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일사회와 일본사회의 '경계' 다루고 싶었다"

푸른하늘김 2003. 9. 4. 10:20

"재일사회와 일본사회의 '경계' 다루고 싶었다"

<무경계선의 꿈> 일본인과 조선적과의 경계에 대한 신명직 감독의 제언

글:박철현







1997년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언더 그라운드 예술 독립 영화의 전문 상영관이자 배급사인 유로 스페이스와 아테네 프랑세가 합작하여 만든 '동경영화미학교(東京映畵美學校)'(이하 영화미학교).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4년제 종합대학교의 영화 전공학과가 적은 일본에서는 일본영화학교(교장 이마무라 쇼헤이)를 비롯한 1, 2년제의 영화전문학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 안에서도 역사는 짧지만 유로 스페이스, 아테네 프랑세의 '비주류 의식'과 '인디주의'의 세례를 받은 영화미학교의 다큐멘터리과 졸업작품전이 9월 2일, 3일 양일간에 걸쳐 아테네 프랑스 문화센터에서 개최되었다.

다큐멘터리과에 재학중인 젊은 학생들 안에 유독 뿔테 안경의 꽤 나이 든 중년의 학생이 눈에 띈다. 다른 일본인 젊은 두 친구와 1년간에 걸쳐 만들었다는, 재일 조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소재로 하여 국가간의 경계, 사회, 민족간의 경계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작품 <무경계선의 꿈(無境界線の夢)>의 연출을 맡은 신명직 감독이다.

일본에 온 지 4년째로 동경외국어대학에서 한국문학을 일본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신 감독은 국내 모 신문에도 기사를 송고하고 있다고 수줍게 자신을 소개했다.

또한 신 감독과 함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작업에 참가한 22살의 일본인 시게토미 유키코(重富幸子)씨를 작품 상영전에 만나 그들이 만난 '재일동포, 조선학교의 학생'들에 대해 들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수고하셨습니다. <무경계선의 꿈>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실제로 일본에 거주하시면서, 재일조선학교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기획의도를 비롯,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신명직(이하 '신') : "처음에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조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대입수험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입니다. 명백한 차별이거든요.

그리고 9월달에 있었던 평양선언에서 불거져 나온 납치문제로 인해 계속 일본 내에서 벌어진 재일 조선인,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재일 사회에서 조선학교는 어린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상징인데, 그들의 치마저고리가 잘려 나가는 것을 보고 일본사회와 재일사회(조선학교)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을까? 즉, 그 '경계'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싶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그 경계는 확장되었죠. 단순히 일본사회와 재일사회 뿐만 아니라 재일사회 안에서도 남과 북이 갈라지고, 국적이 갈라지고 하는 그런 것들로. 그런데 이런 거 다 듣고, 영화 보면 재미 없는데."(웃음)

-시게토미씨는 어땠어요? 재일동포 3, 4세 학생들에게 받은 인상같은 것이나 작업 중에 어려웠던 것들이 있었다면.
시게토미(이하 '시게') : "촬영갈 때마다 매번 힘들었어요. 워낙 신 감독님이 고집이 세서(웃음). 농담이고요. 사실은 제가 재일조선인이나 조선학교에 대해 전혀 몰라서 그게 너무 힘들었지요. 이번에 처음으로 조선학교 안에 들어갔을 정도니까요. 재일 조선, 한국인 친구도 없고. 그래서 처음에는 반발심도 많았고 그랬어요. 이야기나 인터뷰를 하다보면 역시 부딪히게 되는 벽 같은 게 있으니까."

신: "울기도 많이 울었잖아"(웃음)

시게 "(웃음) 많이 웃기도 했는데…. 아무튼 동화되는 부분도 있고, 감동받는 부분도 있고, 짜증나는 부분도 있었고, 작업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제작기간은 어느정도 였죠?
신 : "기획은 작년부터 준비되었고, 본격적으로 기획안을 제출한 것이 올해 1월쯤입니다. 그전부터 틈틈히 개인적으로 촬영은 했었구요. 실제 본격적으로 촬영한 것은 한 7∼8개월 정도 되는 것 같네요."

시게 : "오늘은 안 왔지만, 야마자끼 타카오라는 친구까지 해서 3명이서 다른 곳에서 번갈아 가며 촬영한 것도 많으니까 실제로 따지자면 한 1년분 정도 촬영한 셈이죠."

-신 감독님은 일본에 오신 지 얼마나 되셨죠? 일본생활을 돌이켜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요? 그 생활안에서 이것 저것 민족에 대해서도 많이 느끼시고, 또 그것을 실천적으로 표현해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드신 것으로 아는데.
신 : "한 4년정도? 어떤 생활이었는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힘들 것 같고. 다만 일본에 있으면서 일본 사회가 굉장히 보편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간혹가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차별이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가 갸웃뚱 거려질 때가 있어요.

이번 작품을 만드면서 다시 한번 도대체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묘한 딜레마에 빠졌죠. 실제 재일동포라고 뭉뚱거려 표현하지만, 그 안에도 남쪽과 북쪽의 경계는 물론, 일본을 포함한 국적의 경계, 사회의 암묵적인 경계는 있거든요.

그 '경계'를 부정해 버리고 그냥 살아간다면 두루뭉술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반면에 긍정해 버리면 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당히 복잡하고 중층적이지요.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보면 아시겠지만 그래서 마지막 부분이 좀 미진할 수도 있어요. '역사와 친구'라는 주제인데, 저는 재일사회와 일본사회 간에 역사를 바로 알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실제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도저히 실마리가 안 풀리더군요.

그래서 지금 제 계획은 3부를 다시 만들고 싶어요. '과연 재일사회와 일본사회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네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래서 현재 상태에서 아직 이 기록필름은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로 마지막 내래이션이, 아니, 직접 보세요."

시게 : "저는 재일 조선 사회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거든요.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죠. 왜 고정관념 같은거, 닫혀 있는 사회라는 생각. 매스컴이 다루고 있는 북한도 그런 느낌이고. 그런 느낌에서 왜 그럴까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실제로 촬영을 하고 편집을 같이 하면서, 반발심리도 들고 싸우기도 했구요. 반면 일본인으로서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 저는 아무튼 역사에 대해서 좀더 알아가다면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미래는 긍정적으로 봐야겠죠."





-네, 알겠습니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신 : "노 코멘트입니다."
시게 : "말하세요. 그래야 담엔 후원자가 나타나죠(웃음)."
신 : "아휴, 후원은 무슨. 다만 앞으로도 이런 테마로 좀더 제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촬영하고 싶어요."

-그럼 평생 찍을 수도 있겠군요(웃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 : "재일사회와 일본사회, 그리고 재일사회 안에서의 남과 북, 그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설정되어 온 경계선을 넘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꿈이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 제 개인적인 믿음이 모든 사람에게 진지한 '물음'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게 : "촬영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느꼈어요. 아는 것으로 부터 모든 게 시작한다는 것을 실감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앞으로도 신 감독님과 같이 작업하고 싶어요. 배우는 게 많으니까요."

1시 정각부터 시작한 상영회는 약 30분동안 진행된 학생들의 실습작품 상영이 끝나고, 졸업작품이 공개되었다. 프로그램의 두번째로 상영된 <무경계선의 꿈>은 작업에 참가하는 스태프 3명의 내래이션으로부터 시작된다.



비디오 카메라는 조선학교를 다니는 여러 학생들의 모습과, 그 학생들이 살고 있는 집, 학생들의 부모들인 재일동포 2세들의 삶의 모습을 담는다. 처음에는 치마저고리의 강렬한 인상과 조선학교에 버젓히 걸린 전투적 표어들, 초상화들에 거부감을 느꼈다는 두 젊은 일본인은 촬영을 계속하면서, 그 어린 학생들의 해맑은 미소와 보통의 일본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보면서 점점 동화되어 간다.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선택한 여학생은 조선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할 것이라는 그 막연한 선입관이 선입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일본인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그러나 여전히 벽은 존재한다. 시게유키씨가 두명의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일본인 친구 있어요?"
"없는데요."
"그쪽은 있어요?"
"음…. 지금은 없는데… 유치원에서 만난 친구들은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역사의 문제로 넘어간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전차를 타면 여전히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일본인들이 있다고 하는 조선학교 학생들. 그리고 조선학교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일본인 친구는 저도 있지만, 서로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껄끄럽게 되죠. 제가 한번 옛날에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일단 역사나 뭐 그런 어려운 이야기면 일본인 친구들이 뒤로 빼요. '얘는 뭐 역사이야길 하냐'라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에요.

일본의 젊은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나 그런거에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 얘기 하면 '또 어려운 이야기한다', 뭐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거죠. 그냥 가벼운 친구라면 상관없지만, 가슴을 열어놓을만한 친구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봐요."

'역사와 친구'에 관한 해결되지 않는 주제, 그리고 조선학교의 60% 정도가 일본사회의 차별을 나름대로 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과 일본 국적을 선택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새삼스레 느낀다.

도무지 탈출구가 안 보이고, 작품을 보고 있는 기자 역시 가슴이 답답해 진다. 그 답답함이 절정으로 치닫을 때, 화면에는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어느 소녀가 비오는 날 거리로 나가는 장면이 보여진다.

1분간의 롱테이크로 카메라는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전철이 지나가는 건널목에서 잠시 기다리는, 전철을 무심히 쳐다보는 그녀의 위로 신명직 감독의 내레이션이 천천히 흘러 나온다.

"우리들은 지금 경계선 위에 있다"







관람 후, 재일동포 3세와의 짧은 대화


상영회 내내 제일 앞자리에 앉아 신명직 감독의 작품을 유심히 지켜보던 두명의 여성이 있었다. 신명직 감독의 작품 상영이 끝난 후, "야스쿠니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작품의 우익성에 치가 떨린 듯, 도중에 자리를 일어선 두 명의 재일교포 3세 권향숙, 김미혜씨와 신명직 감독간에 대화를 잠시 옮겨본다.

-어때요? 조선학교를 졸업한 재일동포 3세로서 신감독님의 작품이?
권향숙(이하 '권') : "깊이가 있어요. 테마가 다루기 힘들었을 것 같고, 실제로 그런 게 화면에서 보이는데, 정말 수고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신명직(이하 '신') : "무슨, 오히려 내가 촬영하면서 많이 배웠지. 마지막 부분 때문에 정말 고생도 많이 했긴 했지만, 아무튼 미진하게 끝낸 것 같아서 한 20∼30분 정도 분량으로 역사와 친구라는 주제로 새롭게 만들어 볼 생각이야. 그리고, 고베 대지진을 경험한 분들에 대한 다큐도 만들어 볼 생각이고."

-역시 후원자가 있어야 겠군요. 저는 사실 보면서 '역사와 친구'라는 주제에서 과연 현실이 저렇다면 평생 일본인하고는 '가벼운' 친구밖에 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데.
권 : "저는 일본인 친구들도 꽤 있는 편인데, 음, 그 뭐랄까? 보통 거리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는 보통의 관계라고 해야 하나? 가슴을 열고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라면 국가적 청산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요원하고…."

신 : "10년, 20년 후에 벽을 허문, 미래의 모습을 염두에 두면서 지금의 그 '보통'의 관계, '가벼운'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 아무튼 참다운 친구는 무엇인가? 하는 게 화두야. 역사의 벽을 넘고 마음을 열어야 되는데, 그런 것은 앞으로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인 셈이지"

짧은 상영회가 끝난 후의 간략한 관객간의 대화였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작품안에 나온 인터뷰어들의 근황. 그들이 자신들의 선생님이었다는 개인적인 이야기 안에서 웃음꽃이 핀다. 기자의 물음에는 한마디도 없었던 김미혜씨도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적어도 한국 국적의 뉴커머인 신명직 감독과 두 일본인 스태프, 재일동포 3세인 그들 사이의 '경계'는 이미 넘어선 것이 아니었을까. / 박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