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일본여성의 생(生)과 사(死)

푸른하늘김 2003. 7. 5. 09:37
어느 일본여성의 생(生)과 사(死)


글: 유재순


몇 개월 만에 친한 일본여자 친구를 만났다.
“ 나 한쪽 가슴 마저 떼어냈어.”
“ ??? “
10 여 년 전, 가슴이 뻐근하고 가끔씩 심한 통증이 있어 병원에 가 보니 유방암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암 덩어리가 제법 커 당장 한쪽 유방을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녀를 만나면 눈물부터 흘렸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녀만은 울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수술 후 병상에 누워 ‘한쪽 유방이 사라져 이제 더 이상 연애는 못하겠네’ 라며 우스개 소리를 할 때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그녀는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 와 우린 그녀의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몇 개월 만에 나타나 뜬금없이 한쪽밖에 안 남은 가슴마저 떼어냈단다.
“ 요즘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유언 아닌 유언을 하고 있어. 왜냐하면 다 없어진 줄 알았던 암 세포가 가슴은 물론 임파선까지 전이됐다고 해. ”
그날 난 기막힌 소리를 들었다.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협회에 그녀가 안락사 신청을 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는 안락사 인정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의사가 환자의 요청으로 안락사를 시키면 그것은 살인죄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시점이 다가오면 안락사로 이 세상을 마감할 것이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도쿄 분쿄구에 ‘일본존엄사’ 협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협회에는 약 10만여 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는데, 만약의 경우 불치의 병에 걸려 최악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2년 전에 읽었던 안락사에 대한 책이 생각났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야스코 네타 콜론이라는 일본여성이 쓴 책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도 다큐멘터리로 엮어 방송했다.
5년 전, 통증이 극에 달한 날, 더 이상 사는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친구들을 모아 함께 식사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남은 몇 시간을 남편과 함께 보낸 후 저녁 8시 30분에 안락사에 이르는 주사를 맞았다. 당시 10대 소년 소녀들이었던 두 남매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대신 전날 엄마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건네 받았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 동안 지나온 일을 되돌아보며, 자기 자신답게 당당하게 잘 살아 가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는 것.
당시 야스코 씨의 안락사는 네덜란드는 물론 일본에까지 전해져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평상시의 생활모습과 친구들과의 마지막 만찬, 그리고 부부만의 시간에 이어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야스코 씨의 모습이 그대로 생생하게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던 것.
그 후 그녀가 남긴 수십 권의 일기가 단행본으로 엮어져 일본에서 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에는 10대에 펜팔로 이국의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얼마 안 있어 찾아 온 암이란 불청객, 그리고 안락사를 선택하기까지의 갈등과 고통, 생에 대한 집착 등, 지극히 인간적인 내면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유방암에 걸린 나의 친구도 이 야스코 씨의 책에 자극을 받아 마음의 평정을 찾고 안락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친구는 말했다. 주위에 아무런 폐 끼치지 않고 깔끔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고 싶다고. 그 길은 바로 안락사 밖에 없다고.
한편 네덜란드의 안락사 역사는 약 30년. 그 동안 안락사에 대한 의학적, 법률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는 법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매년 약 4천 여명의 네덜란드 인이 안락사를 선택한다고.
만약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려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일본친구처럼 과연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