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총선 결과분석!
글:장팔현
2003년11월9일 있었던 일본 중의원 선거는 매우 의미가 큰 선거전이었다. 특히 양심적인 소리로 존재 가치를 느끼게 했던 공산당과 사민당 등 군소정당이 몰락하고 자민, 민주 양당체제로 재편된 선거였다.
480개의 의석 중 자민당의 과반수 확보를 노렸던 코이즈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오히려 해산 전 247석에서 10석이나 줄어든 237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연립여당을 형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34석을 확보하고 보수신당이 4석을 확보함으로서 과반수인 241석을 훨씬 넘는 275석을 유지하게 됐다는 점에서 승리라고 자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민당의 입 맛 대로 정치를 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공명당의 입김이 한층 더 거세질 것은 자명하다.
연립여당에 참가중인 공명당은 불교계파의 창가학회가 주축이 된 당으로 해산 전 31석에서 34석으로 3석이 늘었다. 또 다른 축인 보수신당은 9석에서 4석으로 줄어듦으로서 그 의미가 매우 축소되었다. 보수신당의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어 아예 자민당으로의 당적 이적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의 연립여당이 추진하는 ‘자위대의 군대(軍隊)로의 입법’은 아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전 한국, 중국에 대한 의도적 망언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은 겨우 체면치레로 끝난 선거에 만족해야만 했다. 비례선거에서는 오히려 야당인 민주당에 져 제2당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결과 민주당이 비례선거에서 72석을 차지하고 자민당이 69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는 점점 우경화돼가는 자민당에 대하여 일본 국민들이 비례선거에서는 민주당으로 표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 해 볼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매우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해산 전 137석에서 무려 30%나 늘어난 177석을 확보함으로서 명실 공히 제1야당의 입지를 굳건히 함은 물론 무소속 의원과 여당 내 친민주 세력을 규합한다면 수권정당으로서도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전에는 코이즈미와 아베 신조를 투 톱으로 하는 자민당의 이미지 정치에 대하여 민주당은 두꺼운 책자까지 발행하며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정책선거’를 치름으로서 가능했다. 또한 오자와 이치로-씨가 이끌던 자유당과의 합당으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유당과 합당하기 전의 지난 선거 때는 10여 곳에서 자민당 의원과 경합하다 두 당 후보 모두 낙선 했지만, 금번 양당 합당으로 동일 선거구에서 5석을 차지하게 되었음을 볼 때 그 효과가 확연히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중량급 무소속 후보의 화려한 컴백
무소속으로 당선된 타나카(타나카 카쿠에이 전 수상의 딸) 전 외상과 카토 코이치 전 의원이 당선 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결과로 비쳐진다. 타나카 전 외상은 코이즈미 수상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결국 보좌관 월급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했었다. 금번 니이가타 선거 전에 나올 때 자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으나, 자민당에서는 타나카 마키코 의원의 중량감과 인기를 두려워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정을 미루었었다.
남편이 자민당 참의원으로 있고 내년도에도 공천이 확정된 상태이지만, 자민당과는 매우 껄끄러운 관계로 발전 될 것 같다. 여걸(女傑)로 평가받는 타나카 당선자가 다시 자민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으로 있거나 야당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원직 상실 직후부터 민주당으로부터의 러브콜이 아직도 유효할 것으로 보이며, 부군도 이에 따를 가능성조차 예견된다고 일본 언론은 전하다. 카토- 코-이치 의원은 한국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양심적 의원이었으나, 금전문제로 역시 의원직을 상실 당했다가 금번 선거에 부활한 케이스이다. 아마도 자민당으로의 복당이 예상되지만, 예전 같은 활동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양심적 군소정당의 몰락
일본에서 차별 받고 있는 계층이 주로 지지하는 공산당이 소선거구에서 전멸하고 의석수도 20석에서 9석으로 급격히 줄어 충격이 클듯하다. 또한 입바른 소리로 일본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잘못된 자민당의 우경화 정책에 강한 비판과 제동을 걸던 도이 타카코 의원도 코베 선거구에서 낙선을 하고 말았다. 겨우 예비적으로 얹어 둔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간신히 구제됐을 정도였다. 의석수도 18석에서 한 자리수인 6석으로 줄었으니 과거처럼 큰 영향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에서도 겨우 한 석만을 건졌을 뿐이다. 양심적이고 올바른 인류 보편적 사상과 이념을 가졌던 두 정당의 추락이 우리로서는 못내 아쉽다. 일본 국민성으로 보아 이제는 무늬만 정당으로 겨우 겨우 연명하다가 그 존립자체도 힘들어 질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본의 정치현실이다.
그나마 양심적인 민주당에 인접국과의 선린관계를 기대해야하나, 민주당도 최근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급격히 네오콘(신보수주의)이 출현하는 등 일본의 우경화에 동조하는 것으로 봐서 미덥지 못하다. 이래저래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이번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가 군사대국화 및 정치대국화를 막을 어떠한 흐름도 바꿀 수 없음을 직시해야한다.
이번 선거에서 거물급이 대거 낙선했음도 특기할 만하다. 사민당의 도이당수가 소선거에서 낙선했으며 보수신당의 쿠마가이 당수도 선거에 낙선함으로서 정계를 떠나야만 했다. 자민당의 중진 야마사키 타쿠 의원은 후쿠오카 2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하였는데, 줄기차게 인구에 회자되던 섹스스캔들 때문이었다.
이번에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총선은 어느 정도 세대간 물갈이도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최연소로 당선 된 의원은 아키타현(秋田縣) 제1구에서 출마한 민주당 후보로서 27세의 테라다 마나부(寺田學)씨였다. 그는 현 아키타현 지사의 2남으로서 부친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 진다. 자민당 내에서 일기 시작한 세대 물갈이론은 비례대표 의원의 나이를 73세 정년으로 기준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영향 탓인지, 20-30대 의원이 35명이나 당선되었음은 어느 정도 물갈이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원로정치인을 연상시키던 일본 정가에 적은 수이지만, 젊은 피가 수혈 되었으니 특이한 일이다.
일본의 중의원은 총원 480명으로 구성되며 300명의 의원을 소선거구에서 뽑고 나머지 180명을 비례대표(우리의 전국구)로 뽑는다. 근년에 의원수가 지나치게 많다하여 500명에서 20명을 줄여 480명으로 변경했다. 선거일도 평일이 아닌 일요일에 치름으로서 별도로 공휴일을 정하지 않는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거나 공휴일에 투표하는 정치행태는 우리로서도 본 받아야할 점이라고 본다.
금번 총선 결과로 볼 때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자민당만큼은 아니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에도 네오콘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양심적인 인류 보편적 사상을 지닌 사민당과 공산당의 몰락이 극우 보수 사상의 거대 자민당과 중도 보수 쪽으로 기우는 민주당을 비판하거나 제지하기에는 수적으로 너무나 역부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선거 전과 조금도 바뀐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며, 일본의 우경화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글:장팔현
2003년11월9일 있었던 일본 중의원 선거는 매우 의미가 큰 선거전이었다. 특히 양심적인 소리로 존재 가치를 느끼게 했던 공산당과 사민당 등 군소정당이 몰락하고 자민, 민주 양당체제로 재편된 선거였다.
480개의 의석 중 자민당의 과반수 확보를 노렸던 코이즈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오히려 해산 전 247석에서 10석이나 줄어든 237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연립여당을 형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34석을 확보하고 보수신당이 4석을 확보함으로서 과반수인 241석을 훨씬 넘는 275석을 유지하게 됐다는 점에서 승리라고 자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민당의 입 맛 대로 정치를 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공명당의 입김이 한층 더 거세질 것은 자명하다.
연립여당에 참가중인 공명당은 불교계파의 창가학회가 주축이 된 당으로 해산 전 31석에서 34석으로 3석이 늘었다. 또 다른 축인 보수신당은 9석에서 4석으로 줄어듦으로서 그 의미가 매우 축소되었다. 보수신당의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어 아예 자민당으로의 당적 이적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의 연립여당이 추진하는 ‘자위대의 군대(軍隊)로의 입법’은 아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전 한국, 중국에 대한 의도적 망언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은 겨우 체면치레로 끝난 선거에 만족해야만 했다. 비례선거에서는 오히려 야당인 민주당에 져 제2당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결과 민주당이 비례선거에서 72석을 차지하고 자민당이 69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는 점점 우경화돼가는 자민당에 대하여 일본 국민들이 비례선거에서는 민주당으로 표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 해 볼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매우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해산 전 137석에서 무려 30%나 늘어난 177석을 확보함으로서 명실 공히 제1야당의 입지를 굳건히 함은 물론 무소속 의원과 여당 내 친민주 세력을 규합한다면 수권정당으로서도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전에는 코이즈미와 아베 신조를 투 톱으로 하는 자민당의 이미지 정치에 대하여 민주당은 두꺼운 책자까지 발행하며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정책선거’를 치름으로서 가능했다. 또한 오자와 이치로-씨가 이끌던 자유당과의 합당으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유당과 합당하기 전의 지난 선거 때는 10여 곳에서 자민당 의원과 경합하다 두 당 후보 모두 낙선 했지만, 금번 양당 합당으로 동일 선거구에서 5석을 차지하게 되었음을 볼 때 그 효과가 확연히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중량급 무소속 후보의 화려한 컴백
무소속으로 당선된 타나카(타나카 카쿠에이 전 수상의 딸) 전 외상과 카토 코이치 전 의원이 당선 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결과로 비쳐진다. 타나카 전 외상은 코이즈미 수상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결국 보좌관 월급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했었다. 금번 니이가타 선거 전에 나올 때 자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으나, 자민당에서는 타나카 마키코 의원의 중량감과 인기를 두려워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정을 미루었었다.
남편이 자민당 참의원으로 있고 내년도에도 공천이 확정된 상태이지만, 자민당과는 매우 껄끄러운 관계로 발전 될 것 같다. 여걸(女傑)로 평가받는 타나카 당선자가 다시 자민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으로 있거나 야당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원직 상실 직후부터 민주당으로부터의 러브콜이 아직도 유효할 것으로 보이며, 부군도 이에 따를 가능성조차 예견된다고 일본 언론은 전하다. 카토- 코-이치 의원은 한국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양심적 의원이었으나, 금전문제로 역시 의원직을 상실 당했다가 금번 선거에 부활한 케이스이다. 아마도 자민당으로의 복당이 예상되지만, 예전 같은 활동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양심적 군소정당의 몰락
일본에서 차별 받고 있는 계층이 주로 지지하는 공산당이 소선거구에서 전멸하고 의석수도 20석에서 9석으로 급격히 줄어 충격이 클듯하다. 또한 입바른 소리로 일본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잘못된 자민당의 우경화 정책에 강한 비판과 제동을 걸던 도이 타카코 의원도 코베 선거구에서 낙선을 하고 말았다. 겨우 예비적으로 얹어 둔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간신히 구제됐을 정도였다. 의석수도 18석에서 한 자리수인 6석으로 줄었으니 과거처럼 큰 영향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에서도 겨우 한 석만을 건졌을 뿐이다. 양심적이고 올바른 인류 보편적 사상과 이념을 가졌던 두 정당의 추락이 우리로서는 못내 아쉽다. 일본 국민성으로 보아 이제는 무늬만 정당으로 겨우 겨우 연명하다가 그 존립자체도 힘들어 질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본의 정치현실이다.
그나마 양심적인 민주당에 인접국과의 선린관계를 기대해야하나, 민주당도 최근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급격히 네오콘(신보수주의)이 출현하는 등 일본의 우경화에 동조하는 것으로 봐서 미덥지 못하다. 이래저래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이번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가 군사대국화 및 정치대국화를 막을 어떠한 흐름도 바꿀 수 없음을 직시해야한다.
이번 선거에서 거물급이 대거 낙선했음도 특기할 만하다. 사민당의 도이당수가 소선거에서 낙선했으며 보수신당의 쿠마가이 당수도 선거에 낙선함으로서 정계를 떠나야만 했다. 자민당의 중진 야마사키 타쿠 의원은 후쿠오카 2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하였는데, 줄기차게 인구에 회자되던 섹스스캔들 때문이었다.
이번에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총선은 어느 정도 세대간 물갈이도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최연소로 당선 된 의원은 아키타현(秋田縣) 제1구에서 출마한 민주당 후보로서 27세의 테라다 마나부(寺田學)씨였다. 그는 현 아키타현 지사의 2남으로서 부친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 진다. 자민당 내에서 일기 시작한 세대 물갈이론은 비례대표 의원의 나이를 73세 정년으로 기준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영향 탓인지, 20-30대 의원이 35명이나 당선되었음은 어느 정도 물갈이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원로정치인을 연상시키던 일본 정가에 적은 수이지만, 젊은 피가 수혈 되었으니 특이한 일이다.
일본의 중의원은 총원 480명으로 구성되며 300명의 의원을 소선거구에서 뽑고 나머지 180명을 비례대표(우리의 전국구)로 뽑는다. 근년에 의원수가 지나치게 많다하여 500명에서 20명을 줄여 480명으로 변경했다. 선거일도 평일이 아닌 일요일에 치름으로서 별도로 공휴일을 정하지 않는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거나 공휴일에 투표하는 정치행태는 우리로서도 본 받아야할 점이라고 본다.
금번 총선 결과로 볼 때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자민당만큼은 아니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에도 네오콘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양심적인 인류 보편적 사상을 지닌 사민당과 공산당의 몰락이 극우 보수 사상의 거대 자민당과 중도 보수 쪽으로 기우는 민주당을 비판하거나 제지하기에는 수적으로 너무나 역부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선거 전과 조금도 바뀐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며, 일본의 우경화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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