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에서 역사학 공부하기!

푸른하늘김 2004. 2. 3. 09:19

 

어려워도 해야 한다. 

 

 

글:장팔현  


일본에서 역사학, 특히 고대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가 없으면 힘들다. 특히 박사학위를 바란다면, 그 위험수위는 수배 높아진다. 때문에 아예 일본인이 좋아할 논문으로 쓰거나 학위를 포기하고 일본을 연구했다는 점에 만족해야 할 정도이다. 그러기에 일본에서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논조와는 반대의 주장을 하거나, 미리 알아서 학위 논문을 쓰고 한국 학계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상황 같다. 아예 “한국은 학위 없으면 인정도 안하니, 비굴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학위가 먼저”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연구자의 양심 때문에 아무리 학위가 급하다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학자적 양심을 가져야지, 아무리 교수직을 원한다하여 양심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칠지도라든가 우전팔번경 등 백제와 왜국 간의 고대 한.일 관계를 밝혀 줄 중요한 연구에 있어서는 객관적 시각에서 논문을 써야지, 일신의 안달만을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단견이요, 장차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기란 정말로 힘들다. 특히 일본학계에서도 아직도 ‘임나일본부’라든가 칠지도가 백제왕이 일왕에 헌상한 것이라 주장하는 황국사관에 심취된 학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을 연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는 학위만을 제일로 치는 한국 상황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진로를 걱정하기에 일본에서 역사학을 연구하겠다고 덤비는 유학생이 적은 이유이니, 우리의 학계 인식을 바꾸어야하나 아직은 요원한 것 같다.

 

필자가 일본에서 금석문을 연구하여 고대사로 학위 논문을 취득하기까지에는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할 도전’ 그 자체였다. 필자의 지도교수조차 이 핑계, 저 핑계로 일본사학지에 논문 올리는 것조차 불쾌해 했으며, 학위 심사자체를 방해했을 정도였기에 필자는 스스로 학술지를 찾아 발표를 해야만 했다. 결국 논문제출 때도 문제가 됐다. 지도교수가 논문심사 자체를 이상한 논리를 들어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필자는 학칙을 들어 학장과 담판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학칙이 정한 기준 논문 편수 이상을 채웠으며, 1년여 걸려 논문을 다 마친 상태인데, 어찌 심사 자격이 없는가를 물었다. 처음 학장도 지도교수가 반대하기에 안 된다는 말 뿐이었다.

 

필자는 세속적인 학위나 반드시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위태롭지 않다)”라는 손자의 말처럼 그다지 조급 해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만큼 일본 고대사를 알았다는 만족감과 연구 성과를 한국이나 일본에서 책으로 발표함으로써 더욱더 일본을 연구하겠다는 각오만을 다졌다.

 

그런데 몇 주 후 학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마도 학칙 검토 후 필자의 심사요청에 무리가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이 때 학장과의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장: 학칙에 정한 심사기준을 채웠지만, 학위 내용에 문제가 있다.

  나: 예, 논문 편수도 채웠고 학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데, 학위내용에 문제가 있어서 안 되다

        니요?

  학장: 장상(씨)은 학교에서 장학금 주고 공부했는데, 너무 한국에 유리하게 쓰여져있다. 이

           논문을 그대로 발표하면 학교측 입장이 곤란해진다. 그런 부분을 수정하고, 한․일 양

          국에서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고려해 보겠습니다.


하여튼 여러 조건을 내세웠으며, 결국 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일본인 학자로서는 감히 속내를 밝히기 힘든 상황인데도, 솔직히 일부 내용을 바꿔달라는 요청이었음을 알았다. 물론 필자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던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일본인 학자들이 입 밖에 낼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렇다고 논문의 핵심이라든가, 주장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일본인들이 읽기에 부드러워 졌을 뿐이다.

 

필자의 일본에서의 연구는 칠지도 등 고대 한.일 관계를 밝혀줄 금석문이었던 탓에 심사위원장인 학장과 내용을 가지고 사전에 많은 마찰이 있었음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역사적으로 관계 깊은 일본역사를 연구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일본에서 학위를 못 따더라도 학생들을 보내서 일본역사를 배워 와야 하는데, 한국적 상황을 생각하면 감히 엄두를 낼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특히, 고대사 부문과 중세의 왜구문제, 그리고 근대의 메이지 때와 식민지 때 연구에 있어서는 역사인식의 차이로 많은 애로사항 있음이다.

 

이는 개인적 희생을 감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본연구를 함에 있어 역사연구가 근본이 되어야 하기에  무슨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할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우에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