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위대 선발대 이라크 진입...

푸른하늘김 2004. 1. 22. 02:56
자위대 선발대 이라크 진입... 루비콘 강을 건넌 일본


글:박철현



이탈리아 북쪽에 위치한 루비콘 강. 흔히 폼페이우스와 케사르 간의 일전을 묘사할 때 등장하는 머나먼 남유럽의 이 강은 케사르의 명언인 "주사위는 던져졌다"와 더불어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간혹 인구에 회자된다.

정치인, 재벌기업의 오너 등 사회적 공인들이 '결단'의 순간에 종종 인용하는, 그래서 신문의 표제어로 자주 쓰이는 이 표현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지극히 가치중립적이다. 그 결단의 이후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독자들은 포지티브하게, 혹은 네거티브하게 판단할 뿐.

어제(20일) 일본정부는 "역사에 대한 퇴보와 배신"이라는 네거티브를 동반자 삼아 루비콘강을 건너는 '결단'을 내렸다. 물론 이것은 지난 19일 저녁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 입성한 육상자위대의 선발대 30여명이 전후 첫 전투지역인 이라크 땅에 발을 디딘 것을 일컫는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자위대는 분쟁지역에 관해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평화헌법의 정신 역시 58년만에 폐기되었다.

이라크를 종전지역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전투지역으로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법리 논쟁이 결론 나지 않았음은 물론, 자위대는 고이즈미 정부의 파견 명분이기도 한 이라크 부흥과 재건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만한 조직이 아니다라는 여론이 우세한 지금 이 시점에서 이루어진 일본의 이라크 파병.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신문 등 각종 언론이 실시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도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목소리가 과반을 점하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내각은 이라크 파병을 과감히 추진해 버렸다.

방위청은 그간의 설왕설래는 어디로 갔냐는 듯 선발대 파병 이후 계획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킬 예정이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이시바 방위청 장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선발대의 조사는 약 일주일여에 걸쳐 이루어질 것이다, 27~28일 경에 선발대가 귀국하면 그 이후 공병(시설부대)가 70~80명 정도 파견될 것이고, 막사 등 부대 시설이 완공될 즈음해서 본대 470여명의 육상자위대를 파견하려고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즉 빠르면 2월말, 3월 초순 경에 일장기를 단 대규모의 일본의 군인들을 이라크 지역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고이즈미 내각의 불도저식 이라크 파병에 대해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군소야당들의 반발은 거세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제1거대야당으로 성장한 민주당은 각종 고이즈미식 경제개혁 등에는 반발을 하면서도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일정지분을 획득하고 있는 보수성향의 자유당 인자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일까? 아니면 내부적인 판단미스인가?

이라크 파병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선례를 남겨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평론가 시모다 코지, 오사카 경제법과대학의 요시다 야스히코등은 이렇게 지적한다.

"이번 고이즈미 내각의 이라크 파병은 단순히 몇십명 몇백명이 이라크에 갔다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라크 파병은 장래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거대한 사안이다.

유학생 비자거부, 매춘관광 등 중국과의 트러블은 물론, 납치문제로 백지가 되어버린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독도문제로 비롯되는 한국과의 각종 문제 발생 등 고이즈미 내각은 인접아시아 국가들과 계속적인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는 이 순간에 저런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자위대가 머나먼 이라크 전투지역에 몇백명을 상륙시켰다는 것은 앞으로 중국과 한반도에 몇만명을 상륙시켜도 된다는 전례를 남긴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이 평화헌법의 정신에 위배했다고 저렇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모다 코지)

"이젠 일본의 우경화를 논하는 것조차 짜증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6자회담 앞두고 저런 결정을 내린 것은 탈아(아시아를 벗어남)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영원히 말이다. 매스컴이 반성해야 한다. 사실 우경화가 시작된 것은 북한과의 납치문제를 매스컴이 흥미위주로 보도하면서 촉발된 것이다.

평화헌법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왜 일본이 육상자위대를 파견하면 안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젊은이들은 요즘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왜 일본은 군대를 가져서는 안되는가 하는 말들을 공공연히 내뱉는다. 심각한 역사의식의 결여다. 자위대의 파병은 절망적이다. 이번 건은 일본이 인접아시아 국가들과 결별을 선언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요시다 야스히코)

두 지식인이 지적한대로 이번 파병은 그간 고이즈미 내각의 우경화 총완결편으로 일본정부의 심각한 역사의식 부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헌법의 정신을 위배한 퇴보의 정치. 2004년의 일본은 입국관리국의 아시아계 외국인 불법체류자 단속, 한국-중국-북한과의 갈등과 결국 미국의 입김에 따른 이라크 파병으로 우울하게 시작되었다.

"역사는 퇴보하지 않는다, 다만 진보할 뿐이다"는 명제는 근대의 진리 중 하나이다. 랑케, 카, 포위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객관주의적, 인간중심적, 계급중심적 역사가들 역시 이 명제 앞에서는 옷깃을 여민다.

그러나 일본은 종전 이후 자의든 타의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이 진보의 역사에 퇴보의 망치질을 연달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소수의견만으로 존재하리라 여겨졌던 극우세력들의 의견이 한 국가의 방향을 정하고 있다.

또 그것에 메스를 들이대어야할 매스컴이 동조하고 있는 형편이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일반시민들은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생업에 쫓기느라 정신이 없다.

일본,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한번 건넌 루비콘 강은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악마의 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