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나카 마키코, 박근혜 그리고 '부전여전' |
최근 일본 언론은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전 외상의 중의원 총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녀는 총선에서 '반(反)고이즈미'의 대열에 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자유당의 합당으로 인한 신민주당의 탄생에 이어 다나카 전 외상이 고이즈미 체제에 반기를 든다면 이번 총선의 최대 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 그녀의 지역구인 니이가타현 나가오카시에는 많은 기자가 몰려가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0월 4일 있었던 그녀의 후원회는 전국적인 관심사가 됐다. 이날 모임에서 다나카 전 외상의 총선 출마선언이 예상됐다. 그녀는 자민당과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공식 출마선언은 일단 유보했다. 일본 언론들은 그녀가 11월 총선에 자민당 후보가 아니라 신민주당 또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나카 전 외상은 2002년에 여비서 급여를 유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며, 이 때문에 중의원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최근 검찰에 의해 불기소 처리됨으로써 총선 출마의 장애요인은 사라졌다. 검찰은 비서가 실제로 근무했고 급여가 유용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총선에서 반고이즈미 대열 설 듯 고이즈미 내각 출범과 함께 외상에 임명된 그녀는 '튀는 언행'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보수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외상 재임 시 외무성 개혁과 일본 외교의 국제화를 내세워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인사 문제를 두고 고이즈미와 대립하는가 하면 심신피로를 이유로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을 취소하는 등 돌출행동을 자주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나카 전 외상이 전격 경질된 것은 2002년 1월. 도쿄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재건회의의 특정 비정부기구(NGO) 참석 불허 압력 파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녀는 같은달 25일 중의원 예산위서 자신과 앙숙관계인 자민당 스즈키 무네오(鈴木宗南) 의원이 특정 비정부기구의 회의 참석을 방해했다며 "노가미 요시지(野上義二) 외무성 사무차관으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가미 차관이 이를 부인하는 바람에 정치적 곤경에 처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일본 속담처럼 그녀는 아버지 다나카 전 총리를 빼닮았다는 평가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의 담임교사는 '성격은 아버지, 외모는 어머니'라고 평가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다나카 전 수상은 1972년 다나카파를 만들면서 파벌정치를 시작한 인물로 886일 동안 총리로 있으면서 중-일수교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1976년 록히드 뇌물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되는 등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걸은 정치인이다. 그녀의 정치적 코드는 '다이나미즘'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일본인들이 그런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드러내지 못하는 이른바 '혼네'(本音)를 보여주는 정치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철의 여인' '야생마' 등 그녀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들은 대부분 당당하고 활달한 성품을 묘사한 것이다. 이런 성품 탓에 종종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는 당당함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녀의 당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둘러싸고 고이즈미 총리와 갈등을 빚은 일을 꼽을 수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유전인자 빼닮아 2002년 8월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당시 그녀는 "헌법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했다. 미국의 미사일방위 구상에 대해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석유업계의 영향이 있다"는 비판 역시 소신이 강한 그녀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는 평가다. 고이즈미의 지나친 미국 추종외교에 대해 비판적인 일본 사람들은 미국에 '노'라고 말하는 데 대해 높은 점수를 준다. 한국에서 다나카 전 외상과 유사한 정치적 캐릭터를 갖고 있는 정치인을 들라면 단연 박근혜 의원(한나라당)을 꼽을 수 있다. 박 의원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외모뿐만 아니라 정치적 유전인자까지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가 2002년 한국에 있을 때 한 오페라단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오페라를 만들어 올린 적이 있다. '눈물 많은 초인'으로 박 전 대통령의 고독과 강한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많은 사람은 그녀의 고독한 모습과 당찬 모습에서 조국의 근대화에 몸을 던졌던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아버지 재임 시절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정치를 익힌 것도 닮은 점이다. 다나카 전 외상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부친의 방미활동 시 통역을 하는 등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정치적 시련기를 거쳐 재기를 모색하는 것도 유사하다. 잘 알다시피 박 의원은 당 개혁을 주장하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가 대선 국면에 복당해 비판받았다. 다나카 전 외상 역시 각료직과 의원직을 그만두고 야인 생활을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재기를 준비 중이다. 자기주장이 강한 것도 닮았다. 얼마 전 호주제 폐지를 위한 공청회에서 소동이 빚어졌는데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박 의원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한 의원 54명 중 한 명이라는 점을 들어 원색적인 비판을 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보수층이 주요 지지기반인 박 의원이 보수층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소신 있는 행동을 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남성 위주의 정치구조를 혁파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점도 유사하다. 지금은 재기를 모색하는 처지가 됐지만 다나카 전 외상은 2000년 6월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수상감으로 1위를 달렸다. 당시 고이즈미가 5위를 했으니 다나카 전 외상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한국에서 그런 여론조사를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국무총릿감으로 바람직한 인물을 들라면 박 의원이 상위그룹에 들 것은 자명하다. 여성 대통령은커녕 아직 여성 총리조차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폐쇄적인 남성 중심 구조를 깨뜨릴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을 그녀는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일본과 달리 정치의 대물림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한국에서 나름대로 정치적 입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해온 여성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두 여성 정치인들이 정치적 시련기를 잘 극복하고 아버지처럼 브랜드를 갖춘 정치인으로 성장할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도쿄/권기식 통신원 kingkakwon@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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