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른 눈으로 조선을 보는 역사평론가 이덕일 씨

푸른하늘김 2004. 3. 24. 12:31

다른 눈으로 조선을 보는 역사평론가 이덕일 씨

 

인사동에서의 술자리

 

 

<살아있는 한국사>, <이덕일의 여인열전>, <오국사기>, <역사에게 길을 묻다>, <사도세자의 고백> 등을 저술한 역사평론가 이덕일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가끔 그의 글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려있어 보기는 했지만 역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별로 주목하여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2월 하순 월간'말'의 이종태 편집장과 월간 '피플'의 송복남 발행인과 함께 이덕일 선생을 인사동의 식당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단연 대화 주도는 이덕일 선생이 했다. 헌종, 사도세자, 정약용 형제, 숙종, 조광조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질문은 역사문제 관심이 많은 월간'피플'의 송복남 발행인이 많이 했다.

 

"보통의 역사학자들은 조선사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은 세종, 영조, 정조 같은 분들이라고 말씀을 하지만 저는 그분들 보다 헌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후궁을 들이지 않은 임금이며 페미니스트에 예송논쟁 두 번을 제외하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임금입니다. 그만큼 태평성대라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헌종 시대에 관한 책을 한 권쯤 낼까 생각 중입니다."

 

헌종이라! 남들이 주목하지 않은 것을 잘 보는 사람이 학자가 된다더니,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임금이 아닌가. 월간 '피플'의 송복남 발행인도 전부터 헌종을 주목하고 있었고, 헌종에 관한 책을 한 권 발행하자고 제안을 했다.

 

사실 요즘 같이 어수선한 정국에서는 단연 조광조 같은 인물이 생각난다. 급속한 개혁을 원하던 그는 중종시대의 공신이다. 그러나 그가 정권을 잡기 무섭게 잘못된 공신세력을 척결하자는 주장을 하게 되는데 너무 급격하였다고 생각한다.

 

"조광조는 집권 직후부터 개혁의 칼을 휘두르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손발도 없이 말입니다. 당시 조광조에 주장에 따라 과거를 보지 않고 입궐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아직은 힘이 없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광조는 너무 서두른 것입니다. 한 10년은 세력을 모은 다음에 칼을 휘둘러야 하는데 말입니다."

 

힘도 세력도 없이 칼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보면서 너무 성급한 인물들이 있고, 또 너무 어린 사람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신들의 자유주의 속성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비굴함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내용적으로 보자면 별다른 차별성이 없지 않은가. 중도적이지만 친미적이며 자유주의적 정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

 

"조선사에서 정약용 형제의 역할은 아주 크다고 봅니다. 천주교를 전파한 것으로부터 실학을 자리잡게 하였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정약종, 정약용, 정약전 형제의 노력으로 조선후기가 변화의 시기가 된 것입니다. 정조가 단명하지 않았다면 조선 후기는 최고의 시기에 되었을 것인데 안타까울 뿐입니다."

 

조선의 학자 중에는 정도전과 정약용 정도가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다. 정도전이 만일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면 조선은 세계최초의 공화국이 되었을 것이다. 정약용 형제를 권력의 핵심으로 정조가 제대로 등용하여, 오랫동안 임금으로 있었다면 조선은 아시아 최고의 강국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조가 얼마나 똑똑 했던가!

 

"조선뿐만 아니라 왕조시대에는 임금은 선하고 백성들의 원성을 언제나 들어주는 성군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조선후기 민란이 많은 시기에 탐관오리가 넘쳐나고, 백성들은 임금님이 모르고 계셔서 그렇지 알기만 하면 탐관오리들을 몰아내고 우리를 위해서 노력해주실 분이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진압 군이 내려오면 그들과 대화를 통하여 임금에게 사실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많았지요."

 

현실적인 고민을 역사를 공부하면서 다시 느끼고 판단하게 된다고 하는데, 최고 권력자가 바로서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쉽게 책에서 보지 못하는 진실을 역사학계의 이단아 혹은 기린아로 불리는 이덕일 선생을 만나면서 많이 느끼었다. 식사를 마치고 술집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술을 한잔하면서도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 집으로 돌아 갔지만 그날 밤 조선사를 다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이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