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교는 몸부림 치고 있다
글:신명직
차별과 학생수 감소로 존페 위기에 놓여…남과 북을 아우르는 시민교육으로 변화하기 위해 안간힘
일본 정부의 차별정책과 학생 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놓인 조선학교. 남과 북을 아우르는 시민교육으로 변화하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는 현장을 돌아본다.
흔히 ‘조총련계 학교’라고 불리는 일본의 조선학교. 흰색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교복으로 입는 학교, 지난해 일본인 납치사건 인정 이후 일본 우익들에게 거듭 치마저고리를 찢기는 수난을 받고 있는 학교로 알려졌다. 조선학교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 계열이라는 사실만으로, 일반적으로 그곳은 북쪽과 연계된 학교, 따라서 한국과는 무관한 학교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선학교 학생들의 60% 정도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최근 납치정국 이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가정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도쿄 조선제1초중급학교 중학교 3학년의 경우 23명 중 12명 이상이 한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스스로 밝히지 않은 학생까지 포함하면 60%를 넘는다는 것이 이곳 학생들의 설명이다. 물론 고급부(고등학교)로 올라가면 그 숫자는 다소 줄어든다. 하지만 일본학교로 빠져나가는 일부 학생들을 감안하더라도 이 같은 추세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지도자의 초상화 내려지다
일본의 조선학교 수는 대략 140여개교다. 민단계 한국학교는 도쿄와 교토에 각각 1개교, 오사카에 2개교로 모두 4개교에 불과하다. 오사카의 백두학원이나 금강학원은 일본어 교육시간이 한국어 교육시간보다 많은, 이른바 ‘1조교’이다. 일본 교과과정에 부합하는 교육을 해 일본정부로부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학교다. 재일동포 60만명 가운데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5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학교 규모는 방대하다.
조선학교 수가 많은 것은 재일동포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북한은 아무리 힘들어도 거의 매년 지원금과 장학금을 조선학교에 보내왔다. 50년대와 60년대 한국이 60년대 초 한-일회담 등을 통해 재일동포들을 방기한 정책을 써온 데 반해, 북은 재일동포들을 해외공민으로 규정하고 그동안 조선학교에만 149차례에 걸쳐 400억엔이 넘는 교육지원금과 장학금을 보내왔다. 조선학교 교실 정면에 북쪽 지도자의 초상화가 붙은 것도 바로 이같은 “어려웠던 시절의 지원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는 게 권달인 도쿄조선중고급학교 교사의 말이다.
하지만 초급부와 중급부 교실 정면에 붙어 있던 초상화는 지난해 가을 내려졌다. 물론 고급부 교실과 교원실에는 그대로 걸려 있지만 조선학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은 분명하다. 직접적 계기는 지난해 북의 총련 자주화 방침과 관련 있다. 초상화 문제를 비롯해, 총련으로선 본국에 해당하는 북쪽과 동일한 방식으로 처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간 조선적 중심의 재일동포 사회가 오랜 기간 변화를 모색해온 결과다.
조선학교 학부모들은 학교가 북이 아닌 재일동포의 자산임을 강조한다. 조선학교가 초기 북의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동안 조선학교를 가꾸고 일으켜 세운 것은 재일동포 자신들임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최근 조선학교 학생 수의 급감을 우려하고 있다. 많게는 60년대 3만5천여명에 이르렀으나 최근 1만2천명 정도로 줄었다. 3분의 1가량이 줄어든 셈이다. 도쿄 소재 조선학교에서 3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유태성씨는 “도쿄조선중고급학교의 경우 3000명에서 1100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제1초중급학교는 1500명에서 400여명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24일 고베시가 있는 효고현에서는 1948년 4·24 한신(阪神)교육투쟁 55주년을 기념하는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 등단한 한 학부모는 “재일동포 1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조선학교가 사라지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4·24 한신교육투쟁이란 미군 점령 아래의 일본 문부성이 조선인학교 폐쇄령을 내린 데 맞서 일본 전역에서 이를 반대한 투쟁을 일컫는다. 당시 16살이던 학생 김태일이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는 등 미군 점령기 유일하게 비상사태까지 선언하게 만들었던 투쟁을 말한다. 그렇게 어렵게 지켜낸 한신초급학교와 고베초급학교가 지난해 통폐합되어 끝내 한신초급학교는 사라졌다. 도쿄조선제8초급학교는 1학년과 2학년 학생이 없어지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시모노세키의 조선학교는 재일동포가 4천명이나 되지만 입학생이 한명도 없어 결국 없어졌다. 그 이유는 조선학교가 줄곧 북한 일변도 교육을 해왔다는 점이다. 조선학교 고급부와 중급부에 두 아들을 보내는 홍삼복씨는 “조선학교의 교과내용이 반세기 동안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북쪽 일변도의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일본사회에 적응할 수 있나
조선학교 교과서는 그동안 약간씩 변화해왔다. 최근에는 30년대 항일무장투쟁만이 아닌 안창호를 비롯한 20년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도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는 등 남쪽의 역사교과서를 참고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초급부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소개된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기 가운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중국 등의 국기는 눈에 띄어도 남쪽 태극기는 보이지 않는다. 고급부 현대문학 교과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화적 건설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기, 건설기, 전면적 건설기의 문학들은 상세하게 소개됐지만 최인훈의 소설이나 조세희, 황석영 등의 소설은 소개되지 않는다. ‘현대조선혁명력사’를 비롯해 이념 편향적인 교과내용은 곳곳에 남아 있다.
따라서 어린 시절 조선학교에서 자란 재일동포 2·3세들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자식들을 조선학교에 입학시키기란 간단치 않다. 많은 결단과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런데 한국학교는 거리상 멀리 있을 뿐 아니라 학생 구성도 거리감이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한국학교는 한국어를 가르치지않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곳이라는 인식과 주재원을 위한 학교라는 이미지가 뿌리 깊다. 80년대 이후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은 재일동포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에겐 자식들을 조선학교에서 초급부 졸업 뒤 일본학교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중급부까지 마치고 일본학교에 보낼 것인지의 선택만이 남겨져 있다.
조선학교 학생 수가 급감한 또 다른 이유는 자녀들이 조선학교를 나와 일본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위기감이다. 도쿄 조선제1초중급학교 초급부에 두 딸을 보내는 김우봉씨는 조선대학교 이공계를 나왔지만, 일본사회는 고등학교 학력조차도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일본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는 다시 이공계 전문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전문학교에서조차 처음엔 조선학교의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려고 해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된 대입수험자격 불인정을 비롯해, 일본사회가 조선학교와 재일동포 사회에 가하는 차별만이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최근 들어 일본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재일동포 사회 내부에서 해결되던 이러저러한 일자리들마저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취업과 생존의 문제는 결코 강 건너 불일 수가 없다.
조선학교 교과내용도 이같은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을 한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에서 한때 영어교사를 한 뒤, 지금은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초급부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정현숙씨는 “일본에서 치르는 몇몇 자격시험을 치르면서 일본역사와 지리 혹은 문화의 이해도가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사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학교의 교과내용은 귀국을 전제로 한 교육이었다. 60∼70년대 귀국(북송)사업을 위해서라도 우리말 교육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70년대말 80년대 초 이후 교과내용이 ‘귀국’에서 ‘정주’로 ‘공생’으로 바뀌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정주’와 ‘공생’을 위한 교육은 전체 교과과정에서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조선학교를 나와 일본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뉴 커머’들도 갈 수 있는…
이같은 위기감은 결국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관서지방의 한 조선학교 교사들은 1년 월급의 8개월분 정도만을 받고 교원직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조선학교 교사들의 월급은 일본학교 교사 월급의 2분의 1에서 3분의 1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엔 볼런티어 수준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성심성의껏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무튼 조선학교의 밤은 늘 환히 밝혀져 있다. 교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남겨진 일거리들을 밤늦게까지 서로 나누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일 동분서주하는 이들은 역시 학교의 경제적 운영을 책임지는 각 학교단위의 교육회다. 재일동포 2세들이 자녀들을 다시 학교로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선학교를 바꾸지 않으면 학교 존립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교육회에 참가하고 있는 조선학교의 학부모들 역시 열심이다. 이들은 더 많은 재일동포들에게 학교를 개방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교육회에 참가하고 있는 김대웅씨는 “도쿄 내에 가장 재일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카와시마 인근 아라카와구에는 조선적과 한국국적을 포함해 대략 6천∼7천명이 살고 있다”면서, “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른바 뉴커머들도 아이들을 믿고 보낼 수 있는 코리안 스쿨과 같은 형태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도쿄 아라카와구에 살고 있는 뉴커머 수는 전체 재일동포 수의 반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인근에 조선학교가 있어도 그곳에 아이들을 보낼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동네에선 서로 인사도 하고 어울려 지내지만, 그들에게 조선학교란 여전히 먼 곳 이상의 의미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교육회는 뉴커머들까지 조선학교가 품어 안을 수 있는 조선학교 개혁안을 그동안 2∼3년 동안 만들어 상급기관에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일본 내 재일동포들을 둘러싼 사회정세가 워낙 안 좋은 터라 결과는 낙관적이라 할 수 없다.
이같은 문제의식에 재일동포 2세 유력 상공인들도 함께 동참하고 있다. 지난 1998년 도쿄조선중고급학교 건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교사건립을 지원하면서, 그들은 총련쪽에 자신들의 건의사항을 적은 ‘요망서’를 보낸 적이 있다. ‘민족교육 포람’과 ‘민족교육의 오늘과 래일’, ‘도쿄조선중고급학교 신교사 건설위원회’ 명의의 ‘민주주의 민족교육 사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요망서’에는 어떻게 재일동포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염원과 소망이 담겨 있다.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여기는 교육만이 조선학교가 지향해야 할 길인 동시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자식들을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서라도 조선학교는 살아남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다.
총련·한국정부 발걸음 느려
최근 이같은 논의를 받아, 조선학교 일선 교육회 인사 등을 중심으로 조선학교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 중이다. ‘신세기 민족교육 네트워크’를 비롯해, 다양한 방안들이 여러 채널에서 모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조선학교의 운명을 쥐고 있는 총련의 발걸음은 빨라 보이지 않는다. 재일동포들의 자주적 판단을 늘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본국이 우선하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정부의 즉각적인 지원도 그다지 용이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조선학교에서는 국어 선생님으로 재일동포 2∼3세가 아닌 현지 모국어 선생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각종 정보화 시설 등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즉각적 지원은 조선학교를 돈으로 빼앗으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조선학교에서 대학교육을 받는 권향숙 일본 상지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남과 북의 단절된 교육이 아닌 남과 북을 넘어선 교육, 한반도 안에선 현재 불가능하지만 재일동포 사이에서 가능한 통일교육, 아울러 동북아시아의 모든 이들과 함께 평화와 공생을 논할 수 있는 시민교육을 만들어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신명직
차별과 학생수 감소로 존페 위기에 놓여…남과 북을 아우르는 시민교육으로 변화하기 위해 안간힘
일본 정부의 차별정책과 학생 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놓인 조선학교. 남과 북을 아우르는 시민교육으로 변화하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는 현장을 돌아본다.
흔히 ‘조총련계 학교’라고 불리는 일본의 조선학교. 흰색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교복으로 입는 학교, 지난해 일본인 납치사건 인정 이후 일본 우익들에게 거듭 치마저고리를 찢기는 수난을 받고 있는 학교로 알려졌다. 조선학교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 계열이라는 사실만으로, 일반적으로 그곳은 북쪽과 연계된 학교, 따라서 한국과는 무관한 학교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선학교 학생들의 60% 정도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최근 납치정국 이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가정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도쿄 조선제1초중급학교 중학교 3학년의 경우 23명 중 12명 이상이 한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스스로 밝히지 않은 학생까지 포함하면 60%를 넘는다는 것이 이곳 학생들의 설명이다. 물론 고급부(고등학교)로 올라가면 그 숫자는 다소 줄어든다. 하지만 일본학교로 빠져나가는 일부 학생들을 감안하더라도 이 같은 추세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지도자의 초상화 내려지다
일본의 조선학교 수는 대략 140여개교다. 민단계 한국학교는 도쿄와 교토에 각각 1개교, 오사카에 2개교로 모두 4개교에 불과하다. 오사카의 백두학원이나 금강학원은 일본어 교육시간이 한국어 교육시간보다 많은, 이른바 ‘1조교’이다. 일본 교과과정에 부합하는 교육을 해 일본정부로부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학교다. 재일동포 60만명 가운데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5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학교 규모는 방대하다.
조선학교 수가 많은 것은 재일동포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북한은 아무리 힘들어도 거의 매년 지원금과 장학금을 조선학교에 보내왔다. 50년대와 60년대 한국이 60년대 초 한-일회담 등을 통해 재일동포들을 방기한 정책을 써온 데 반해, 북은 재일동포들을 해외공민으로 규정하고 그동안 조선학교에만 149차례에 걸쳐 400억엔이 넘는 교육지원금과 장학금을 보내왔다. 조선학교 교실 정면에 북쪽 지도자의 초상화가 붙은 것도 바로 이같은 “어려웠던 시절의 지원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는 게 권달인 도쿄조선중고급학교 교사의 말이다.
하지만 초급부와 중급부 교실 정면에 붙어 있던 초상화는 지난해 가을 내려졌다. 물론 고급부 교실과 교원실에는 그대로 걸려 있지만 조선학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은 분명하다. 직접적 계기는 지난해 북의 총련 자주화 방침과 관련 있다. 초상화 문제를 비롯해, 총련으로선 본국에 해당하는 북쪽과 동일한 방식으로 처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간 조선적 중심의 재일동포 사회가 오랜 기간 변화를 모색해온 결과다.
조선학교 학부모들은 학교가 북이 아닌 재일동포의 자산임을 강조한다. 조선학교가 초기 북의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동안 조선학교를 가꾸고 일으켜 세운 것은 재일동포 자신들임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최근 조선학교 학생 수의 급감을 우려하고 있다. 많게는 60년대 3만5천여명에 이르렀으나 최근 1만2천명 정도로 줄었다. 3분의 1가량이 줄어든 셈이다. 도쿄 소재 조선학교에서 3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유태성씨는 “도쿄조선중고급학교의 경우 3000명에서 1100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제1초중급학교는 1500명에서 400여명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24일 고베시가 있는 효고현에서는 1948년 4·24 한신(阪神)교육투쟁 55주년을 기념하는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 등단한 한 학부모는 “재일동포 1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조선학교가 사라지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4·24 한신교육투쟁이란 미군 점령 아래의 일본 문부성이 조선인학교 폐쇄령을 내린 데 맞서 일본 전역에서 이를 반대한 투쟁을 일컫는다. 당시 16살이던 학생 김태일이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는 등 미군 점령기 유일하게 비상사태까지 선언하게 만들었던 투쟁을 말한다. 그렇게 어렵게 지켜낸 한신초급학교와 고베초급학교가 지난해 통폐합되어 끝내 한신초급학교는 사라졌다. 도쿄조선제8초급학교는 1학년과 2학년 학생이 없어지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시모노세키의 조선학교는 재일동포가 4천명이나 되지만 입학생이 한명도 없어 결국 없어졌다. 그 이유는 조선학교가 줄곧 북한 일변도 교육을 해왔다는 점이다. 조선학교 고급부와 중급부에 두 아들을 보내는 홍삼복씨는 “조선학교의 교과내용이 반세기 동안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북쪽 일변도의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일본사회에 적응할 수 있나
조선학교 교과서는 그동안 약간씩 변화해왔다. 최근에는 30년대 항일무장투쟁만이 아닌 안창호를 비롯한 20년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도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는 등 남쪽의 역사교과서를 참고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초급부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소개된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기 가운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중국 등의 국기는 눈에 띄어도 남쪽 태극기는 보이지 않는다. 고급부 현대문학 교과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화적 건설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기, 건설기, 전면적 건설기의 문학들은 상세하게 소개됐지만 최인훈의 소설이나 조세희, 황석영 등의 소설은 소개되지 않는다. ‘현대조선혁명력사’를 비롯해 이념 편향적인 교과내용은 곳곳에 남아 있다.
따라서 어린 시절 조선학교에서 자란 재일동포 2·3세들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자식들을 조선학교에 입학시키기란 간단치 않다. 많은 결단과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런데 한국학교는 거리상 멀리 있을 뿐 아니라 학생 구성도 거리감이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한국학교는 한국어를 가르치지않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곳이라는 인식과 주재원을 위한 학교라는 이미지가 뿌리 깊다. 80년대 이후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은 재일동포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에겐 자식들을 조선학교에서 초급부 졸업 뒤 일본학교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중급부까지 마치고 일본학교에 보낼 것인지의 선택만이 남겨져 있다.
조선학교 학생 수가 급감한 또 다른 이유는 자녀들이 조선학교를 나와 일본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위기감이다. 도쿄 조선제1초중급학교 초급부에 두 딸을 보내는 김우봉씨는 조선대학교 이공계를 나왔지만, 일본사회는 고등학교 학력조차도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일본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는 다시 이공계 전문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전문학교에서조차 처음엔 조선학교의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려고 해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된 대입수험자격 불인정을 비롯해, 일본사회가 조선학교와 재일동포 사회에 가하는 차별만이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최근 들어 일본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재일동포 사회 내부에서 해결되던 이러저러한 일자리들마저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취업과 생존의 문제는 결코 강 건너 불일 수가 없다.
조선학교 교과내용도 이같은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을 한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에서 한때 영어교사를 한 뒤, 지금은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초급부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정현숙씨는 “일본에서 치르는 몇몇 자격시험을 치르면서 일본역사와 지리 혹은 문화의 이해도가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사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학교의 교과내용은 귀국을 전제로 한 교육이었다. 60∼70년대 귀국(북송)사업을 위해서라도 우리말 교육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70년대말 80년대 초 이후 교과내용이 ‘귀국’에서 ‘정주’로 ‘공생’으로 바뀌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정주’와 ‘공생’을 위한 교육은 전체 교과과정에서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조선학교를 나와 일본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뉴 커머’들도 갈 수 있는…
이같은 위기감은 결국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관서지방의 한 조선학교 교사들은 1년 월급의 8개월분 정도만을 받고 교원직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조선학교 교사들의 월급은 일본학교 교사 월급의 2분의 1에서 3분의 1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엔 볼런티어 수준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성심성의껏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무튼 조선학교의 밤은 늘 환히 밝혀져 있다. 교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남겨진 일거리들을 밤늦게까지 서로 나누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일 동분서주하는 이들은 역시 학교의 경제적 운영을 책임지는 각 학교단위의 교육회다. 재일동포 2세들이 자녀들을 다시 학교로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선학교를 바꾸지 않으면 학교 존립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교육회에 참가하고 있는 조선학교의 학부모들 역시 열심이다. 이들은 더 많은 재일동포들에게 학교를 개방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교육회에 참가하고 있는 김대웅씨는 “도쿄 내에 가장 재일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카와시마 인근 아라카와구에는 조선적과 한국국적을 포함해 대략 6천∼7천명이 살고 있다”면서, “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른바 뉴커머들도 아이들을 믿고 보낼 수 있는 코리안 스쿨과 같은 형태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도쿄 아라카와구에 살고 있는 뉴커머 수는 전체 재일동포 수의 반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인근에 조선학교가 있어도 그곳에 아이들을 보낼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동네에선 서로 인사도 하고 어울려 지내지만, 그들에게 조선학교란 여전히 먼 곳 이상의 의미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교육회는 뉴커머들까지 조선학교가 품어 안을 수 있는 조선학교 개혁안을 그동안 2∼3년 동안 만들어 상급기관에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일본 내 재일동포들을 둘러싼 사회정세가 워낙 안 좋은 터라 결과는 낙관적이라 할 수 없다.
이같은 문제의식에 재일동포 2세 유력 상공인들도 함께 동참하고 있다. 지난 1998년 도쿄조선중고급학교 건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교사건립을 지원하면서, 그들은 총련쪽에 자신들의 건의사항을 적은 ‘요망서’를 보낸 적이 있다. ‘민족교육 포람’과 ‘민족교육의 오늘과 래일’, ‘도쿄조선중고급학교 신교사 건설위원회’ 명의의 ‘민주주의 민족교육 사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요망서’에는 어떻게 재일동포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염원과 소망이 담겨 있다.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여기는 교육만이 조선학교가 지향해야 할 길인 동시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자식들을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서라도 조선학교는 살아남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다.
총련·한국정부 발걸음 느려
최근 이같은 논의를 받아, 조선학교 일선 교육회 인사 등을 중심으로 조선학교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 중이다. ‘신세기 민족교육 네트워크’를 비롯해, 다양한 방안들이 여러 채널에서 모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조선학교의 운명을 쥐고 있는 총련의 발걸음은 빨라 보이지 않는다. 재일동포들의 자주적 판단을 늘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본국이 우선하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정부의 즉각적인 지원도 그다지 용이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조선학교에서는 국어 선생님으로 재일동포 2∼3세가 아닌 현지 모국어 선생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각종 정보화 시설 등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즉각적 지원은 조선학교를 돈으로 빼앗으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조선학교에서 대학교육을 받는 권향숙 일본 상지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남과 북의 단절된 교육이 아닌 남과 북을 넘어선 교육, 한반도 안에선 현재 불가능하지만 재일동포 사이에서 가능한 통일교육, 아울러 동북아시아의 모든 이들과 함께 평화와 공생을 논할 수 있는 시민교육을 만들어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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