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인은 휴화산, 한국인은 활화산

푸른하늘김 2003. 7. 8. 10:50
일본인은 휴화산, 한국인은 활화산



글:유재순



언젠가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난 일본인을 가리켜 휴화산으로 비유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많은 일본인들이 질문시간에 그럼 한국인은 무엇에 해당하느냐고 물었다.

난 대답했다. 한국인은 모두 활활 타버린 활화산 같다고. 그랬더니 일본사람들이 와아 하고 웃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강연회에 참석했던 50대의 회사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 최근 일본의 사회현상을 보면서 우리를 가리켜 휴화산이라고 표현했던 유상의 말이 갑자기 생각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말이지 요즘 같아서는 일본인 전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덩어리를 통째로 끌어안고 있는 휴화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지금부터 조금씩 화산을 분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전화통화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미진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전화를 걸어 와, 직접 만나서 속 시원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났다.

“ 우리 일본인들은 지금 아주 불안해요. 전 후 일본사회가 이처럼 혼란스러운 적이 없었어요. 시내를 나가면 모두 사람들이 시한폭탄처럼 느껴져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언뜻 들으면 염세주의에 빠진 비관론자 말 같았지만, 그러나 그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하고 심각했다. 일본인이 일본사회에 대해서 너무도 강하게 부정하고 비판하니까, 외국인인 내가 오히려 무안하고 할 말이 없었다. 때문에 난 그저 묵묵히 ‘네네’ 하고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의 말을 다른 일본인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 일본인조차도 간단하게 ‘정말 그래’ 라고 동감을 표시했다.

내가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휴화산에 비유한 것은 5년 전부터였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 중반까지 8년 동안 일본에 살다가 귀국한 후, 99년에 다시 일본에 유학 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일본이 너무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으로 말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징용으로 규슈 탄광에 끌려 온 경험이 있는 나의 아버지가 80년대 말 일본에 오셔서는, 일본인들의 눈을 보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일본인들의 눈이 다 죽었다고.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이 독하고 모질긴 했어도 눈은 살아서 빛이 났었다고. 헌데 지금은 등이 따시고 여유로워지니까 목표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실제로 80년대의 일본인들은, 나의 아버지가 눈이 죽었다 라고 표현할 만큼 정말 눈빛이 부드러웠다. 발걸음 또한 종종 걸음을 걷는듯한 한국인에 비해 엄청나게 느리고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99년, 일본에 와 살면서 느낀 일본인들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우선 일본인들의 눈빛이 강해졌으며, 시내에 나가 택시를 타도 예전처럼 더 이상 운전사들이 친절하지 않았다. 주소 한 줄만 있으면 한 밤중이라도 손전등을 켜고 지도를 확인해가며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던 그 옛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가까운 거리를 타면 투덜대기 일쑤고, 어쩌다 잔돈이 없어 1만엔짜리 지폐를 내면, 편의점에라도 가서 잔돈으로 바꿔 타지 그냥 탔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온화하던 성격도 거칠게 변했다. 전에는 웬만해서는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조그만 일에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때로는 참아야 할 때도 인상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마구잡이 무차별 살상을 일삼는 일부 일본인들까지 생겼다. 드디어 휴화산이 터지지 시작한 것이다.





일본인의 특징은 자신의 감정을 타인 앞에서는 절대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가령 결혼한 지 10년이 넘는 부부라 할지라도 여간 해서는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에 의하면, 이혼할 생각이면 자신의 혼네(본심)를 이야기하지만 이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길거리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모습은 거의 구경하기 힘들다. 그래서 피상적으로 보이는 일본인들은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의식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혼네를 표현할, 발산할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설사 자신의 감정을 타인 앞에 드러낸다 해도 이지메 대상이 될 뿐이기 때문에 할 수없이 자신의 혼네를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조용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일본 특유의 정서로 인해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는 ‘한(恨)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을 마음 속에 품고 산다는 것이다.

우리네 엄마들은 틈만 나면 당신들이 살아 온 과거사를 들먹이며, 소설로쓰면 수십 권이 된다는 둥 달달 외울 정도로 자식, 친척, 친구도 모자라 안면만 트면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그러면서도 흔히들 우리민족은 ‘한의 민족’라고 한다. 무슨 한?

최근 일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유 없는 잔혹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식당을 경영했던 후쿠오카의 40대 일가족 4명이 한밤중에 살해되어 바다 속에 수장됐고, 나카사키에서는 백화점 게임 코너에서 부모와 놀던 네 살 난 사내 아이가 부모가 한 눈을 판 사이 유괴되어, 4킬로 떨어진 대형 주차장 8층 옥상에서 집어 던져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했다.

또한 며칠 전에는 폭력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가출하여 보호센터의 보호를 받자, 지인인 50대의 여성 만화가에게 찾아가 아내가 어디 있는지 안 가르쳐 준다고, 무려 세 개의 칼을 등에 꽂아 그 자리에서 사망케 했다. 범인의 말인 즉, 그런 큰일을 저지르면 혹시 부인이 연락을 해 올 지 모르게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3년 전,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에서 다쿠마 라는 남자가 난입,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칼을 마구 휘둘러 그 중 8명이 숨지고 15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이때도 범인의 얘기는 이혼한 두 명의 전처에게 창피를 주기 위해서 무차별 살인을 저질렀다 것.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자기 감정표현에 우리 한국인들이 보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서툴다. 아니 서툰 것이 아니라 대단히 극단적이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꼭 피를 보는 감정표현을 한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들어 누군가를 살상하는 형식으로 자기 표현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 그만큼 한이 많다는 얘기다. 우리네처럼 말다툼을 하고 그래도 안되면 주먹다짐, 또 그래도 안되면 발이 나가고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트러블을 겪는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 같은 과정이 일절 생략된다. 일본인들은 말싸움, 주먹다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칼이 가슴에 꽂혀 버린다. 그래서 일본인들 자신도 일본인들이 무섭다고 말을 한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가 건실하고 태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의 마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한국인은 이미 다 타버린, 전부 폭발해 버려 더 이상 터질게 없는 활화산도 같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그렇게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사는 ‘스미마셍’이란 말도, 이 같은 일본 특유의 정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자생존’의 완곡한 언어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낯선 사람과는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왜냐? 살아남기 위해서.

실제로 전철 안에서 뚫어지게 쳐다봤다가,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고 전철역 홈으로 끌려 나와 몰매를 맞아 숨진 사건이 작년에 꽤 여러 건 있었다. 때린 사람은 대학생, 혹은 샐러리맨, 맞아 죽은 이들은 모두 회사원이었다. 그것도 모두 성실한 젊은이들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최근에 들어 일인들은 자신들의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어떻게, 어떤 형태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른 채 우왕좌왕 방황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십 년 간 인간관계에 있어 일정한 선을 그어 왔던 보이지 않는 룰을 깨트릴 수도 없는 일, 그 이유는 일본인들은 그 어떤 룰을 깨는 것에 몹시 겁을 내기 때문이다. 아니 깨면 죽는 줄 안다.

아무튼 일본인들은 지금 가슴 속에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화산을 품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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