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왜곡은 병이다!
진정한 역사학자의 탄생을 기대하며...,
글:장팔현
오늘은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에 있어 가히 대표적이라 할만한 두 인물을 소개하기로 한다!한 사람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낭인출신의 역사학자요, 또 한 사람은 고고학의 권위자에서 사기꾼으로 전락한인물이다. 우선 후지무라부터 알아보자!
후지무라 싱이찌는 유적 발굴의 카미사마(神樣)?
일본 속담에 "냄새는 곳은 뚜껑을 덮어라.”라는 말이 있다. 자랑스럽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는 덮어두고 기꺼이 내보이려면 잘 포장하고 꾸며야 한다는 논리이다.
한 예로 일본역사 왜곡으로 저명했던 한 고고학자가 알고 보니 거짓 날조로 밝혀져 세계적 망신을 자초하고 교과서까지도 바뀌는 수모를 당했다. 토후쿠 구석기문화 연구소 부이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던 그는 발각 전까지만 해도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입지전적이고 독보적인 그야말로'신의 손’이란 칭찬을 받던 대단한 고고학자였다.
워낙 신들이 많이 사는 곳이 일본이라서 나도 일본에 있을 때는 그 명성만 듣고도 그가 진짜 신(神)인 줄 알았다. 고교졸업 후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고고학자인 그가 발굴하는 곳에는 분명 신의 가호가 있었나보다.
왜냐하면, 그가 발굴한 무려 180여 곳에서는 반드시 구석기나 신석기 유물이 나왔으니 말이다. 일본인들은 탁월한 신에 의한 백전백승의 발굴 성과를 볼 때마다 자랑스럽고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졌다.
과거에 있어 대륙이나 한반도보다 문화가 한참 뒤떨어졌고 인류역사도 짧다는 것이 상식이었는데, 일본열도에 70만년 전부터 인류가 살았다니 후지무라 싱이찌(藤村新一)는 과연 대단한 고고학자였다. 그는 신적인 존재로서 우익인사들에게는 둘도 없는 일본의 자랑거리요, 보배요, 우상이었다.
그런데, 아니,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마이니치신문사 취재진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200년 10월22일 날조의 대가이신'신의 손’이 치명타를 입고 말았으니 말이다. 바로 그에 의해서 미리 만들어진 돌도끼, 돌칼을 새벽에 몰래 묻던 장면이 적외선 카메라에 잡혔고 그것도 모르고 뻔뻔스럽게 발굴 성과를 발표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우익인사들의 반응은 쥐구멍이라도 찾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며 국익을 칼로 베듯 내쳐버린 마이니치신문사가 마냥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이 얼마나 세계인의 비웃음을 샀던 일이었던가? 그가 발굴하고 발표한 180여 곳 전부의 유적지가 모두 날조라니,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이렇게 날조된 연구 성과물을 우익 출판사들은 사실인양 교과서에 싣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니, 그이 별명'신의 손’은 사실은'사기꾼 손’에 불과 했던 것이다. 이는 월드컵 축구 시합에서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 선수가 심판도 못 알아보게끔 교묘히 손으로 골인을 넣었던 것과 무엇이 다르랴! 마라도나 선수나 후지무라나 둘 다 '신의 손’이라 불렸던 정직하지 못한 인물이요, 손재주만 능한 마술사였던 것이다. 그들의 트릭이 발각되었을 때 세계인은 그들을 야유하고 조소하듯이 일본의 고고학은 이제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일본 역사의 왜곡은 언론 및 출판사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 우익언론사인 산케이신문사가 앞장서고 있고 관련 회사인 부상사(扶桑社)가 특히 요란스럽다. 그 외에도 제국서원(帝國書院)과 일본문교출판 및 오오사카 서적과 청수서원(淸水書院) 등도 왜곡 기술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왜곡의 농도가 짙으냐 옅으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부상사의 교재 채택이 2002년 기준 0.04% 이고 일본문교출판이 2.3%, 청수서원이 2.5%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화 된 일본의 우경화와 우익출판사들의 연합공세로 이들의 악영향은 일본전국에 곰팡이 번지듯 퍼질 것이 뻔하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아유카이 후사노신이 역사학자라고?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은 병이자, 하나의 포장 작업이다. 특히 객관적 시각을 결여한 국사학자들은 일본 역사를 꾸미고 포장하는 미장이에 불과할 뿐이다. 일찍이 일제시대에 일본과 한국인은 동일 조상을 둔 민족이라는'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 맹위를 떨친 적이 있었다.
물론 일본에서 주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고대에 일본열도에서 한반도로 이주 해온 왜인 선조에 의해서 한민족이 형성 되었다는'임나일본부론’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모순 된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주동자 중의 한명으로 참여했던 일본인 식민사학의 거두 아유카이 후사노신이,『삼국사기』「신라본기」'열전’에 나오는"석우로, 박제상, 물계자도(모두 열도에서 신라로 간)일본민족의 자손이다.”라는 엉뚱한 주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표적 식민사학자에 왜곡으로 일관했던 후사노신은 심지어 신라 화랑(花郞)조차도ꡐ창기(娼妓:창녀)’로 풀이한 엉터리 사학자였다.
일본인들은 역사왜곡에 대하여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중세 이후 미천한 가문에서도 돈을 벌면 족보(카케이즈)부터 꾸미는 일이 있었다. 오다 누부나가와 토쿠가와 이에야스도 족보는 물론 이름까지도 자유자재로 바꾸었을 정도였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족보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상인까지 등장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족보라 해도 일본에서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족보는 성공한 현재의 자신을 꾸며주는 장식품이라는 인식이 앞서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같은 혈족이 아니더라도 양자를 받아들이거나 가업을 잇게 하는데, 그것은 일본인들이 혈통보다는 이에(家)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순수 혈통주의라면 일본은ꡐ이에’중심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기에 왜곡되고 날조된 것이라도 받아들이던 사회였다.
역사를 하나의 객관적이고 진실을 묘사하는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추종되는 하나의 장식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필자는 일본에 진정한 역사학자는 드물고 일본역사만을 과대포장하고 꾸미는 미장이요, 국사학자만 많다고 보는 것이다. 진정한 역사학자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본인들도 어려워하는 일본인들의 성명(姓名) 읽기 (0) | 2003.12.27 |
|---|---|
| 성공적인 일본유학의 길 10가지 (0) | 2003.12.26 |
| 오오사카인은 못 말려 ! (0) | 2003.12.23 |
| 일본의 관료주의와 정치 (0) | 2003.12.22 |
| 소도(蘇塗)와 신사(神社) (0) | 2003.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