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을 물려받다 보니 벌써 300년
10代를 이어온 이이즈카(飯塚)약국
일본에서는 가업을 이어오는 유명한 가게들이 많다. 소위 老鋪(시니세·しにせ)라고 하여 3, 4代는 기본이고 10代 이상을 이어온 가게들도 많다. 서울의 청진동 해장국집들이 전쟁 이후부터 한번도 가마솥의 불을 끄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대를 이어가는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소바나 우동집 중에도 수백년을 이어온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동네의 조그만 음식점을 비롯하여 식품점, 의원, 책방, 빵집, 오뎅가게, 두부가게, 기모노 집, 어물전 등등.
지난 토요일 아들놈의 보육원 운동회를 끝내고 나서 점심거리를 사기 위해 집 근처 식품점에 갔다가 주인 아저씨에게 "이 가게는 생긴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라고 한번 물어 보았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4대째니까 대략 100년은 된 것 같군요"라고 대답했다. "4대째라고요, 대단하시군요"라고 놀라는 표정을 짓자 "저기 골목 끝에 있는 이이즈카(飯塚) 약국은 300년이나 되었는 걸" 이라고 대답을 했다. 내가 놀라는 표정으로 "300년이라고 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래 300년, 못 믿겠으면 한번 가 봐"라고 말했다.
주인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골목 끝에 있는 이이즈카(飯塚)약국으로 갔다. 300년이 되었다는 약국 치고는 작고 초라한 간판에 비좁고 낡은 건물의 1층에 이이즈카(飯塚)약국은 자리 잡고 있었다.
가게로 들어서자 손님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주인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보였다. 내가 들어서자 눈 인사를 하고 다시 손님과 상담을 끝내고는 일을 마무리 했다. 손님이 돌아간 후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이 약국이 300년이나 되었다면서요?"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놀라면서 "벌써 그렇게 되었나! 자료를 봐야 알겠는데"라고 대답을 하더니만 주인 아저씨는 이내 안으로 들어가 책 한권을 들고 나왔다.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책을 펼쳐 보이며 "1726년에 약국이 시작되어 '小兒活生丸'이라는 약을 만들어 팔았다고 되어 있군 그래"라고 대답했다.
다음은 주인 아저씨인 이이즈카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그 책은 뭐고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이란 어떤 약입니까?
"이 책은 우리 약국에서 만들던 약에 대한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고,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이란 옛날 사람들은 어린이의 몸 안에 감병(疳病)을 일으키는 벌레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치료하는 약이야, 현대 의학에서는 아이가 젖 먹는 양 조절을 잘못하여 체(滯)하여 생기는 병이라고 하지. 머리털이 누른 빛이 되고 입술이 창백해지며 땀이 나고 목이 마르며 배가 불러 끓고 산성을 띤 설사를 하며, 조열(潮熱), 피진(皮疹)이 생기는 병이지. 흔히들 감기(疳氣), 감질(疳疾)이라고 하고 감병(疳病)이라고도 하는데, 요즘 젊은 사람은 백날을 설명해도 몰라. 그냥 감병(疳病)이라고 알아두면 돼."
- 그럼 그 약을 300년 동안 만들어 팔았다는 말입니까?
"그래, 대략 300년 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을 만들어 팔았는데 지금은 안팔아"
- 아니, 250년 넘게 만들어 팔던 약을 왜 안팔고 있는 거죠? 돈벌이도 잘 되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약재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고 의약분업으로 약은 처방전이 있어야 처방하여 팔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잖아. 그리고 한약을 만들어 팔려면 기업형 공장이 필요한데 지금은 여력도 없거니와 다른 좋은 약이 많아. 그래서 그냥 지금은 일반 의약품을 팔거나 처방전을 가지고 오는 손님에게 약을 지어주는 정도야. 그래서 수입도 적어."
- 그럼 과거에는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을 많이 만들어 파셨나 보죠?
"그럼 지난 250년 동안 동일본 전지역을 우리 이이즈카(飯塚)약국에서 만든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이 소아의 감병(疳病)약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 그래서 지금도 우리 약국을 活生丸(세로칸) 약국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
- 아무튼 10대를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하나로 유지했다니 대단하군요.
"지금은 의약분업으로 일반 개인 약국은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 약사는 전문 학교나 3년제 대학 과정만 공부해도 문제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어. 약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거든. 그냥 의사가 지어주는 처방전에 따라 약을 지어주는 정도니 말이야. 그래서 수입도 줄고 보람도 별로 없어."
- 아무튼 10代를 이어 약국을 하셨다는데 대단하십니다. 그럼 자제분들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요.
"아들 둘과 딸이 하나 있는데 전부 약사야. 손자도 약사가 있어. 아무튼 그냥 아이들 모두가 이과 계열이 좋다고 하더니만 전부 약대에 진학하여 약사가 되었어. 가업을 물려 받기는 했지만 전부가 대학 병원 근처에 약국을 개업하여 처방전 받아서 처방하는 약국을 운영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그것이 먹고 살기에는 좋을 것 같아서 반대하지 않았지. 여기 약국은 賣藥과 잡화(일본의 약국은 미국식으로 잡화와 약을 같이 파는 곳이 많다)를 팔기에도 자리도 안좋아서 아마 이 자리에서 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어."
- 다른 업종과는 달리 약사는 대를 이어서 하려면 면허가 필요한데 어떻게 10代를 이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옛날에야 면허가 없어도 민간이 공인하는 형식으로 모두가 약방을 하였지만 일본도 서양식으로 80-90년 전 다이쇼(大正)시대에 와서 국가공인 자격제도가 생겨나 우리 할아버지때부터는 공부를 하여 다들 면허를 취득하였지. 나도 처음에는 이 약국에 직원으로 들어와 태평양 전쟁때 야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아버님이 대를 이을 자식이 없는 관계로 양자가 되어 약대에 다시 진학하여 서른이 다 되어서 약사가 되어 대를 이을 수 있었지. 다들 그렇게 어렵게 공부하였지만, 지금은 제도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많아."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 열심히 약국을 지키고 있는 이이즈카씨를 보면서 10代를 넘게 약국을 지켜오고 자식 셋에 손자까지 약사가 되었다는 것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의약분업으로 수입도 줄고 약사가 처방하고 약을 제조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에 조금은 씁씁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약국 하나로 10代를 이어오고 어렵다는 약사 면허를 조부에서 부터 자신과 아들 딸, 손자가 취득해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조그만 골목 끝의 약국이지만 열심히 경영하고 계시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10代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가게가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p.s
10代를 넘게 이어가는 일본의 가업 계승 문화의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의약분업으로 20년 넘게 재미가 없었다는 우리동네 이이즈카 (飯塚)약국 주인어르신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10代를 이어온 이이즈카(飯塚)약국
일본에서는 가업을 이어오는 유명한 가게들이 많다. 소위 老鋪(시니세·しにせ)라고 하여 3, 4代는 기본이고 10代 이상을 이어온 가게들도 많다. 서울의 청진동 해장국집들이 전쟁 이후부터 한번도 가마솥의 불을 끄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대를 이어가는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소바나 우동집 중에도 수백년을 이어온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동네의 조그만 음식점을 비롯하여 식품점, 의원, 책방, 빵집, 오뎅가게, 두부가게, 기모노 집, 어물전 등등.
지난 토요일 아들놈의 보육원 운동회를 끝내고 나서 점심거리를 사기 위해 집 근처 식품점에 갔다가 주인 아저씨에게 "이 가게는 생긴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라고 한번 물어 보았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4대째니까 대략 100년은 된 것 같군요"라고 대답했다. "4대째라고요, 대단하시군요"라고 놀라는 표정을 짓자 "저기 골목 끝에 있는 이이즈카(飯塚) 약국은 300년이나 되었는 걸" 이라고 대답을 했다. 내가 놀라는 표정으로 "300년이라고 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래 300년, 못 믿겠으면 한번 가 봐"라고 말했다.
주인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골목 끝에 있는 이이즈카(飯塚)약국으로 갔다. 300년이 되었다는 약국 치고는 작고 초라한 간판에 비좁고 낡은 건물의 1층에 이이즈카(飯塚)약국은 자리 잡고 있었다.
가게로 들어서자 손님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주인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보였다. 내가 들어서자 눈 인사를 하고 다시 손님과 상담을 끝내고는 일을 마무리 했다. 손님이 돌아간 후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이 약국이 300년이나 되었다면서요?"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놀라면서 "벌써 그렇게 되었나! 자료를 봐야 알겠는데"라고 대답을 하더니만 주인 아저씨는 이내 안으로 들어가 책 한권을 들고 나왔다.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책을 펼쳐 보이며 "1726년에 약국이 시작되어 '小兒活生丸'이라는 약을 만들어 팔았다고 되어 있군 그래"라고 대답했다.
다음은 주인 아저씨인 이이즈카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그 책은 뭐고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이란 어떤 약입니까?
"이 책은 우리 약국에서 만들던 약에 대한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고,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이란 옛날 사람들은 어린이의 몸 안에 감병(疳病)을 일으키는 벌레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치료하는 약이야, 현대 의학에서는 아이가 젖 먹는 양 조절을 잘못하여 체(滯)하여 생기는 병이라고 하지. 머리털이 누른 빛이 되고 입술이 창백해지며 땀이 나고 목이 마르며 배가 불러 끓고 산성을 띤 설사를 하며, 조열(潮熱), 피진(皮疹)이 생기는 병이지. 흔히들 감기(疳氣), 감질(疳疾)이라고 하고 감병(疳病)이라고도 하는데, 요즘 젊은 사람은 백날을 설명해도 몰라. 그냥 감병(疳病)이라고 알아두면 돼."
- 그럼 그 약을 300년 동안 만들어 팔았다는 말입니까?
"그래, 대략 300년 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을 만들어 팔았는데 지금은 안팔아"
- 아니, 250년 넘게 만들어 팔던 약을 왜 안팔고 있는 거죠? 돈벌이도 잘 되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약재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고 의약분업으로 약은 처방전이 있어야 처방하여 팔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잖아. 그리고 한약을 만들어 팔려면 기업형 공장이 필요한데 지금은 여력도 없거니와 다른 좋은 약이 많아. 그래서 그냥 지금은 일반 의약품을 팔거나 처방전을 가지고 오는 손님에게 약을 지어주는 정도야. 그래서 수입도 적어."
- 그럼 과거에는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을 많이 만들어 파셨나 보죠?
"그럼 지난 250년 동안 동일본 전지역을 우리 이이즈카(飯塚)약국에서 만든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이 소아의 감병(疳病)약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 그래서 지금도 우리 약국을 活生丸(세로칸) 약국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
- 아무튼 10대를 小兒活生丸(쇼니세로칸)하나로 유지했다니 대단하군요.
"지금은 의약분업으로 일반 개인 약국은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 약사는 전문 학교나 3년제 대학 과정만 공부해도 문제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어. 약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거든. 그냥 의사가 지어주는 처방전에 따라 약을 지어주는 정도니 말이야. 그래서 수입도 줄고 보람도 별로 없어."
- 아무튼 10代를 이어 약국을 하셨다는데 대단하십니다. 그럼 자제분들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요.
"아들 둘과 딸이 하나 있는데 전부 약사야. 손자도 약사가 있어. 아무튼 그냥 아이들 모두가 이과 계열이 좋다고 하더니만 전부 약대에 진학하여 약사가 되었어. 가업을 물려 받기는 했지만 전부가 대학 병원 근처에 약국을 개업하여 처방전 받아서 처방하는 약국을 운영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그것이 먹고 살기에는 좋을 것 같아서 반대하지 않았지. 여기 약국은 賣藥과 잡화(일본의 약국은 미국식으로 잡화와 약을 같이 파는 곳이 많다)를 팔기에도 자리도 안좋아서 아마 이 자리에서 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어."
- 다른 업종과는 달리 약사는 대를 이어서 하려면 면허가 필요한데 어떻게 10代를 이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옛날에야 면허가 없어도 민간이 공인하는 형식으로 모두가 약방을 하였지만 일본도 서양식으로 80-90년 전 다이쇼(大正)시대에 와서 국가공인 자격제도가 생겨나 우리 할아버지때부터는 공부를 하여 다들 면허를 취득하였지. 나도 처음에는 이 약국에 직원으로 들어와 태평양 전쟁때 야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아버님이 대를 이을 자식이 없는 관계로 양자가 되어 약대에 다시 진학하여 서른이 다 되어서 약사가 되어 대를 이을 수 있었지. 다들 그렇게 어렵게 공부하였지만, 지금은 제도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많아."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 열심히 약국을 지키고 있는 이이즈카씨를 보면서 10代를 넘게 약국을 지켜오고 자식 셋에 손자까지 약사가 되었다는 것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의약분업으로 수입도 줄고 약사가 처방하고 약을 제조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에 조금은 씁씁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약국 하나로 10代를 이어오고 어렵다는 약사 면허를 조부에서 부터 자신과 아들 딸, 손자가 취득해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조그만 골목 끝의 약국이지만 열심히 경영하고 계시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10代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가게가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p.s
10代를 넘게 이어가는 일본의 가업 계승 문화의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의약분업으로 20년 넘게 재미가 없었다는 우리동네 이이즈카 (飯塚)약국 주인어르신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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