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유산 '토건국가'가 지율스님을 죽이고 있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정치권-개발공사-토건업체 유착 지적
이태준 기자(월간 말) ltj@digitalmal.com
지율스님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주범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치권과 민간토건업체, 그리고 건설공사가 서로 유착해 개발이익을 내세우며 민주주의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토건국가' 체제가
한국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다.
21일 '민주사회 정책연구원'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개발공사와 토건국가의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총괄발제를 맡은 홍성태 교수(상재대 사회학)는 "전국 곳곳에서 6개 개발공사가 벌이는 각종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그 바탕에는 박정희식 근대화의 한계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박정희식 근대화가 낳은 구조적 문제'를 '토건국가'로 요약했다. 원래 토건국가는 전후 일본사회에서 나타난 정경유착과
부패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자민당 일당 지배체제에서 건설성(우리나라 건교부)이 민간건설 담합업체들에게 공사를 할당하고, 업체들은 정치자금을
상납하되 개발이익을 챙겨왔다. 건설성 관료들도 업체들한테서 뇌물을 받으며 공사 인허가를 해주고 퇴직 뒤 건설회사에서 안락한 일자리를 보장받았다.
이같은 토건자본-관료-정치권이 유착해 이윤을 나눠먹고 권력을 유지하는 체제를 설명해주는 개념이 바로 '토건국가'체제다.
건설자본-건설공사-정치권이 하나로 유착
홍 교수는 한국사회에도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이같은 토건국가 체제가 뿌리를 내렸다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군대와 경찰과 같은 물리력 뿐만 아니라 근대과학으로 무장해 나름대로 쳬계있는 개발사업을 추진한 국가기구를 갖췄다는 점에 주목했다. 바로 '6개
개발공사'(한국전력공사, 대한주택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농업기반공사, 한국토지공사)는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하면서 국가-재벌이 경제성장을
주도하는데 기반이 되는 사회간접자본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개발공사와 같은 국가기구를 만들어 사회간접자본의 생산과 공급을 사실상 전담하도록 한 것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문제는 개발공사가 추구하는 공익의 내용과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곧 개발공사의 사업방식은 지역 주민들을 의견 수렴하는 일은 고사하고 주민의 재산권과 생존권조차도 무시하며 일방으로 개발사업을 밀어붙이는 "군사작전식 반민주적" 방식이었다는 지적이다. '공익'의 내용 또한 '공업제일주의'와 '성장제일주의'를 목표로 자연환경과 지역사회문화를 파괴하는 "반생태"와 "반문화"였다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개발독재는 한쪽에 군대와 경찰을, 다른 한쪽에 개발공사를 거느리고 폭압적 근대화를 밀어붙였다"며 "이런 점에서
개발공사는 개발독재의 전위대"라고 설명했다.
토건국가체제, 정치민주화를 비웃다
문제는 "개발독재체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만든 사회체계까지도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홍 교수는 "한국 민주화 운동이 독재를 무너뜨리고 정치에서 절차상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개발독재가 낳은 '개발국가' 체제 - 국가가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성장 도구로 여기며 개발사업을 주도하는 체제 - 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개발국가체제 가운데 최악의 형태인 '토건국가' 체제가 한국사회에 자리잡았다는 지적이다.
'한국형 토건국가'도 정치권-개발공사-민간토건업체가 서로 유착해서 작동하고 있는 형태다. 곧 재벌계열 토건업체가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내는 대신 사업권을 따내어 막대한 개발이익을 보장받는다. 개발공사는 '공익'이 아니라 자기조직을 존속시키는 '사익'을 위해 끊임없이 토건사업을
계획, 추진한다. 정치권은 이러한 불합리한 개발사업을 '지역 표밭 관리' 차원에서 용인한다. 토건업체들은 더 많은 사업을 따내기 위해 개발공사에
뇌물을 바친다. 이러한 정치권-개발공사-토건업체 삼각 유착관계가 토건국가를 이루는 세 축이란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토건국가' 체제는 전국 곳곳에서 개발을 명분으로 생태계와 지역문화를 파괴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절차 또한 무시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위도핵폐기장 건설사업 논란(한전), 용인 죽전 택지개발과 주택개발 사업에서 개발폭리(토공, 주공), 한탄강댐 건설사업(수자원공사), 민자고속도로사업(도로공사), 새만금 간척사업(농업기반공사)는 그 단적인 예들이다. 그리고 천성산 관통 공사에 대해 정확한 환경영향평가를 요구하며 단식 100일째에 이른 지율스님의 단식투쟁도 결국 '토건국가' 체제를 근본 원인으로 하는 문제다.
토건국가가 지율스님을 죽여가고 있다
홍 교수는 '토건국가'를 바꾸는 핵심과제로 개발공사를 개혁하는 일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그 개혁방향이 현 정부가 추진중인 "경제적
효율성을 강화하는 민영화"나 "갈등관리하는 정책위원회 설치"와 같은 방향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발공사 자체에 대해 국민이 정책결정 과정에 언제든 참여해서 '민주적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발공사의 민주적 효율성을 높일 때 생태를 파괴하고 경제성없는 무모한 개발사업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홍 교수는 "2003년 새만금 일배와 2004년 지율스님의 목숨을 건 싸움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했다"며 "경제와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위해선 토건국가라는 개발독재와 고도성장의 구조적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발공사의 민주적 생태적 개혁은 그
핵심적 과제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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