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선언, 그 이후
글: 김종성
‘불량국가’ 북한의 난데없는 ‘핵’ 선언으로 국제사회가 충격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가장 큰 심리적 타격을 받은 국가는
다름 아닌 미국일 것이다. 그럼, 북한의 ‘핵’ 선언은 향후 동북아 국제정치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핵’ 선언 이후의 동북아 구도를 전망함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북한에 정말로 핵무기가 있을까 없을까?”라는 의문은 이제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북한에 핵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해온 미국이, 이제 와서 ‘북한엔 핵이 없을 것’이라며 말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 하더라도, 미국이 북한을 ‘응징’할 수도 없다. 만약 미국이 대북 ‘응징’에 나선다면, 그 승패
여하에 관계없이, ‘유럽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중동에 주력하되, 동북아에서는 현상을 유지한다’는 부시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그
근저에서부터 허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을 그저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핵 보유’보다도 더 난처한 것이 있다. 바로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리더십이 일정 정도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2차례의 ‘북핵위기’를 조성하면서 북의 ‘핵무장화’를 저지하려던 세계 최강
미국이, 결국 북한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막지 못한 것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막기는커녕 도리어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을 물끄러미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금 미국은 정작 북한보다도 한국·중국·일본·대만 같은 동북아 국가들의 눈치를 더 살피고 있다. 일견 강경한 것 같은 미국의
대북발언은 사실상 동북아 국가들을 의식한 것이다. 동북아 국가들의 ‘민심이반’을 막으려는 의도인 것이다. 대만을 동북아 국가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대만문제 역시 한반도문제와 일정한 상호연관성을 갖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일단 대만도 동북아에
포함시키기로 한다.
아무튼 ‘대국’ 미국이 ‘소국’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 못했다는 점은, 동북아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에 결정적 상처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정작 북한보다도 이들 동북아 국가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최강으로만 알았던 미국이 ‘먹을 게
없어 그저 굶주리는 줄로만 알았던’ 북한에게 ‘한방 얻어맞는’ 장면을 보면서, 동북아 국가들은 미국의 리더십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미국의 리더십이 향후 일정 정도 상처를 입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의 리더십이 손상을 입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핵우산정책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일본 등의 동북아 국가들은 미국의 핵우산 정책 하에서 안전보장을 누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느닷없는’ 선언으로 인해 미국의 핵우산정책의 이미지가 결정적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이 핵우산
정책으로 동북아를 단속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틈을 비집고 ‘불량국가’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정책이 사실상
실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핵우산정책이 사실상 실패하였다면, 이제껏 미국의 핵우산정책을 신뢰해온 동북아국가들이 미국의 ‘국가신인도’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무디스’(Moody's Investors Service)가 신용평가라는 ‘잣대’를
휘둘러왔지만, 앞으로 미국은 동북아 국가들이 휘두르는 ‘잣대’에 자존심을 ‘구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동북아 국가 특히 이제까지 미국의 아시아정책을 ‘보좌’해왔던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된다면, 이는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신은, 적어도 중장기적으로 일본의 핵무장화를 재촉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핵무장한다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한국 역시 핵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한다면 대만도
이러한 대열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고, 대만이 핵을 가진다면 중국 역시 핵전력을 한층 강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동북아 국가들의 신뢰 상실은 핵무장의 도미노현상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동북아국가들이 저마다 핵무장 혹은 핵강화에 ‘열’을 올린다면, 그동안 핵우산정책 하에서 동북아 패권을 장악해왔던 미국의 위상이
동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굳이 미국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동북아에서 미국을 ‘밀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난 1945년 이래 동북아 국가도 아닌 나라가 동북아의 패권국가가 되어온 ‘기이한’ 현상이 비로소
종결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대로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든 않든 간에, 미국의 패권 약화는 앞으로 당연히 예견되는 필연적인 상황이다. 북한이
'핵‘ 선언을 하기 전에 미국이 북미관계 개선에 나섰더라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이미 북한이 선언을 해버린 이상 미국은 그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의 이번 ‘핵’ 선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향후 동북아 국제정세는 미국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앞으로 서서히 혹은 급속도로 동북아 패권을 상실할 것이라는 전망은 점차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어떤 모습으로 동북아 ‘챔피언 벨트’를 내놓는 가일 것이다. 미국의 ‘퇴장’이 시간문제라면, 미국 입장에서는
명예로운 ‘퇴장’을 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미국이 ‘명예퇴직’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과의 핵대결에 종지부를 찍고 ‘제2의
제네바합의서’에 서명하는 길일 것이다.
그런데 희망적인 것은, 미국이 처한 난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조만간 북-미 양국이 모종의 극적인 ‘반전’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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