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토(江藤)에 의해 또다시 불거진 망언시리즈를 보면서

푸른하늘김 2003. 7. 13. 22:44
에토(江藤)에 의해 또다시 불거진 망언시리즈를 보면서

망언은 일본 우익정치인들의 전매특허

글:장팔현



아소 타로오씨의 창씨개명에 대한 망언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또다시 망언 전문가 에토오 타카미(江藤隆美.77) 전 일본 총무청장관이 일제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고 일본의 한국, 중국 불법 체류자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이 외신을 타고 13일 알려졌다. 그는 큐-슈-(九州)의 미야자키현(宮崎縣) 제2선거구에서 10회나 당선된 노회한 정치인이다.



13일자 일본 언론에 따르면 에토 전 총무처장관은 12일 후쿠이(福井)시에서 열린 당지부 정기대회 강연에서 한일, 중일의 과거 역사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1910년의 한일합방은 국제연맹이 승인한 것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는 정당한 것 이었다”는 식의 망언을 다시 늘어놓았다고 한다.

이어 에토씨는 한일합방에 대해 당시는 국제연맹 발족전임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조인해 국제연맹이 무조건 승인했는데 (그것이) 90년이 지나 왜 식민지 지배가 되느냐"고 강변했다고 하니 그의 역사인식에 탄식할 뿐이다.




또한 “토-쿄- 신주쿠(新宿)의 가부키초(歌舞伎町)는 제3국인이 지배하는 무법지대"라고 지목하면서토-쿄- 신주쿠에서 “최근에는 중국, 한국 등의 불법 체류자가 무리를 지어 강도짓을 있다”고 말하며“도둑질이나 살인을 하는 녀석들이 100만 명 있다”고 했다니, 총 불법 체류자가 28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히 재일동포를 염두 해 두고 100만 명이라는 얘기를 한 것이 뻔하다.




거기에다가 아직도 ‘제3국인’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가히 망언의 온퍼레이드라 할만하다.




일본 국회의 9월 해산설과 맞물려 선거철을 맞이하여 지역구에서 표를 얻기 위해 또다시 구태의연한 인기 발언이 줄을 이을 것 같다. 95년 10월에 서울에 와서 ‘일제시대에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고 망언을 한 전문가이니 그의 상투적 수법임을 감안해도 한번 쯤 일본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망언도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최근의 아소 타로오 정조회장(政調會長)이 “당시 조선 사람들이 패스포트를 받기 위해 이름에 <김(金)>이라 써져 있었는데, 그것을 본 만주인들이 "조선인이다"라 말해 일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조선인들이 성씨를 만들어 달라" 했던 것이 원래의 시작이다”에 이어 망언이 끝도 없이 올해에도 어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해방이후 30여 차례가 넘는 망언이 일본 각료나 정치가들 입에서 계속 나오고 있음은 아직도 과거청산이 요원함을 의미한다.




전쟁이 끝난 지도 60여 연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잠꼬대하는 일본 정객이 많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본이 미국에 패전하고 점령 시대를 보내던 50년대의 망언은 주로 ‘한국을 다시 침략하여 지배하고자 하는 발언’이 주를 이루었고 60년대는 일본이 맏형이라는 논리가 70년대는 우리의 눈부신 발전을 시기하여 일본이 은혜를 베풀었다는 ‘은혜론‘이 일었고 80년대는 교과서 파동에 따른 변명과 발언이 주를 이루었고 90년대는 회수도 많아지고 종합화되는 망언의 절정기였다. 이러한 못된 버릇은 신세기인 21세기도 넘어 2003년에도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으니 그 생명력은 가히 대단하다 하겠다.




과거로부터의 망언에 대하여 알아보자.




1)51년 9월-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했다’는 아소오 타로오의 외조부)총리가 국회 연설 시 한. 일 회담의 시작을 알리면서 한국인을“뱃속의 벌레”로 비유하였다.




2)53년 10월- 한.일 회담 도중 일측 대 표인 구보타가 "일본이 36년 동안 한국을 통치한 것은 은혜를 베푼 것이다"라고 망언하였다. 이후 4년6개월간 회담이 중지됨.




3)58년7월- 오노(小野)자민당 부총재가 “한국. 대만. 일본이 합중국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망언, 한국인의 분노를 샀다.




4)64년- 하시모토(橋本)관방장관이 “일본은 장형이고 한국은 말제(末弟:막내동생) 라고 망언하였다.




5)64년12월- 오노 부총재가 또다시 “한. 일 관계는 부모자식 관계이다”라고 잠꼬대 같은 망언을 함.




6)65년- 시나 외상이 《동화와 정치》라는 저서 속에서 ‘조선합병이 제국주의라 한다면 이는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왜곡표현 함.




7)74년- 타나카 카쿠에이(田中角榮)총리가 중의원 연설 중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한국인에 유익했다”고 망언함.




8)82년- 마쓰노(松野) 국토청 장관이 “한국의 역사 교과성에도 오류가 많다”라고 망언함.




9)86년- 후지오(藤尾) 문부상이 “한. 일 합방은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망언 함.




10)88년- 오쿠노 국토청 장관 또다시“일본은 침략국가가 아니었다”고 잠꼬대 함.




11)89년-타케시따(竹下)총리가 “침략전쟁 여부는 사가(史家)들이 평가할 몫이다”라고 망언 함.




12)94년- 나가노 법무상이 “위안부는 공창(公娼)이었으며, 남경대학살은 날조되었다”라고 망언하여 한국, 중국인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13)94년- 오쿠노는 계속되는 망언 전문가가 되어 “일본의 잔악 행위가 침략이라는 인식은 미국의 세뇌에 따른 결과이다”라고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망언함.




14)95년-이미 망언 전문가 반열에 오른 오쿠노가 또다시 “안 중근은 살인자이다”라고 망언을 하여 한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15)95년6월- 와타나베(渡部)전 외상이라는 자가 “한. 일 합방은 원만히 체결된 것이다”라고 망언한 후 곧 고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망언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16)-95년8월- 패전 50주년을 맞아 시마무라(島村) 요시노부 문부상이 “전쟁은 한나라가 쳐들어갔다고 해서 침략이라 말하는 것은 사고의 차이이다. 언제까지 일본은 변함없이 사과만 되풀이 할 것인가?”라고 딴엔 소신 있는 망언을 함.




17)95년10월- 한국을 방문중이던 에토오 총무청장관이 일본 언론과 인터뷰 도중 “한. 일 합방 시 한국에도 좋을 일을 했다“라고 망언, 분노를 샀다. 이후 한국의 강력한 반발로 망언에 대하여 사과하였으나 96년 1월6일 선거구에서는 또다시 ‘자신의 신념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하여 사과 발언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18)96년6월- 자타가 인정하는 망언 전문가 오쿠노 세이료오(奧野誠亮)전 법무상이 또다시‘위안부는 상행위였다’고 망언을 함으로서 한. 일간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는 불편한 이웃임을 또다시 입증하였다.




이처럼 굵직굵직한 망언만을 늘어놓아도 지면이 부족할 정도이다. 요 몇 년 잠잠하던 망언이 전 후 일본의 총리로서 첫 번째로 망언을 하여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자인 아소 타로오(큐-슈-에 아소광업이 있었고 일제 때 많은 한국인 징용인들을 혹사했던 기업으로 악명 높음)가 올해에도 외할아버지의 망령을 이어받아 망언을 하고 있으며 이에 질세라 망언의 선배이자 전문가인 에토 마저 망언을 계속 해대니 일본 정치가나 각료들의 망언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를 멈추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일본을 넘을 때 비로소 가능하리라 본다. 일본인은 강자에는 절대로 큰소리치지 못하고 180도로 태도가 바뀌기 때문이다. 80년대 일본 국력이 절정기 일 때 <>이라 큰소리치던 이시하라 신타로오 현 동경 도지사가 지금 어디 미국에 딴지 걸던가?




일본인의 망언은 우익정치가, 매스컴, 학계가 팀플레이를 하고 있으며 종류가 다양하다.




일본 내 사정이 어려울 때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는 망언, 한국을 떠보려는 망언, 한국이 불행한 일로 어려워할 때 불난 집 부채질하는 망언, 스포츠나 국제입찰에서 패배했을 경우에서 오는 근거 없는 일본인의 심정적 우월감이 무너질 때 망언이 나온다. 지금처럼 선거를 의식한 망언도 선거철 마다 등장하고 있다.




그 종류도 다양하니 거기에 맞춰 우리의 대응도 필요한 것이다. 물론 망언이 많아질수록 일본 우익들이 초조해진다는 얘기이고 우리가 일본을 완전히 극복할 때 이러한 망언은 눈 녹듯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