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재일동포 3세의 가슴아픈 사연

푸른하늘김 2003. 6. 11. 23:30
어느 재일동포 3세의 가슴아픈 사연


글:김윤순



우리 할머니 고별식은 어제 끝났구요,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가셨습니다........


이런 날엔… 할머니 이야기를 해도 되는거지요…?

우리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는요…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신음하던 1939년, 할아버지를 따라서 현해탄을 건너오셨습니다.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시던 우리 할머니가 산 설고 물 설은 일본땅에 건너와서 겪으셨던 고생은
이역살이를 해보신 여러분들이라면 상상되시리라 생각됩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소주장사, 막걸리장사를 하시면서 아들만 다섯을 키우신 우리 할머니는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명랑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집으로 찾아 갈때면 늘 두팔을 벌리시고 《우리 순이가 왔네!》하고 껴안아주시고
저의 손과 볼을 비벼주시면서 《순이가 곱다》고,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셨습니다.

노래를 그렇게도 좋아하신 할머니는 제가 갈 때마다 녹음기를 틀어놓으시고
“미소라 히바리”, “미야꼬 하루미” 노래를 잘 듣곤 하셨습니다.

노래테입을 거듭 들으시면서 어떨 때엔 학습장에 노래 가사를 받아쓰기도 하시구요,
학교 끝나서 할머니 집으로 뛰여 가면 저는 자주 할머니의 《선생님》이 되여주곤 했었습니다.

할아버지하고는 또 얼마나 사이가 좋으셨던지,
동포행사나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꼭 두 분이 같이 행사장으로 나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키 크고 말씀이 적은 분이셨고, 할머니는 키가 작고 노래 잘 부르고 춤 잘추는 명랑한 분이셨는데
제가 보기에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3년전에 돌아가셨는데…

가시기전에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보고, 《할아버지 나이만큼이나 오래 살아야 한다》고 하셨지만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하셨으니, 그 약속을 어기고 할머니는 그렇게 떠나가신거지요…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연령차는 아홉살이였습니다.)

아주 명랑하고 예쁜(!) 우리 할머니가 딱 한번만 손녀인 저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2000년 6월 15일 이후 첫 일요일, 우리 가족모임을 가진 날 저녁이였지요…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들의 만남과 포옹. 그리고 공동선언의 채택을 축하해서 소박한 축하연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할머니가 우셨습니다.
《1년만 더 빨랐더라면 할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가…》하고요…

아들 다섯중 세명을 북으로 보내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본에 건너오신 후 60년이 넘도록
고향땅을 한번도 밟지 못하셨습니다.

그후 《고향방문》의 길이 열리자, 고향에 사는 형제들을 만나는 날을 기다리시며
저를 보고 《(북에 사는)작은 아버지들한테 할머니가 고향에 갈 준비를 해야 되니까, 그때까지 당분간은
못간다는 말을 전하거라》고 하시면서 적은 돈을 푼푼히 모으면서 그리운 형제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셨는데…

제가 지난주 오사까 출장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 소원을 버리지 않으셨던 할머니였습니다……



할아버지 때도 그랬지만, 할머니를 보내는 날에도
북에 있는 자식들과 손자들, 그리고 고향(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은 충청돕니다)에 계시는
형제들과 함께 못한것이 유일한 한이 되였지요…

그래서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

할아버지가 울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우리 순이 웃는 얼굴이 곱다고, 고민하지 말고 울지도 말어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죄송합니다…

슬픈 감정이 끊임없이 계속되는것은 아닌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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