다고요?
-예. 3년 전부터 일본으로 건너와 제 일을 돕고 있지요. 처음에는 일본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다가 아버지 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름대로 수입도 좋다고 생각을 해서인지 일을 배워 지금은 상당한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부모 마음이야 처음에는 일을 배우는 것 보다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좀더 하고 나중에 제 일을 물려 받아서 하길 원했는데 공부보다는 일이 좋아서 인지 지금도 열심히 일하여 당당한 기술자로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공방 한쪽 구석에 앉아서 일하고 있는 자식 자랑을 시작한다.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 늠늠하고 건강해 보였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야간일이나 철야를 군소리 없이 하는 든든한 아들이고 한다.
-일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시지요?
-처음에야 누구나 다 힘이 들지만 저는 부모님이 일본에 사시다가 귀국한 귀국자 자녀인 관계로 어릴때 부터 일본에 대한 동경이 많았습니다.큰 형님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돌아간 경우라서 늘 부모님과 형님으로 부터 일본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지요. 그래서 보석 가공일을 배우기 시작 하면서 부터 기회가 되면 일본에서 기술도 배우고 또 돈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 출판되는 보석잡지를 일본어도 잘 모르면서 자주 보게 되었고 잡지에 나온 보석을 눈 대중으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하면서 공부하며 일을 배웠지요.
지금도 일본에서 나오는 보석 관련 잡지는 거의 사서 보는 편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현장에 가서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직접 만들어 보는 경우가 많지요.변화가 많은 시대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늘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의 최대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는 이태리를 넘기 위해 이태리의 보석 전문 잡지도 기회가 되면 구해서 보기도 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연구도 하고 공부도 하게 됩니다.
-일본과 한국,이태리의 기술 차이는 어느정도 인가요?
-한국은 생각보다 아직은 일본의 기술에 뒤지는 측면이 많아요.최근에는 전북 이리의 보석 가공 단지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는 하였지만 말입니다.그러나 아직은 보석 가공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오는 학생들이 많지요.일본에는 보석 전문학교가 상당히 많은데 대부분 3년간 공부를 하게되고 다시 실무를 3-4년 정도 하면서 전문가가 됩니다.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전문적으로 보석가공을 가르치는 학교도 많지 않고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것 같아요.
물론 일본에서도 이태리의 보석 가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기도 하고 이태리의 정밀하고 세련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많이들 공부를 하지요 . 그래서 저도 이태리의 기술을 따라 잡고 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자를 양성하고 픈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보석 가공의 나라인 이태리를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는 기술력과 우리나름대로의 영업력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서라벌 쥬얼리가 일본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로 도약하고자 합니다.물론 규모로 세계 최고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기술력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보석 산업의 특성상 정밀하고 또 디자인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현재 일본에서의 보석 가공업자 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보석 가공인 협회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의 특성상 잘 뭉치고 단합이 되어서 힘있는 조직으로 활동하는 데는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열심히 뭉쳐야 하고 또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경쟁 관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경쟁이 발전의 단초라고 한다면 한국인들 끼리의 경쟁은 필요한 측면도 있지요.
특히 요즘은 불경기라서 서로가 지나친 경쟁을 하는 것은 오히려 역 효과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고 또 발전적으로 헤쳐나가야 겠지요.
-마지막으로 아드님과 사모님에 관하여 한 말씀 해주십시요?
-아들 형탁이가 이제 군대 갔다와서 일본에 온지 3년이 되었는데 26살 입니다. 자식에게 나중에 회사를 물려주게 될것 같지만 아직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해도 남들과 똑 같이 일하고 돈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거나 보너스를 더주는 일도 없으며 자신이 이후 자립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해주는 정도입니다. 저는 아직 50대이지만 벌써 조금씩 눈이 나빠지기 시작을 하여 요즘은 정밀한 작업을 하기 힘들어서 오랜 시간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방보다는 주로 매장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아들놈이 충실히 기술을 배우고 닦아서 이후에 제 일을 물려 받길 원합니다.
다행이 형탁이가 제 뜻을 잘 따라 주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어 부모로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한 10년도 지나면 저는 동경 근처나 지바 같은 곳에 좋은 터를 잡아 들어가 살 생각입니다. 그리고 집 사람은 지금은 조금만 한식당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저를 잘 따라주고 또 충실한 내조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 저에는 큰 힘이 됩니다.
김연식 사장과 두어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카치마치의 많은 기술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를 잡고 있고 또 독자적인 영업망과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가끔은 일로 단련된 거친손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들 자랑을 하기 위해 아들과 기념으로 사진을 한장 찍어 주기를 원하는 모습이 여느 부모나 같은 평범한 아버지 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리고 외아들인 형탁씨를 위해 기회가 되면 홀트 아동 복지회에 의뢰하여 3-4명의 양자를 들이고 싶다고 한다.
주말이나 휴일 날 시간되면 술이나 한잔 하자는 말을 듣고서 조만간 취중 토론을 한번 하자는 약속을 하고서는 인터뷰를 끝냈다.


최저가 판매와 철저한 A/S 영업 원칙 고수
동경의 오카치마치 지역의 보석 가공 단지는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와 내실로 인정을 받고 있는 최고의 보석 가공,판매장이다.그 한가운데 한국에서 건너온 뉴커머로 일본인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주고 일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그가 '서라벌 쥬얼리'의 김연식 사장이다.
6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 오기 시작한 한국인 보석 가공 기술자들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대거 일본으로 건너 왔다.전문 감정사를 비롯하여 보석 가공의 달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능력이 있는 전문 기술자들이 몰려 온 것이다.
한때는 한국인 기술자만 1,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사람도 많았고 기술이나 재능에서 인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경기 퇴조와 더불어 야마나시현의 고후시로의 보석 가공 단지의 이동과 시장 규모의 축소로 지금은 6-700명 내외로 줄어든 상태이다. 하지만 자체 보석 가공인 협회도 가지고 있고 축구회는 물론 상조회 조직도 운영되고 있어 나름대로의 힘과 결집력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기 일본에 온 대부분의 기술자들은 일본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기술도 배우고 또 역으로 기술 이전도 해주는 입장 이었다.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차츰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일본인들과 경쟁하기 시작을 하여 지금은 일본인들과 동일하게 공방을 운영하거나 쥬얼리 숍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오카치마치 지역에만 대략 20여개의 점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서라벌 쥬얼리의 김연식 사장도 85년에 일본에 건너와 다른 한국인 기술자들 처럼 오카치마치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다른 동료들 처럼 처음에는 일본인 회사에서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자신도 그 쪽에 기술을 전수해 가면서 일을 시작하였다. 이후 90년대 초반부터 독립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 창립 5년을 넘어가고 있는 서라벌 쥬얼리는 보석 가공을 하는 공방을 비롯 오카치마치 역 근처에 조그만 매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 중에 판매장과 공방을 전부 가지고 있는 분들은 아직은 많지 않다고 한다.
김연식 사장을 만나기 위해 오카치마치에 있는 공방으로 간 오후 시간,매장에 나갔다 돌아온 김사장과 만날 수 있었다.
-오래간 만입니다. 요즘 불경기인데 사업은 어떠신지요?
-생각보다 이곳 보석 가공업은 불경기라고 하지만 안정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군요.물론 경기를 안탄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아무래도 여유가 있는 손님들이 보석을 고르게 되고 또 구매하는 관계로 조금은 안정적인 측면이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불경기 인지라 매출도 줄고 공방의 일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 부터도 어려우면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보석 같은것은 구매를 줄이게 되지요.하지만 저희 매장은 거의 최저가 판매와 철저한 A/S를 영업 원칙으로 하고 있는 관계로 그나마 안정적인 측면이 있지요.
하지만 요즘 추세가 동경보다는 인건비가 싼 고후나 관서 지방으로 일감이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동경의 경우에는 급한 일이 많은 관계로 오히려 늘 빨리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이 많아서 피곤한 점도 있지요.그래도 많은 분들의 성원과 응원으로 조금은 여유가 있습니다.
-그 동안 30여 년을 보석 가공 일을 하셨는데 보람이라든가 일본 생활에서 느끼는 감상이 크실 것 같은데 한 말씀 부탁을 드립니다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대구에서 보석 가공에 대한 일을 배워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기술자들이 그렇게 일을 배우고 또 전수 받으면서 10여년 기술을 연마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터를 일구곤 하였지요.
저도 그렇게 기술을 배우고 익혀 가면서 대구에서 일하면서 서울로 진출을 하게 되고 서울에서 4-5년 정도 일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선진 일본에서 기술도 배우고 또 돈도 많이 벌수 있다는 생각에 일본으로 오게 되었지요.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70년 후반부터 입니다만 막상 일본에 처음 온것은 80년대 초반이고 이후 일본을 오가다가 85년에 와서 일본에 정식으로 비자를 받고서 일본 회사의 직원으로 일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일본에서 살다가 귀국하신 분들이라 일본에 아직도 친척분들이 몇 분 계시고 그 분들을 통하여 일본에 쉽게 오게된 측면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연고가 있으면 조금은 쉽게 오게 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누구나 처럼 일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배우고 또 느끼면서 많은 경험도 쌓고서 95년 독립하여 조그만하게 사업을 시작하였고, 98년 '서라벌 쥬얼리'라는 회사를 만들어 오카치마치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집사람이 식당을 준비하여 지금은 공방 근처에 서라벌 식당이라는 한정식 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3년전 부터는 군대를 제대한 아들 형탁이도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제 일을 돕고 있습니다.
-아드님이 일을 돕고 계신다고요?
-예. 3년 전부터 일본으로 건너와 제 일을 돕고 있지요. 처음에는 일본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다가 아버지 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름대로 수입도 좋다고 생각을 해서인지 일을 배워 지금은 상당한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부모 마음이야 처음에는 일을 배우는 것 보다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좀더 하고 나중에 제 일을 물려 받아서 하길 원했는데 공부보다는 일이 좋아서 인지 지금도 열심히 일하여 당당한 기술자로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공방 한쪽 구석에 앉아서 일하고 있는 자식 자랑을 시작한다.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 늠늠하고 건강해 보였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야간일이나 철야를 군소리 없이 하는 든든한 아들이고 한다.
-일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시지요?
-처음에야 누구나 다 힘이 들지만 저는 부모님이 일본에 사시다가 귀국한 귀국자 자녀인 관계로 어릴때 부터 일본에 대한 동경이 많았습니다.큰 형님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돌아간 경우라서 늘 부모님과 형님으로 부터 일본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지요. 그래서 보석 가공일을 배우기 시작 하면서 부터 기회가 되면 일본에서 기술도 배우고 또 돈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 출판되는 보석잡지를 일본어도 잘 모르면서 자주 보게 되었고 잡지에 나온 보석을 눈 대중으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하면서 공부하며 일을 배웠지요.
지금도 일본에서 나오는 보석 관련 잡지는 거의 사서 보는 편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현장에 가서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직접 만들어 보는 경우가 많지요.변화가 많은 시대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늘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의 최대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는 이태리를 넘기 위해 이태리의 보석 전문 잡지도 기회가 되면 구해서 보기도 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연구도 하고 공부도 하게 됩니다.
-일본과 한국,이태리의 기술 차이는 어느정도 인가요?
-한국은 생각보다 아직은 일본의 기술에 뒤지는 측면이 많아요.최근에는 전북 이리의 보석 가공 단지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는 하였지만 말입니다.그러나 아직은 보석 가공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오는 학생들이 많지요.일본에는 보석 전문학교가 상당히 많은데 대부분 3년간 공부를 하게되고 다시 실무를 3-4년 정도 하면서 전문가가 됩니다.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전문적으로 보석가공을 가르치는 학교도 많지 않고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것 같아요.
물론 일본에서도 이태리의 보석 가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기도 하고 이태리의 정밀하고 세련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많이들 공부를 하지요 . 그래서 저도 이태리의 기술을 따라 잡고 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자를 양성하고 픈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보석 가공의 나라인 이태리를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는 기술력과 우리나름대로의 영업력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서라벌 쥬얼리가 일본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로 도약하고자 합니다.물론 규모로 세계 최고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기술력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보석 산업의 특성상 정밀하고 또 디자인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현재 일본에서의 보석 가공업자 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보석 가공인 협회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의 특성상 잘 뭉치고 단합이 되어서 힘있는 조직으로 활동하는 데는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열심히 뭉쳐야 하고 또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경쟁 관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경쟁이 발전의 단초라고 한다면 한국인들 끼리의 경쟁은 필요한 측면도 있지요.
특히 요즘은 불경기라서 서로가 지나친 경쟁을 하는 것은 오히려 역 효과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고 또 발전적으로 헤쳐나가야 겠지요.
-마지막으로 아드님과 사모님에 관하여 한 말씀 해주십시요?
-아들 형탁이가 이제 군대 갔다와서 일본에 온지 3년이 되었는데 26살 입니다. 자식에게 나중에 회사를 물려주게 될것 같지만 아직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해도 남들과 똑 같이 일하고 돈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거나 보너스를 더주는 일도 없으며 자신이 이후 자립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해주는 정도입니다. 저는 아직 50대이지만 벌써 조금씩 눈이 나빠지기 시작을 하여 요즘은 정밀한 작업을 하기 힘들어서 오랜 시간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방보다는 주로 매장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아들놈이 충실히 기술을 배우고 닦아서 이후에 제 일을 물려 받길 원합니다.
다행이 형탁이가 제 뜻을 잘 따라 주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어 부모로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한 10년도 지나면 저는 동경 근처나 지바 같은 곳에 좋은 터를 잡아 들어가 살 생각입니다. 그리고 집 사람은 지금은 조금만 한식당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저를 잘 따라주고 또 충실한 내조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 저에는 큰 힘이 됩니다.
김연식 사장과 두어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카치마치의 많은 기술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를 잡고 있고 또 독자적인 영업망과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가끔은 일로 단련된 거친손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들 자랑을 하기 위해 아들과 기념으로 사진을 한장 찍어 주기를 원하는 모습이 여느 부모나 같은 평범한 아버지 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리고 외아들인 형탁씨를 위해 기회가 되면 홀트 아동 복지회에 의뢰하여 3-4명의 양자를 들이고 싶다고 한다.
주말이나 휴일 날 시간되면 술이나 한잔 하자는 말을 듣고서 조만간 취중 토론을 한번 하자는 약속을 하고서는 인터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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