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국 논바닥도 기왓장도 차이가 있다.
글: 장팔현
한국이나 일본이나 논농사를 지음에 있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모판에 씨를 부리고 때 되면 모내기 하고 농약치고 수확하는 절차에 뭐가 다르랴! 88번 손 가지는 거, 논농사 짓는 민족이면 다 같지 않은가? 하여튼 벼농사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주 귀중한 농사거리이다.
우리가 먹는 쌀이 만들어 지기까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면 팔(八)+십(十)+팔(八)이 되어 도합 88팔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쌀미(米)’자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처럼 손이 많은 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간단하게 보이는 쌀미 자 한자라도 이처럼 깊은 동양적 생활과 경험에서 터득한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의 논농사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면, 뭐가 다른가요? 라고 되물을 수 도 있다. 솔직히 쉽게 구별이 안 가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선 농약 종류만 하더라도 일본은 다품종 생산으로 헷갈릴 정도로 종류가 많다. 기능면에서는 몇 가지로 분류되겠지만, 일본은 농약이나 비료를 세세하게 분류해서 생산해 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거의 모든 제품이 그렇지만 다품종으로 세세하게 생산해 냄으로서 일자리 창출과 선택의 폭을 넓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일본인들의 특성은 1억이 넘는 거대시장이 있어 가능하리라 보지만, 잡지 등의 출판물만 보더라도 그 종류의 엄청남에 기가 질릴 지경이고, 매월 무슨 책 종류가 발행되고 있는지를 색인하고 분류 해주는 책마저 따로 나오는 판이다.
논농사도 일본과 별 차이 없을 거라 대부분이 생각 하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다른 점은 바로 논의 구조에 있을 것이다. 일본은 비가 많이 오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갈수기를 대비해서 논바닥을 약 1미터 정도 깊이로 갈라 ‘도깡(土管)’을 열십자로 묻어 전 논바닥을 거미줄처럼 연결 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토관도 그냥 토관이 아니라, 생김새를 보면 약 10센티 정도의 구경에 1미터 정도의 길이로 위에 묻히는 부분의 토관 중간 중간에 구멍이 나 있다는 점이다.
즉, 이 토관 구멍으로 물을 받아들여 저장했다가 가뭄이 들면 벼 뿌리에 물을 올려주는 시스템이다. 참으로 묘한 구조이고, 논바닥이 무슨 거대한 움직이는 생물 같다. 이는 숲이 우거져서 나무가 물을 머금었다가 가뭄 시 물을 밖으로 내뿜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이밖에도 기와지붕을 이을 때도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다르다. 일본지역이 예로부터 풍수해 피해가 많은 나라이고 특히 매년 대형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라서 그런지, 기와 한 장 한 장마다 앞뒤로 구멍이 하나씩 반드시 뚫려 있다는 특이점이다.
이는 바람에 기왓장이 날라 가지 않도록 기왓장을 이을 때 못을 치기 위함이다. 기와를 이어도 그냥 잇는 것이 아니고 대못을 박아 태풍에도 끄덕 없게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주문을 하면 만들어 준다고 하나 일반적이지 않고 비싸다는 점이다. 한 번도 구멍 뚫린 기왓장을 한국서 본 기회도 없어 그러려니 하지만, 태풍이 심한 제주도나 남부지역은 이러한 기와로 지붕을 이어도 좋을 것 같다.
같을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바닥 밑바닥의 구조도 다르고 기왓장 한 장 만듦에 있어서도 이처럼 다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기와 기술을 전달해줬음은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고(538년과 552년 전래설로 갈라져 있음) 백제식 사찰인 호오류-지(法隆寺)를 지어주었음에도 알 수 있다. 우리의 ‘기와’를 일본어로는 ‘카와라’라 하는데, 이는 충청도 사투리인 ‘개와’와 관련이 있는 듯싶다.
아무튼 도작문화와 기와문화를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주었다 해도 일본인 특유의 문화 수용행태인 수(守)--->파(破)--->리(離)의 단계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즉, 원래의 문화 수입국으로부터 기술이나 문화를 수입해서 한동안 그대로 답습하다가 기술습득이 되면 곧바로 자기 나름의 파괴 단계를 통해 일본화 하려하고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면 원래의 문화 수입국 보다 훨씬 발전하거나 원형을 완전히 탈피하게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한국이 전해 준 문화라 하더라도 이미 원형을 떠난 것이요, 일본인이 소화시켜 발전시킨 것이기에 일본문화라 주장하는 것이다. 즉, 일본인이 주장하는 심저(心底)에는 이처럼 기술습득--->소화--->새로운 일본 문화로 탄생시키는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이미 한국문화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여튼 메이지유신 때 맹위를 떨치던 ‘일본의 전통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기술을 가미하는 근대화 전략(화혼양재:和魂洋才)’이 실은 백제로부터 기술을 받아들이던 고대에 이미 그 사상이 존재했다고 사료된다. 하여튼 새로운 문화를 밖으로부터 받아들여 일본화 시키는 모방 및 변화 정신만은 천재적인 민족임은 알아주어야한다.


글: 장팔현
한국이나 일본이나 논농사를 지음에 있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모판에 씨를 부리고 때 되면 모내기 하고 농약치고 수확하는 절차에 뭐가 다르랴! 88번 손 가지는 거, 논농사 짓는 민족이면 다 같지 않은가? 하여튼 벼농사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주 귀중한 농사거리이다.
우리가 먹는 쌀이 만들어 지기까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면 팔(八)+십(十)+팔(八)이 되어 도합 88팔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쌀미(米)’자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처럼 손이 많은 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간단하게 보이는 쌀미 자 한자라도 이처럼 깊은 동양적 생활과 경험에서 터득한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의 논농사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면, 뭐가 다른가요? 라고 되물을 수 도 있다. 솔직히 쉽게 구별이 안 가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선 농약 종류만 하더라도 일본은 다품종 생산으로 헷갈릴 정도로 종류가 많다. 기능면에서는 몇 가지로 분류되겠지만, 일본은 농약이나 비료를 세세하게 분류해서 생산해 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거의 모든 제품이 그렇지만 다품종으로 세세하게 생산해 냄으로서 일자리 창출과 선택의 폭을 넓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일본인들의 특성은 1억이 넘는 거대시장이 있어 가능하리라 보지만, 잡지 등의 출판물만 보더라도 그 종류의 엄청남에 기가 질릴 지경이고, 매월 무슨 책 종류가 발행되고 있는지를 색인하고 분류 해주는 책마저 따로 나오는 판이다.
논농사도 일본과 별 차이 없을 거라 대부분이 생각 하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다른 점은 바로 논의 구조에 있을 것이다. 일본은 비가 많이 오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갈수기를 대비해서 논바닥을 약 1미터 정도 깊이로 갈라 ‘도깡(土管)’을 열십자로 묻어 전 논바닥을 거미줄처럼 연결 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토관도 그냥 토관이 아니라, 생김새를 보면 약 10센티 정도의 구경에 1미터 정도의 길이로 위에 묻히는 부분의 토관 중간 중간에 구멍이 나 있다는 점이다.
즉, 이 토관 구멍으로 물을 받아들여 저장했다가 가뭄이 들면 벼 뿌리에 물을 올려주는 시스템이다. 참으로 묘한 구조이고, 논바닥이 무슨 거대한 움직이는 생물 같다. 이는 숲이 우거져서 나무가 물을 머금었다가 가뭄 시 물을 밖으로 내뿜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이밖에도 기와지붕을 이을 때도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다르다. 일본지역이 예로부터 풍수해 피해가 많은 나라이고 특히 매년 대형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라서 그런지, 기와 한 장 한 장마다 앞뒤로 구멍이 하나씩 반드시 뚫려 있다는 특이점이다.
이는 바람에 기왓장이 날라 가지 않도록 기왓장을 이을 때 못을 치기 위함이다. 기와를 이어도 그냥 잇는 것이 아니고 대못을 박아 태풍에도 끄덕 없게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주문을 하면 만들어 준다고 하나 일반적이지 않고 비싸다는 점이다. 한 번도 구멍 뚫린 기왓장을 한국서 본 기회도 없어 그러려니 하지만, 태풍이 심한 제주도나 남부지역은 이러한 기와로 지붕을 이어도 좋을 것 같다.
같을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바닥 밑바닥의 구조도 다르고 기왓장 한 장 만듦에 있어서도 이처럼 다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기와 기술을 전달해줬음은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고(538년과 552년 전래설로 갈라져 있음) 백제식 사찰인 호오류-지(法隆寺)를 지어주었음에도 알 수 있다. 우리의 ‘기와’를 일본어로는 ‘카와라’라 하는데, 이는 충청도 사투리인 ‘개와’와 관련이 있는 듯싶다.
아무튼 도작문화와 기와문화를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주었다 해도 일본인 특유의 문화 수용행태인 수(守)--->파(破)--->리(離)의 단계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즉, 원래의 문화 수입국으로부터 기술이나 문화를 수입해서 한동안 그대로 답습하다가 기술습득이 되면 곧바로 자기 나름의 파괴 단계를 통해 일본화 하려하고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면 원래의 문화 수입국 보다 훨씬 발전하거나 원형을 완전히 탈피하게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한국이 전해 준 문화라 하더라도 이미 원형을 떠난 것이요, 일본인이 소화시켜 발전시킨 것이기에 일본문화라 주장하는 것이다. 즉, 일본인이 주장하는 심저(心底)에는 이처럼 기술습득--->소화--->새로운 일본 문화로 탄생시키는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이미 한국문화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여튼 메이지유신 때 맹위를 떨치던 ‘일본의 전통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기술을 가미하는 근대화 전략(화혼양재:和魂洋才)’이 실은 백제로부터 기술을 받아들이던 고대에 이미 그 사상이 존재했다고 사료된다. 하여튼 새로운 문화를 밖으로부터 받아들여 일본화 시키는 모방 및 변화 정신만은 천재적인 민족임은 알아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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