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제 2기 내각을 경계한다
보수파 재무장 세력, 외교 협력 세력을 '녹 다운'시키다
글:박철현
"혹시 보브 삽(Bob Sapp)에게 두들겨 맞을 정도의 시련이 닥치더라도,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겠다."
흔히 '야수'라고 불리는 보브 삽은 9월 21일 요코하마에서 벌어진 이종격투기 K-1 재팬 그랑프리에서 6개월만에 화려한 복귀 신고식을 올린 미국 출신 격투가이다.
일본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격투 캐릭터를 인용한 위의 짤막한 코멘트는 다름 아닌 이번 고이즈미 제 2기 내각에 재입성한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국토교통성(이하 '국교성')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이번 고이즈미의 총재 당선과 함께 실시된 당내 인사와 개각에 있어, 자민당 내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관방부 장관의 간사장 임명과 더불어 가장 파격적인 인사로 꼽히는 이시하라 노부테루의 국교성 장관 입각을 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아버지가 현직 도쿄 도지사이자, 제 3국인 발언 등으로 인해 민족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라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가 일전에 맡았던 행정개혁 담당 장관으로서 보여준 자잘한 미스(miss) 등의 원인으로 그의 능력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교성의 관료들은 이번 인선에 관하여, 복잡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간부는 "도로 공단 민영화 문제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는 고이즈미 내각의 결의에 찬 인선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새로운 장관(이시하라 노부테루)가 과연 복마전으로 얽혀 있는 다양한 국토교통성의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하나로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사실 이번 제 2기 내각은 여러 의미에서 고이즈미가 지난 20일 받은 과반수가 넘는 절대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파벌과 상관없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뽑아 1기 내각 때부터 추진해 온 각종 "구조개혁, 경제개혁"을 중단 없이 몰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내각에서 해임이 예상된, 다케나카(竹中) 금융/경제 재정장관과 카와구치(川口) 외상의 유임이다. 이 둘의 경제개혁 정책 및 대북 정책을 많은 이들이 우려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케나카의 경우, 일관된 정책없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는 대내외적인 비판을 받아 왔으며, 카와구치는 납치문제, 이라크 파병을 비롯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데도, 고이즈미는 자신이 얻은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그 둘을 유임시키고, 아베 신조를 당 3역인 간사장에, 이시하라 노부테루를 국교성 장관에, 그리고 얼마 전 "창씨개명"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던 아소타로 정조회장을 총무성 장관에 임명시키는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이번 인선은 어떻게 보면,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특히, 이시하라의 짤막한 코멘트는, 일본 도로 공단의 실질적인 권력자이자 민영화 반대 세력의 우두머리인 후지이(藤井) 총재를 해임시키고, 나아가 도로공단의 민영화를 이루어내겠다는 강력한 고이즈미의 의지가 함축된 표현이다.
그러나, 이번의 개혁적인(?) 인사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에 미치는 파장은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은 이번의 고이즈미 친정 체제가, 바로 "일본 재무장 세력의 화려한 부활"을 실현시킨 내각이라는 평가에서 그렇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자주헌법", 후쿠타 다케오 전 총리의 "야마토(대일본) 정신"이 고이즈미 대에 이르러 화려하게 만개한 것이다.
귀족 출신의 두 전 총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고이즈미 현 총리, 그리고 간사장의 아베 신조, 유임이 결정된 관방장관의 후쿠다 야스오, 마지막으로 이시하라 노부테루까지 그들의 역사는 곧 "귀족출신 일본재무장 세력"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기시 노부스케의 "자주헌법"을 충실히 계승한 후쿠다 다케오의 아들이 바로 현재 관방장관이자 고이즈미의 분신으로 불리는 후쿠다 야스오이며, 기시 노부스케의 사위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고, 그의 아들이 바로 아베 신조이다. 그리고, 고이즈미는 바로 이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비서로서 정계에 발을 딛었다.
이시하라 노부테루는 이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줄곧 극우적인 언동으로 경계를 받아온, 역시 귀족 정치 가문인 이시하라 가(家)의 적자이다. 파벌과 혈연, 의리로 뭉쳐진 일본 귀족 가문의 재무장 세력이 이번 개각에서 꿈의 결합을 이룩해 낸 것이다.
이것은 곧, 한반도와의 평화적인 공존을 주창해 온 다나카 카쿠에이 전 총리로부터 시작되어 노나카 히로무 전 자민당 간사장까지 이어 내려온 "외교 협력 세력"이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완벽하게 축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보다 심각하다. 바로 공공연히 강한 일본을 주장하는 이들 일본 재무장 세력에 대한 높은 '대중적인 지지도'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우익적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매스컴 전략과 납치문제와 연계한 '보통' 일본인들의 감정선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점들, 그리고 무엇보다 젊고 강하지만, '의외로' 부드럽고 재미있다라는 상반된 두 가지 인상을 동시에 살린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에 성공한 데에서 연유한다.
'강한' 일본을 공개적으로 제안하며,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일본 시사주간지 시장에서 유독 판매부수가 증가하고 있는 우익잡지 "SAPIO(소학관 발행)"의 급성장이다.
게다가, 이번 인선에 대해 반발을 가질만도 한 자민당 내부의 반(反) 고이즈미 파벌들이, "이 멤버라면 한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겠다"는 내부적인 판단으로 잠자코 가만히 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렇게 '지금' 일본의 정치지형은 태평양 전쟁 후, 의식적으로 가져왔던 밸런스 감각을 던져 버리고, 한쪽 방향으로, 즉 우경화하고 있다. 아무리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몇몇 야당 정치가들이 대북 화해 정책, 평양선언 준수 등을 외쳐도 대중적인 지지도를 등에 업고 있는 "권력자"들이 그런 외침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제 곧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 2차 6개국 협의가 열릴 전망이다. 다시 일본은 진일보한(?) 우익개혁세력을 등에 업고, 납치문제를 거론할 것이며, 이후 북한의 핵위협을 핑계로 평화헌법 개정을 도모할 것이 틀림없다. 지금의 고이즈미 제 2 내각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반도는, 그리고 한국의 정치가들은 과연 이런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해 어느 정도의 대국적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과장된 걱정 아니냐고 반문할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본의 우경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변국(한반도)의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외교적"인 대비를 해 놓는 것이, 마음놓고 있다가 허둥지둥 대처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사카(小坂)는 작은 언덕일까, 큰 언덕일까? (0) | 2003.09.26 |
|---|---|
| '도쿄(東京)'는 민초들이 부르던 이름이었다 (0) | 2003.09.25 |
| 교토인 대 오사카인!골은 깊어만가고... (0) | 2003.09.24 |
| "일본에는 수도가 세 군데 있다?" (0) | 2003.09.23 |
| 일본에서도 동서 지역주의와 대결 양상이 있다. (0) | 2003.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