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 .오애란
동경의 한인사회는 가끔은 크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직은 너무나 작다는 생각도 든다.특히 신주꾸의 쇼쿠안도리는 정말 작다는 생각이 자주든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 매일 들르는 가게,매일 똑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마주하고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아주 작지만 소박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그런 사람들을 인터뷰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팔자로 태어난 죄로 여러사람을 만나볼 생각이다.
흔히들 여자나이 스물여덟 살이라면 조금은 걱정되는 측면도 있고 ,기회가 많은 측면도 있다고들 한다. 걱정되는 측면은 미혼에 별다른 직업도 미래도 없는 경우이고 ,기회를 말하자면 무엇이든 할수 있는 나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나이가 스물여덟이다. 오늘 만난 오애란씨가 스물여덟의 젊은 아가씨이다. 앞에서 말한 조금은 걱정스러운 사람중에 한사람일지 모른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별다른 기술과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직업도 없으며 일본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며 미래도 불투명하고, 하려고 하는 공부도 많은 사람.그렇지만 가능성은 많이 있어서 2년쯤 지나서 대학에 진학하여 30대 중반에 카운셀러로 당당히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나이 서른도 안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가 하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도 서른이 되기전에는, 아니 서른 다섯이나 된 지금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고 또 앞으로도 당분간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일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만나고 사귀는 것 좋아하면서 글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돈버는 것에는 자신이 없고 또한 돈 버는 재주도 없는 것 같은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런 내가 오늘은 서른도 안된 젊은 사람을 만나서 그의 삶과 인생을 말하고 또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어쩌면 조금은 웃기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젊다는 것이 그 만큼 미래가 있다는 것이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이 스물여덟의 젊은 친구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기쁨이고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올봄 4월학기 동경의 아라카와구 니시닛뽀리에 있는 다이나믹 일본어 학교로 진학한 학생 오애란씨.일본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3월말 일본에 왔다. 우선은 일본어 학교에서 2년간 일본어를 공부한후 조금은 늦은 나이일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일본의 대학에 진학하여 상담심리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북한에서 월남하여 제주도에 정착한 실향민이며, 감리교회 장로로 충실한 교인이신 부모님 사이에서 제주도에서 태어난 오애란씨는 자연스럽게 교회와 집 그리고 피아노에 열중하면서 자라났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여 잠시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중학교 음악교사출신인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 강사를 하면서 봉사와 상담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언제인가 기회가 되면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그러던중 1년 6개월전 제주도에서 일본의 사이타마현에 있는 와라비시로 파송와서 목회를 하고 있는 오빠의 권유와 도움으로 일본으로 오게되었다는 그는 요즘은 오빠네 식구들과 함께 교회에도 열심이고 아르바이트며 피아노 강습도 열심이다.
원래 피아노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잠시 직업적으로 피아노 강사를 하기도 했고 교회에서는 늘 피아노 반주 담당으로 일을 해야했다.
요즘은 일본에 와서 일본어공부며 아르바이트로 정신없이 바쁘지만 주일이면 교회에 나갈 시간이 있고,지금 다니는 교회에 다행히 피아노 반주자가 있는 관계로 너무나 기쁘게도 꿈에 그리던 예배만(?) 볼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것을 보면 그는 천상 기독교인 인가 보다.
지난 5월 신주꾸의 쇼쿠안도리를 늘 아슬렁 거리는 나는 그를 코리아프라자 앞에서 우연히 만날수 있었다. 장터라는 식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는 요즘 가게 앞에서 국제전화카드 판매일을 하고 있다. 하루 7시간에 주6일 근무로 개인적인 시간이 없다는 것을 빼고는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한다. 늘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신세만 지고 살았는데,물론 요즘에도 잠시 오빠에게 신세를 지고 있지만 조만간 독립을 하여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고 싶다는 그는 아르바이트가 삶에 대하여 배우고 인생을 배우고 또 일본을 배우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지난 월드컵 기간중에도 간간히 지나가다가 만나는 그를 보면서 참 인사도 잘하고 친절한 사람이구나 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조금은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기회가 자주 있었다. 국제전화카드를 팔면서도 늘 잘 모르는 것은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또 손님들에게는 아주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그. 월드컵 기간중, 한국 경기가 있는날이면 붉은 티셔츠에 태극기를 얼굴에 붙이고도 열심히 응원과 장사를 하던 모습이 참 재미있기도 하고 진지하게도 보이던 그.
평범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번쓰고 싶다며 처음으로 인터뷰 요청을 하였을때 당당히 그러지요 하면서도 조금은 어색한지 몇번이고 사양을 하더니만 드디어 이른시간부터 만나 차를 한잔 하면서 즐겁게 사는 이야기를 해주던 그 .제주도 사람들의 말투와 생활습관에서 부터 가족이야기 ,친구이야기 ,그리고 교회이야기며 일본에 와서 오빠집에 함께 살면서 조카들이랑 피아노 연습을 하는것과 아르바이트에 관한이야기, 결혼에 대한 고민과 남자 친구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 이후 일본에서의 공부와 진학 그리고 인생의 미래를 듣고서는 나는 그가 나이에 비해 생각도 깊고 또 미래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시각장애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교회 지하에 있는 피아노실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사정이 생겨 조금 늦게 갔을때 불도 없는 지하실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보면서,어두워 한걸음도 디딜수 없는 길을 자연스럽게 걸어가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장애인에 대한 그동안의 자신이 가졌던 편견과 그들의 어려운 삶에 대해 크게 느끼고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인생에 대한 고민과 고통을 상담해주는 카운셀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늦게나마 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물여덟의 나이, 늦었다면 늦은 나이지만 일본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진학하여 카운셀러가 되고 싶다고 다짐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당당하게 보였다.
며칠 동안 간간히 그를 만나면서 주로 나눈 대화는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종교관과 장애인에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사회참여와 봉사 그리고 상담심리에 관한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교회 잘다니고 믿음좋은 남자친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과 일본인 혹은 재일동포와의 결혼 문제에 대한 조언, 진학문제와 오빠집에서 나와 독립하는 문제에 대한 간단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가족의 화목에 대한 것, 형제와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대하여도 잠시 이야기를 하였다. 생면부지의 두사람이 간간히 나눈 이야기 치고는 참으로 폭 넓은 이야기가 오고간것 같다.
일곱명이나 되는 형제에 큰오빠는 목사,그리고 언니에 동생들.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와 홀로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고 계시는 어머니.그리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조카와 질녀.장터에서 일하면서 오며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주일이면 교회에서의 생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것 같더니만 세시간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참 많은 것들을 말하고 묻고 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아차!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하면서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들고서 사진을 찍고자 할때는 죽어도 사진은 싫다고 하던 그가 사진없는 글은 쓸수 없다는 나의 강고한 협박(?)앞에 실내에서 몇장의 사진과 길앞 사진관 옆에서 몇장의 사진을 촬영하고는 아르바이트가 바쁘다고 불이나게 달려갔다.
어쩌면 또 다시 얼마전 처럼 저녁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와 마주치거나, 전철안에서 그를 만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지난번 너무도 우연히 점심을 먹기위해 닛뽀리를 헤메이고 있는 나와 학교 파하고 아르바이트을 하기 위해 역으로 가는 그와 만나 점심을 같이 했었다.
우연히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일본음식과 한국의 떡을 먹고서 일본생활의 어려움과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좋은 일본의 유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헤어진 일이 생각이 난다.
나에게 글쓰는 이야기며 신문과 책 만드는 일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고, 나의 가족과 아이에 관한 질문도 많이 했다.어쩌면 취재하는 것이 서로를 내 비추어야만 가능한일이기 때문일것이다.서로가 서로를 취재한다는 느낌으로 .....
자! 그럼.이런 저런 사유로 신주꾸에 나와 장터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열심히 미소를 짓고 또 즐거운 웃음으로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열심히 국제전화카드를 파는 그를 만날수 있으리라.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충실히 기도하고 시간날때마다 일본어 공부와 조카들 피아노 선생일을 하고 있는 오애란씨를 만나보기 바란다. 우연히 우연히들 말이다.물론 국제전화카드를 구매할 일이 있으신분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걸수있는 기회도 있을것이다. 교회에 충실한 젊은 총각이라면 용기를 내어서 한번 데이트를 신청해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

동경의 한인사회는 가끔은 크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직은 너무나 작다는 생각도 든다.특히 신주꾸의 쇼쿠안도리는 정말 작다는 생각이 자주든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 매일 들르는 가게,매일 똑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마주하고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아주 작지만 소박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그런 사람들을 인터뷰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팔자로 태어난 죄로 여러사람을 만나볼 생각이다.
흔히들 여자나이 스물여덟 살이라면 조금은 걱정되는 측면도 있고 ,기회가 많은 측면도 있다고들 한다. 걱정되는 측면은 미혼에 별다른 직업도 미래도 없는 경우이고 ,기회를 말하자면 무엇이든 할수 있는 나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나이가 스물여덟이다. 오늘 만난 오애란씨가 스물여덟의 젊은 아가씨이다. 앞에서 말한 조금은 걱정스러운 사람중에 한사람일지 모른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별다른 기술과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직업도 없으며 일본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며 미래도 불투명하고, 하려고 하는 공부도 많은 사람.그렇지만 가능성은 많이 있어서 2년쯤 지나서 대학에 진학하여 30대 중반에 카운셀러로 당당히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나이 서른도 안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가 하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도 서른이 되기전에는, 아니 서른 다섯이나 된 지금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고 또 앞으로도 당분간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일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만나고 사귀는 것 좋아하면서 글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돈버는 것에는 자신이 없고 또한 돈 버는 재주도 없는 것 같은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런 내가 오늘은 서른도 안된 젊은 사람을 만나서 그의 삶과 인생을 말하고 또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어쩌면 조금은 웃기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젊다는 것이 그 만큼 미래가 있다는 것이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이 스물여덟의 젊은 친구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기쁨이고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올봄 4월학기 동경의 아라카와구 니시닛뽀리에 있는 다이나믹 일본어 학교로 진학한 학생 오애란씨.일본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3월말 일본에 왔다. 우선은 일본어 학교에서 2년간 일본어를 공부한후 조금은 늦은 나이일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일본의 대학에 진학하여 상담심리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북한에서 월남하여 제주도에 정착한 실향민이며, 감리교회 장로로 충실한 교인이신 부모님 사이에서 제주도에서 태어난 오애란씨는 자연스럽게 교회와 집 그리고 피아노에 열중하면서 자라났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여 잠시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중학교 음악교사출신인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 강사를 하면서 봉사와 상담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언제인가 기회가 되면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그러던중 1년 6개월전 제주도에서 일본의 사이타마현에 있는 와라비시로 파송와서 목회를 하고 있는 오빠의 권유와 도움으로 일본으로 오게되었다는 그는 요즘은 오빠네 식구들과 함께 교회에도 열심이고 아르바이트며 피아노 강습도 열심이다.
원래 피아노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잠시 직업적으로 피아노 강사를 하기도 했고 교회에서는 늘 피아노 반주 담당으로 일을 해야했다.
요즘은 일본에 와서 일본어공부며 아르바이트로 정신없이 바쁘지만 주일이면 교회에 나갈 시간이 있고,지금 다니는 교회에 다행히 피아노 반주자가 있는 관계로 너무나 기쁘게도 꿈에 그리던 예배만(?) 볼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것을 보면 그는 천상 기독교인 인가 보다.
지난 5월 신주꾸의 쇼쿠안도리를 늘 아슬렁 거리는 나는 그를 코리아프라자 앞에서 우연히 만날수 있었다. 장터라는 식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는 요즘 가게 앞에서 국제전화카드 판매일을 하고 있다. 하루 7시간에 주6일 근무로 개인적인 시간이 없다는 것을 빼고는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한다. 늘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신세만 지고 살았는데,물론 요즘에도 잠시 오빠에게 신세를 지고 있지만 조만간 독립을 하여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고 싶다는 그는 아르바이트가 삶에 대하여 배우고 인생을 배우고 또 일본을 배우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지난 월드컵 기간중에도 간간히 지나가다가 만나는 그를 보면서 참 인사도 잘하고 친절한 사람이구나 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조금은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기회가 자주 있었다. 국제전화카드를 팔면서도 늘 잘 모르는 것은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또 손님들에게는 아주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그. 월드컵 기간중, 한국 경기가 있는날이면 붉은 티셔츠에 태극기를 얼굴에 붙이고도 열심히 응원과 장사를 하던 모습이 참 재미있기도 하고 진지하게도 보이던 그.
평범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번쓰고 싶다며 처음으로 인터뷰 요청을 하였을때 당당히 그러지요 하면서도 조금은 어색한지 몇번이고 사양을 하더니만 드디어 이른시간부터 만나 차를 한잔 하면서 즐겁게 사는 이야기를 해주던 그 .제주도 사람들의 말투와 생활습관에서 부터 가족이야기 ,친구이야기 ,그리고 교회이야기며 일본에 와서 오빠집에 함께 살면서 조카들이랑 피아노 연습을 하는것과 아르바이트에 관한이야기, 결혼에 대한 고민과 남자 친구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 이후 일본에서의 공부와 진학 그리고 인생의 미래를 듣고서는 나는 그가 나이에 비해 생각도 깊고 또 미래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시각장애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교회 지하에 있는 피아노실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사정이 생겨 조금 늦게 갔을때 불도 없는 지하실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보면서,어두워 한걸음도 디딜수 없는 길을 자연스럽게 걸어가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장애인에 대한 그동안의 자신이 가졌던 편견과 그들의 어려운 삶에 대해 크게 느끼고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인생에 대한 고민과 고통을 상담해주는 카운셀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늦게나마 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물여덟의 나이, 늦었다면 늦은 나이지만 일본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진학하여 카운셀러가 되고 싶다고 다짐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당당하게 보였다.
며칠 동안 간간히 그를 만나면서 주로 나눈 대화는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종교관과 장애인에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사회참여와 봉사 그리고 상담심리에 관한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교회 잘다니고 믿음좋은 남자친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과 일본인 혹은 재일동포와의 결혼 문제에 대한 조언, 진학문제와 오빠집에서 나와 독립하는 문제에 대한 간단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가족의 화목에 대한 것, 형제와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대하여도 잠시 이야기를 하였다. 생면부지의 두사람이 간간히 나눈 이야기 치고는 참으로 폭 넓은 이야기가 오고간것 같다.
일곱명이나 되는 형제에 큰오빠는 목사,그리고 언니에 동생들.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와 홀로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고 계시는 어머니.그리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조카와 질녀.장터에서 일하면서 오며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주일이면 교회에서의 생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것 같더니만 세시간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참 많은 것들을 말하고 묻고 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아차!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하면서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들고서 사진을 찍고자 할때는 죽어도 사진은 싫다고 하던 그가 사진없는 글은 쓸수 없다는 나의 강고한 협박(?)앞에 실내에서 몇장의 사진과 길앞 사진관 옆에서 몇장의 사진을 촬영하고는 아르바이트가 바쁘다고 불이나게 달려갔다.
어쩌면 또 다시 얼마전 처럼 저녁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와 마주치거나, 전철안에서 그를 만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지난번 너무도 우연히 점심을 먹기위해 닛뽀리를 헤메이고 있는 나와 학교 파하고 아르바이트을 하기 위해 역으로 가는 그와 만나 점심을 같이 했었다.
우연히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일본음식과 한국의 떡을 먹고서 일본생활의 어려움과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좋은 일본의 유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헤어진 일이 생각이 난다.
나에게 글쓰는 이야기며 신문과 책 만드는 일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고, 나의 가족과 아이에 관한 질문도 많이 했다.어쩌면 취재하는 것이 서로를 내 비추어야만 가능한일이기 때문일것이다.서로가 서로를 취재한다는 느낌으로 .....
자! 그럼.이런 저런 사유로 신주꾸에 나와 장터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열심히 미소를 짓고 또 즐거운 웃음으로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열심히 국제전화카드를 파는 그를 만날수 있으리라.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충실히 기도하고 시간날때마다 일본어 공부와 조카들 피아노 선생일을 하고 있는 오애란씨를 만나보기 바란다. 우연히 우연히들 말이다.물론 국제전화카드를 구매할 일이 있으신분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걸수있는 기회도 있을것이다. 교회에 충실한 젊은 총각이라면 용기를 내어서 한번 데이트를 신청해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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