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리안 그리고 재외동포.

푸른하늘김 2002. 11. 18. 14:46
코리안 그리고 재외동포.


글:강동완 선배의 글입니다.


지난 14일, 15일 양일간에 걸쳐서 동경대학 山上회관에서는 동경대학 사회정보 연구소 주최로 "코리안 네트워크" 국제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일본 등지에 폭넓게 확산되어 생활하고 있는 코리안系 사람들을 국경을 넘어 네트워크화 하여 새로운 역사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그동안의 작업들과 앞으로의 과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물론,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앞으로의 사업 확대와 총체적인 동북아 네트워크의 결실을 위해서는 이후 일본지역 코리안들의 역할과 노력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과 한국이라는 당사자만의 참여가 아닌 일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참여와 관심도 이끌어내야 하는 어려움도 각오해야 할 것 입니다. 왜냐하면 재일 코리안의 문제는 당사자인 우리와 일본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다국간 共生의 네트워크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 입니다.





국내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재외 동포 문제에 대해서 우리모두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는 취지에서 두개의 글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는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재일 3세 청년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바라보는 남부 조선 초급학교 6학년 재일 4세 어린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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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무엇을 가지고 "민족"이라고 할까요?





어제, 오늘에 걸쳐서 동경대에서 열린 “코리안 넷트워크”심포지엄을 보고 왔다.
“북동아시아의 국경을 넘어선 코리안들의 넷트워크. 거기서 우리 겨레의 새로운 력사와 미래가 보여온다”…라고 심포지엄 판플렛에는 씌여있었다.

첨부터 기대를 해서 간것은 아니였다. 그냥 좀 구경하러… 간것이였다.

2일간 참가를 해보고, 역시도 느껴지는것들이 너무 많았다.
학자선생님들이 21세기 북동아시아를 이끌어나가는, 력사를 움직이는 하나의 “힘”으로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해외동포, 재외동포들의 존재에 주목을 하기 시작한것이였다.



우리 조선사람들이 일본, 중국, 옛 쏘련 등등 세계각국에 흩어져 살게 된 하나의 큰 요인은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있다.
조선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겨있던 조선민족이라는 물이 일제의 커다란 주먹에 의해서 그릇밖으로 흘러 넘친것이 바로 해외동포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그 이후 나라의 분단, 이민정책 등으로 해외에 로동력으로 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조선이라는 그렇게 그릇 밖으로 흘러넘친 해외동포라는 물은 외지에서, …죽고 태여나기를 반복하면서, 자기정체성을 찾아 모대기기도 하고, 동화되기도 하면서 조선인이냐? 거주국 국민이냐? 하는 갈등 속에서 신음하며 살아왔다.

제 친구중의 재미동포 2세인 오빠는 미국 한인타운과 좀 떨어진 곳에서 자라서, 자기처럼 생긴 동양인을 많이는 못보고 자랐다고 한다.
그런 그가 나를 보고 이런 물음을 던진 일이 있었다.

“자기를 조선사람이라고 안것이 언제야?”

나는 재일조선인 3세지만, 다행히도 민족의식이 강한 부모슬하에서 자라서, 거의나 내가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하는 고민을 하면서 산적이 없다.

나는 어릴 때, 일본보육원에 다닐 때부터 조선이름으로, 부모님을 “엄마”, “아빠”라고 불르면서 자랐다.

그래서 내가 자기를 처음 조선사람이라고, 내 주위에 있는 남들하고 다르다고 알게 된것은 보육원에 다니던 4, 5살때 쯤이였던것으로 기억한다.

어느날, 같은 보육원에 있던 애가 내 이름을 보고, 왜 이름이 다르냐고 물었던 일이 있었다. “히또미”, “유우키”, “카즈야”…라는 이름 속에서 “윤순이”라는 이름은 참 특이했던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마중하러 올 때마다 보육원 선생님이 “윤순이∼, 엄마가 기따요∼!(엄마 왔어요)”라고 부르는것도 “엄마”가 아니라 “마마”나 “오까아상” 아니냐고 그 친구는 말했다.

어린 나이에 그런 물음앞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냥 “내 이름은 윤순이고, 우리 엄마는 엄마다, 오까아상도 마마도 아니다”고 답했던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집에 가서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처음 듣게 된것 같다.(내 기억으로서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조선사람이 뭐고, 일본사람이 뭔지 알것도 없었다.
일본애들속에서 똑같게 놀고, 즐겁게 지냈다.

내가 조선이 뭐고 조선사람이 뭐고 하는것을 알게 된것은 민족학교를 다니기 시작해서부터다.



코리안 넷트워크, 코리안 넷트워크... 이 2일간 이 말을 거듭 들으면서 나는, 이 선생님들이 정말, 당사자부재의 론의를 하고계시지는 않을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넷트워크를 형성하자면, 당연히 넷트워크를 만드는 점과 점을 선으로 이어야 할텐데, 과연 그 점=개인이 코리안으로서의 자각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하는것이 의문이였다…

1세들은 아니라 할지라도, 외지에서 태여나 자란 2세, 3세, 4세… 그리고 그 땅에서 국제결혼을 한 부모밑에 자란 아이들은 과연 이 분들이 말하는 코리안 넷트워크의 구성원으로 될수 있겠는가…

중국이나 옛 쏘련, 일본에 사는 동포들의 거의 대다수가 일제의 조선지배에 의해 생겨난것이라면, 21세기의 주역으로 나서는 젊은이들의 거의 대다수는 그 땅에서 태여나 자란, 새 세대들이다.

지금 일본의 실정만을 놓고 보더라도 일본 각지에 민족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민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수는 전체 재일동포 비률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수자는 아니다.

10중 8, 9는 여러가지 리유로 민족학교에 안가고 일본학교에서 일본교육을 받고 있는것이 실상이고, 그들중 많은 수는 일본이름으로, 우리 말과 글, 우리 나라 력사도, 조선인들이 어떻게 일본땅에서 살게 되였는가 하는것 자체도 모르는 것이 실정이다…

그런 새 세대들의 실정을 무시한체로 무슨 론의를 한단 말인가…

민족의 한성원이라는 의식도 없고, 자신을 민족의 성원으로 규정지을수 있는 그 뭣도 안가지는, 그야 말로 이름도 없고, 피도 순수한 조선인의것이 아니고, 말도 모르고 력사도 모르고…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그들을 민족의 한성원으로 보겠다는것인가…

결국 나는 끝까지 당사자들이 소외된 론의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반세기를 넘게 민족교육을 해온 일본에서도 이런데…
오늘 들으니까, 연해주에서는 겨우 이제 민족학교를 짓겠다고 하고있고, 그것도 말을 외울수 있게끔 유치원부터 만들 생각이라는데…
조선유치원에 아이를 보낼려면, 그 부모교육부터 시켜야지 않은가…



일본에서 살면서, 흔히 일본에 오는 한국사람들의 입에서 우리 말을 잘 못하는 재일동포를 무시하고 깔보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도 동포다.
남과 북이 지난 20세기를 함께 힘들어하고 고생했던것처럼, 재일동포들과 다른 해외동포의 고민과 고통도 다 우리의 쓰라린 력사다.

사람은 그 누구도 자기가 태여나는 땅을 선택할수 없다.
그와 똑같게 자기 부모를 골라서 태여날수도 없는것이다.

나는 다행히도 일본에서 태여났지만, 민족의식이 강한 부모를 만나서 초급학교부터 대학까지 민족학교를 나왔다. 그래서 나는 일어도 알고 우리 말도 알고, 이렇게 게시판에 글도 올리고 있는것이다.

일본에 온 한국사람들의 입에서 “(말이 통하는)총련사람은 좋고”, “(안통하는)민단사람은 안된다”는 말을 듣게 될 때마다 나는 정말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또 억울하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이곳 동포청년단체에 몸 담그고 살아온 나는 밤마다 동포들의 집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부모들을 설득하고, 자식들을 설득하면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우리 말과 글, 력사 등을 가르치는 일들을 해왔다.

다 큰 자식이, 턱에다 수염이 나올 때까지 여태껏 “일본인”으로 살아온 청년들이 자신을 버리고 “조선인”으로 다시 태여나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잘 돌지 않은 혀를 돌려 가면서, 우리 말을 하고, 또 본국에서 온 사람을 접하고 그들과 우리 말로 대화를 한다는것은, 말이 통했을 때 느끼는 감격은, 아마도 그 사람들의 고민을 상상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평생 리해할수 없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선사람들이 과거에 일제식민지 통치하에서의 해방을, 자기 이름 석자를 되찾고, 조선말을 할수 있게 된데서 해방의 기쁨, 감격을 느꼈다며는, 오늘 일본에서 민족교육을 못받은 그들이 뒤늦게나마 자기자신을 되찾은것을 절대 홀시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들이 일본학교를 다닌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기때문에…


해마다 동포청년단체의 주최로 여름에 진행되는 2박 3일의 “일본학교재학 재일조선인학생 사마스쿨” 때가 되며는, 거기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기대감과 불안감으로 가만있지를 못한다.

그때도 그랬다. 대형뻐스가 떠나는 시간이 다 되였는데도 집합장소에 안오는 학생이 반드시 있다.
련락도 안되고 해서 답답한 마음으로 주위를 살펴보다가, 이젠 안되겠다고 반은 단념하면서, 나는 가는 길에 마실 음료수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하더니…
집합장소에서 100메터도 안떨어진 그 편의점에서 이번 사마스쿨 참가자인 한 학생이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해!”
불끈 화가 난 나는 그 애의 팔을 당겼다.
하더니 뜻밖의 말이 그에게서 돌아왔다.

“누나가 오면 갈려고…”

유리창 밖에는 사마스쿨에 떠나는 대형뻐스가 보인다.
서로 떠드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그 애는 엎어지면 코앞인 그곳까지 제 발로 걸어왔으면서도 내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

“누나가 안오면 어떻게 할려고…?”
“…”

나는 그 애의 손목을 잡고 뻐스를 탔다.
그 애는 내 옆에서 “이렇게 큰 뻐스에 타고 있느 사람 모두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이 안믿어진다”고 말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이 재일동포 새 세대들에 대하여, 고국을 떠나서 사는 해외동포들에 대하여 얼마나 상상의 나래를 펼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는 조선에 뿌리를 가지는 사람들은 모두다 우리 동포라고 하고싶다.
비록 말을 몰라도, 이름이 달라도, 혈통주의를 좋아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이 국제결혼 밑에 태여난 사람이라도, 지어는 눈빛도 머리 색갈이 달랐어도, 다 힘들고 고통스럽던 20세기를 함께 살아온 우리 동포들이라고 하고싶다. 나라가 분단되고 고국에 돌아갈 기회를 놓친채 반세기를 넘게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거니…

그리고, 그 사람들하고 다 같이 21세기의 우리 나라와 해외동포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싶다.
제 말이 틀렸을가요???






이야기 둘. 《아버지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

남부조선초급학교 6학년 리유의


나는 조선사람이면서도 일본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조선사람이고 어머니는 일본사람이기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면서도 나는 자기가 조선사람인줄을 몰랐습니다.

1학년이 되여서 우리 학교에서 우리 말을 배우고 우리 나라에 대해서 배우게 되여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기 우리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슬픈 력사를 학교에서 처음으로 배웠을 때 나는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버지의 나라와 어머니의 나라가 싸우다니…)
그때부터 나는 수업시간이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사람의 립장과 일본사람의 립장으로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조선사람들을 차별하는 일본사람이 있다고 들으면 화가 나면서도 매우 섭섭하기도 하고 우리 학교와 일본학교 동무들이 서로 교류를 하고 즐겁게 지내면 반갑고 참으로 기쁘게 됩니다.
나는 모든 일본사람과 조선사람이 나의 아버지, 어머니처럼 사이좋게 지내면 얼마나 좋을가고 늘 생각합니다.

2학기가 되여 선생님이 9월 17일에 력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수상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원수님을 만나게 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으로 놀랐습니다.

선생님께서 두분의 이야기가 잘 되면 앞으로 우리 나라와 일본은 참 가까워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기뻤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우리 나라와 일본이 사이좋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9월 17일, 학교에서 나는 고이즈미수상이 평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후 어떻게 되였는가 빨리 알고싶었지만 학교가 끝나고 소조(*써클)가 마친후 숙에 갔기에 알수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믿을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텔레비를 켜니 우리 나라가 일본사람을 랍치했다는 보도가 몇번이나 방영되였습니다. 나는 정말 믿을수 없었습니다. 믿고싶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밥도 드시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텔레비죤 앞에 줄곧 앉아계셨습니다.
이제까지 학교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생님은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무엇이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전화소리가 울렸습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시여 《녜?! 알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가요…?》라고 하시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무슨 일일가?)
나는 참 불안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랍치》, 《조선》, 《일본》 그리고 《학교》라는 말이 빙빙 돌았습니다. 그날 밤에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어머니가 학교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학교에는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교문에 들어서니 경찰의 자동차와 몇몇 경찰들이 서있어서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학교에서는 전체모임이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평양선언의 이야기와 랍치사건의 이야기, 그리고 이럴 때 우리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상한 일을 할수 있으니 등하교시는 특히 조심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교실에 가니 선생님도 힘없는 얼굴로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까지 옳다고 생각해서 말해오던것이 틀리고 있어서 참 안되였다고 하시면서 《너희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너희들을 위해서 이제까지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도 조선사람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오셨어요. 그러니 하나도 나쁜것은 없어요. 너희들도 사복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지만 조선학생답게 당당히 행동해야 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부터 등하교시는 선생님들과 함께 가게 되였고 하교시간도 빨라졌습니다.
선생님은 매일처럼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조선신보와 일본신문의 기사를 읽어주시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나라와 나라사이 그리고 지난 력사의 문제 등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것이 많고 모두 리해할수는 없지만 가슴이 아픈 일이였다는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와 일본의 사이가 더 빠른 시기에 좋아짛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가슴아픈 일은 없었을것인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납니다.

나는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신 평양선언의 내용대로 아버지의 나라인 조선과 어머니의 나라인 일본이 빨리 국교를 맺어 사이좋게 되면 좋다고 마음속으로부터 생각합니다.

9월 17일이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학교에 대해, 우리들에 대해 많이 걱정해주고계십니다.
나의 눈에는 힘을 합쳐서 우리들을 지켜주고 있듯이 보입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 어머니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나라가 달라도 서로 리해하고 힘을 합쳐 도와나갈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 빨리 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렇게 가슴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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