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살아남는 길.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해(2)
글:박철현
전편에 보내주신 많은 관심과 격려 그리고, 비판에 감사 드린다. 비판의 지점은 "일본을 안고 가야한다"는 부분이었다. 예상한 바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비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겠나 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평화와 번영의 중심세력은 대로 한복판에서 다른 나라의 상징인 국기를 태우고, 상식 이하의 언동을 보이는 수구 보수 세력이 아니라, 바로 이 글을 읽고 있을 개혁적인 당신들임을 인식해 주신 후 글을 읽어 주셨으면 한다.
오늘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역사적인 6자회담(6개국 협의)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전세계의 매스컴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의 일부 사건들, 어제 니이카타 현에서 북한측으로 다시 무사히(?) 재출항에 성공한 만경봉 92호 등의 별개 사안들도 전부 6자회담과의 관계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한 중국은 미국측의 편을 들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에서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확언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번 6자회담은 외교부 실무진 선에서 회담 전 이미 모든 것이 조정되는 기존의 국제회담과는 차원이 다르게 무계획/무정형의 자유로운 협의 스타일로 진행되고 있다.
혹자는 이런 스타일의 회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는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기도 하지만, 판단은 TV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하는 것이다. 종이쪼가리 한 장에 불과한 공동성명서보다, 그 분위기에서 읽혀지는 득과 실. 앞으로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동북아시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판단들. 시츄에이션과 상황연출 외교가 얼마나 의미 없는 행위인가에 관해서 과거 몇 차례나 지켜본 바가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에 이르는 대통령의 국빈순방에서 얻은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에 대한 "타국"의 인정, 혹은 돌려 받지 못하고 있는 차관들밖에 없다. 심지어 역사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72년 7.4 남북공동성명 마저 당시의 경색되어 있는 정국을 탈출하기 위한 박정희의 쇼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후 유신헌법을 어떻게 즉시 공포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한반도가 주도하면서 대국적인 관점에서 일본을 포용하고, 경제적 견지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활용할 수 있는 동북아질서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의 긴장관계를 완벽하게 해소시킬 즈음에서의 주한미군 철수, 즉 완전한 독립국가 선포 말이다. 물론 이런 말들을 이번 6자회담에서 외교부 관리들이 해 주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무리니까. 그러나, 외교부 관리들의 마인드가 이런 식의 마인드, 즉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대해, "당당한 주권 국가"의 관리로서 한반도라는 천혜의 지정학적 이점을 살리지 못한다면, 100년 전 구한말처럼 이리저리 대국들에게 다시 현혹되고 끌려 다녀버릴 수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중국이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러시아가 공개적으로 북한지원을 밝히는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그런데 왜 갑자기 중국이 중재자의 역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왔을까? 그것은 바로 동북아시아가 전쟁의 참화에 들어간다면, 즉 미국과 일본의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선제북폭격이 만에 하나 실제로 일어나 한반도가 미국의 관리하에 놓인다면, 주변국 중 그 영향을 크게 받을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폭이 아닌 내부붕괴를 할 경우, 그래서 다시 미국이 질서유지를 핑계로 북한에 자국의 군대를 투입할 경우 그것만큼 중국에게 위험한 것이 없다. 지금 중국은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인 아시아태평양 가이드라인의 완충작용을 북한이 해주고 있기 때문에 전혀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중국은 경제적으로도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베리아 철도로 이어지는 노선을 노리고 있다. 중국의 서쪽편은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등의 자연적인 조건으로 인해 전혀 개발이 되지 않고 있으며 몽고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북부지방 역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고 하기엔 너무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많이 든다. 중국에게도 이미 1900년대 초부터 건설되어 있고 지금 그냥 물건을 싣기만 하면 되는 시베리아 대륙횡단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으로 득인 것이다.
대륙횡단 철도는 두개가 있다. 상해로부터 출발하는 노선, 부산으로부터 출발하는 노선. 부산은 한번에 시베리아로 가고, 상해는 여러 번 거쳐서 유럽으로 들어간다. 지리적 조건은 부산이 좋지만 물품의 생산력은 중국 쪽이 훨씬 밝다. 그런데, 간혹 가다 보면 한국의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은 상해와 부산을 대결시키려는 마인드로 끌고 간다. 상해에 뺏기면 안된다, 부산이 가져야 한다, 부산으로부터 원산을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야한다는 논리이다.
부질없는 대결의식이다. 싸울 필요가 없다. 어차피 물품의 생산력이 넘치고 넘치면 상해로 갈 것도 있고, 부산에서 하역해서 올라갈 것도 있다. 상해로 들어와도 되고 부산으로 들어와도 된다. 둘 사이에 자유무역협정 같은 것을 체결해서 상해와 부산을 동시에 동북아 시대의 물류 중심지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공존이다. 이 "공존"을 위해서 중국은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과 한반도가 함께 해 나간다면 러시아도 들어오게 되어 있다. 러시아는 어떤 의미에서는 직접적으로 6자회담과 관련이 없다.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리고 과거 만주국이라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중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어떤 의미에서 북이 폭격을 받더라도 지정학적인 피해는 별로 입지 않는다. 모든 시설과 정부기관들이 모스크바, 즉 유럽쪽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사실 러시아는 유럽이다.
그러나 지도를 보자. 블라디보스톡. 해안을 끼고 도는 가장 낮은 위도의 도시. 그러나 블라디보스톡은 겨울에 항구가 언다. 그렇지만 블라디보스톡으로부터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시작된다. 물류가 현대 경제의 생명선이라면 블라디보스톡이 살아나야 러시아 경제가 살아난다. 세계 최대의 물품 생산국 중국과 미국, 세계 최대의 원목 생산지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원목들이 상해나 부산을 통해 "이미 설치되어 있는 블라디보스톡 횡단철도"로만 넘어갈 수 있다면 그 통행료만 받더라도 어마어마한 돈이 된다. 게다가 돈이 하나도 안든다. 이미 설치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미국이 갑자기 선제북폭격을 하고, 혹은 북한이 내부적으로 붕괴해서 북한에 미국이 들어와 앉아 있다고 하자. 러시아로선 껄끄럽기 그지없다. 러시아는 이번 6자회담에 북한의 친구로서, 그리고 자신들의 "경제적" 회생을 위해서 들어온 것이다.
이렇듯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북한이 내부적으로 붕괴되더라도 미국이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중국과 러시아의 마인드를 읽고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민족인 한국이 어물쩍 저물쩍 미국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민족적 수치이자, 후세에 두고두고 씹힐 안주거리가 된다.
그리고, 일본. 나는 도쿄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강상중 교수가 북한에 대해 일본정부가 취해야 할 입장으로 제시한 투 트랙(Two-Track) 시스템을, 사실은 한국이 일본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두 가지의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대 문제,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 등등에 대해 사죄와 배상의 책임을 계속 물으면서 일본내의 진보적인 시민단체 및 정치인들과 연대하고, 한편으로는 그들과 더불어 일본의 동북아시아 편입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여야 한다.
사실 일본의 "정부"외교는 그 수명을 다했다. 50여년 이상 지속되어온 자민당 일당독재(중간에 한번 사민당-민주당 연합이 잡은 적 있지만 불과 2년이다) 안에서 일본이 동북아시아에 편입될 절호의 움직임이기도 했던 후쿠다 독트린(Fukuda Doctrine)이 자민당 내의 파벌들간의 싸움에 의해 흐지부지 되면서 일본 외교는 미국의 의견을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결정되어 버렸다. 미국 역시 자신들의 가이드라인 및 미사일요격시스템의 전초기지로써 일본을 충실한 시종으로 받아 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민간외교가들. 한국을 비롯한 동북·동남아시아의 정신대 문제를 고민하는 일본 최대의 시민단체 연합 바우넷 재팬을 비롯하여, 사회당과 공산당의 기존의 진보적인 정치인들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조차 그들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묵살해버리는 것은 폐쇄적 민족주의의 전형에 다름 아니다. 일본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최고의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원천기술이 미국이라면 생산기술은 일본이며, 불량채권 국가로 알려져 있더라도 가장 많은 금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북아시아가 실제적으로 블럭을 형성하여 유로연합과 같은 경제의 중심지가 된다면, 현실적으로 기축통화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돈은 "엔"화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일본의 종속적인 마인드를 바꾸어 나가게끔 우리들부터 "대국적인" 자세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물론 분노할 일에 대해서는 분노하라. 정신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모든 것을 대결적 의식으로만 몰고 가는 작용을 해버린다면 동북아시아의 평화적인 미래는 도래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시 한번 다루도록 하겠다)
결론을 내릴 때다. 나는 이번 6자회담에서 이 말을 외교부 관리들이 했으면 한다. 바로 "한반도의 영세중립화" 선언이다. 위에서도 적었듯이 지금 북한의 내부붕괴 및 선제북폭을 바라는 회담 참가자들은 거의 없다. 중국, 러시아, 한국, 북한은 물론이요, 사실 일본도 선제북격을 스스로 원한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하도 미국에 종속되어 있으니 그렇게 비쳐질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라. 우리는 스위스처럼 영세중립화를 원한다고. 그것이 6개국에 의해 승인된다면, 아니 미국을 제외한 5개국만이라도 이것에 승인을 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북한은 체제안정이라는 것을 우선 얻은 다음, 지금까지 해왔던 남북경협 등을 실질적으로 계속해 나갈 수 있고, 저번에 시도했던 신의주 경제특구와 개성공단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도할 수 있다. 그렇게 해나가면서 통일에 대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한반도가 살아남는 길. 그것은 한반도의 영세 중립화이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우리 모두가 꿈꿔온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아>가 눈앞에 실크로드처럼 펼쳐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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