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토인 대 오사카인!골은 깊어만가고...

푸른하늘김 2003. 9. 24. 11:11

교토인 대 오사카인!골은 깊어만가고...

견원지간의 두 인접지역

글:장팔현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실은 견원지간 사이인 교토지역과 오사카 지역간의 으르렁댐은 그 역사가 깊다 할 것이다. 교토는 천년 고도로서 일본인들의 마음이 살아 숨쉬는 고대와 현대가 혼재하는 곳이다. 일본인 누구라도 일생에 한번쯤은 교토에 살아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일본도 우리처럼 출생률 저하로 대학 신입생 모집에 많은 애로사항을 느끼고 있다.
때문에 내년부터는 국립대학도 법인체제로 바뀐다. 그러나 교토 내 대학은 입시전형에 걱정이 없다. 전국에서 입시생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남쪽 끝인 오키나와로부터 큐-슈-는 물론 북으로는 홋카이도에서도 몰려든다.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이 도쿄이상으로 교토로 몰려오는데, 이유는 교토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우리도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에는 ‘교온나 칸토 오토코(京おんな關東おとこ-여자는 교토 여자가 아름답고, 남자는 칸토오 지역 남자가 최고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교토에서 대학을 나온 자체만으로도 여자들에게는 많은 이점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즉, ’교온나‘로 둔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 대 칸사이(關西) 간의 대결 시는 교토와 오사카 지역이 연합전선을 펴나 교토와 오사카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날 때는 서로 갑론을박 처절하게 싸우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오랜 기간 일본의 수도로서 고관대작들이 많이 살았던 고도(古都)로서의 교토인들이 내세우는 양반의식과 자존심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오사카인들은 도쿄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수도로서 한 몫 접어주는 인상이 있다.‘도쿄는 수도니까, 하는 수 없어. 오사카가 두 번째 도시라서 방법이 없는
거지 뭐!’라든가, 반대로 자격지심에 의해 ‘도쿄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오오사카도.....’식으로 얘기한다. 어쨋든, 도쿄인들에게는 한수 접어주는 오사카인들이 교토인들에 대해서 만큼은 쌍심지 켜고 아예 용서란 생각할 수도 없다. 나쁜 욕은 인접지역인 교토인들에게 가장 많이 하고 있다.

‘교토인들은 오사카인들을 바보 취급한단 말이야’로부터 ‘표리부동한 교토인들, 그러면서도 권력지향적인 속물들’이라거나 ‘이주해서 몇 대라도 살지 않으면 교토인으로 인정조차 안 해주는 속 좁은 인간들! 샌님에 이중인격자들! 너무 꼬장꼬장하단 말이야!’, ‘경제력도 약한 주제에 아직도 귀족 티내려는지 어줍잖케, 말하는 투도 명령조로만 한단 말이야!’ 등등 불만투성이이다.

이에 반하여, 교토인들은 오사카인들을 일러,‘오사카는 상인의 도시요, 우리가 사는 교토는 귀족의 도시로 ’오사카인은 무례해’라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교토인은 ‘교토는 양반도시, 오사카는 상놈 도시’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오사카인은 외람되고 잡스럽다든가, 풍속이 나쁘다고 비난한다. 한마디로 말소리조차도 듣기 싫을 정도로 따따거리고 주위에 배려도 없이 큰 소리로 떠드는 등 교양이 없다는 것이다. ‘오사카인은 목소리가 크며, 오오사카 아줌마들의 파워는 아무도 못 말려’라고 비아냥댄다. 교토인들에게 오사카인들은 취향이 정반대로 비추어지고, 완전 하층민들의 무절제하고 무례하고 교양없는 모습으로 투영 되는 것 같다.

메이지 초, 교토에서 에도(도쿄)로 수도가 정해지기 전에 오사카도 거론되었지만, 교토인들이 가장 반대했다고 한다. 교토가 안 된다면, ‘에도’로는 수도 이전이 가능하지만, 상놈도시인 오사카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고 펄쩍펄쩍 뛰면서 결사 반대했던 것이다. 가히 견원지간을 넘어 원수지간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카와치(오사카 남부지역)방언은 외국인이 이해하기에도 매우 힘들고 같은 일본인들도 그 어감을 상당히 싫어한다. 그 지역 말소리가 ‘키따나이(더럽다)’라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직접 만나서는 이런 비판을 못하므로 ‘오사카인은 활력이 있다’라고 돌려 말한다. 일본인들은 상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면전에서는 듣기 좋은 소리로 둘러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자주 ‘한국인은 활력이 있어 좋다’라는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례하고 미숙하다는 의미도 함께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오사카의 파워’라는 말 속에도 ‘성격이 미숙하고 저속하다‘는 속내가 들어 있음을 알아야한다.

또한 ‘오사카인들은 반골정신이 있다’라고 곧잘 말하여 진다. 이 어원은 원래 상부의 압력,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정신을 말하나, 이 경우의 반골정신이란 ’도쿄또는 교토에 따르지 않는다‘거나 ’ 두 지역에 반발하고 있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보여 진다.

실제로 오사카는 12세기 까지 백제군(百濟郡)이 있었던 곳으로 503년 백제 무녕왕이 48자가 양각된 우전팔번경(隅田八幡鏡)이라는 구리거울을 일왕 계체에게 보냈는데, 그 때 카와치국(開中=河內國)의 비직(費直:관직명)이라는 지역 수장(소국의 왕)인 예인(穢人:예족) 금주리(今州利:인명)를 시켜 전달했던 것이다. 이처럼 오사카 지역은 예로부터 백제인이나, 예족 등 많은 한반도인들이 이주 해 가 살던 지역이다, 지금도 60만 명의 재일동포 중 반 수 이상이 오사카 지역에 몰려 살고 있음은 일본 전국에서 가장 한국인들의 성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일본인들도 오사카인이 가장 한국인들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하여튼 교토와 인접지역인 오사카가 견원지간처럼 지내다보니, 이 때만큼은 도쿄 지역만 어부지리로 화살을 면하고 여유 있게 서일본의 두 도시를 바라볼 뿐이다. 두 도시가 싸울 때는 도쿄 눈치 보면서 자기편 응원 해주기를 바라는 심리이다. 물론 도쿄인들은 이를 즐길 뿐,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말이 없는 것 같다.







*교토와 오사카 지역간의 지역정서는 잠재적 인식의 차이로서 현실적으로는 별로 표현되거나 나타나지 않고,한국보다는 그 차이가 미미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인식의 차이임에는 두말할 나위없다.

**우전팔번경(隅田八幡鏡:스다하치망쿄-)은 '칠지도(七支刀)와 함께 필자가 고대의 '한 . 일 국제관계사'를 심도 있게 연구하기 위해 선택한 금석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