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처음으로 왔던 날
살인 물가의 추억
글:박철현
전 원래 일본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섹스천국이니 도박산업 천국, 혼네와 타테마에(진실과 가식)라는 단어에서 파생되는 이중성, 표절의 천국, 이코노믹 애니멀 등등.
일본에 대해서 비꼰 말들은 제가 청소년일때 까지만 하더라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지금도 아마 널려 있을 듯 합니다.
<남벌>이라는 국수주의(?) 만화에 열광하고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보고서는 "음, 일본은 언젠가 가라앉을 거야" 라고 멋대로 상상하기도 했죠. 그게 얼마나 파멸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스포츠 신문들은 한일전같은 빅매치가 있는 날에는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느니 결사항전이니, 극일이니 하는 단어들을 큼지막하게 박아놓았었으니 말이죠. 일본대중문화 개방과 관련해서는 '왜색문화! 이대로 좋은가?' 류의 기사를 버젓이 싣고있으니, 의식적으로 밸런스 감각을 가지지 않는 한 저같은 보통사람들은 '아! 일본은 나쁜 나라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사실은 저도 일본오는 것을 상당히 망설였습니다. 외국물 먹어 본다는 게 경험의 확장면에서 좋긴 하다만, 굳이 일본일 필요가 있겠나라는 고민도 있었고, 평상시 공부했던 영어가 망가지는 것도 아쉬웠기 때문이죠.
일본에 오면 영어실력은 줄게 되어 있어요. 일본식 영어는 영어가 아니라 무슨 외계인의 말 같거든요. 빌딩을 비루라고 발음하고, 비어를 비이루라고 발음하죠. 더 갓파더(대부) 같은 것은 "자 곳도파자" 로 읽어버리니, 말 다했죠 뭐. 결정적으로는 평상시 주입식으로 교육받았던 <일본은 지는 해다, 일본은 회생불가능이다, 일본보다는 중국이 더 비전있다> 등등의 정언적(?) 명제들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랍니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강력하게 일본행을 원했답니다. 똑같은 외국이라도 '일본은 제주도 밑에 있는 섬나라', 즉 한반도랑 가깝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죠. 고령이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염려도 있고, 게다가 또 장남이라는 것, 결정적으로 비용을 절반 정도 부담해 주신 아버지가 '일본행'을 강력하게 원하시는 바람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근데, 개인적으로 일본어(특히 히라가나)가 참 아름다운 글이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일본인의 눈으로 본 한글도 예쁘다고 하더군요. 아참, 여러분들도 일본인 친구가 있으신 분은 한번쯤 말해보세요.
일본어는 참 이쁘다고. 그럼 대개 좋아합니다. 일본어는 히라가나의 자연스러움과 카타카나의 박력과 한자의 뭐 그저그런(?) 성격을 동시에 표출하기 때문에 일본어 공부 좀 하시다보면 그런 것들을 느낄 때가 있죠.
예를 들어 '나' 라는 의미의 일본어는 わたし(히라가나)、 ワタシ(카타카나)、 私(한자) 이렇게 세가지로 표현 가능한데, 히라가나는 자연스럽고 귀여운 느낌을 주고, 카타카나는 무언가 화가 나서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한자체는 문어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죠.
이런 언어에 대한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일본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조금씩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공부하는 것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랍니다.
그렇게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한 지 3일째 되는 날 나리타 공항에 내렸어요. 그런데 좀 놀랐습니다. 외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요. 어쩌면 인천공항과 너무나 비슷한 인테리어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전부터 생각해 온 건데, 나리타 공항은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가 뭔지 보여주는 아주 잘 지어진 생태공항 건축물의 표본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물론 제가 가본 나라 중에서요. 밴쿠버나, 홍콩 공항의 그 미래세계틱한 느낌도 물론 괜찮지만, 잔잔하게 천장 윈도우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과 내부 인테리어의 조화는 아주 포근한 느낌을 주죠. 물론 날씨가 흐린 날은 그냥 우중충합니다.
그리고, 제가 묵기로 결정된 코쿠분지의 기숙사에 가기 위해 티켓을 끊으려고 하는 순간, 저는 일본의 살인적인 물가와 정면으로 맞부닥쳤습니다. 3,980엔이더군요.
한국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요금이 리무진 버스 6000원이던데. 일본은 그 정도의 똑같은 거리인데도 약 6배의 요금을 받더군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표를 끊고, 자판기로 갔죠. 울면서 끊은 티켓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커피 120엔 이상, 콜라 150엔. 옆의 담배자판기 최하 250엔.
2년전이에요. 저는 그제서야 살인 물가라고 불리우는 일본, 그것도 그 한복판인 동경에 도착했다는 현실을 발견했죠. 공항 인테리어 비슷하다고 우습게 봤다가 큰 코 다쳤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일본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그 살인물가 충격과 더불어서요.
살인 물가의 추억
글:박철현
전 원래 일본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섹스천국이니 도박산업 천국, 혼네와 타테마에(진실과 가식)라는 단어에서 파생되는 이중성, 표절의 천국, 이코노믹 애니멀 등등.
일본에 대해서 비꼰 말들은 제가 청소년일때 까지만 하더라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지금도 아마 널려 있을 듯 합니다.
<남벌>이라는 국수주의(?) 만화에 열광하고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보고서는 "음, 일본은 언젠가 가라앉을 거야" 라고 멋대로 상상하기도 했죠. 그게 얼마나 파멸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스포츠 신문들은 한일전같은 빅매치가 있는 날에는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느니 결사항전이니, 극일이니 하는 단어들을 큼지막하게 박아놓았었으니 말이죠. 일본대중문화 개방과 관련해서는 '왜색문화! 이대로 좋은가?' 류의 기사를 버젓이 싣고있으니, 의식적으로 밸런스 감각을 가지지 않는 한 저같은 보통사람들은 '아! 일본은 나쁜 나라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사실은 저도 일본오는 것을 상당히 망설였습니다. 외국물 먹어 본다는 게 경험의 확장면에서 좋긴 하다만, 굳이 일본일 필요가 있겠나라는 고민도 있었고, 평상시 공부했던 영어가 망가지는 것도 아쉬웠기 때문이죠.
일본에 오면 영어실력은 줄게 되어 있어요. 일본식 영어는 영어가 아니라 무슨 외계인의 말 같거든요. 빌딩을 비루라고 발음하고, 비어를 비이루라고 발음하죠. 더 갓파더(대부) 같은 것은 "자 곳도파자" 로 읽어버리니, 말 다했죠 뭐. 결정적으로는 평상시 주입식으로 교육받았던 <일본은 지는 해다, 일본은 회생불가능이다, 일본보다는 중국이 더 비전있다> 등등의 정언적(?) 명제들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랍니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강력하게 일본행을 원했답니다. 똑같은 외국이라도 '일본은 제주도 밑에 있는 섬나라', 즉 한반도랑 가깝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죠. 고령이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염려도 있고, 게다가 또 장남이라는 것, 결정적으로 비용을 절반 정도 부담해 주신 아버지가 '일본행'을 강력하게 원하시는 바람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근데, 개인적으로 일본어(특히 히라가나)가 참 아름다운 글이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일본인의 눈으로 본 한글도 예쁘다고 하더군요. 아참, 여러분들도 일본인 친구가 있으신 분은 한번쯤 말해보세요.
일본어는 참 이쁘다고. 그럼 대개 좋아합니다. 일본어는 히라가나의 자연스러움과 카타카나의 박력과 한자의 뭐 그저그런(?) 성격을 동시에 표출하기 때문에 일본어 공부 좀 하시다보면 그런 것들을 느낄 때가 있죠.
예를 들어 '나' 라는 의미의 일본어는 わたし(히라가나)、 ワタシ(카타카나)、 私(한자) 이렇게 세가지로 표현 가능한데, 히라가나는 자연스럽고 귀여운 느낌을 주고, 카타카나는 무언가 화가 나서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한자체는 문어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죠.
이런 언어에 대한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일본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조금씩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공부하는 것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랍니다.
그렇게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한 지 3일째 되는 날 나리타 공항에 내렸어요. 그런데 좀 놀랐습니다. 외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요. 어쩌면 인천공항과 너무나 비슷한 인테리어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전부터 생각해 온 건데, 나리타 공항은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가 뭔지 보여주는 아주 잘 지어진 생태공항 건축물의 표본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물론 제가 가본 나라 중에서요. 밴쿠버나, 홍콩 공항의 그 미래세계틱한 느낌도 물론 괜찮지만, 잔잔하게 천장 윈도우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과 내부 인테리어의 조화는 아주 포근한 느낌을 주죠. 물론 날씨가 흐린 날은 그냥 우중충합니다.
그리고, 제가 묵기로 결정된 코쿠분지의 기숙사에 가기 위해 티켓을 끊으려고 하는 순간, 저는 일본의 살인적인 물가와 정면으로 맞부닥쳤습니다. 3,980엔이더군요.
한국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요금이 리무진 버스 6000원이던데. 일본은 그 정도의 똑같은 거리인데도 약 6배의 요금을 받더군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표를 끊고, 자판기로 갔죠. 울면서 끊은 티켓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커피 120엔 이상, 콜라 150엔. 옆의 담배자판기 최하 250엔.
2년전이에요. 저는 그제서야 살인 물가라고 불리우는 일본, 그것도 그 한복판인 동경에 도착했다는 현실을 발견했죠. 공항 인테리어 비슷하다고 우습게 봤다가 큰 코 다쳤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일본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그 살인물가 충격과 더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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