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사이전 일본인은 두 민족이 공존했다

푸른하늘김 2003. 9. 29. 20:01
유사이전 일본인은 두 민족이 공존했다

죠몬징과 야요이징은 별개민족!

글:장팔현


일본 역사에서 유사이전의 죠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는 분명 뚜렷한 구분점이 있다.당연히 일본민족 구성에 있어서도 단일민족이라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죠몬 시대는 BC1000년에서 BC300년 사이를 이른다. 이시기를 죠몬(繩文) 시대라함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토기의 형태로 명명된 시기구분이다.


죠몬이란 말 그대로 ‘죠(승:繩)’가 ‘새끼’를 의미하니, ‘죠몬’이란 ‘새끼 문양’이란 뜻이다. 새끼란 곧 벼 수확 후 나온 짚(稿)으로 꼰 것으로 물건을 묶거나 끈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이들 죠몬인(繩文人)들은 흙으로 토기를 만들고 굽기 전에, 바로 이 새끼줄을 이용하여 토기에 모양을 내고 멋을 부린 것이다.

이 시대에 제작된 거의 모든 토기모양에 이러한 승문(새끼줄 무늬)이 들어가 있기에 이 시대를 구분함에 있어 ‘죠몬 시대’란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이들 죠몬인들은 수렵민(狩獵民)들로서 물고기와 짐승 사냥이 주업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던 돌도끼나 죠몬 토기는 대부분 일본 중부지역부터 동 일본 지역에 걸쳐 발굴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아이누민족으로 대부분 만주지역에서 1만 년 전 홋카이도로 이동해 갔다고 한다. 두 지역에서 발견되는 1만 년 전의 토기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알려지게 됐다.

반면 BC300년부터 한반도로부터 이동해가 서 일본지역에 정착하게 된 야요이징(彌生人)은 농작문화를 퍼트린 새로운 이주민이었다. 이들은 벼농사를 지으면서 점차 동진하여 일정시간 동안 일본 중부지역을 경계로 정착하게 된다.

여기서 ‘야요이’란 ‘춘삼월’이나 ‘문화 개화기’란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열도에 비로소 문화다운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야요이’라는 시대구분 명칭이 등장한 것 같다.

야요이 시대 사람들이 남긴 유물인 토기와 동탁(銅鐸: 부장품으로 사용된 청동으로 만든 수십 센티에서 1미터 가까이 되는 큰 구리방울)은 주로 큐슈와 중부 이서지역에서 발굴된다. 이는 일본의 동, 서를 경계로 죠몬인과 야요이인이 서로 다른 문화와 차이점을 유지한 채 융합되지 못하고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인류학적으로 보아도 동 일본에는 B형의 혈액형이 많고 서 일본에는 A형이 많은 것과도 일치한다. 지문을 보아도 동 일본은 제상문(蹄狀紋: 말발굽 문양)이 많고 서 일본인은 와상문(渦狀紋:소용돌이 문양)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유사이전에 동 일본과 서 일본 사이에 분명한 인종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향이 일본통일 이후에도 동 서 지역간에 습관, 언어, 문화의 차이를 남기는 중요한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보인다.


** 아이누 민족은 일본 선주민족으로 그 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야마토 민족에 의한 ‘아이누 습속 금지령 및 일본식 호적편입(1871)’ ‘창씨개명’, ‘토지 수탈’, ‘어업권법 제정’ 등으로 아이누 민족의 언어, 역사, 문화마저 부정하고 지속적으로 동화 흡수정책을 폄으로서 민족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1804년 26,350명이었던 인구가 1972년 인구조사에서는 겨우 18,298명만이 아이누 민족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