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재산권에 관한 한.일간의 차이
한국의 디비디 사건을 보면서
글:장팔현
한.일 간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과 국가적 보호 차원을 보면, 양국의 국력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일례로 일본에서는 서적을 출판해도 낱권 단위로 까지 저자에게 인세가 정확히 지불되나,한국에서는 유명한 작가 이외에는 지적재산권의 주장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기 저서를 발행해 줬다고 출판사에 감사해야 할 경우가 많다.
바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신용사회인 일본에서는 확실한데 반해, 한국에서는 이 분야에 관한한 아직도 미개한 후진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는 훌륭한 한글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도 사용자들의 불법복제품 사용으로 되려 유망하던 한 벤쳐 회사가 망했던 예(例)가 잘 증명해준다.
인터넷의 보급과 급속한 기술의 발달로 안방에서도 좋은 노래나 영화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음은 기술적 측면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를 정당하게 이용하지 않고 편법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기술에 편승한 이기적 행위라 말할 수 있다. 기술은 앞서 나가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법적 정비는 아직도 한참 뒤를 걷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아직도 지적재산권 보호 개념이나 법적 완비 면에서 가히 후진국 수준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인터넷 보급기술만은 최선진국 수준이니 이 불균형이 결국은 소리바다나 디비디 사건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기술과 지적수준의 차이만큼이나 틈새가 벌어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첨단 기술의 이용과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를 동시에 슬기롭게 풀어내야만 할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지금도 소송이 진행 중인 소리바다 사건과 금번의 영화 다운로드 사건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의 지적재산권 개념에 대한 폭넓은 해석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봐도 분명 떳떳하거나 양심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노래나 영화, 글쓰기, 한글 소프트 개발 등은 모두가 없던 것을 새로이 창조해내는 일이다. 이는 엄청난 노력과 감성, 영성(靈性)때로는 신비에 가까운 고독하고도 끈질긴 작업의 산물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 내기에는 벅찬 작업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적 가치에 대하여 무분별하게 아무런 대가없이 사용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범죄행위이다.
창조적인 일의 결과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가 치러져야하며 이러한 선(善) 순환적 피드백이 있어야 또 다른 창조적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를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거나 선 순환적 연결고리를 끊어 버림으로서 결국은 소비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큰 틀에서 거시적으로 보아야 한다.
지적재산권이 철저히 지켜지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빌 게이츠나 손정의 같은 인물이 나오고 훌륭한 기업이 성장하듯이 우리도 지적재산권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정부는 하루속히 지적재산권에 대한 법을 정비해서 창조적인 개발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 개인이 볼 때는 공짜 또는 정당하지 못한 저렴한 방법으로 노래나 영화를 봄으로서 득이 될지 모르나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는 엄청난 손해이다.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새로운 창작활동이 일어날 수 있을 텐데 창조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서 창작물을 만든 회사가 망하거나 창조적인 활동이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는 더 나은 창조활동을 방해하고 결국은 창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로 돌아오고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경쟁력 저하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음악, 영화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 및 서적 출판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문제이다.
천재적 창조자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창조를 하면 할수록 공정하고 정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새치기한 사람이나 업자들에게 득이 돌아간다면 이는 보통 큰일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창조를 방해하는 단견이며 한 차원 높은 고급문화 활동을 방해하는 엄청난 범죄행위이자, 소비자 자신들도 고급문화를 즐길 더 많은 기회를 스스로 내던져버리는 우행(愚行)일 뿐이다.
지적 재산권을 철저히 지켜주어야만 창작자를 보호하고 더 나은 고급문화를 만들게끔 재촉하는 길이다. 무분별한 공짜심리와 도덕불감증은 이제 날려버려야 한다. 아무리 많은 소비층 네티즌이 반대를 한다 해도 지적재산권은 분명히 지켜지는 것이 옳다.
소비층들이 양심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자세가 되어있을 때 소비자도 떳떳하고 보다 나은 고급문화를 기대하면서 창조하는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은 지적재산권에 관한한,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많음을 절실히 느낀다.
한국의 디비디 사건을 보면서
글:장팔현
한.일 간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과 국가적 보호 차원을 보면, 양국의 국력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일례로 일본에서는 서적을 출판해도 낱권 단위로 까지 저자에게 인세가 정확히 지불되나,한국에서는 유명한 작가 이외에는 지적재산권의 주장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기 저서를 발행해 줬다고 출판사에 감사해야 할 경우가 많다.
바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신용사회인 일본에서는 확실한데 반해, 한국에서는 이 분야에 관한한 아직도 미개한 후진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는 훌륭한 한글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도 사용자들의 불법복제품 사용으로 되려 유망하던 한 벤쳐 회사가 망했던 예(例)가 잘 증명해준다.
인터넷의 보급과 급속한 기술의 발달로 안방에서도 좋은 노래나 영화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음은 기술적 측면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를 정당하게 이용하지 않고 편법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기술에 편승한 이기적 행위라 말할 수 있다. 기술은 앞서 나가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법적 정비는 아직도 한참 뒤를 걷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아직도 지적재산권 보호 개념이나 법적 완비 면에서 가히 후진국 수준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인터넷 보급기술만은 최선진국 수준이니 이 불균형이 결국은 소리바다나 디비디 사건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기술과 지적수준의 차이만큼이나 틈새가 벌어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첨단 기술의 이용과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를 동시에 슬기롭게 풀어내야만 할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지금도 소송이 진행 중인 소리바다 사건과 금번의 영화 다운로드 사건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의 지적재산권 개념에 대한 폭넓은 해석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봐도 분명 떳떳하거나 양심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노래나 영화, 글쓰기, 한글 소프트 개발 등은 모두가 없던 것을 새로이 창조해내는 일이다. 이는 엄청난 노력과 감성, 영성(靈性)때로는 신비에 가까운 고독하고도 끈질긴 작업의 산물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 내기에는 벅찬 작업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적 가치에 대하여 무분별하게 아무런 대가없이 사용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범죄행위이다.
창조적인 일의 결과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가 치러져야하며 이러한 선(善) 순환적 피드백이 있어야 또 다른 창조적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를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거나 선 순환적 연결고리를 끊어 버림으로서 결국은 소비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큰 틀에서 거시적으로 보아야 한다.
지적재산권이 철저히 지켜지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빌 게이츠나 손정의 같은 인물이 나오고 훌륭한 기업이 성장하듯이 우리도 지적재산권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정부는 하루속히 지적재산권에 대한 법을 정비해서 창조적인 개발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 개인이 볼 때는 공짜 또는 정당하지 못한 저렴한 방법으로 노래나 영화를 봄으로서 득이 될지 모르나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는 엄청난 손해이다.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새로운 창작활동이 일어날 수 있을 텐데 창조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서 창작물을 만든 회사가 망하거나 창조적인 활동이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는 더 나은 창조활동을 방해하고 결국은 창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로 돌아오고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경쟁력 저하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음악, 영화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 및 서적 출판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문제이다.
천재적 창조자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창조를 하면 할수록 공정하고 정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새치기한 사람이나 업자들에게 득이 돌아간다면 이는 보통 큰일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창조를 방해하는 단견이며 한 차원 높은 고급문화 활동을 방해하는 엄청난 범죄행위이자, 소비자 자신들도 고급문화를 즐길 더 많은 기회를 스스로 내던져버리는 우행(愚行)일 뿐이다.
지적 재산권을 철저히 지켜주어야만 창작자를 보호하고 더 나은 고급문화를 만들게끔 재촉하는 길이다. 무분별한 공짜심리와 도덕불감증은 이제 날려버려야 한다. 아무리 많은 소비층 네티즌이 반대를 한다 해도 지적재산권은 분명히 지켜지는 것이 옳다.
소비층들이 양심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자세가 되어있을 때 소비자도 떳떳하고 보다 나은 고급문화를 기대하면서 창조하는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은 지적재산권에 관한한,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많음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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