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선거 1박2일 체험기
/ 자민당 이토우 코우스케 의원
일본 자민당에도 서민파 의원 있다
지난 11월 9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 대한 월간 『말』측의 취재요청에 따라 필자는 곧바로 대상 물색에 들어갔다. 출마자를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되, 인물선정 기준은 ▲민주적이고 서민적일 것 ▲반한적이지 않을 것 ▲동경 인근의 지역구 후보일 것 등이었다. 이렇게해서 고르고 고른 사람이 바로 자민당 이토우 코우스케 의원이었다.
먼저 이토우 코우스케(伊藤公介. 62)씨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우선 7선의 중진의원으로 8선에 도전하는 62세의 중견 정치인이며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중 하나인 모리파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본정계의 비주류나 다름없는 호세 대학 법학부 졸업자로 특별한 학벌 간판이 없고, 시골(나가노현) 출신이라 지역기반이 없는데도 중견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이토우 의원은 자민당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파인데 30여 년간 지역구인 동경도 내의 다마시에서 살고 있으며 국회의사당까지 아침 저녁으로 왕복 2시간의 전철통근을 하고 있다. 가난하고 서민적이며 일본 국회의원 중 여야를 막론하고 전철통근을 30년간 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도 ‘낙점’의 큰 요인 이었다.
12일간 계속되는 선거열전의 마지막날
입동인 11월 8일은 일본 중의원 선거운동의 마지막 날이었다. 섭씨 25도라는 이상 기온 속에서 오전 7시30분에 집을 나와 마치다시에 있는 이토우 의원의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쯤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이미 선거운동을 위해 나온 자원봉사자들로 만원이었다. 이토우 의원의 부인 쿠미코씨, 보좌관인 하시모토씨 등과 10여분 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무실 밖에서 수십 명의 인파가 박수를 치며 환영하는 모습이 보여 이토우 의원이 도착했나 해서 나가보았다.
하지만 도착한 것은 유명 가수 센 마사오씨였다. 오늘 오전 유세 일정에 동참한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나훈아 같은 유명한 엔카 가수로 자신이 당장 국회의원에 출마해도 당선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토우 의원의 친한 친구라서 늘 선거 때 마다 한번 정도는 응원을 온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이토우 의원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토우 의원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었다. 인사를 마친 뒤 유세를 나가는 차량에 동승하여 네 시간 정도 지역구를 함께 돌았다.
일행은 먼저 큰 수퍼 앞에 차를 세우고 짧은 유세를 펼쳤다. 이토우 후보는 수퍼 앞에서 청중들과 사진도 찍고 연설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거의 모두가 칭찬 일색이었다.
“이토우 의원이라면 충분히 10선까지는 가능하며 인복도 많다.” “정치자금 문제가 깨끗하며 돈은 없지만 사무실에 자원봉사자가 넘치는 곳이라 믿을 수 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늘 전철로 통근하니 월급쟁이와 비주류의 마음도 알고, 매일 저녁 산책을 하면서 수십 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근감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지역구를 돈 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선거사무실로 돌아왔다. 한끼에 200엔 하는 선거 사무실 식당의 밥을 먹었는데, 취재를 온 필자에게도 정확히 200엔을 받았다. 같이 식사를 한 보좌관 하시모토씨는 30년 비서를 했지만 이토우 의원은 한결같은 사람이고 참 믿음이 간다는 말을 계속했다. 앞으로 한국과 친해지고 싶다는 의지표현도 했다. 자원봉사를 나온 사람들과도 두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북한과 김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2층의 전화 상담실에서는 4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조그만 지구당 사무실에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40명의 인원이 전화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운데 책상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그 동안 보낸 엽서와 편지를 정리하는 한편 다음날 자정 무렵 당선이 확정되면 발송할 편지와 엽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6시30분 마치다 역 앞에서 시작된 대중연설에는 마지막 유세라서 그런지 수많은 응원 자 들과 수백 명의 청중들이 참가 했다. 선거운동은 투표일 전날 자정까지 가능하지만 확성기를 사용한 연설은 매일 오후 8시가 마감이다.
먼저 지역 대학생들이 전통옷인 ‘하카마’를 곱게 입고 나와 노래공연을 펼쳤다. 노래가 끝난 뒤엔 지역 유지를 비롯해 시, 구 의원들의 짧은 찬조연설과 인사가 있었다. 연이어 연단에 오른 이토우 의원의 연설이 30분 정도 계속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과 공약을 숙달된 모습으로 설파하였다. 수백 명 중 누구도 동원되어 온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중들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같은 시간 500m 쯤 떨어진 장소에서는 민주당 이시게 에이코 후보의 연설회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토우 의원측 보다 선동력과 청중 수에서 뒤지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이 지역구엔 공산당의 이마무라 준이치로씨를 포함, 3명이 입후보했다. 필자는 오후 8시 연설회가 끝난 뒤 귀가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의 선거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돈과 조직력의 싸움이다. 그래서 이토우 의원은 매우 독특한 경우인 셈이다. 여당 후보이면서도 돈이 없고, 조직력이라는 것도 100% ‘인복에 의한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하루 이토우 의원의 사무실에 왔다간 사람은 500여 명 정도. 선거법에 따라 지역구에 2군데 사무실을 둘 수 있다고 하니 다마시에 있는 사무실까지 포함하면 하루 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녀갈 정도로 이토우씨의 인기는 대단했다.
전철로 출퇴근하는 자민당 내의 유일한 서민파 의원
중의원 선거일인 11월 9일.
새벽부터 춥고 비가오기 시작했다. 아침 일기예보에 따르면 3일간 계속 춥고 흐리며 비가 온다고 한다. 이런 상태라면 최악의 투표율이 될 것 같다. 저녁 9시 방송에는 전후 2번째로 낮은 투표율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당에게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나라’ 일본의 50년 여당 자민당에도 서민파의 맥은 존재한다. 다나카-다케시타-오부치-노나카-이토우로 이어지는 서민파 정치인이 그들이다. 이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남아 잇는 이가 바로 이토우 코우스케인 셈이다.
빗속을 달리는 전철 안에서 선거에 관한 뉴스를 들으며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그의 선거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미 개표가 시작되어 100여 곳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보에 대한 인터뷰와 소개를 하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이토우 씨의 사무실도 분주했다.
필자가 도착한 저녁 9시경에는 30여명의 지지자들이 사무실에 있더니만, 밤 10시가 넘어서자 100여명으로 늘어 났다. 모두가 긴장한 상태에서 음료수와 과일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들락거렸고 어떤 이들은 연신 담배를 피워물었다.
밤 11시를 넘기면서 자민당이 고이즈미의 자신감과는 달리 과반수 확보는 힘들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스에 따르면 야당인 민주당이 선전하고 있지만 연립여당도 안정적인 의석 수를 확보하리라는 예측이었다. 마침 이토우 후보가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간단한 눈인사를 마친 뒤 TV 보도에 집중했다. 그의 당선이 확정된 것은 밤 11시30분 경이었다.
박수와 함성으로 사무실이 터져 나갔다. 100여명의 지지자들과 소수의 방송, 신문사의 취재진이 와 있었다. 필자에게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은 당선자 인사에 앞서 지역구 유지와 지지자들의 응원과 감사의 인사가 20여분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이토우씨는 마지막으로 당선사례를 했다.
당선사례와 이토우씨 부인의 인사가 끝나고 다시 사진촬영, 당내의 부서별 사진촬영 등으로 30여 분이 지난 뒤 이토우 의원은 지역구의 또 다른 사무실이 있는 다마시로 출발했다. 그는 두시간 뒤 다시 돌아왔다.
필자는 그 동안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전반적인 판세분석을 확인하고 있었다.
자민당 237석 , 민주당 177석, 공명당 34석, 공산당 9석, 사민당 6석, 보수당 4석, 무소속 13석 확보. 이후 무소속 4석과 보수당 4석이 자민당으로 흡수통합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민당은 고이즈미의 호언장담에 뒤지는 표를 얻었다. 의석도 10석이나 줄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연합여당은 275석을 차지, 안정적 집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한 셈이다.
반면 민주당은 40석이 늘어난 177석으로 정권교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공명당도 다소 의석을 늘려 ‘케스팅 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산당을 비롯한 야당의 몰락은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이제 일본도 2당 체제로 바뀌고 마는 구나! 작은 목소리들이 사라지고 있구나.”
이토우 코우스케 인터뷰 “노무현과 고이즈미를 잇겠다”
-한일의원연맹 활동을 하고 계시는 데 이후 한국과의 관계는.
“예 저는 늘 ‘한국통’을 자처하는데 아직은 한국에서 저를 몰라주는군요. 요즘 어려움이 많은 노무현 정부와 고이즈미 정권을 잇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자민당 내의 유일한 서민파 의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소감은.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계속되고 있는 헌법개정문제나 파병문제들도 산재한 과제이고, 야당과 연대하여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이번 당선으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 느낌입니다.”
-자민당 내에서도 소수파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한일관계나 대미관계들에서 평화적인 방법과 수단을 주장하고 있고 민생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 최근에는 동지가 많지 않지요.”
-고이즈미 총리와 상당히 관계가 좋다고 들었는데.
“제 글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와 저를 ‘시대를 앞서가는 일본의 두명의 정치인’이라고 표현 한적이 있는데 그것을 통해 가까워졌지요. 자민당 모리파의 의원으로 함께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친한 편이지요.”
-이번에 입각이 예상된다는 풍문이 있는데.
“아직은 잘 모릅니다. 5년 전에 국토청 장관을 잠깐 역임했었는데, 이번에 만일 기용이 된다면 외교분야나 한일관계에 관련된 분야를 맡고 싶습니다.”
-‘숨은 한국통’이라고 알고 있는데 한국에 아시는 분은 많습니까?
“여야 의원을 상당수 알고 있지요. 한국에 대한 연구도 나름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숨은 한국통’이라고 하지요.”
-앞으로 한일관계 전망은.
“한일을 잇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민에게 한 말씀해 주십시오.
“일본 자민당 내에도 한국을 사랑하고 좋아하며, 한국의 밝은 미래를 구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

/ 자민당 이토우 코우스케 의원
일본 자민당에도 서민파 의원 있다
지난 11월 9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 대한 월간 『말』측의 취재요청에 따라 필자는 곧바로 대상 물색에 들어갔다. 출마자를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되, 인물선정 기준은 ▲민주적이고 서민적일 것 ▲반한적이지 않을 것 ▲동경 인근의 지역구 후보일 것 등이었다. 이렇게해서 고르고 고른 사람이 바로 자민당 이토우 코우스케 의원이었다.
먼저 이토우 코우스케(伊藤公介. 62)씨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우선 7선의 중진의원으로 8선에 도전하는 62세의 중견 정치인이며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중 하나인 모리파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본정계의 비주류나 다름없는 호세 대학 법학부 졸업자로 특별한 학벌 간판이 없고, 시골(나가노현) 출신이라 지역기반이 없는데도 중견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이토우 의원은 자민당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파인데 30여 년간 지역구인 동경도 내의 다마시에서 살고 있으며 국회의사당까지 아침 저녁으로 왕복 2시간의 전철통근을 하고 있다. 가난하고 서민적이며 일본 국회의원 중 여야를 막론하고 전철통근을 30년간 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도 ‘낙점’의 큰 요인 이었다.
12일간 계속되는 선거열전의 마지막날
입동인 11월 8일은 일본 중의원 선거운동의 마지막 날이었다. 섭씨 25도라는 이상 기온 속에서 오전 7시30분에 집을 나와 마치다시에 있는 이토우 의원의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쯤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이미 선거운동을 위해 나온 자원봉사자들로 만원이었다. 이토우 의원의 부인 쿠미코씨, 보좌관인 하시모토씨 등과 10여분 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무실 밖에서 수십 명의 인파가 박수를 치며 환영하는 모습이 보여 이토우 의원이 도착했나 해서 나가보았다.
하지만 도착한 것은 유명 가수 센 마사오씨였다. 오늘 오전 유세 일정에 동참한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나훈아 같은 유명한 엔카 가수로 자신이 당장 국회의원에 출마해도 당선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토우 의원의 친한 친구라서 늘 선거 때 마다 한번 정도는 응원을 온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이토우 의원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토우 의원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었다. 인사를 마친 뒤 유세를 나가는 차량에 동승하여 네 시간 정도 지역구를 함께 돌았다.
일행은 먼저 큰 수퍼 앞에 차를 세우고 짧은 유세를 펼쳤다. 이토우 후보는 수퍼 앞에서 청중들과 사진도 찍고 연설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거의 모두가 칭찬 일색이었다.
“이토우 의원이라면 충분히 10선까지는 가능하며 인복도 많다.” “정치자금 문제가 깨끗하며 돈은 없지만 사무실에 자원봉사자가 넘치는 곳이라 믿을 수 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늘 전철로 통근하니 월급쟁이와 비주류의 마음도 알고, 매일 저녁 산책을 하면서 수십 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근감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지역구를 돈 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선거사무실로 돌아왔다. 한끼에 200엔 하는 선거 사무실 식당의 밥을 먹었는데, 취재를 온 필자에게도 정확히 200엔을 받았다. 같이 식사를 한 보좌관 하시모토씨는 30년 비서를 했지만 이토우 의원은 한결같은 사람이고 참 믿음이 간다는 말을 계속했다. 앞으로 한국과 친해지고 싶다는 의지표현도 했다. 자원봉사를 나온 사람들과도 두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북한과 김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2층의 전화 상담실에서는 4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조그만 지구당 사무실에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40명의 인원이 전화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운데 책상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그 동안 보낸 엽서와 편지를 정리하는 한편 다음날 자정 무렵 당선이 확정되면 발송할 편지와 엽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6시30분 마치다 역 앞에서 시작된 대중연설에는 마지막 유세라서 그런지 수많은 응원 자 들과 수백 명의 청중들이 참가 했다. 선거운동은 투표일 전날 자정까지 가능하지만 확성기를 사용한 연설은 매일 오후 8시가 마감이다.
먼저 지역 대학생들이 전통옷인 ‘하카마’를 곱게 입고 나와 노래공연을 펼쳤다. 노래가 끝난 뒤엔 지역 유지를 비롯해 시, 구 의원들의 짧은 찬조연설과 인사가 있었다. 연이어 연단에 오른 이토우 의원의 연설이 30분 정도 계속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과 공약을 숙달된 모습으로 설파하였다. 수백 명 중 누구도 동원되어 온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중들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같은 시간 500m 쯤 떨어진 장소에서는 민주당 이시게 에이코 후보의 연설회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토우 의원측 보다 선동력과 청중 수에서 뒤지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이 지역구엔 공산당의 이마무라 준이치로씨를 포함, 3명이 입후보했다. 필자는 오후 8시 연설회가 끝난 뒤 귀가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의 선거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돈과 조직력의 싸움이다. 그래서 이토우 의원은 매우 독특한 경우인 셈이다. 여당 후보이면서도 돈이 없고, 조직력이라는 것도 100% ‘인복에 의한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하루 이토우 의원의 사무실에 왔다간 사람은 500여 명 정도. 선거법에 따라 지역구에 2군데 사무실을 둘 수 있다고 하니 다마시에 있는 사무실까지 포함하면 하루 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녀갈 정도로 이토우씨의 인기는 대단했다.
전철로 출퇴근하는 자민당 내의 유일한 서민파 의원
중의원 선거일인 11월 9일.
새벽부터 춥고 비가오기 시작했다. 아침 일기예보에 따르면 3일간 계속 춥고 흐리며 비가 온다고 한다. 이런 상태라면 최악의 투표율이 될 것 같다. 저녁 9시 방송에는 전후 2번째로 낮은 투표율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당에게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나라’ 일본의 50년 여당 자민당에도 서민파의 맥은 존재한다. 다나카-다케시타-오부치-노나카-이토우로 이어지는 서민파 정치인이 그들이다. 이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남아 잇는 이가 바로 이토우 코우스케인 셈이다.
빗속을 달리는 전철 안에서 선거에 관한 뉴스를 들으며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그의 선거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미 개표가 시작되어 100여 곳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보에 대한 인터뷰와 소개를 하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이토우 씨의 사무실도 분주했다.
필자가 도착한 저녁 9시경에는 30여명의 지지자들이 사무실에 있더니만, 밤 10시가 넘어서자 100여명으로 늘어 났다. 모두가 긴장한 상태에서 음료수와 과일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들락거렸고 어떤 이들은 연신 담배를 피워물었다.
밤 11시를 넘기면서 자민당이 고이즈미의 자신감과는 달리 과반수 확보는 힘들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스에 따르면 야당인 민주당이 선전하고 있지만 연립여당도 안정적인 의석 수를 확보하리라는 예측이었다. 마침 이토우 후보가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간단한 눈인사를 마친 뒤 TV 보도에 집중했다. 그의 당선이 확정된 것은 밤 11시30분 경이었다.
박수와 함성으로 사무실이 터져 나갔다. 100여명의 지지자들과 소수의 방송, 신문사의 취재진이 와 있었다. 필자에게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은 당선자 인사에 앞서 지역구 유지와 지지자들의 응원과 감사의 인사가 20여분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이토우씨는 마지막으로 당선사례를 했다.
당선사례와 이토우씨 부인의 인사가 끝나고 다시 사진촬영, 당내의 부서별 사진촬영 등으로 30여 분이 지난 뒤 이토우 의원은 지역구의 또 다른 사무실이 있는 다마시로 출발했다. 그는 두시간 뒤 다시 돌아왔다.
필자는 그 동안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전반적인 판세분석을 확인하고 있었다.
자민당 237석 , 민주당 177석, 공명당 34석, 공산당 9석, 사민당 6석, 보수당 4석, 무소속 13석 확보. 이후 무소속 4석과 보수당 4석이 자민당으로 흡수통합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민당은 고이즈미의 호언장담에 뒤지는 표를 얻었다. 의석도 10석이나 줄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연합여당은 275석을 차지, 안정적 집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한 셈이다.
반면 민주당은 40석이 늘어난 177석으로 정권교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공명당도 다소 의석을 늘려 ‘케스팅 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산당을 비롯한 야당의 몰락은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이제 일본도 2당 체제로 바뀌고 마는 구나! 작은 목소리들이 사라지고 있구나.”
이토우 코우스케 인터뷰 “노무현과 고이즈미를 잇겠다”
-한일의원연맹 활동을 하고 계시는 데 이후 한국과의 관계는.
“예 저는 늘 ‘한국통’을 자처하는데 아직은 한국에서 저를 몰라주는군요. 요즘 어려움이 많은 노무현 정부와 고이즈미 정권을 잇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자민당 내의 유일한 서민파 의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소감은.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계속되고 있는 헌법개정문제나 파병문제들도 산재한 과제이고, 야당과 연대하여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이번 당선으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 느낌입니다.”
-자민당 내에서도 소수파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한일관계나 대미관계들에서 평화적인 방법과 수단을 주장하고 있고 민생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 최근에는 동지가 많지 않지요.”
-고이즈미 총리와 상당히 관계가 좋다고 들었는데.
“제 글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와 저를 ‘시대를 앞서가는 일본의 두명의 정치인’이라고 표현 한적이 있는데 그것을 통해 가까워졌지요. 자민당 모리파의 의원으로 함께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친한 편이지요.”
-이번에 입각이 예상된다는 풍문이 있는데.
“아직은 잘 모릅니다. 5년 전에 국토청 장관을 잠깐 역임했었는데, 이번에 만일 기용이 된다면 외교분야나 한일관계에 관련된 분야를 맡고 싶습니다.”
-‘숨은 한국통’이라고 알고 있는데 한국에 아시는 분은 많습니까?
“여야 의원을 상당수 알고 있지요. 한국에 대한 연구도 나름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숨은 한국통’이라고 하지요.”
-앞으로 한일관계 전망은.
“한일을 잇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민에게 한 말씀해 주십시오.
“일본 자민당 내에도 한국을 사랑하고 좋아하며, 한국의 밝은 미래를 구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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