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국에서

푸른하늘김 2003. 9. 17. 23:04
같이 일하는 동료 박성조씨가 중국출장가서 찍어보낸 사진과 글입니다.









변해가는 중국의 서부와 세계의 하늘 칭하이


얼마 전 나는 친구로부터 엉뚱한 제의를 받았다. 먹고 재워주는 등 모든것이 공짜인 여행을 한 번 가볼 생각이 없느냐고.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국의 칭하이라는 성에서 자신들의 성을 홍보하기 위한 민족 전통 공연을 한국에서 갖을려고 계획중인데 마지막 테스트 단계로서 한국에 가기 전에 한국 사람을 초청하여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나.
모든 비용은 성 정부에서 부담을 할테니 그냥 와서 공연을 보고 솔직한 느낌을 이야기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해서 먼저 행선지인 칭하이의 수도 시닝 이라는 곳을 알아보았다.
중국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티벳과 서장 바로 옆에 있고, 해발 평균 2200미터에의 고지대에 위치. 인구는 약 100만. 한족, 장족, 투족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 등등

음음 해발 2200미터면 1000미터당 기온이 7도씩 낮아지니 약 15도가 낮을테고, 자외선도 강하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출발 날짜가 되었다. 출발 인원은 나와 선배님을 포함 한국인 2명, 그리고 마지막 날 까지 같이 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중국 샤오 꾸니앙(꼬마 아가씨) 한 명등 총 3명이다. 공항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비행기를 타고 출발.

한 숨 자다 일어나서 창 밖을 내다보니 끝었이 펼쳐지는 높은 산들과 분지들. 과연 이런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황량한 그림만 펼쳐진다. 그러다 그런 분지에 건설된 흙 먼지로 뒤덥힌 비행장에 착륙하고, 프로펠라기를 포함 비행기가 3대만이 계류해 있는 칭하이성 시닝에 발을 디뎟다.

민족 전통 의상을 입은 장족 사람들과 극단 단장 및 담당자가 공항에 마중 나와서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장족의 전통 목덜이를 걸어준다. 아. 테레비에서나 보던 그 장면 그 모습, 그 순간 부터 장족 사람들은 내 형제가 되었다.

이어 2박 3일간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칭하이의 최대 소수 민족은 장족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족의 종교는 불교.
우리 일행은 먼저 시닝에서 가장 권위있는 절을 방문하였다. 약 700년전 세워졌다는 이 절에는 600 여명의 수도 승들이 기거 하고 있고, 대학도 있다. 안내자에 따른면 기본적으로 1학년당 빨라야 6년의 세월을 필요로 하고, 만약 4학년을 채운다면 24년을 다녀야 졸업이 된다고 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24년이란 세월을 줄곳 수행과 수교로 보내는 수도 승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해졌다.

또한, 수도 승들과 장족 사람들은 티벳의 라마까지 약 2000키로미터의 거리를 순례하는 풍습이 있다. 그 순례에는 걸어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업드려 절을 하면서 온 몸과 마음으로 느껴가며 수행해 가는 가혹한 방법 또한 있었다. 그런 모습을 거리 곳곳에서 보고는 선배님과 나는 벌어진 입이 닫히질 않았다. 아니 하루종일 가봐야 얼마나 간다고..., 물론 그것이 그들의 수련방법이었고 인생이었다.

두번째 날은 칭하이 성에서 가장 크다는 칭하이 호수에 안내가 되었다.
해발 약 3200미터. 아니 백두산 보다도 높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 보다도...,
눈으로 본 그곳은 정말 바다와 같이 넓었다. 둘레 약 400키로미터라 하니. 한강의 길이가 몇 키로였더라...,

그곳에서는 장족 전통 춤을 추며 관광객으로 부터 돈을 받는 3-4살 짜리 꼬마 아가씨들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겼고, 우리 또한 꼬마 아가씨들에게 좋은 춤을 선사 받고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루었다.
손에 담아 마셔본 칭하이 호수의 물은 예상 외로 짯다. 염분이 섞여있는 호수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민물고기들이 아닌 바다 물고기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고, 우리의 점심식사에도 그 물고기들이 올라왔다. 1년에 50그램씩 자라난다는 일명 50그램 물고기이다. 약 500그램 정도 되 보였으니 10년을 산 물고기이다. 요새는 양식이 발달해 1년만 되도 어른 팔뚝길이 만큼씩 자라나는데...,
마치 중국에서 발전해 가는 연안 지역과 비교해 아직 낙후해 있는 칭하이 성을 대변하는듯한 물고기. 맛은 별로 였다.

우리 일행이 가는 곳곳은 칭하이 성에서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끝없는 산 길과 사막에 포장되어있는 도로 주변에서는 옛 부터 살고 있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 장족과 방목 되어있는 양들과 소들, 그리고 전기를 공급하는 송전 선 만이 보일 뿐이었다. 서부 대 개발을 위해 중국 중앙 정부에서 투입되는 돈의 용도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고, 편리해진 포장 도로를 이용해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그 관광객을 상대로 돈 벌이를 시작한 장족들 또한 변해가는 중국 서부의 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의 관광은 예고 편이었고, 메인인 칭하이의 전통 민속 공연은 돌아오는 날 저녁에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를 위해 마련된 공연의 예정 시간은 한시간 10분이었다. "민속 전통 공연" 이라. 듣기만 해도 이 얼마나 지겨운가.
하지만 이틀간에 걸쳐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좋은 구경을 했기에 우리도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였다. 일단 중맹인 나는 일반,디지탈 두대의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 촬영을 담당하였고, 중국어 잘 하시는 선배님은 공연에 대한 감상과 논평을 맏으셨다.

이어지는 사회자의 인사. 한국에서 오신 귀빈들의 위해 공연하겠습니다. 라는
어떻게 아느냐고, 그냥 30 여년간 쌓아온 사회 짠밥의 내공으로 감을 잡았다. 그 이상은 묻지 마시라.
약 6-7분 간격으로 이어지는 짧은 공연의 페레이드. 처음에는 그저 그려려니 했다. 하지만 시작이 되면서 그저 그려려니가 아니다. 장족 전통의 음악과 춤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전통 민속 음악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을 하는 3명의 꾸니앙(아가씨) 그룹이라든지 한국 아이돌 그룹에도 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댄스를 피로하는 댄스 꾸니앙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전혀 지겹지가 않았다. 왠지 모르게 한국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이국적이고, 전통 민속 공연이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퓨전하여 관객들을 따분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에서 감동을 느꼈다. 정말 이렇게까지 재미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마치 생각지도 않았던 롯또에 당첨된것과 같은 짜릿함 마저 든다. 이 느낌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글로서 표현하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만약 궁금하신다면 한 번 칭하이에 가셔서 직접 보시라.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북경으로 날아가, 칭하이 시닝 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 타시면 된다. 단 비행기가 매일 있는 것이 아니니 주의하시라. 잘못하면 국제 미아가 되는 수가 있으니...,
아니면 칭하이의 공연단을 한국으로 초청하시어 많은 친구, 동료분들과 함께 보시던지.

어느덧 공연이 끝나고 출연자들이 모두 모인다. 그러더니 이어지는 이상한 분위기. 아니 아니 이것또한 텔레비에서나 볼수 있었고, 중국의 모택똥과 같은 높으신 분들이나 하던 출연자들과의 기념사진 촬영 타임이 아닌가? 이런 영광이 우리에게 돌아오다니. 감격 또 감격이었다. 나의 선배님에게는..., 그 순간에도 사진 기자는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연후 귀빈실에서 칭하이 민속 공연에 대한 느낌을 관계자들에게 이야기 하는 시간이 주어지었다. 느낀데로 하나하나 소감을 말하였고 그들은 열심히 메모한다. 마치 국민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이 말하는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 적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다. 그들은 아직까지 순순한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수 있었다.

칭하이성은 성 전체 면적은 한반도의 7배에 달한다. 하지만 인구는 겨우 500만, 또한 사람이 살수 있는 곳은 대부분 2000미터 이상에 위치한 분지라 중국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소수 민족인 장족은 그 모습과 문화에서 많은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고, 한국의 묵, 순대, 콩나물 무침, 요구르트, 동충하초 차 등과 같은 그들 음식 문화에서는 우리의 형제들이 또 하나의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느끼게한다.

돌아오는 날 아침. 공연단의 장족 단장님이 오셔서 서투른 중국어로 아쉬운 이별의 인사를 하신다. 그 모습에서 우리의 옛 아버지의 모습을 느끼었고, 한국인의 이것 저것 궁굼한 점이 많으신 공연 실무자의 모습은 우리의 옛 누나. 언니의 그 모습이다. 그리고 양 손에 가득 잡히게 주시는 잘잘한 칭하이 토산물은 우리 할머니의 정성이었다.

칭하이!
가기 전까지 낮설었던 이 지역은 나에게 중국 서부 지역 개발이라는 이 지역의 변화의 시작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내 어렸을때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느끼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