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키나와 사람들의 분노

푸른하늘김 2003. 6. 21. 22:45
오키나와 사람들의 분노

글:유재순




'유사법제안' 통과 … 무조건적 친미정책에 반발


 태평양지역 15개국 수뇌들이 모인 '태평양섬 사민트'가 지난달 오키나와에서 열렸을 때, 이나미 지사가 고이즈미 수상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국회의원의 90%가 유사법제를 찬성한다 해도 오키나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미-일 지위협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미국과 일본의 안보체제가 그대로 존속되기는 어렵습니다."
 순간 고이즈미 수상의 안색이 변했다고 한다.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는 것. 따라서 '태평양섬 사민트'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서먹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6일, 오키나와현 사람들이 반대하던 유사법제안은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통과됐다.
 일본 본토(일본인들은 남단인 나가사키로부터 동북지방 맨 끝인 아오모리까지를 본토라고 한다) 사람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을 섬사람이라며 옛날부터 차별해왔다. 특히 일류 기업에서는 아직도 인사에 불이익을 준다.
 오죽했으면 80년대 중반, 더 이상 오키나와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라며 일본 국회 앞에서 할복자살한 사람이 있었을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본토와 오키나와 사람들의 반목은 깊다.
 그래서 지난 89년 히로히토 일본 국왕이 사망했을 때, 오키나와 관공서는 조기를 걸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공무원들은 임시 공휴일이었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평소처럼 출근했다.
 당시 언론들은 깜짝 놀라 이를 대서특필했는데, 오키나와인들의 대답은 이랬다.
 "그 사람이 우리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해준 게 뭔데? 해준 것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군 및 연합군에게 협력한 의혹이 있다하여 오키나와인의 3분의1을 죽인 것 밖에 더 있나? 그런 그를 위해 왜 우리가 조기를 내걸어야 하며 그를 기리기 위해 관공서가 문을 닫아야 하는가?"
 당시 TV에 나와 이 같은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오키나와인들을 보며 난 깜짝 놀랐다. 일본 천황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며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헌데 최근 고이즈미 정권의 행동과 오키나와 사람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비교해 보니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쨌든 고이즈미 정권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음인지 이나미 오키나와 지사는 현재, 홋카이도에서 일본 전국을 돌며 지방자치제단체장을 만나 '미-일 지위협정'의 개정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 60년 미국과 일본의 안보조약에 의해 체결된 '미-일 지위협정'에 대해 일본인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은 대략 4가지 내용.
 첫째, 일본 주둔 미군에게 일본은 각종 시설 제공을 의무화한다. 둘째, 민간항공, 항만 등을 미군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일본 국내 법령과 조세 적용에서 미군은 제외시킨다. 넷째, 그 어떤 범죄라도 미군은 기소 전엔 절대로 일본 측에 신병을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우리나라의 '한-미 지위협정'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 95년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초등학교 6학년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을 계기로 일부나마 내용이 개정됐다. 뿐만 아니라 오만과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던 미군 고위층에서도 그 사건 이 후, 민첩하게 사과 표명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군들의 범죄행위가 밖으로 드러난 경우다. 만약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개인적인 일에 한정될 경우, 수사권은 물론 사과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기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성폭행 사건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인 친미를 하는 고이즈미 정권 때문에 두 번 상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