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께서 1443년(세종25년)에 창제하여 1446년에 자, 모음 28자로 구성된 글자를 반포하니, 이를 일러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했거늘 당시의 사대주의적 유학자들에 의해 언문(諺文).언서(諺書)로 비칭(卑稱)됨은 물론 심지어 반절(反切)·암클·아햇글·가갸글로까지 폄하되어 불려졌었다. 한문이 어려워 백성들이 글을 모르니 이를 불쌍히 여겨 만든 훌륭한 훈민정음은 태초부터 이러한 박대를 받아오다 주시경 선생에 이르러서야 처음 ‘한글(《아이들 보이》(1913))’이라 사용되면서 일반화의 길을 걸었다.




▲ 훈민정음 판본
이 후 한글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만든 ‘한글맞춤법통일안’에 의해 현재와 같은 자음(子音)14자, 모음(母音) 10자, 합계 24자의 자모(字母)로 통일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한글은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 중 가장 과학적인 글이라고 국. 내외 언어학자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날이 다가와도 한글의 중요성은 물론 우리말도 소중히 사용치 않는 것 같다.
정보선진국답게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 된 탓인지, 점점 한글의 오남용이 도를 넘고 있다. 젊은이들이 축약해서 사용하는 말뜻을 과연 장년이상의 세대가 얼마나 알아들을지 의문이다. 젊은이들과 늘 상 접하는 필자도 일본에 있을 때 “당근(당연하다)”이라든가 “ㅠㅠ(울고 싶다, 슬프다는 뜻-아직도 정확한 뜻을 모름)”라는 말을 몰랐었다. 요즘은 여대생들조차 “생까다(모르는 척 하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을 지경이다. 젊은이들끼리는 품위 없는 새로운 말들이 만들어져 자연스레 소통되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지금 세대간 충돌이 정점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확실히 나타났듯이 세대간의 충돌은 인식 및 사상의 차이뿐만이 아니라, 언어에서도 뚜렷이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채팅의 전국민화는 “하이루”로부터 “방가” “빠빠루” “빵가루”..., 등 등 장년 이상 층에서는 알 수 없는 말들로 우리말을 이분화 시키고 있다. 아예, 알파벳과 문자표까지 섞어가며 사용하니,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이모션(감정) 문자’라는 분야에 까지 이르렀다. 예를 들면, “^-^(함박웃음)”“^^;(쑥스럽고 멋쩍은 웃음)”“*-^(윙크)”^o^(박장대소)"^--^(바보 같은 웃음)”“T-T(눈물 흘리는 모습)”은 기본이고 “그럼 이만..,”을 “20000”으로 아예, 숫자화 하는 일까지 있다. 한글학자들조차 이로 인한 우리말의 변화에 머리를 흔들 지경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를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발전적 추세로 봐야할까? 아니면 또 다른 문화 창조로 봐야하나? 이러한 말이 급속도로 일반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말도 변해야 될 것이며, 그만큼 우리말의 질이나 수준은 변화 하게 될 것이다. 아니 벌써 엄청난 속도로 좋든 나쁘든 질량변화 중이다.
한글은 외국인들이 배우기에도 비교적 쉽다하고, 과학적인 음운체계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처럼 한글은 우리가 평상시 공기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듯이, 오히려 외국인이나 외국에 나가서야 그 소중함을 느낄 때가 많다.
한글은 일본인 중국인도 동경 한다
우리는 우리말의 귀중함을 잘 모르나 이웃 일본인들은 그야말로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동경심 반 시기심 반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들의 혼네(본심) 같다. 어떤 일본인은 한글을 마루모지(丸文字)라 부르는데, 한글에 ‘이응(o)’이 쓰여 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자나 일본어에는 없기에 신기해한다. 일본인들은 한자의 부수를 변형시켜 '카타가나'를 만들고 초서체를 본 따 '히라가나'를 만든 것으로 한문이 있었기에 ‘카나’라는 문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가히 한문의 ‘아류문자’로 볼 수 있겠다. 한글 창제 과정과는 발상의 차원자체가 다름에 그들은 한글에 대하여 신비함을 넘어 동경 그 자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일본인들은 한자 문화권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한글에 대하여 매우 신비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영어를 요코모지(橫文字)라 하는데, 횡서로 쓰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종이신문은 대부분 횡서와 종서를 병행해서 사용하나(인터넷은 횡서) 논문은 거의 100% 종서(縱書)로 써야하며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써 내려간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원래는 종서로 글을 써오던 습관이 있었다.

▲신대문자라 주장되는 세가지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이 소장하고 있는 한 문헌과 구리거울 명문, 그리고 큐-슈-신사의 한 비석에 한글의 자. 모음과 같은 자도 있고 비슷한 자도 있는바, 이를 그들은 ‘신대문자(神代文字)’라 주장하고 한국의 재야학자 중 일부는 고조선 때부터 사용되던 ‘가림토 문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여튼 이는 연구과제로 돌리고 일본에서는 상기의 세 가지를 근거로 한글도 일본에서 모방해갔다고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 물론 일본의 양심 있는 정통 사학자들은 일본 재야학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웃기는 일’이라고 일소해 버리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마도 이러한 비석은 임진왜란 시나 일제 시 한반도에서 사용되던 신비롭고 특이한 한글을 흠모하여 한국에 있던 것을 일본으로 가져갔거나 문자를 적어가 비석에 새겨 넣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얼마나 한글에 대하여 경외심이 있었으면 신사나 신궁의 중요 선전물로까지 삼고 있을까? 현재도 일본인들이 느끼는 한글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신비로운 문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웃 중국조차도 요즘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변방역사라고 우기는 억지 왜곡을 일삼을 뿐 아니라, 한글도 한자에서 유래 됐다는 왜곡이 현재 중국에서 일고 있다고 한다. 가히 중국인들의 비뚤어진 ‘중화사상’이 오늘도 그 해악을 우리에게 끼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중국인들의 한국 축구에 대한 비난은 한국보다 실력이 뒤졌다는 그들의 자존심 상실과 한국의 축구와 경제발전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반발로 보인다. 늘 상 중국보다 못살고 속국처럼 느껴졌던 한국이 어느덧 중국보다 훨씬 낫다는 것에 충격을 느낀 나머지, ‘우울증’으로 나타난 반증이라고 필자는 분석하고 싶다.
어쨌든 이웃 인접국인 중국이나 일본 모두 한국의 좋은 것(한글)은 자국 것이라거나 영향을 주었다고 우기고 싶은 “중화사상”과 ‘야마토 타마시이(大和魂)“의 시샘정도로 치부하고 싶다.
영어 공용화는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근간, 영어를 공용화하자는 발언이 심심치 않게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소설가인 복거일씨가 1998년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에서 “영어공용화”를 주장함으로서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논쟁이 급부상 했다.과연 영어만 잘한다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영어에 있어서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바닥권을 헤매는 일본도 일찍이 메이지 시대의 모리 아리노리란 인물이 “아예 국어(일본어)를 없애고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영어 국어화론’을 주장했었다. 일본어에는 추상어가 없기 때문에 일본어로는 도저히 서양문명을 번역해서 이해할 수 없으므로 영어를 국어로 하자는 당시로서는 맹랑한 주장이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서구추종 일변도의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모리의 이러한 엉뚱한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비록 일본의 이야기지만, 이 대목은 한 세기 이상 지난 오늘날의 한국사정에도 논란이 일고 있는 관심사항이다. 유례없는 영어 열풍이 불고 심지어는 어린학생 혀 수술까지도 행해지는 한국 상황에서 '영어 공용론'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메이지 시대의 ‘영어국어화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현재의 일본은 오히려 한국에서의 ‘영어공용화’논쟁을 되받아 다시 이 문제로 후끈거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와 같이 현재에도 끊임없이 논쟁거리로 회자될 뿐, 언제나 말만 풍성하지, 실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앵글로 색슨계의 나라인 미국에서 존 나이스비트(《메가트렌드》 저자)는 언어통합 세계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영. 미인 등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계화‘라는 사탕발림과 같이 영원히 앵글로 색슨족이 세계 제패를 하겠다는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의 주장에 왜? 우리 한국인들이 부화뇌동해야만 하는가? 그럼 50년 후 중국이 경제대국이 되면 그 때는 ”중국어 공용화“하자고 또 난리 칠 것인가? 하기야 일제 때는 최남선도 앞장서서 일본어를 잘해야 한다고 선동했었다.
우리는 ”세계화, 세계화“하다가 IMF 당한 기억을 잊지 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화되는 것이지, 우리가 남 따라 가는 것만이 세계화가 아니다. 우리의 사대주의적 발상을 이제는 ”중심주의“사고로 바꿔야 할 때이다.
영어만 잘하면 선진국 되나? 분명 아닐 것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은 차치하고라도 동남아의 필리핀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직도 60년대 수준 그대로라는 그 사람들, 영어는 시장 상인은 물론 노점상도 잘하던데 왜? 아직도 개발도상국일까? 그럼 일본은 아시아에서도 꼴찌를 면치 못하는 영어 실력 가지고 어떻게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 할 수 있었는가? 과연 영어만 잘하면 선진국이 된다는 말이 말이나 되는가?
영어는 우리가 국제화 시대에 수출도 하면서 교류도 하고 외교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자, 수단이지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언어가 되어 우리의 영혼이 되고 삶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예 우리말 없애고 영어를 국어로 삼자거나 공용화 하자는 어리석은 주장은 이제 제발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다. 전 국민이 영어 안하더라도 영어 할 사람은 열심히 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만 해도 충분하니 너무 앞서나갈 필요 없다고 본다. 심지어 임신 상태로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의 영어권 선진국으로 출산여행까지 가는 나라에서 무슨 영어 공용화가 그리도 필요하다는 말인가?
1937년 3월18일 일제는 관공서에서 직무 중에는 반드시 일어만 사용하라는 지침을 공문으로 내려 보냈는데, 과연 일본어만 사용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독립은 고사하고 오히려 친일파만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금도 친미사대주의자들이 미국의 주구가 되어 명분과 실리도 없는 이라크에 한국 전투병 파병하자고 난리 아닌가?
우리는 남 나라 글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 이웃 국가도 시기하는 훌륭한 한글을 이제 홀대만 하지 말고, 더욱 아끼고 보듬고 지켜나가야 할 때이다. 요즘 외래어가 범람하고 한글이 이상한 외국어에 범벅이 돼 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오마이뉴스의 ‘잉걸’이라는 순 우리말처럼 우리말을 발굴하여 새롭게 사용하고 퍼트려 언어량(어휘)을 풍부하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말을 살찌워야한다. 특히 북한과 연변 지역에는 아직도 우리말이 상당수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예를 들면, ‘앙기앙기(옹기종기)’, ‘말밥(구설수)’, ‘까박(트집)’과 같은 고유어는 남한에서는 잊혀지거나 사용치 않음으로서 모르는 말들이 됐으나 그 곳에서는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쓰여 지고 있다. 또한 근대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이 외국어를 번역을 함에 있어 최대한 우리말을 살리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축구 용어인 ’구석차기(코너킥)',나 ‘아이스크림’이라는 영어를 ’얼음과자‘로 부르는 것은 우리도 배워야 할 점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학자들은 북한과 연변 또는 구소련 지역에 남아 있을 우리말들을 조사하고 발굴하여 다시 보듬고 가꾸어 활성화 시켜야 할 때이다.
우리말은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발전 시켜야 더욱더 소중해지는 것이며, 경제발전과 함께 강대국이 될 때 이웃국가의 시샘은 동경으로 바뀌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우리말을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태권도처럼 우리말도 세계화 될 것이며,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우리는 남 나라 글과 말을 우리말로 대체할 생각일랑 얼른 버리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고 쉬운 우리말을 세계에 퍼트릴 생각을 요번 한글날에 즈음하여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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