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 그리고 타이타닉

푸른하늘김 2002. 11. 21. 21:28
일본 그리고 타이타닉


글; 강동완 선배의 글입니다.



명장 James Cameron감독이 연출하고 Leonardo Dicaprio · Kate Winslet이 주연했던 영화 Titanic

금세기 최고의 러브 스토리라는 찬사와 함께 많은 이들에게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이 영화를 나는 2번을 보았다.

한 번은 그냥 관객으로서 또 한 번은 내가 감독이라면 이라는 조금은 황당한(?) 생각으로 James Cameron의 카메라 포커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나만의 영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열심히 화면을 쫓아 다녔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Cameron이라는 거장이 미처 보지 못했을(아니 외면 했을지도 모를) 그 무엇을 찾으려는 나의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사실, 타이타닉號는 거대한 호화 여객선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20세기 初의 불확실성과 부조리성의 함축된 의미로, 그리고 신천지를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좌절로, 또한 자본의 천박성과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메울 수 없을 것 같은 Gap으로 그렇게 한 시대의 상징적 의미로서의 '타이타닉'이 내게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야기로서의 '타이타닉' 보다 더 매력적임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James Cameron감독의 포커스 밖의 인물들에게 내 포커스를 맞추었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표정에 나의 온 관심을 기울였다.

두 주인공이 만들어 내는 사랑이야기 뒤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한 소년에게서, 또 호화 식당 쓰레기 통을 뒤지고 있는 남루한 한 소녀에게서 나는 이 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영화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오늘의 일본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 타이타닉의 영상이 좀처럼 지워지지를 않는다.

침몰하기 전에 벌어지던 초화화 파티, 갑판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던 Dicaprio와 Winslet.

지금 일본에서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정치적으로 악용하기'라는 초호화 파티가 한창 진행중에 있다. 누구도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무서운 기세로 파티는 열기를 더해 간다.

그리고 갑판위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고이즈미 총리와 극우 보수 군국주의의 추종자들.

마치 침몰하기 직전의 그 타이타닉號의 마지막 장엄함처럼.

물론, 일본이라는 국가가 타이타닉號 처럼 바다 속으로 영원히 수장되는 것을 나는 결코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래'라는 단어는 '공존공생'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라고 강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의 파티를 걷어치우고 눈을 돌려 주변을 바라봐 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화려한 파티장이 아닌 갑판위의 로맨스가 아닌, 원탁의 테이블을 마주하고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두 주인공을 진심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고정된 포커스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점을 맞춰주기를 고대한다.

그들은 한낱 영화의 엑스트라가 아닌 당신들이 존재하는 존재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20세기적 사고와 21세기적 사고는 분명히 다르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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