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03년의 꿈- 유재순

푸른하늘김 2002. 12. 31. 19:40
2003년의 꿈- 유재순


불황에 우울한 열도..유학생들 모여 밝은 새해 소망
 도쿄가 텅 비었다.
 지난주 일요일 저녁, 차를 타고 신주쿠 번화가로부터 도쿄 역과 긴자거리를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그런데 신주쿠에서 도쿄 역까지 20분도 채 안 걸렸다. 차들이 없는 탓이다. 그렇다고 인도에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아니다. 특히 긴자거리가 유난히도 한산했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오가는 인파로 인해 북적댔을 거리가, 올해는 작정하고 휴면상태에 들어간 듯 가로수에 씌워진 작은 전기불만이 을씨년스럽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귀성객들로 북적거리는 도쿄 역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도쿄 시내는 죽은 도시 같았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 연휴기간이다. 그것도 장장 2주에 가까운 연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27일부터 실질적인 휴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장기간의 연휴를 얻은 샐러리맨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가 않다. 왜냐하면 보너스가 대폭 삭감됐거나 혹은 아예 생략됐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가족여행을 포기한 가정들이 많다. 대신 고향에 내려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도쿄 역 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26일부터 시작된 귀성 행렬은 30일 현재 130%의 승차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31일 오후 정도가 되어야만 소강상태가 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반면 해외로 떠나는 일본인들은 약 67만명.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작년 9ㆍ11 미국 무역센터의 테러사건 이후 주춤했던 해외여행이 다시 예년의 수준으로 되돌아 왔다고 한다. 이들의 평균 여행기간은 약 일주일.
 그럼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한마디로 '썰렁' 그 자체다. 워낙 일본인들이 가라앉아 있어서인지 한국인들도 덩달아 침체돼 있다. 일본인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던 한국 음식들과 유흥업소들이 밀집돼 있는 신주쿠와 아카사카, 그리고 우에노의 한국 식당가에는 손님들이 거의 없다. 그 동네 사람들끼리 사고 팔고 장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식당들이 텅 비었다.
 그 중에는 인건비라도 줄이겠다며 아예 가게문을 닫고 서울에 갔거나 개점 휴업을 한 식당들도 있고, 비록 문은 열었지만 손님이 없어 비디오로 시간을 때우는 가게도 부지기수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그 많이 오던 연하장과 달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이메일이라는 인터넷 편지가 있어 그 영향이 크긴 하지만, 최근 일본인들의 마음은 불황이라는 깊은 늪 속에 꼭꼭 갇혀 버린 것만 같다. 거기에다 기온 또한 오장육부가 모두 떨릴 만큼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인 유학생들로부터 우리 집에서 모이자는 연락이 왔다. 또한 몇몇 일본인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일본인들은 초대를 받지 않으면 절대로 남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외였다. 먼저 방문 의사를 밝힌 것은 물론 한국요리도 먹고 싶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잡채, 돼지갈비, 해물전 등 재료는 자기들이 사 올 테니까 도토리묵은 미리 집에서 쑤워 놓으란다.
 이 말을 들은 우리 옆집 아줌마가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유상은 행복하우.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에 구태여 찾아오겠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니. 아마도 유상의 2003년은 그래서 덜 외로울 거유. 우리 집에는 요 근래 10년 가까이 신년에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우."
 이 말을 들으며 지금까지 참 쓸쓸하다고 느껴왔던 기분이 갑자기 따뜻해지며, 2003년에는 결코 외롭지 않은 한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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