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돈 되니까 물려 받지요"

푸른하늘김 2003. 9. 29. 11:20
"돈 되니까 물려 받지요"


실리에 따라 가업을 잇는 일본인들





일본어에 老鋪(시니세,しにせ)라는 말이 있다. 대대로 번성하여 내려온 유명하고 신용있는 가게라는 말이다. 일본인들의 가업을 잇는 정신은 정말 대단하다. 아버지가 스님이면 아들도 스님이 되고, 아버지가 야채장사를 하면 아들도 야채장사를 하고, 아버지가 소바가게를 하면 아들도 소바가게를 이어받는다.

지방에서 동경이나 쿄토의 명문대학으로 유학을 하고 졸업을 한 인재들도 졸업을 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가업을 잇고 생업으로 삼아서 평생을 살아가게 되고 은퇴할 무렵이면 다시 자신의 아들이나 사위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가업을 잇는 사람이 장남이건 차남이건 사위건 며느리건 상관없이 집안을 잇게 되고 부모의 유산도 물려 받게 되며, 사위의 경우에는 데릴사위가 되어 장인의 성(姓)까지도 물려 받게 된다.

일본에 살다보면 어느 동네에서도 조그만 식당이며 두부가게, 야채가게 등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어느 술가게는 300년 이상 되어서 10대를 이어온다고 하고, 야채가게는 100년이 조금 넘었다고 하는 곳도 많다.

그렇다면 왜 일본 사람들은 전통처럼 가업을 잇게되는 것이고 명문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않고 식당을 하며, 조그만 가내공업이나 장사를 하는 것일까? 직업의 귀천이 없고 누구나 자신이 있고 재능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사명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 이외는 별다른 일도 없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어려운 시대였기에 가업을 잇는 것은 당연시 되는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누구나 원하면 기술도 배울 수 있고 전문직으로 나아갈 수도 있으며, 나름대로 새로운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 할수 있는 기회도 있다. 그런대도 일본의 젊은이들은 가업을 잇는 경우가 많다. 무엇 때문일까?

최근 불경기로 일본 기업의 대졸 초임은 20-22만 엔 정도이다. 연봉으로 계산을 하여도 250만 엔을 넘지 못하는 곳이 많다. GNP가 3만 달러에 달하는 경제대국 일본에 어울리지 않게 초임은 너무나 적다. 한국이 GNP 1만 달러를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대졸 초임이 년간 2000만 원 정도 되는 것에 비하면 일본의 월급쟁이들은 정말 가난하다.

월급이 20-22만 엔 정도지만 세금에 연금이나 공과금까지 제하고 나면 겨우 15-16만 엔 정도 받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에 전세가 없는 일본의 관습으로 독립하여 혼자 사는 경우 월세에 저축,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이런 불경기와 박봉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서 가업이 없는 경우에는 시골로 돌아가 공무원이 되기도 하지만 가업이 있는 경우에는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 이미지를 팔 수 있는 가업을 잇는 것이 자신은 물론 부모에게도 덕이 된다. 물론 조그만 가게들은 자신의 인건비를 절약하여 먹고 사는 것이기에 새벽부터 나와 밤 늦게까지 몸은 조금 고되지만 식당을 해도 식품점을 해도 월급장이보다는 수입이 좋고 또 안정적이기 때문에 형제중에 한 사람 정도는 반드시 가업을 잇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득실을 충분히 따지고 깊이 생각하여 가업을 잇는 것이지 무턱대고 가업을 물려 받는 사람은 없다.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거나 전문직종에 종사하던 사람들도 부모님이 하시던 가업을 물려 받아 안정적인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보고 된다.

변화를 싫어하고 이미 안정적인 사회가 되어 버린 이유 때문인지 일본은 가업을 잇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가업을 물려 받아 대를 잇는 것도 충분한 고민과 득실에 따라서 결정된다.





P.S

물려 받을 가업이 없어 늘 땅 한마지기라도 있는 농부의 아들이었으면 했는데 얼마전 부모님의 시골로 들어가셔서 농부가 되셨다. 나도 돌아갈 곳이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