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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취재를 해 놓고도 송고하지 못한 기사들이 마음에 걸린다. 오늘은 꼭 올려야지, 오늘만큼은 꼭 보내야지 하다가 시기를 놓쳐 버린 기사들. 그런 사생아들을 볼 때마다 썩 개운치 못한 기분이 된다. 시간적, 경제적 낭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취재 상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데서 오는 기자윤리의 문제. 넘치는 내용 중에 어쩔 수 없이 선별할 수밖에 없는, 즉 뉴스가치를 재단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의 내부 검열의 문제. 이런 것은 아마도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길은 아마도 오늘처럼 지나간 기자수첩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타이밍을 놓친 이야기를 적는 것이다. 일종의 반성문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생각으로 수첩을 들여다보니, 11월 5일날 만난 분들과 나눈 이야기가 번득 눈에 들어온다. 동경의 품격있는 거리 긴자(銀座)에 위치한 "아트로베(ア?トロベ)" 갤러리에서 열린 오병학 화백전. 팔순의 나이에도 정력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신 재일교포 1세의 지극한 한민족 사랑이 갤러리를 감싼다. 역동적인 탈춤이 실린 과거의 작품집, 갤러리의 한 벽을 장식한 재일교포들의 자화상, 반대편 벽에는 다소곳한 미인의 누드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누드의 사이, 이조백자의 정물화가 기자의 눈을 끈다. "저렇게 배치한 것은 의도적인 이유가 있어요. 저는 이조백자의 매끄러운 표면의 색깔과 미인의 살결이 가지는 '온도'와 같다고 생각해요. 이조백자의 순수함과 미인의 순수함. 그것들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또 다른 느낌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느꼈으면 하네요" 진지하게 그렇지만 또박또박 설명하는 화백의 눈동자는 소년처럼 빛나고, 잠시 후 그는 갤러리를 찾아온 두 명의 친우들과 조우한다. 재일교포 1세대의 민족교육자이신 정구일 선생과 시인이자 서예가이신 정양 이철 선생이다. 몇 십년을 이어온 세 분의 우정은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소동과도 같다. 이철 선생은 "특별히 오 화백 그대를 위해서 글을 써왔노라"고 일부러 문어체의 언사를 구사하면서 호기롭게 두루마리를 편다. 힘있고, 진정성 가득한 추사체의 필치가 두루마리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참고로 정양 이철 선생은 1975년부터 87년까지 13년간, 일본사회에서 조선문제에 관한 담론을 주도했던 계간 <삼천리>의 발행인으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팔순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으로 제주도 근/현대사를 집필 중이다. 고(故) 김달수 선생, 통일운동가 정경모 선생, 민족교육자 정구일 선생, 재일작가 김석범 선생 등과 더불어 재일교포 1세대의 실천적 지식인 그룹을 이루고 있는 시인이자 추사체의 대가이신 이철 선생이 "오병학 화백전"에 보낸 축시를 옮겨 본다. 頌祝(송축)
異邦(이방)의 눈비바람은 비뚤어진 歷史의 여울 소리던가. 虛久(허구)한 日月을 두고 사람들은 돌부리를 헤쳐 이겨사는 理致(이치)를 배웠으며 고스란히 矜持(긍지)를 간직하여 자아를 두드러지게 부각시켜 나왔다. 營爲(영위)는 오늘도 마찬가지다. 여기 또 우리들이 자랑하는 吳炳學 畵伯展이 열려 있다. 화백이 긴긴 밤 지새우고 功들여 이룬 주옥같은 寶貝(보패)를 어찌 門外人(문외인)이 함부로 참견을 하겠는가? 그러나 무게차고 優雅(우아)하고 愈然(유연)이 배어 있는 숨결에는 내 나름대로의 깊은 感動(감동)을 못 이겨 한다. 개중 "白磁壺(백자호)"의 작품에선 멀리 세월을 반추하는 설화가 은은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뿐만이 아니다. 꽃묶음 하나 恭遜(공손)히 손에 들고 뱅긋이 웃는 얼굴 안에 또하나 別次(별차)의 세계 淸楚(청초)가 나부끼질 않는가. 가을 하늘이 유난히 맑다. 보다 값진 내일을 向해 畵伯(화백)이 쏠리는 맘은 크다. 뜨거운 정열의 흐름을 본다. 언제까지나 南山(남산)처럼 젊으시고 오래 오래도록 畵筆(화필) 함께 빛내시길... 公記(공기) 2003年 11月 7日 李正養 담소는 오랫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분들과 말과 호흡, 움직임을 조용히 듣고 느끼면서 다시 재일 사회를 생각한다. 문득 나 같은 뉴커머가 재일 사회에서 저분들을 알게된 것이 무척 다행이라는 안도감마저 느낀다. 선생님들이 오래오래 장수하셨으면 하는 기원을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그리고 한 달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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