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른, 잔치는 끝났다

푸른하늘김 2004. 1. 16. 23:27

다시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꾸미려고... .

 

글:강선경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하는 최영미 시인의 93년 발표된 베스트셀러 시집이 있다.

평론가들은 이 시집이 "80, 90년대의 젊은이들의 청춘과 민주화운동, 사랑과 혁명 같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시인 자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라고 평하고 있다.

 

특히, 나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제목의 시를 즐겨 읽는다. 최영미 시인이 시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부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유로 동화된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의 제목을 빌려 내 삶을 얘기하려 한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에 나는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되고 30대가 시작되었다.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직장 생활은 안정보다는 안일한 하루하루였다.

 

내가 서른살 생일 때 어머니가 "서른에 마흔을 준비하는거다. 정말 근방 마흔이 된다. 서른에는 실패한 것에 울 수 있지만, 마흔에는 늦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했을때 나는 "마흔 생각만해도 너무 찡그러워"라고 답했다.

 

그러나  벌써 마흔으로 1년 2년 이렇게 가까워 지고 있다. 난 내가 하던 편집일이 좋았고 인쇄 출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한 때문인지 다른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난 일본어교재 출판사에서 미흡한 일본어로 편집을 했다. 물론 학문적인 부분이야 저자와 연구원들의 일이지만 편집디자인을 하면서 일본어를 잘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본으로의 어학연수를 결심하게 된다. 

 

어린친구들 더욱 어린 중국친구들 틈에서 나이 서른이 넘은 것을 잊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모든것이 미흡했다. 그때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일본까지 와서 일본어를 제대로 못한다면 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은 틀림없을 것 같아 자존심도 상한다.

 

아무튼 서른 살이 넘은 사람도 집 생각이 난다. 힘들때 난 오토다케의 "오체의 불만족"의 황당한 경험편을 읽는다. 그럼 기분이 전환되기도 한다.

 

대충의 이야기는 이렇다. 우연히 역에서 만난 우락부락한 얼굴의 야쿠자가 말을 걸어왔는데 그는 오토에게 "고생이 많수다"라고 했다. 그는 "사고냐" 묻고 오토는 "태어날 때 부터"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사나이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고 오토는 우락부락한 얼굴의 야쿠자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오토가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그 일을 이야기했다. 놀랄것 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태연하게 "그거야 당연하지"라고 말하셨다.

 

"그런 사람들은 잘려 봐야 새끼 손가락 하나 정도잖아. 그러니 팔과 다리가 없는 너를 보고 경의를 표할 수 밖에" 난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오토의 어머니가 말하기전까지 장애인에 대한 가엾은 고정관념으로 어쩌면 책을 읽어내려 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불편이나 약점에 대하여 태연해지는 것 삶에는 많은 또다른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오토처럼 "황당한 경험"을 한것 같았다.

 

나는 텔레비젼,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때 조금한 감동에도 울곤한다. 이때도 훌쩍거리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황당한 뒤집기에 어이없이 막 웃었다.

 

시간이 흐른뒤 삼십대의 한 시절 일본에서 서툰 발음으로 말하고, 10문제 가운데 3-4개 정도 맞아 힘겨워 했던 한자 테스트 등등의 어려움을 즐겁게 얘기하는, 또는 황당함에 다하여 태연하게... .

 

힘겨웠던 것 만큼 웃으며 얘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나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 다시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꾸미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