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습관으로 본 한.일 양 국민성 비교
단체로 입장해도 주문과 계산은 각자!
글;장팔현
현재까지 발굴된 볍씨의 연대 측정결과 도작문화의 기원은 8000년 전을 전후한 시기에 인도 벵골만에서 중국남부 광동만에 이르는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한다.우리나라에서도 여주 흔암리 유적에서 나온 벼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BC1000년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매우 오래전부터 벼농사가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일본열도에도 한반도와 중국을 거쳐 이러한 벼농사가 전해지니, 두 민족은 태생적으로 쌀을 주식으로하는 문화가 탄생되었음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겉모습만 닮았지 행동양식이나 사고에는 많은 차이가 발견된다.인간은 자연과 지리의 영향을 받는 존재로서 오랜 세월의 행동과 습관은 문화로서 자리 매김 하니 이는 민족과 민족을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고 때로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식 습관은 기본적인 면에서는 같지만 자세히 관찰 해 보면 상당히 다른점도 많다.두 민족 모두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업민족으로서 인도형,일본형,자바형 벼 종류 중에서 끈기 있는 자포니카 벼를 재배하여 쌀을 주식으로 함은 기본적으로 같으나 식사 습관에서는 차이가 난다.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밥 먹을 때는 다소곳이 앉아서 반드시 “잘 먹겠습니다(이따다끼마스)”라 한 다음 젖가락을 든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숟갈을 사용치 않고 젖가락만 사용했었다는 점도 한국과 다른 특이점이다.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습관도 차이가 있다. 우리는 점심을 먹어도 누가먼저 “야 밥 먹으러 가자”하면 대개 그 사람이 점심값을 다 지불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해도 결국은 와리깡(割勘-더치페이)이 기본이다. 필자도 처음 일본 유학 중일 때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돈없이 따라 갔다가 낭패 당한 경우가 있었다.
가끔 종강파티라든가 학내 행사로 교수, 학생이 같이 식사를 해도 밥값은 교수 학생 할거없이 참가자 전원으로 나누어 100원(일본 돈 10엔) 단위로 나누어 지불한다. “선배는 영원한 물주”라는 한국 대학생들의 기대심리와 명언이 일본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평가처럼 계산에 관한한 상당히 합리적이고 쫀쫀하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도 일본인들은 대개가 혼자 먹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간혹 단체로 우르르 몰려 가더라도 같은 종류로 통일해서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여럿이 갔다 해도 주문은 각자 좋아하는 음식으로 하고 계산도 각자가 먹은대로 한다. 한국은 단체로 가길 좋아하고 음식도 통일해서 주문하기를 좋아한다.
같이 간 동료들도 식사주문을 통일하라고 친구들에게 서로 강권하고, 주인까지도 귀찮은 듯 동일 품목으로 주문하기를 또한 반 강제적으로 권한다. 만일 일본 식당에서 주인이 단체 손님에게 같은 품목으로 하라고 강권한다면 서비스의 ‘서’자도 모른다하면서 기분 나빠할 것은 당연하고 손님들도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단체로 식당을 찾기보다는 혼자 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작은 공간으로도 식당 운영이 가능한 반면,음식 종류는 작은 규모에 비해 매우 다양한 편이다.
일본인들의 단결력을 우리는 상당히 부러워하는데, 실상 일본인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 아무리 친해도 가족 얘기라든가 자기 프라이버시는 잘 얘기 하지 않고 상대도 묻지 않는게 기본 예의이다. 결국 일본인들의 단결은 보이지 않는 단체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억압된 단결력이라는 점이다.
우리민족이 흩어지기도 잘하지만, 한번 신이 나면 하늘도 무너트릴 기세로 '신바람'이 나는데 이 때만은 일본인의 단결력 보다 훨씬 파괴력이 클 것이다. 일본인의 단결력이 1+1= 2가 되는 수학공식 같다면 한국인의 '신바람 단결력'은 1+1=2가 아니라,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일례로, 일본이 2-3년 걸려 만들 수 있는 큰 공사라 할지라도 한국서는 1년에도 완공이 가능한 것이다. 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빨리 공사 마무리 짓는 것이 최신 공법인줄만 알던 때가 있었다. 대만이나 중동에서 고속도로나 아파트 건설 시 다른 나라에서 몇 년 걸리는 일을 1년만에 지었다고, 엄청난 공기단축 했다며 자랑스럽게 전국 뉴스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주로 일본과 비교하던 뉴스가 지금도 필자의 기억에 새롭다.그러다가 90년대 거의 쫓겨나고 말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뻔드름한 겉모습과는 달리 날림공사였음이 세월이 지난 다음에 판명됐기 때문이라는 일설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한국에서도 보면,겨울철 콘크리트 양생이 덜 된 상태에서도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많고 공기 단축만 알지, 건물의 건강상태는 안중에도 없다. 때문에 이러한 한국인의 특성을 잘 아는 일본인들은, 절대로 한국인들에게는 '야리지마이(やりじまい
)'나 '우께(청부)'형태의 일을 시키지 않는다. 일본인이 볼 때 한국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빠른 속도(신바람)로 일을 마무리하나 뒷탈이 꼭 있어 결국 돈이 더 들어간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일본인의 식사문화만큼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철저히 중시되고 계산적으로 서양문화에 가까운 것 같다. 일본인 스스로가 ‘아시아의 유럽인’임을 자랑스러워 하거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부터 '영국'고 비교되기를 원하고 있다. 다른 아시아인들이 일본인을 얼굴만 동양인과 닮고 사상과 행동은 서구인 같다하여 곧잘 ‘바나나’라 칭함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식사습관만으로 본 한. 일 양 국민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인의 이미지와는 정반대가 아닌가 한다. 이는 일본인들이 돈만을 너무 따지는 이해타산과 평소에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일본인의 식사습관은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인 후쿠지와 유키치가 지고지순의 목표로 삼았던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달성한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러한 서구적 사상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아시아에 되돌아오고 싶어도 ‘탈구입아(脫歐入亞)’만큼은 매우 힘들어하는 것 같다. 이미 일본인은 사상과 행동이 상당부분 '바나나'로 체질화 됐기 때문이다.
단체로 입장해도 주문과 계산은 각자!
글;장팔현
현재까지 발굴된 볍씨의 연대 측정결과 도작문화의 기원은 8000년 전을 전후한 시기에 인도 벵골만에서 중국남부 광동만에 이르는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한다.우리나라에서도 여주 흔암리 유적에서 나온 벼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BC1000년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매우 오래전부터 벼농사가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일본열도에도 한반도와 중국을 거쳐 이러한 벼농사가 전해지니, 두 민족은 태생적으로 쌀을 주식으로하는 문화가 탄생되었음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겉모습만 닮았지 행동양식이나 사고에는 많은 차이가 발견된다.인간은 자연과 지리의 영향을 받는 존재로서 오랜 세월의 행동과 습관은 문화로서 자리 매김 하니 이는 민족과 민족을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고 때로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식 습관은 기본적인 면에서는 같지만 자세히 관찰 해 보면 상당히 다른점도 많다.두 민족 모두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업민족으로서 인도형,일본형,자바형 벼 종류 중에서 끈기 있는 자포니카 벼를 재배하여 쌀을 주식으로 함은 기본적으로 같으나 식사 습관에서는 차이가 난다.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밥 먹을 때는 다소곳이 앉아서 반드시 “잘 먹겠습니다(이따다끼마스)”라 한 다음 젖가락을 든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숟갈을 사용치 않고 젖가락만 사용했었다는 점도 한국과 다른 특이점이다.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습관도 차이가 있다. 우리는 점심을 먹어도 누가먼저 “야 밥 먹으러 가자”하면 대개 그 사람이 점심값을 다 지불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해도 결국은 와리깡(割勘-더치페이)이 기본이다. 필자도 처음 일본 유학 중일 때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돈없이 따라 갔다가 낭패 당한 경우가 있었다.
가끔 종강파티라든가 학내 행사로 교수, 학생이 같이 식사를 해도 밥값은 교수 학생 할거없이 참가자 전원으로 나누어 100원(일본 돈 10엔) 단위로 나누어 지불한다. “선배는 영원한 물주”라는 한국 대학생들의 기대심리와 명언이 일본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평가처럼 계산에 관한한 상당히 합리적이고 쫀쫀하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도 일본인들은 대개가 혼자 먹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간혹 단체로 우르르 몰려 가더라도 같은 종류로 통일해서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여럿이 갔다 해도 주문은 각자 좋아하는 음식으로 하고 계산도 각자가 먹은대로 한다. 한국은 단체로 가길 좋아하고 음식도 통일해서 주문하기를 좋아한다.
같이 간 동료들도 식사주문을 통일하라고 친구들에게 서로 강권하고, 주인까지도 귀찮은 듯 동일 품목으로 주문하기를 또한 반 강제적으로 권한다. 만일 일본 식당에서 주인이 단체 손님에게 같은 품목으로 하라고 강권한다면 서비스의 ‘서’자도 모른다하면서 기분 나빠할 것은 당연하고 손님들도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단체로 식당을 찾기보다는 혼자 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작은 공간으로도 식당 운영이 가능한 반면,음식 종류는 작은 규모에 비해 매우 다양한 편이다.
일본인들의 단결력을 우리는 상당히 부러워하는데, 실상 일본인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 아무리 친해도 가족 얘기라든가 자기 프라이버시는 잘 얘기 하지 않고 상대도 묻지 않는게 기본 예의이다. 결국 일본인들의 단결은 보이지 않는 단체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억압된 단결력이라는 점이다.
우리민족이 흩어지기도 잘하지만, 한번 신이 나면 하늘도 무너트릴 기세로 '신바람'이 나는데 이 때만은 일본인의 단결력 보다 훨씬 파괴력이 클 것이다. 일본인의 단결력이 1+1= 2가 되는 수학공식 같다면 한국인의 '신바람 단결력'은 1+1=2가 아니라,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일례로, 일본이 2-3년 걸려 만들 수 있는 큰 공사라 할지라도 한국서는 1년에도 완공이 가능한 것이다. 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빨리 공사 마무리 짓는 것이 최신 공법인줄만 알던 때가 있었다. 대만이나 중동에서 고속도로나 아파트 건설 시 다른 나라에서 몇 년 걸리는 일을 1년만에 지었다고, 엄청난 공기단축 했다며 자랑스럽게 전국 뉴스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주로 일본과 비교하던 뉴스가 지금도 필자의 기억에 새롭다.그러다가 90년대 거의 쫓겨나고 말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뻔드름한 겉모습과는 달리 날림공사였음이 세월이 지난 다음에 판명됐기 때문이라는 일설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한국에서도 보면,겨울철 콘크리트 양생이 덜 된 상태에서도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많고 공기 단축만 알지, 건물의 건강상태는 안중에도 없다. 때문에 이러한 한국인의 특성을 잘 아는 일본인들은, 절대로 한국인들에게는 '야리지마이(やりじまい
)'나 '우께(청부)'형태의 일을 시키지 않는다. 일본인이 볼 때 한국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빠른 속도(신바람)로 일을 마무리하나 뒷탈이 꼭 있어 결국 돈이 더 들어간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일본인의 식사문화만큼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철저히 중시되고 계산적으로 서양문화에 가까운 것 같다. 일본인 스스로가 ‘아시아의 유럽인’임을 자랑스러워 하거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부터 '영국'고 비교되기를 원하고 있다. 다른 아시아인들이 일본인을 얼굴만 동양인과 닮고 사상과 행동은 서구인 같다하여 곧잘 ‘바나나’라 칭함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식사습관만으로 본 한. 일 양 국민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인의 이미지와는 정반대가 아닌가 한다. 이는 일본인들이 돈만을 너무 따지는 이해타산과 평소에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일본인의 식사습관은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인 후쿠지와 유키치가 지고지순의 목표로 삼았던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달성한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러한 서구적 사상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아시아에 되돌아오고 싶어도 ‘탈구입아(脫歐入亞)’만큼은 매우 힘들어하는 것 같다. 이미 일본인은 사상과 행동이 상당부분 '바나나'로 체질화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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