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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교과서에는 한국 고대사가 없다

푸른하늘김 2005. 4. 6. 23:44

중국 역사교과서에는 한국 고대사가 없다
현행 ‘역사과정표준’ 교과서(실험본)의 문제점
 


글: 김종성   http://www.digitalmal.com
 


 동아시아 역사전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저무는 과도기 국제질서 하에서, 동아시아 각국은 저마다 다음 역내(域內) 패권자가 되기 위한 물밑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동아시아 제국간의 경쟁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역사전쟁’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각국이 역사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에도 국가별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노골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방법으로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일본은 주로 자신들의 ‘전과’를 숨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은근하면서도 소극적인 방법으로 ‘역사왜곡’을 감행하는 중국은 자신들을 과대 포장하거나 상대방의 존재를 폄하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역사왜곡’에 맞서 한국 국민들은 격렬한 항의와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국민적 분노에 이해를 표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이 외교적 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북한 역시 일본측 역사왜곡에 대해 항의를 표시하는 한편, 중국의 한국 고대사 ‘왜곡’에 대해서도 남북학술교류 등을 통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동아시아 역사전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장면은 중국-대만의 역사전쟁이 있다. 양안(兩岸)에서는 대만이 중국과의 역사적 관련성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선공(先攻)을 가하고, 본토의 중국은 이를 방어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무튼 위와 같은 동아시아 역사전쟁 속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쪽은 아무래도 한민족인 것 같다. 주변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남북한은 크나큰 치욕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최근 들어 부쩍 강화되고 있는 중국측의 역사왜곡은 한국인들의 민족감정에 더욱 더 부채질을 하고 있다.
 
잠시 작년 8월의 상황을 돌이켜보기로 한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한국사 삭제사건’(2004. 8. 5)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8월 23일 서울에서 만난 한·중 양국 외무차관은 5개 항목의 구두 양해에 합의를 보는 것으로써 사태를 일시 봉합했다.
 
구두 양해 제4항에서는 "중국 측은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의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 대한 한국 측의 관심에 이해를 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감으로써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했다. 언뜻 들으면, 중국이 역사교과서 왜곡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것으로도 들릴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외교부 당국의 기대일 뿐이지 중국 정부의 진심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3월 6일 한국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중국의 ‘역사과정표준’(실험본) 교과서에서 한국 고대사가 사실상 완전히 ‘소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6일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교육부 의뢰로 작성한 ‘중국 역사교과서 한국 관련 내용 분석 보고서’라는 자료의 일부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자료는 지난 1월 교육부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연구원)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중국 교과서는 중국의 초급중학교(중학교) 및 고급중학교(고등학교)에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교재들이다.
 
연구원측의 분석 결과, 현행 중국의 중등 교과서에서 한국 고대사가 사실상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중 역사전쟁의 앞날이 멀고도 험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문제를 대함에서 있어서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중국도 역사 왜곡에 나섰다’는 식의 일부 언론 보도처럼, 우리가 자칫하면 이 문제에 감정적 대응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상대가 일본이 아닌 중국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본을 상대하듯히 중국을 상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교과서에서 한국사가 사실상 ‘왜곡’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왜곡 방식이 일본의 역사왜곡 방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중국의 방식이 훨씬 더 ‘교묘’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측 역사왜곡에 대응하는 방식과 중국측 ‘역사왜곡’에 대응하는 방식에 차별성을 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일본처럼 노골적으로 나오면 강력하게 대응할만한 명분이라도 생기지만, 지금 중국은 상대방의 대응 명분을 아예 차단시키는 방법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대응 역시 그에 맞춰 ‘기술적’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상대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절대로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개편되어 왔을까? 교과서 개편과정이 분쟁을 초래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중국 교과서에서 한국 고대사는 도대체 어떻게 취급되고 있을까? 그러한 의문점들에 하나씩 접근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참고로 한 자료를 미리 소개하기로 한다. 첫번째 자료는 중국근현대사학회(회장 유장근 경남대 교수)가 작년 9월 30일에 발행한 <중국근현대사연구> 제23집이다. 이 자료집에 실린 “최근 중국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속의 한국과 한국사”라는 논문은 위 연구원의 의뢰에 의해 수행된 연구 결과다.
 
3월 6일 언론에 보도된 연구원 자료는 기본적으로 이 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연구에 참가한 학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정영순 교수와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의 김지훈 연구교수다. 이 기사의 두 번째 자료는 논문 작성자인 김지훈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다.
 
먼저,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개편되어 왔는지 하는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1950년 인민교육출판사가 설립된 이래, 중국의 교과서는 인민교육출판사에 의해 독점 출판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중국 교과서는 ‘국정제’로 출판되었다.
 
그러다가 1985년 1월 국가교육위원회(지금의 교육부)에서는 성·자치구·직할시 교육위원회나 학교교사·전문가들도 교과서 편집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중국의 교과서 채택방식은 서서히 국정제에서 ‘검정제’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교과서 편집만큼은 국가교육위원회가 지정한 기관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1년에 이르러 이러한 사정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중국 교육부가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교과서 편집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어느 출판사든지 교육부의 검정만 받으면 교과서를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언급이기는 하지만, 자유경쟁이라고 해서 아무런 원칙 없이 교과서를 편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여전히 일정한 표준 하에 교과서가 편집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표준은 자유경쟁원리가 도입되기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1950년 이래 ‘역사교학대강’(歷史敎學大綱)이라는 통일된 역사교과서 표준이 있었다. 그리고 이 역사교학대강은 각급 학교별로 존재했으며, 여러 차례에 걸친 개정과정을 거쳤다. 다시 말하면, 1950년 이래의 중국 역사교과서는 역사교학대강이라는 하나의 표준에 의해 출판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2001년에 교과서 편집시장이 개방되면서 역사교과서의 표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 기존의 역사교학대강에 더해 ‘역사과정표준’(歷史科程標準)이라는 새로운 표준이 추가된 것이다. 그러므로 2001년 이래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2가지의 표준에 의거하여 편집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표준을 적용하는가 여부는 출판사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그런데 출판사가 기존의 역사교학대강에 의거하여 교과서를 편집할 때에는 정식교과서를 출판할 수 있지만, 새로운 역사과정표준에 의거하여 교과서를 출판할 때에는 한가지 제약이 있다.
 
그것은 일정한 실험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4년간 역사과정표준에 의거하여 편집된 교과서는 정식 교과서가 아니라 ‘실험본’ 교과서였던 것이다. 지난 3월 6일에 문제가 된 교과서가 바로 ‘실험본’ 교과서다.
 
‘한국 고대사를 삭제했다’는 비판을 받는 교과서는 바로 이 ‘실험본’,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역사과정표준 교과서인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기존의 역사교학대강 교과서와 역사과정표준 교과서가 함께 쓰이고 있지만, 조만간 역사과정표준 교과서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지난 3월 6일 한국 언론에서는 “올 9월에 정식으로 채택될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한국 고대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투의 보도를 했지만, 이 보도는 엄밀히 말하면 정확한 내용이라 할 수 없다.
 
김지훈 교수(중국현대사 전공)은 “현행 실험본 교과서가 올 9월 1학기(중국에서는 9월에 1학기 시작, 기자 주) 때부터 정식 교과서로 채택되려면 그 이전에 교육부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는 ‘9월부터 정식 교과서로 사용된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9월 이전에 내용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김 교수는 “기본적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겠지만 부분적인 수정은 있을 것”이라면서 “골격이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아직 정식으로 채택되지 않은 교과서를 놓고 중국을 비판하는 것은 좀 성급한 태도가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그래서 기자는 한가지 질문을 더 했다. “만약 한국 정부나 언론이 현행 실험본을 문제 삼으면 중국이 이를 시정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가?”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김 교수는 “설령 한국이 강하게 공격을 퍼붓는다 해도, 중국은 절대로 내용을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정 문제가 되면, 관련 내용을 아예 삭제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현행 역사과정표준(실험본) 교과서가 한·중 양국간의 분쟁을 초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사회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중국은 교육 분야에서도 일대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학생들의 자질 향상에 중점을 두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기초하여, ‘과다하고 어렵고 낡고 편중된’ 교육내용을 개선하고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높이는 방향으로 교과서를 개편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역사과정표준(실험본)은 암기 위주의 역사교육을 지양(止揚)하기 위해 ‘정선(精選)하고 다양하고 유연한’ 학습방법을 통해 학생들이 흥미진진하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그래서 역사과정표준 교과서의 분량은 대폭 축소되었다.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교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교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는 취지 하에 그렇게 된 것이다. 김 교수의 말에 의하면, 역사과정표준 교과서의 분량은 역사교학대강 교과서의 분량에 비해 거의 2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여기서 관심을 가질 부분이 있다. ‘학생들의 이해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교과서 분량을 줄였다’는 점이다. 분쟁이 생기는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분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한국 고대사가 거의 다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교과서를 줄임으로써 교사와 학생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또 토론과정에서 학생들의 사고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간 긴밀하게 접촉해온 한국과의 관계를 사실상 거의 다 삭제하고서 자신들의 역사를 과연 제대로 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 하겠다. 수업 현장에서 일선교사들이 ‘한국사랑’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중국인들이 한국사를 왜곡하려 한다기보다는 아예 한국이라는 나라를 대수롭지 않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새로운 역사과정표준의 편집 원칙 때문에, 교과서에서 한국 고대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럼, 현행 역사과정표준 교과서에서는 한국사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을까? 이 점을 살펴보기에 앞서, 중국 교과서에서 고대사를 기술하는 원칙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90년에 나온 <전일제중학역사교학대강>(全日制中學歷史敎學大綱)에 규정된 지침처럼, 중국 역사교과서는 타민족과의 상호협력과 공동발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술되고 있다.
 
다시 말해, 가급적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타민족과의 전쟁이나 갈등 같은 부정적 측면은 가급적 부각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인 것 외에 숨겨진 원칙들도 있다. 예컨대, 고구려-수나라 전쟁을 기술(記述)하는 방식처럼, 중국의 치욕적인 모습은 가급적 기술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민족간의 부정적인 측면은 가급적 부각시키지 않는다고 했지만, 고구려-수나라 전쟁처럼 중요한 사건마저 기술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마지못해 고구려-수나라 전쟁을 기술하기는 했지만, 그 전쟁 때문에 수나라가 멸망했다는 점만큼은 절대 기술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구려가 수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언급만 했을 뿐, 그 전쟁의 결과나 영향이 어떠했는지 하는 점은 의도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 역사교과서의 기술 원칙은 가급적 타민족과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되, 부득이하게 부정적인 측면을 노출시키는 경우에도 중국의 치욕스러운 면은 감추자는 것이다.
 
그럼, 한국의 고대사(古代史)라 할 수 있는 고조선~남북국 시기가 중국 교과서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중국 교과서에서 한반도가 처음 언급되는 것은 한나라(B.C. 202~A.D. 220) 시기부터다. 한국인들의 경우에는, '한나라' 하면 얼른 연상되는 것이 한무제의 고조선 침공(B.C. 109)이지만, 중국 교과서에서는 그 사건이 생략되어 있다. 고급중학교 <중국고대사>에 의하면 한나라와 삼한(마한·진한·변한)과의 우호적인 교류관계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자신들의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는 한무제의 고조선 침공을 생략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분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둘째는 가급적 타민족과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자는 원칙에 충실하다 보니, 자신들의 ‘화려한 날’까지도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역사교학대강을 기초로 한 2001년판 중학교용 <세계역사> 1책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역사과정표준 교과서에서는 삼국시대뿐만 아니라 아예 조선시대까지 모두 생략하고 말았다. “분량을 줄이는 김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모두 빼자”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본사에 관한 분량은 ‘약간만’ 줄었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일본이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었지만, 1592년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전혀 중요한 국가가 아니었다. 변방 신세를 면치 못하는 국가였던 것이다.
 
그런 일본에 관한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으면서, 베이징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의 고대사에 관한 기술은 사실상 전부 생략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교과서 분량을 줄이려면 보다 덜 중요한 부분부터 줄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사를 생략했어야 하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한국과 관련하여 모종의 의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또 이는 소극적 의미의 역사왜곡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전과를 숨기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기술은 할지언정, 중국처럼 아예 상대방을 부정해버리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역사왜곡 방식은 어찌 보면 일본인들보다도 더 교묘하고 더 ‘잔인한’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교과서에서 한국 고대사가 100% 삭제된 것은 물론 아니다. 신라의 경우에는 당나라와의 관계만 기술되어 있다. 그것도 신라와 당나라간의 우호적인 관계만 기술할 뿐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중국 교과서에서 신라시대 문인 최치원이 특별히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공부를 한 후 본국에 돌아가 중국문화를 전파했다는 ‘공로’ 때문에 최치원을 홍보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알맹이’가 빠진 채로 소개되고 있다. 인민교육출판사가 1999년에 출판한 중학교용 <중국역사> 2책에서는 “수양제가 고구려와의 3차례 전쟁에서 모두 실패하였다”는 기술을 하였다.
 
이는 물론 기존의 교과서다. 그런데 새로 나온 2003년판 인민교육출판사의 <중국역사> 2책과 2004년판 고교용 <중국고대사>에서는 “수양제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언급만 했을 뿐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는 것이다.
 
물론 “일선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자세히 설명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중국인들이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부정확한 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한 학생들이, 훗날 선생이 된다고 해서 과연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는 내용을 스스로 공부하려 할 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발해와 관련하여서는, 발해를 말갈족이 세운 중국국가라고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발해와 당나라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만 기술하고 있다. 발해와 당나라 사이에 있었던 전쟁 같은 측면은 모두 삭제한 것이다. 그리고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라는 한국측 주장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바와 같이, 지금 사용되고 있는 역사과정표준 교과서에서는 한국 고대사가 사실상 삭제되었으며, 불가피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소개된다 해도, 삼한·신라·발해 등과의 우호적인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중국문화가 한반도에 전파되었다는 측면만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수나라 전쟁처럼 부득이하게 전쟁관계를 소개해야 할 경우에도, 그 전쟁의 승패에 관한 내용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처럼 직접적으로 역사를 왜곡하지는 않지만, 중국은 한국 고대사를 아예 소개하지 않는 방법으로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식의 역사왜곡을 적극적 역사왜곡이라 한다면, 중국의 역사왜곡은 소극적 역사왜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항의를 제기한다면, 아마도 중국은 “교과서 분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생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중국 교과서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유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점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동북공정과 연관시켜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동북공정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동북공정이 실시되기 이전의 역사연구 성과가 지금의 역사과정표준 교과서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동북공정을 대하는 시각 말고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 8월의 역사전쟁에서는 한국이 일단 승리하였지만, 지금 중국이 벌이고 있는 역사왜곡은 또 다른 차원의 역사전쟁이다. 이것은 동북공정과는 또 다른 형태의 역사전쟁이다. 동북공정은 ‘과거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역사과정표준 교과서는 ‘과거에 한국은 없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중국 교과서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시각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대하는 방식과도 달라야 하겠지만, 작년도의 동북공정을 대하는 시각과도 또 달라야 할 것이다.
 
월간 <말> 4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