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蘇塗)와 신사(神社)
인간에게 신성한 곳 한 두 곳은 필요할지도
글:장팔현
소도란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제사지내던 곳으로 범인이 그 지역에 들어가도 잡지 못하던 신성시 하던 구역임은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워서 다 알 것이다. 이러한 소도가 있었음은 삭막한 사바세계 내에서도 한 숨 돌리고 쫓는 자나 쫓기는 자나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가지기 위해 설정된 죄인에게는 그야말로 오아시스 아니던가?
요즈음의 현대판 소도라 함은 명동성당이 그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곳은 신성한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데모가 있거나 장기 농성중일 때는 거의 대부분 명동성당으로 밀고 들어가는데, 공권력도 성당 측의 요구가 있기 전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흘러도 인간의 기본 심성은 예나 지금이나 이어지는가보다.
일본에서도 소도역할을 하는 곳이 신사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니라고 본다. 일본에서는 백제로부터 552년에 불교가 전래 돼 들어가고 나서도 조상숭배사상인 신도도 함께 믿는 일본 특유의 혼교주의(신크레티즘)인 신불습합(神佛習合:신부쯔 나라이아이)이 유행해져, 메이지 정부 때 신불 분리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신사 내에 사찰이 있고, 사찰 내에도 신사를 세우는 등 이종 종교가 한 마당에 혼재된 상태로 지어지기도 했다.
일례로 왕인박사가 정착해서 살던 오오사카의 히라카타시(枚方市)에 가보면 백제 멸망 후 그 곳으로 이주해간 백제왕족인 경복(敬福-의자왕의 왕자인 선광(禪廣)의 증손)이 백제사를 세웠던 백제사 터가 있다. 이 사찰은 신라의 감은사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백제사 안뜰에 백제왕신사가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사찰 안에 신가가 지어졌고, 지금까지도 사찰 터와 신사가 공존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신사는 매우 신성시 하는 중요 구역으로써 신사에 가면 옷깃을 여미게 되고 하물며 쓰레기 하나, 꽁초하나 버리는 것도 조심하게 되는 것이 인간심리일 것이다.
한국의 유명 가문에 사당이 있고 왕조에는 종묘가 있었다. 백제가 동명왕을 제사지내기 위해 왕묘를 세우거나(『삼국사기』「백제본기」다루왕2년조, 신라가 6세기 초에 신궁(神宮)을 세우고 조선왕조에서 선왕들을 위해 종묘(宗廟)세워 제사를 지냈듯이 일본은 일왕가의 조상을 위해 신사보다 격이 높은 신궁(神宮)을 두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일본에 가면 전통적인 네거리 모퉁이에 ‘쯔지도오(辻堂)’라는 곳이 있다. 돌부처에 빨간 손수건 같은 것을 목에 걸어놓고 앞 제단에는 향은 물론 과일과 때로는 돈도 던져놓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 앞을 지나가는 할머니들은 두 손 모아 합장한 후 과일이나 돈이라도 제단에 놓고 간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성황당과도 같은 곳도 일본에서는 매우 신성시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쯔지도오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선하게 해주는 종교역할을 해주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곳에 놓여있는 과일이나 돈도 신에게 바친 공물(供物)이라는 사고가 그들에겐 강하다. 배고픈 걸인이 돈과 과일을 먹었다가 죄인으로 잡혀서 엄한 형벌을 받은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에게는 신성시되는 길거리에 있는 축소판 신사라고나 할까? 하여튼 일본인들은 수십만 신을 모시는 원시종교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소도가 신성시되는 곳이라면 일본은 신사 경내와 쯔지도오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이러한 소도의 필요성은 반드시 죄를 저지른 범인만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 모두의 범인(凡人)들에게 필요하지 않을지?
각박한 세상살이에 가끔은 그러한 신성한 구역이라도 있어야 한 템포 느긋이 다시 한번 나쁜 마음도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에게 신성한 곳 한 두 곳은 필요할지도
글:장팔현
소도란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제사지내던 곳으로 범인이 그 지역에 들어가도 잡지 못하던 신성시 하던 구역임은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워서 다 알 것이다. 이러한 소도가 있었음은 삭막한 사바세계 내에서도 한 숨 돌리고 쫓는 자나 쫓기는 자나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가지기 위해 설정된 죄인에게는 그야말로 오아시스 아니던가?
요즈음의 현대판 소도라 함은 명동성당이 그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곳은 신성한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데모가 있거나 장기 농성중일 때는 거의 대부분 명동성당으로 밀고 들어가는데, 공권력도 성당 측의 요구가 있기 전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흘러도 인간의 기본 심성은 예나 지금이나 이어지는가보다.
일본에서도 소도역할을 하는 곳이 신사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니라고 본다. 일본에서는 백제로부터 552년에 불교가 전래 돼 들어가고 나서도 조상숭배사상인 신도도 함께 믿는 일본 특유의 혼교주의(신크레티즘)인 신불습합(神佛習合:신부쯔 나라이아이)이 유행해져, 메이지 정부 때 신불 분리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신사 내에 사찰이 있고, 사찰 내에도 신사를 세우는 등 이종 종교가 한 마당에 혼재된 상태로 지어지기도 했다.
일례로 왕인박사가 정착해서 살던 오오사카의 히라카타시(枚方市)에 가보면 백제 멸망 후 그 곳으로 이주해간 백제왕족인 경복(敬福-의자왕의 왕자인 선광(禪廣)의 증손)이 백제사를 세웠던 백제사 터가 있다. 이 사찰은 신라의 감은사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백제사 안뜰에 백제왕신사가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사찰 안에 신가가 지어졌고, 지금까지도 사찰 터와 신사가 공존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신사는 매우 신성시 하는 중요 구역으로써 신사에 가면 옷깃을 여미게 되고 하물며 쓰레기 하나, 꽁초하나 버리는 것도 조심하게 되는 것이 인간심리일 것이다.
한국의 유명 가문에 사당이 있고 왕조에는 종묘가 있었다. 백제가 동명왕을 제사지내기 위해 왕묘를 세우거나(『삼국사기』「백제본기」다루왕2년조, 신라가 6세기 초에 신궁(神宮)을 세우고 조선왕조에서 선왕들을 위해 종묘(宗廟)세워 제사를 지냈듯이 일본은 일왕가의 조상을 위해 신사보다 격이 높은 신궁(神宮)을 두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일본에 가면 전통적인 네거리 모퉁이에 ‘쯔지도오(辻堂)’라는 곳이 있다. 돌부처에 빨간 손수건 같은 것을 목에 걸어놓고 앞 제단에는 향은 물론 과일과 때로는 돈도 던져놓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 앞을 지나가는 할머니들은 두 손 모아 합장한 후 과일이나 돈이라도 제단에 놓고 간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성황당과도 같은 곳도 일본에서는 매우 신성시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쯔지도오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선하게 해주는 종교역할을 해주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곳에 놓여있는 과일이나 돈도 신에게 바친 공물(供物)이라는 사고가 그들에겐 강하다. 배고픈 걸인이 돈과 과일을 먹었다가 죄인으로 잡혀서 엄한 형벌을 받은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에게는 신성시되는 길거리에 있는 축소판 신사라고나 할까? 하여튼 일본인들은 수십만 신을 모시는 원시종교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소도가 신성시되는 곳이라면 일본은 신사 경내와 쯔지도오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이러한 소도의 필요성은 반드시 죄를 저지른 범인만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 모두의 범인(凡人)들에게 필요하지 않을지?
각박한 세상살이에 가끔은 그러한 신성한 구역이라도 있어야 한 템포 느긋이 다시 한번 나쁜 마음도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오사카인은 못 말려 ! (0) | 2003.12.23 |
|---|---|
| 일본의 관료주의와 정치 (0) | 2003.12.22 |
| 쓸모없는 893 멍통 인생도 분명 일본문화이다. (0) | 2003.12.21 |
| 한국과 일본의 식당 (0) | 2003.12.21 |
| 아직도 일본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0) | 200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