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북론(征北論)'에 도장찍으러 현충일 날 방일하였는가?(1)

푸른하늘김 2003. 6. 7. 09:16
'정북론(征北論)'에 도장찍으러 현충일 날 방일하였는가?(1)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글:장팔현



오늘 필자는 목놓아 울고 또 울고 싶은 날이다. '시일야방성대곡'을 넘어 '시일야 방성통곡(是日也放聲慟哭)'을 해야 할 것 같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그렇게 방일을 말렸건만 노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다고 현충일 날 일본으로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정부는 노 대통령이 도착하기 1시간 20분전인 낮12시 20분 '유사법제'관련 3법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 시켰다. 이러한 외교적 무례(無禮)와 결례(缺禮)는 역사상 그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 아니 한국과 한국 대통령을 우습게 아는 처사인가?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일본은 장기적인 플랜을 짜놓고 무대를 만들어 한국 대통령을 초청했다고? 이러한 음흉한 계획에 너무 순진하게 그 무대에 맞춰 춤추러 갔는가?




굳이 6월3일부터 6월6일까지 잡혀있던 방일 일정이 일왕이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그의 일정에 맞추느라 현충일로 늦추어지고 국빈으로 격상하여 초청한다하니 감지덕지 일본의 간계에 넘어간 것은 아닌가? 뭐 그리 바쁘다고 방일을 서둘렀던가? 그것도 1965년 엉터리 한. 일 협정을 맺으면서 '독도폭파 발언'을 한 친일 노 정객에게 부탁하였다니 외교통상부의 외교력에 놀랄 따름이다.

우리에게는 현충일이요, 일본 우익 정치가들에게는 경사 날이자, 잔치 날 이었다. 여성편력으로 유명한 자민당의 우익 정치인 야마사키 타쿠(山崎拓)조차 유사법제 통과를 찬양하여 "감개무량하다"고 떠벌릴 정도였다. 그는 상대 여성의 자서전 발행으로 인하여 일본에 널리 알려져 창피를 당하던 '하반신(下半身)정치인'이었다. 물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공산당이나 사민당 당수의 비판 성명이 뒤이어 나왔으나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요' 두 당을 합해도 이젠 한 자리 수도 안 되는 무늬만 당인 장식품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이럴진대 외교통상부 장관 윤 영관은 아소 타로오 일본 정조회장(政調會長)이란 자가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했고, 한글은 일본인이 가르쳤다'라는 등 망언을 퍼붓는 데에도 불구하고 '일왕 방한을 추진 하겠다'하고 '일본문화를 완전 개방 하겠다'는 등 넋 나간 팔푼이 짓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8년이 넘게 일본 고대사를 전공했던 필자가 보아도 일본의 '유사법제'는 그 최종목적지가 한반도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약관화하다. 이는 역사적으로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학문적으로 체계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일본 우익인사들의 사상이다.

그 시초는 '임나일본부'라는 왜곡 기술로부터 시작된다. 고대에는 백제와 가야가 주체가 되어 왜군을 끌어 들였으나 일본은 일본이 주체가 되어 남한지역을 지배하였다고 왜곡함으로서 이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이 아무 죄의식 없이 이루어졌고 메이지 시대에는 '정한론'에 이어 급기야는 한일합방으로 이어진 것이다. 남한지배 사상인 임나일본부로부터 중세에는 국학자들에 의해 황국사관이 체계화되고 이는 오늘날의 우익인사들이 철저하게 신봉하고 따르는 사상이요, 종교이다. 일본 우익정치가들이 이럴진대 너무나 단순하고 순진한 한국 정치인이 과거는 묻지 않고 오히려 미래를 얘기하자고 선수를 치고 있으니, 일본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처사이다.

어찌하여 변함없는 일본의 우익 정치인에게 친근감을 느낀다느니, 코이즈미와 자신은 닮은 점이 많다느니, 이번 방일을 앞두고 코이즈미 일본총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며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코이즈미의 덕을 좀 보고 싶다는 등 대통령으로서는 어울리지 않고 체통도 없는 발언만 하고 있으니 '오호통재'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지금 0.01%도 안 되는 우익정치인과 사상가들이 이끌고 있으며 이를 300만 명의 '전몰가족 유족회'가 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수인 이들이 일본을 이끌고 있음에 우리 정치인들은 정신을 차려야한다.

일본 국민들은 양심 있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많으나 밑으로부터의 힘이 없고 그 어떤 영향력도 정부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에도 자유인권 사상이 있어 서구열강의 침입으로부터 한.중. 일이 중심이 되어 연대해서 막자는 '연대론'이 주를 이루었으나 일본이 중국에 승리하자, 이런 주장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또한 다이쇼(大正)시대인 20년대에도 자유, 민권, 민주사상의 바람이 일시적으로 일었으나 군사파시즘의 일제에 의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기억이 있다. 60년대부터 80년대에 일던 민주 자유사상도 일본의 불황과 함께 사라지고 전쟁에 의한 경제불황 탈출을 꿈꾸는지 이제는 1940년대와 같은 전시 동원체제와 같은 유사법제까지 만들어졌다. 이는 명백한 '전쟁준비법'이나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