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외교관 피살' 일본 여론, 파병 반대 급선회

푸른하늘김 2003. 12. 2. 20:13

'외교관 피살' 일본 여론, 파병 반대 급선회
일본 국민, 파병 반대 60% 웃돌아

글:박철현



11월 29일 이라크 북부지방 티크리트에서 숨진 일본인 외교관 2명의 신원이 30일 발표되고 이틀이 지난 지금, 일본 정부의 전후 이라크 재건을 위한 파병 논의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고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의도된 테러 가능성이 강하다"라는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의 발표와 그에 걸맞는 여러 증거들이 속속들이 제출되면서 전후 이라크 부흥 및 재건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자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파병은 안된다'라는 일본 국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선 의도된 테러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의도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고속도로 주행시의 테러"라는 점과, 사망자 중 1인이 일본과 연합군 사이의 정보교환, 현지시찰 등 실질적인 다리 역할을 했던 영국주재 일본대사관 참사관이자 연합군임시기구(CPA) 직원인 오쿠 가쓰히로씨라는 점을 꼽는다.

그가 이라크 북부 재건부흥회의 참석을 위해 이라크 직원들의 호위 없이 떠난다는 정보를 입수한 내부 인물이 테러조직에 그 정보를 넘겨준 것이 아닌가 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외교관 피살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의 종전 선언 후 '전쟁이 아닌' 이라크 전후 복구 지원을 위한 자위대 파병에 대해 거의 문제의식이 없던 일본국민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올해 초 미국이 개전을 준비하면서 일본의 지원을 요청할 당시 <마이니치 신문>(1월 7일)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파병 및 지원 찬성이 20.8%, 반대가 65.3%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미국측이 종전을 선언한 후, "이라크 전후 복구 지원에 따른 평화유지군(PKO) 명목의 이라크 파병" 관련 여론조사(<아사히 신문> 10월 23일자)를 보면 인도적 의미의 파병 찬성이 25.6%, 경제적 지원이 30.5%로 어떠한 형태든 찬성 여론이 과반수를 넘기고 있었고, 고이즈미 내각 역시 파병을 기정사실화 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그러나 미일상호방위조약에 따른 자민당의 강경노선은 11월초에 있었던 총선거로 일정 정도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고, 이라크 전쟁의 최대 명분이었던 사담 후세인 정권의 생화학 무기 등의 존재가 의심스러워 진다는 발표 등으로 일본 내에서도 "전후 복구라는 명분이 있더라도 이라크 파병을 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할 문제"라는 목소리가 여론을 이끌기 시작했다.

특히 11월 30일 대표적인 버라이어티 시사 프로그램 TBS <선데이 재팬>과 'TV 아사히' <선데이 프로젝트>에서는 "이라크 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일본의 국익이란 도대체 뭔가?"라는 민감한 이슈를 제기하였고, 가토 고이지 자민당 전 간사장 역시 "이라크 전쟁의 명분인 생화학 무기가 발견되지 않은 지금 왜 미국의 침략전쟁에 일본이 봉사해야 하나"라며 강경한 반대입장을 폈다.

이러한 목소리는 오쿠 가츠히로, 이노우에 마사노리라는 두 외교관의 죽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12월 1일. '테레비 아사히'의 <뉴스스테이션>)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11월까지만 하더라도 과반수를 넘었던 전후 이라크 부흥을 위한 파병 찬성론(경제적 지원 포함)이 25-30%선까지 후퇴하였고, 파병 반대가 60-65%선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설문자의 약 48%에 이르는 시민들이 "파병으로 결정이 나서 이라크에 자위대가 간다고 했을 때, 단 한 명이라도 사상자가 나타나면 고이즈미 총리는 사임해야 된다"라는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다는 것이다.

두 외교관의 죽음 이후,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아베 신조 간사장 등 자민당의 매파들은 여전히 파병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렇게 쉽사리 정부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치평론가 시모다 코지씨는 "내년 여름에 참의원 선거가 있다. 자민당이 아무리 파병 파병 외쳐도, 선거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벌써 고이즈미 총리가 오늘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충실한 설명을 하여 동의를 구하겠다고 하지 않은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으면서도, 대중과 상관없이 행동해 왔던 고이즈미 총리가 저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저렇게 나와버리면 파병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논의가 되어 버린다"며 파병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오사카 경제법과 대학의 요시다 교수 역시 전화 통화에서 "이번의 파병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타기를 견제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아마도 또다시 북한의 핵문제를 끌어들일 것이다. 그러면서 국익을 이야기할 것이다. 뭐 뻔한 스토리 아닌가? 그러나 그 스토리가 너무 진부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물타기에 민주당이 제대로 대응하고 공세적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점이다"라며 파병논의가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그러한 일례로 11월 총선을 통해 양당체제를 확립한 민주당은 고이즈미 내각의 파병관련 정책이 "대국민 설명부족", "이해부족", "추상적"이라며 연일 정치공세를 펴고 있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거대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과시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사례를 한국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들 역시 무조건적인 파병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여 '실제'로 피해자가 생긴 현실을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파병 논의에 임해야 한다.

진지한 파병논의란 일방적인 보고나 발표가 아니라 "국민적인 동의"를 기반으로 한 파병논의 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