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 종단하며 '조일 화해' 모색한다
평양선언 1주년 맞아 조일청년우정 프로젝트 추진
글:박철현
역사적인 조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평양 선언 1주년을 맞이하여, 동경 센다가야의 일본 청년관 호텔 지하에서 뜻 깊은 공동 기자 회견이 열렸다. 이름하여 <일조평양선언발표 1주년 공동기자회견(日朝ピョンヤン宣言發表1周年共同記者會見)>.
이 기자 회견이 무엇보다 주목을 받는 이유는, 지금 일본 내에서 형성되고 있는 우경화, 일본인에 의한 재일 학생들의 차별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래서는 안되지 않느냐'며 연대의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는 점, 그리고 그 연대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총련 산하 단체인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이하 '조청')과 1토 1도 2부 43현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거의 전 지역에 지역 조직이 있어 지역 내의 국제교류, 문화/스포츠 교류, 심포지엄 등등의 활동을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본청년단협의회(이하 '일청협')는 물론, 민주청년동맹과 더불어 일본의 진보적인 청년 운동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의 일본 사회주의 청년 동맹(이하 '사청동'), 그리고 평화와 인권,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피스보트까지.
이 4개의 단체가 실제적으로 연대 결합, 올해 6월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의 경과 보고 및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힌 이번 기자 회견은, 실제적인 연대 내용의 폭에 있어 향후 "시민 사회 단체들의 국제연대"라는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용이 풍부했다.
"일본과 조선(북한)의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여, 북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를 함으로써 가슴에 우리들, 일본과 조선(북한) 청년 우정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자" 라는 큰 주제로 시작된 기자 회견은, 6월부터 11월간 약 5개월에 걸친 구체적 사업 내용을 각 단체들이 발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먼저 사회를 맡은 시부야(일청협 사무국장)씨가 강하게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우리는 지역 조직이 잘되어 있다. 그리고 서명 운동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각 지역에서 들려오는 납치 사건 이후 불거진 재일 조선 학교 학생들에 대한 일본 청년들의 무의식적인 차별과 점점 우경화되어 가는 일본 정부의 자세에 두려움을 느낀다.(중략) 북동아시아의 평화, 지역에서의 안정을 위해서 결합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일단 50만 인 서명 운동을 통해, 지역 단위의 청년들에게 일본 정부의 잘못된 방향성에 대해 홍보할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극복하는 젊은이간의 교류를 원하고 있다."
뒤이어 피스보트의 히다카씨가 다음과 같이 연대의 의지를 표명했다.
"우리 피스보트는 20년 이상 민족 간의 차별 없는 세상, 세계 평화 문제를 고민해 왔습니다. 작년부터 갑작스레 불거진 조선 반도의 문제는 그 차별의 정점입니다. 작년 납치 문제로 인해 일본인들이 재일 조선인 학생들을 멸시하고 직접적인 테러를 하는 것을 보고, 또 듣고,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기분이 안 좋았죠. 일본의 일그러진 현상을 보고 우리 피스보트가 선도적으로 목소리를 내자는 컨셉으로 작년부터 시부야, 신주쿠 등지에서 평화 액션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사청동의 요시다 위원장은 학력 차별에 대해 일본 정부, 문부성을 강하게 비판하여 눈길을 끌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올해 2월 21일자 아사히 신문에서 처음으로 보았어요. 조선학교 졸업생들에게 대학 수험 자격을 안 주겠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죠.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죄악입니다. 그 말은 일본은 차별하는 국가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하는 그런 꼴이 되는 것이죠. 저는 이게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봐요."
각 단위들의 발표와 더불어 조청의 문달승 부위원장이 이런 일본 사회 단체들과 함께 그간 진행해 온 일명 <조일청년우정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조일 우정 계획은 말 그대로, 지금 일본에서 의식적, 무의식적 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 동포 3, 4세와 일본의 청년들이 우정을 나누는 계획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 학교를 시작하여 전체 외국인 학교 졸업생의 대학 입학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캠페인, 평양 선언을 지지하며 북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요구하는 50만 인 서명 운동, 교류 이벤트로써 지역 교류와 물론 '프렌드리 워크(Friendly Walk)' 등이 그 내용인데, 특히 "프렌드리 워크"는 그 기획의 참신함에서 이번 우정 계획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했다.
프렌드리 워크는 일본 청년과 재일 조선 청년의 교류 활동을 촉진하여,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며 지역 단위에서의 조일 청년간의 우호 친선을 사회에 발언하기 위해 행하는 '일본 열도 종단 투어 기획'이다.
관동 지방을 중심으로 한 동일본 투어, 그리고 관서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 투어, 두 가지로 기획되는 이번 투어는 각각 일본인 3명, 재일조선인 3명의 6명씩 합계 12명의 조일 청년들이 과거 '조선통신사'의 궤적을 따라 각 지역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이 기획에 대해 문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 통신사는 옛날 조선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외교 사절단입니다. 조선과 에도 시대 간에 이루어진 일종의 외교적 행사였는데, 1607년부터 1812년 사이 약 200여년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원래 처음 조선 통신사의 역할은 임진왜란 때 일본 열도에 강제로 끌려간 약 7만 인의 조선인을 찾아 데리고 가거나, 혹은 그 보상을 받겠다는 기획이었죠.
그런데 그 의지를 일본의 에도 막부가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처음의 그 임진왜란 관련한 첨예한 문제들 이후, 조선 통신사는 외교 사절단으로서 다시 조선과 일본의 교류에 힘을 썼죠.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과거 무려 400년 전에 조선과 일본이 외교적으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해결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 일본 청년과 조선 청년이 그 조선 통신사들의 궤적을 따라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동일본 투어 코스는 북해도로 부터 이와테, 후쿠시마, 나가노, 군마, 치바를 거쳐 동경으로 들어오는 코스였고, 서일본 투어는 츠시마로 부터 시작 히로시마, 효고, 오오사카, 쿄토를 거쳐 동경을 들어오는, 말그대로 대장정이다.
그 지역들을 돌며 다시 지역의 사회, 시민 단체들과 결합하여 재일 조선인 차별 철폐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지역의 안정을 요구하는 퍼포먼스와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대장정이 끝나면, 우호, 친선, 평화, 이해라는 네가지 큰 주제로 일본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국경과 민족,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 손에 손을 잡고 차별과 편견이 없는 지역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그래서 정체되어 있는 양국 관계를 타개하기 위한 "친선 페스티벌"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문 부위원장은 동일본 페스티벌은 동경에서 11월 24일, 서일본 페스티벌은 오오사카에서 11월 16일 있을 예정 인데,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주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는 말을 끝으로 남겼다.
흔히 총련이라는 조직에 대한 국내의 차가운 시선에 대해 상당히 우려를 표한다. 흔히 말하는 민주 정권이 들어선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총련이나 조청 등등의 조직에 대해서는 경계의 빛을 감추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기자는 그 마음 속의 경계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한 조일 수교나, 영속적이고도 평화적인 남북 관계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평양 선언 이후 일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경계와 선입견이 논의 자체를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작년을 돌이켜 보자. 2002년 9월 17일, 일제 강점기와 해방이후 단절되어 온 북한과 일본간의 국교 정상화를 처음으로 문서화한 역사적인 '평양 선언'이 발표되었다. 평양 선언이 왜 역사적이냐 하면 그간 양국의 국교 정상화에 걸림돌이었던 '과거 역사의 청산 문제'는 차차 해결하기로 하고, 우선 '지역의 안정과 평화, 화합'을 위해 노력한다는 미래적인 관점이 담겨져 있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평양 선언을 북한이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 바로 과거 냉전 시기에 자신들이 납치한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본국에 돌려 주겠다고 약속한 것. 이것은 그 당시 북한이 보여온 폐쇄적 외교 관례를 뛰어 넘는 전향적이고도 발전적인 자세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전향적이고도 발전적인 자세는 그 시작 단계부터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당시 납치일본인 본국 송환 플랜은 '2주 간의 본국 여행→북한에 일시 귀국→나머지 가족들 완전 본국 송환'이라는 3단계였다. 그런데 이 "2주간의 본국 여행"에서 일본 매스컴과 우파 정치인들이 보여준 광란의 여론 몰이와 순식간에 형성된 일본인들의 재일 동포 차별은, 한국 국적을 지닌 기자마저 두려울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그 이후 보여준 북한 정권을 욕하는 일본인들의 논리는 한결 같다. 저 말을 어떻게 믿냐라는 것이다. 2주간 본국 여행해서 북한에 일시 귀국하면 다시는 못돌아 올 것이라는 그 막연한 예측. 그 '예측'이 모든 것을 파기시켜 버렸다. 돌아온 것은 차별, 위협, 학력 불인정, 주변사태 개정 같은 어두침침한 단어들 밖에 없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남쪽의 사람들이 보다 열린 자세로, 6.15 남북 공동 선언에 나와 있듯이 민족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 선입관을 버리고 깨어 있는 자세를 지니기를 희망한다.
이번 공동 기자 회견을 청취하면서, 그리고, 조선과 일본의 청년 우정계획을 지켜 보면서 그 안에 남한의 사회 단체와 시민 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평양선언 1주년 맞아 조일청년우정 프로젝트 추진
글:박철현
역사적인 조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평양 선언 1주년을 맞이하여, 동경 센다가야의 일본 청년관 호텔 지하에서 뜻 깊은 공동 기자 회견이 열렸다. 이름하여 <일조평양선언발표 1주년 공동기자회견(日朝ピョンヤン宣言發表1周年共同記者會見)>.
이 기자 회견이 무엇보다 주목을 받는 이유는, 지금 일본 내에서 형성되고 있는 우경화, 일본인에 의한 재일 학생들의 차별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래서는 안되지 않느냐'며 연대의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는 점, 그리고 그 연대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총련 산하 단체인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이하 '조청')과 1토 1도 2부 43현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거의 전 지역에 지역 조직이 있어 지역 내의 국제교류, 문화/스포츠 교류, 심포지엄 등등의 활동을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본청년단협의회(이하 '일청협')는 물론, 민주청년동맹과 더불어 일본의 진보적인 청년 운동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의 일본 사회주의 청년 동맹(이하 '사청동'), 그리고 평화와 인권,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피스보트까지.
이 4개의 단체가 실제적으로 연대 결합, 올해 6월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의 경과 보고 및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힌 이번 기자 회견은, 실제적인 연대 내용의 폭에 있어 향후 "시민 사회 단체들의 국제연대"라는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용이 풍부했다.
"일본과 조선(북한)의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여, 북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를 함으로써 가슴에 우리들, 일본과 조선(북한) 청년 우정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자" 라는 큰 주제로 시작된 기자 회견은, 6월부터 11월간 약 5개월에 걸친 구체적 사업 내용을 각 단체들이 발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먼저 사회를 맡은 시부야(일청협 사무국장)씨가 강하게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우리는 지역 조직이 잘되어 있다. 그리고 서명 운동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각 지역에서 들려오는 납치 사건 이후 불거진 재일 조선 학교 학생들에 대한 일본 청년들의 무의식적인 차별과 점점 우경화되어 가는 일본 정부의 자세에 두려움을 느낀다.(중략) 북동아시아의 평화, 지역에서의 안정을 위해서 결합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일단 50만 인 서명 운동을 통해, 지역 단위의 청년들에게 일본 정부의 잘못된 방향성에 대해 홍보할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극복하는 젊은이간의 교류를 원하고 있다."
뒤이어 피스보트의 히다카씨가 다음과 같이 연대의 의지를 표명했다.
"우리 피스보트는 20년 이상 민족 간의 차별 없는 세상, 세계 평화 문제를 고민해 왔습니다. 작년부터 갑작스레 불거진 조선 반도의 문제는 그 차별의 정점입니다. 작년 납치 문제로 인해 일본인들이 재일 조선인 학생들을 멸시하고 직접적인 테러를 하는 것을 보고, 또 듣고,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기분이 안 좋았죠. 일본의 일그러진 현상을 보고 우리 피스보트가 선도적으로 목소리를 내자는 컨셉으로 작년부터 시부야, 신주쿠 등지에서 평화 액션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사청동의 요시다 위원장은 학력 차별에 대해 일본 정부, 문부성을 강하게 비판하여 눈길을 끌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올해 2월 21일자 아사히 신문에서 처음으로 보았어요. 조선학교 졸업생들에게 대학 수험 자격을 안 주겠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죠.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죄악입니다. 그 말은 일본은 차별하는 국가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하는 그런 꼴이 되는 것이죠. 저는 이게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봐요."
각 단위들의 발표와 더불어 조청의 문달승 부위원장이 이런 일본 사회 단체들과 함께 그간 진행해 온 일명 <조일청년우정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조일 우정 계획은 말 그대로, 지금 일본에서 의식적, 무의식적 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 동포 3, 4세와 일본의 청년들이 우정을 나누는 계획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 학교를 시작하여 전체 외국인 학교 졸업생의 대학 입학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캠페인, 평양 선언을 지지하며 북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요구하는 50만 인 서명 운동, 교류 이벤트로써 지역 교류와 물론 '프렌드리 워크(Friendly Walk)' 등이 그 내용인데, 특히 "프렌드리 워크"는 그 기획의 참신함에서 이번 우정 계획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했다.
프렌드리 워크는 일본 청년과 재일 조선 청년의 교류 활동을 촉진하여,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며 지역 단위에서의 조일 청년간의 우호 친선을 사회에 발언하기 위해 행하는 '일본 열도 종단 투어 기획'이다.
관동 지방을 중심으로 한 동일본 투어, 그리고 관서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 투어, 두 가지로 기획되는 이번 투어는 각각 일본인 3명, 재일조선인 3명의 6명씩 합계 12명의 조일 청년들이 과거 '조선통신사'의 궤적을 따라 각 지역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이 기획에 대해 문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 통신사는 옛날 조선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외교 사절단입니다. 조선과 에도 시대 간에 이루어진 일종의 외교적 행사였는데, 1607년부터 1812년 사이 약 200여년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원래 처음 조선 통신사의 역할은 임진왜란 때 일본 열도에 강제로 끌려간 약 7만 인의 조선인을 찾아 데리고 가거나, 혹은 그 보상을 받겠다는 기획이었죠.
그런데 그 의지를 일본의 에도 막부가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처음의 그 임진왜란 관련한 첨예한 문제들 이후, 조선 통신사는 외교 사절단으로서 다시 조선과 일본의 교류에 힘을 썼죠.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과거 무려 400년 전에 조선과 일본이 외교적으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해결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 일본 청년과 조선 청년이 그 조선 통신사들의 궤적을 따라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동일본 투어 코스는 북해도로 부터 이와테, 후쿠시마, 나가노, 군마, 치바를 거쳐 동경으로 들어오는 코스였고, 서일본 투어는 츠시마로 부터 시작 히로시마, 효고, 오오사카, 쿄토를 거쳐 동경을 들어오는, 말그대로 대장정이다.
그 지역들을 돌며 다시 지역의 사회, 시민 단체들과 결합하여 재일 조선인 차별 철폐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지역의 안정을 요구하는 퍼포먼스와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대장정이 끝나면, 우호, 친선, 평화, 이해라는 네가지 큰 주제로 일본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국경과 민족,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 손에 손을 잡고 차별과 편견이 없는 지역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그래서 정체되어 있는 양국 관계를 타개하기 위한 "친선 페스티벌"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문 부위원장은 동일본 페스티벌은 동경에서 11월 24일, 서일본 페스티벌은 오오사카에서 11월 16일 있을 예정 인데,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주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는 말을 끝으로 남겼다.
흔히 총련이라는 조직에 대한 국내의 차가운 시선에 대해 상당히 우려를 표한다. 흔히 말하는 민주 정권이 들어선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총련이나 조청 등등의 조직에 대해서는 경계의 빛을 감추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기자는 그 마음 속의 경계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한 조일 수교나, 영속적이고도 평화적인 남북 관계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평양 선언 이후 일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경계와 선입견이 논의 자체를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작년을 돌이켜 보자. 2002년 9월 17일, 일제 강점기와 해방이후 단절되어 온 북한과 일본간의 국교 정상화를 처음으로 문서화한 역사적인 '평양 선언'이 발표되었다. 평양 선언이 왜 역사적이냐 하면 그간 양국의 국교 정상화에 걸림돌이었던 '과거 역사의 청산 문제'는 차차 해결하기로 하고, 우선 '지역의 안정과 평화, 화합'을 위해 노력한다는 미래적인 관점이 담겨져 있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평양 선언을 북한이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 바로 과거 냉전 시기에 자신들이 납치한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본국에 돌려 주겠다고 약속한 것. 이것은 그 당시 북한이 보여온 폐쇄적 외교 관례를 뛰어 넘는 전향적이고도 발전적인 자세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전향적이고도 발전적인 자세는 그 시작 단계부터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당시 납치일본인 본국 송환 플랜은 '2주 간의 본국 여행→북한에 일시 귀국→나머지 가족들 완전 본국 송환'이라는 3단계였다. 그런데 이 "2주간의 본국 여행"에서 일본 매스컴과 우파 정치인들이 보여준 광란의 여론 몰이와 순식간에 형성된 일본인들의 재일 동포 차별은, 한국 국적을 지닌 기자마저 두려울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그 이후 보여준 북한 정권을 욕하는 일본인들의 논리는 한결 같다. 저 말을 어떻게 믿냐라는 것이다. 2주간 본국 여행해서 북한에 일시 귀국하면 다시는 못돌아 올 것이라는 그 막연한 예측. 그 '예측'이 모든 것을 파기시켜 버렸다. 돌아온 것은 차별, 위협, 학력 불인정, 주변사태 개정 같은 어두침침한 단어들 밖에 없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남쪽의 사람들이 보다 열린 자세로, 6.15 남북 공동 선언에 나와 있듯이 민족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 선입관을 버리고 깨어 있는 자세를 지니기를 희망한다.
이번 공동 기자 회견을 청취하면서, 그리고, 조선과 일본의 청년 우정계획을 지켜 보면서 그 안에 남한의 사회 단체와 시민 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바보조선인 카메라" (0) | 2003.09.19 |
|---|---|
| 천재지변의 대국 일본과 인재(人災)대국 대한민국! (0) | 2003.09.18 |
| 이번주 일본관련 기사 (0) | 2003.09.18 |
| 중국에서 (0) | 2003.09.17 |
| '부락', '법면'은 일본어 잔재 (0) | 2003.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