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일교포가 본 총선

푸른하늘김 2004. 4. 14. 14:26
"일본 극우파말고 한국 극우세력부터 바꿔"
재일 교포가 바라본 총선 정국
글:박상규
▲ 재일 교포 3인과 총선 정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다.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촛불 집회 그렇게 많이 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져? 대다수 한국인 반대하지 않았어? 믿을 수 없어…. 한국 그러면 안 돼! 아, 정말 믿을 수 없어."

재일 교포 이의지(30)씨는 조금 황당한 웃음을 띠며 어설픈 한국말로 계속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전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대통령 탄핵을 가결했던 세력과 인물들이 다시 총선을 통해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의지씨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총선이 코앞에 닥친 지금. 투표 대신 황금 연휴를 즐길 것을 은근히 권유하는 <조선일보>를 제외한 언론과 방송, 그리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독려하고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만 20세가 넘으면 누구나 자연스레 갖게 되는 권리인 투표를 말이다.

그러나 만 20세가 되어도 투표권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들이다. 일본 정부는 귀화하지 않는 이상 재일 교포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 지역주의를 믿을 수 없다는 이의지(30)씨.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인이 아닌 사람.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키워졌지만 한국인이 아닌 사람. 때문에 이들은 경계와 주변을 서성거리며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이런 이들에게 투표와 선거는 언제나 남의 일이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투표권을 가져 본 적도, 투표를 해 본 적도 없는 재일 교포 세 명을 만나봤다. 2003년 봄에 입국한 이의지씨, 김애순(25)씨, 양우종(25)씨가 이들이다. 이들은 2003년 4월 국내의 국제교육진흥원에서 한국의 역사·문화·언어를 배우면서 서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과 함께 우리 나라의 총선과 정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총선을 앞두고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은 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리고 총선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들은 약간의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선거철마다 소외를 받아왔지만 그런 소외와 배제가 쉽게 적응이 된다거나 금방 잊혀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익숙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갈수록 투표권을 갖고 싶어진다는 것.

"원래 일본에서도 투표권이 없었어요. 태어나 한번도 국가 차원의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어요. 사실, 우리에게는 국가라는 게 좀 모호해요. 그런데 정말 투표하고 싶어요. 나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꼭 참여할 거에요."

이렇게 말하는 김애순씨는 투표권이 있으면서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안타깝다고 한다. 만약 자신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이전보다 훨씬 나랏일에 관심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본에 비해 투표율이 높은 한국인들의 정치 참여를 높이 평가했다.

"정치에 큰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투표권을 가지고 한번이라도 선거에 참여해 보고 싶어요. 그 느낌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요."

▲ 투표권을 갖고 싶다는 김애순(30)씨.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여럿이 어울리기보다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는 양우종에게도 투표권은 한번쯤 행사해보고 싶은 권리다. '나' 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집단 문화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양씨에게는 많이 낯설다. 하지만 지금의 선거 분위기는 직접 참여해 보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인터뷰에서 만난 3명 모두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의 거리 응원을 보면서 솔직히 부럽다거나 대단하다는 느낌보다는 집단 문화에 대한 공포와 무서움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탄핵 가결 이후 한국인들의 촛불 집회에서는 절대로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단다.

"역시 한국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일본에서는 그렇게 안 해. 아마 별 관심 없었을 거야. 그런데 역시 한국인들 대단해."

한국인들의 탄핵 반대 촛불 집회에 대한 느낌을 이의지씨는 "대단하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탄핵 가결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에 적지 않게 실망했지만, 시민들의 촛불 집회를 보면서는 "역시 대단한 한국인"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뿌리 깊은 한국의 지역주의를 설명했을 때 이들의 얼굴은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탄핵을 가결시킨 주인공들이 그 지역주의를 타고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설명했을 때 이들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며 혹시 농담을 하는 건 아니냐고 반문했다.

▲ 한국 사회의 '우리끼리' 문화를 지적한 양우종(25)씨.
"일본도 극우파 정치인들이 힘이 세지만 한국 정도는 아니야. 한국 극우 세력 힘 너무 강한 거 아니야? 만약 재일 교포들에게 투표권 있으면 일본 극우파들 힘 약해질 거야.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극우 세력을 지지하는 거야? 한국, 그러면 안 돼!"

이의지씨는 탄핵안을 통과시킨 한국의 국회의원들에 대해 "일본 극우파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지역주의 바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떻게 그런 지역주의가 생겼어?"라고 반문했다.

"한국 사회는 '우리' 관념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지역주의도 그런 '우리끼리'의 관념에서 나온 것 아니에요? '우리'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양우종씨의 이런 지적에 김애순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주의에 대한 개념은 물론이고, 그것이 불러오는 파장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기자가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시질 않았다.

우리 스스로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지역주의'를 교포들인 이들이 단번에 이해하기를 바라는 건 역시 무리였다. 탄핵 세력이 부활하려는 조짐이 일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해 이의지씨는 어설픈 한국말로 이런 쓴 소리를 남겼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극우파 비판하기 전에 한국에 있는 극우파들 먼저 척결해야 해. 촛불 시위하고 탄핵 반대했던 사람들 다 변했어? 아, 한국 그러면 안 돼! 발전 못해! 투표 열심히 해서 바꿔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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